이틀 뒤, 올라나 마을 남서쪽 황무지.


“정말 이 인원으로 괜찮은 건가 싶었는데….”


스무 명이 넘지 않는 사냥꾼들이 눈앞에 널부러진 맹수 시체들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보통 이 정도 숫자의 사냥꾼들이라면 충분히 저만한 무리 하나를 상대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이런 무리를 몇 개나 상대해야 하는 원정이기도 했고, 지금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시체 무리는 사실상 단 두 명이 전부 숨을 끊은 것이나 다름없기도 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인 두 사람, 이올레와 라네비아는 마지막 한 마리의 머리를 목에서 떼어내며 이마를 훔쳤다. 온몸을 적신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고 들여다보니, 예의 그 누르스름한 빛이 표면을 따라 흐릿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거, 이렇게 아무렇게나 만져도 괜찮을까?”

“글쎄. 이 열병이 사람에게도 옮는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으니까. 안 그래?”

“우리도 거기까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가능성이 있지는 않겠어?”


이올레는 라네비아가 뒤를 돌아보며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을 듣고,  자신에게도 제법 그럴싸하게 들린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이 말한 것처럼 잠깐 들여다보자마자 태워 없애야 할 물건이라면 말이야.”

“뭐, 그런 거지.”


그 자리에서 사냥감들의 시체를 수습한 뒤, 사냥꾼들은 셋으로 나뉘어 각자 우두머리를 찾기로 했다. 그렇게 흩어지기에는 충분한 인원이 아니긴 했지만, 각자의 행동 양식이 워낙 판이하기에 서로 보조를 맞추기 힘들다고 판단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올레와 라네비아도 알키데스에서 불러온 용병 세 명과 함께 따로 열병에 걸린 짐승들의 우두머리를 찾으러 움직이기로 했다. 사실 더 많은 인원끼리 움직이고 있었을 때에도 나머지는 뒷정리만 해주고 있어야 했을 정도로 이올레와 라네비아의 무력이 워낙 압도적이었이었기에, 다섯 명이 우두머리의 흔적을 찾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흔적 정도만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좀 아쉽네요.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모처럼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았는데.”

“그러게 말이야. 한낱 짐승에, 열병으로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생각해서 쉬울 것 같았는데 말이지.”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일 것 같고 말이야.”


이올레는 라네비아가 용병의 푸념에 답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저번에 잠깐 나온 이야기대로 짐승들에게 유행하는 이 열병이 그 열병 왕이라 불리는 존재의 권능이라면, 그자가 짐승들의 우두머리와 그 무리를 적절한 피난처로 인도했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짐승들 자체의 지능이 올랐을 수도 있으니, 어느 쪽이든 라네비아 일행과 다른 사냥꾼들의 골머리를 꽤나 오랫동안 아프게 할 것 같았다.

이올레가 걱정한 대로, 그 날은 해가 떨어질 때까지 성과 없이 돌아다니기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다른 사냥꾼들과 합류하기로 약속해 두었던 지점으로 돌아갈 이정표까지 잃어버린 바람에, 해질녘이 되었을 때에는 꼼짝없이 알키데스로 돌아가야 했다.


“성과가 없었나 보네요.”

“그래, 그런 걸 숨기는 데에는 아주 도가 텄더라고.”


한숨을 쉬며 광장에 나온 이올레 일행을 케스티가 맞이했다. 이올레는 용병들을 그 자리에 머물러서 잠시 쉬게 하고 자신은 케스티랑 함께 방으로 들어가, 다른 사냥꾼들과 모이기로 했던 지점을 우선 확인해보았다. 새들이 비행하는 하늘보다 높은 곳에서 대지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점이 이런 상황에서는 천군만마나 다름없어서, 케스티는 손가락 몇 번 두드리는 것으로 손쉽게 그 지점을 찾아주었다.

그것을 확인한 라네비아가 곧장 몸을 돌리려는데, 케스티의 손가락이 그러는 이올레의 허리에 닿았다. 여전히 갑옷을 입은 채여서 체온은 전해지지 않았지만 가벼운 압박감 정도는 느낄 수 있었기에, 이올레는 금세 그 촉감에 위화감을 느꼈다.


“금방 돌아올 거야.”

“알죠. 하지만 요즘 들어서 우리한테 너무 소홀한 건 아닌가 해서, 잠깐 걱정이 든 거예요.”

“‘우리’한테가 아니라 ‘너’한테가 아니고?”


말을 꺼낸 이올레나 그걸 듣는 케스티나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추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역시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 머릿속에서 떠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디오니사를 떠나 영원교단과 본격적으로 엮이기 시작한 시점부터였던 듯하기도 하고,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숨 돌릴 틈 없이 바빠지기 시작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 그, 그렇… 죠. 요새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좀 부족해졌나 봐요.”

“그건 나도 그렇지. 그리고 ‘좀’이라고 할 정도로 사소한 상황도 아니게 된 것 같고.”

“성주한테도 그런가요?”

“응.”


케스티는 그래서 이따가 시간을 내어 그 이야기를 다시 해보기로 하고, 이올레를 밖으로 돌려보낸 다음 가만히 자리에 앉아 가는 한숨을 내뱉었다. 혼자서 이올레를 기다리는 상황에서도 큰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 대상이 이올레가 아니라 이번 사냥을 함께 하게 된 이들이라는 게 케스티를 조금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잘 다녀오겠지…’


다행히 그날은 다른 사냥꾼들의 일도 잘 풀려서, 이올레와 케스티는 편안하게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그래서, 아까 하고 싶었다던 이야기는 잘 기억해 뒀어?”

“성주야말로, 일부러 까먹은 척했던 건 아니죠?”

“설마. 내가 케스티 같은 사람을 일부러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이올레가 케스티를 돌아보면서 지은 미소는 영원교단과의 일에 엮이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마치 케스티 자신이 이올레와 처음으로 한 침대에 눕던 날에 보았던 것과 같은 부드러운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