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ily/105390906?target=all&keyword=%ED%94%BC%EC%B8%A0%EB%A1%9C%EC%9D%B4&p=1



이전 화




나는 나를 피하여 도망갔다. 품 안에 집어 넣은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구정물을 찰박거리며 달리는 모습은 꼴사나운 쥐 같았으리라. 그러나 하녀들은 내 필사적인 발걸음을 가볍게 따라잡고 몸을 억눌러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내 앞치마는 완전히 오물에 더럽혀졌다. 정숙해보이는 여성이 내 입을 손바닥으로 가로막았다. 젋은 여자가 내 등 위에 올라탔다. 나는 발버둥조차 칠 수 없을 정도로 제압당했다. 겁탈당하리라는 공포가 몸을 잠식했다. 이 글을 적는 이 순간까지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나는 정말… 


(이 부분은 잉크가 번져있다.)


겁탈당하는 창부가 나와 같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소란을 감지한 사람들이 살롱 뒷문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내 오해는 계속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온 사람은 네 명으로, 키가 작은 노신사,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 멀쑥한 남자, 그리고 엘리아나 양이었다.


“소란을 부렸다가 단속이 오면 어쩔 생각이야?”


멀쑥한 남자가 말했다.


“이 언니, 돈을 주지 않고 우리를 들여다 봤단 말이야.”


내 등을 꽉 누른 여자가 툴툴거리면서 말했다.


“미시즈 웰링턴?”


엘리아나 양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행히도 엘리아나 양은 나를 변호해주었다.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내 일행이라구. 그리고선 나를 부축해 뮤직홀 안으로 들여보냈다. 


뮤직홀 안은 화려했다. 벽에는 금박칠이 되어 있었다. 천장에 걸린 샹들리에가 빛을 반사했다. 방금 전 엘리아나 양이 ‘언니’ 라고 부른 이가 무대에서 연주자들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제각기 다른 옷을 입은 사람들은 프랑스 특유 헤어스타일을 한 남자의 초상화를 앞에 두고 노래에 맞춰 춤췄다. 개중에는 당장이라도 성교를 할 수 있도록 하의를 아래로 내린 사람들도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서로 입술을 맞추는 메이드들. 남색을 즐기는 신사. 부부들이 별실에서 즐겨야 할 행위를 구석에서 몰래 행하는 남녀 등. 그곳은 타락한 무리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음취가 났다. 타락한 정념으로 모인 사람들. 오로지 성교를 나누기 위해서만 모인 사람들.


어떤 여자들이 내게 노골적으로 음탕한 시선을 보냈다. 눈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고,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잇따라 뻗혀오는 유혹을 무시하자 여자들은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갈보년. 자기가 먼저 유혹해놓고는!


우리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 홀 중앙에 놓인 탁자에 앉았다. 


“음료를 주문하시겠어요?”


엘리아나 양이 권유했다.


“아니요. 그보다도 이 상황에 관한 설명을 듣고 싶군요. 엘리아나 양.”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엘리아나 양은 사뭇 공교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깍지를 끼었다. 


“이미 아시겠죠. 미시즈 웰링턴. 이곳은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고위층분들이 하는 은밀한 매춘 행위나 파티와는 다르죠, 우리들만이 나누는 축제라고 해야할까요! 마담은 이곳을 지으며 사드 백작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왜, 프랑스하고 이곳은 문화가 다르니 깨나 고생했다고는 하지만.”


“프랑스라는 말은 메리 양도 엮여있나요?”


“숨겨봤자 곧 들키겠죠? 네. 그렇습니다. 메리 양도 이곳에서 만났어요. 메리 양은 이곳에서 자주 요리를 도와줬죠.”


엘리아나 양은 태연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엘리아나 양과 메리 양이 이 무리와 같은 부류라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받았다. 그런 사람이 지금껏 마음을 숨기고 우리 저택에 껴있었다는 말인가? 나는 왜 몰랐는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는가. 함께 밥을 먹고 일을 하면서도 마음 속에 악이 들어찬 이러한 존재를 어떻게 깨닫지 못했는가. 나는 자기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어 참을 수 없었다.


“저도, 메리 양도 전부 해고하고 다른 사람으로 채우실 생각이신가요? 제발요, 미시즈 웰링턴. 한 번 만 자비를 배푸실 수 없으신가요? 이 장소와, 지금껏 우리들이 함께한 세월에 빌어서.”


엘리아나 양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저택 내에서 메리 양과 성교한 적 있나요?”


내가 물었다.


“없습니다.”


엘리아나 양이 대답했다.


“정말로?”


“신에게 맹세코.”


“이미 져버렸으면서?”


“네.”


나는 주저했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나에게 엘리아나 양을 심판한 자격은 없을지도 모른다. 나도 동성을 사랑하는 타락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추잡한 본성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라. 반으로 갈라진 마음 속 한 편은 나에게 그리 속삭인다.


또 다른 한 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직 타락하지 않았다. 나는 여성을 사랑하지 않는다. 실제로 방금 전 교태를 부리는 여성들을 쫓아내지 않았는가. 나는 그들에게 진심어린 경멸을 느꼈다. 나에게는 엘리아나 양을 심판할 자격이 있다. 마음은 타협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나는 이마에 손가락을 붙이고 겨우겨우 말을 꺼냈다.


“다시는 이 뮤직홀에 오지 않겠다고 장담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메리 양과 당신은 일년 치 봉급 삭감에, 추후 하인 숙소 재배치가 있을겁니다. 이게 조건입니다.”


“네.”


“…… 계약 기간이 끝나면 두 사람에게 추천서를 적어드리겠습니다. 나쁜 내용은 적지 않겠지만, 다른 장소로 배치되도록 연락할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엘리아나 양은 납득한 듯 중얼거렸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더 이상 내가 이런 사람들과 같은 장소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불쾌했다. 그러나 그 전에 엘리아나 양이 내 손을 붙잡았다. 


“하나만 여쭤보아도 될까요, 미시즈 웰링턴. 사석이라서 여쭤볼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시고, 기분 나빠하시지 않고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네. 뭔가요?”


“혹시 미시즈 웰링턴께서는 아가씨를 사모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엘리아나 양은 이어 말했다.


“전부터 생각했습니다. 혹시 미시즈 웰링턴께서는, 우리하고 동류일지도 모른다고요……. 가끔씩 아가씨에 관하여 이야기하실때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신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거울을 보지 않으니 모르시겠죠. 이 정도면 그냥 하인이 가지는 동경이리라고 생각했겠지만, 전에 에밀리아에게서 아가씨가 바이올린을 켠 날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조금씩 의혹이 들었습니다. 에밀리아는 미시즈 웰링턴이 직무조차 잊고 한참동안 연주를 듣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이후로 일을 되짚어보니 점점 의심이 커지더군요. 아가씨하고 단 둘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당신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미시즈 프레이아 웰링턴. 저는 알고 싶습니다. 저처럼 신에게 맹세코 말씀해주세요. 아가씨를, 피오나 피츠로이 아가씨를 사모하시나요?”


예상치 못한 질문은 반으로 갈려 다투던 내 마음을 깊이 파고들었다. 가슴이 아렸다. 나는 어떤 말을 해야할 지 알지 못해 입을 깨물었다. 내가 아가씨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나조차도 모른다. 모르지만 침묵해서는 안 된다. 이 상황에서 침묵하게 된다면 엘리아나 양은 내가 자신의 말을 긍정한다고 생각하리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타인의 마음 속에서 타락한 존재로 못박히게 된다.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나조차 모르는 사실에 답해야만 한다.


“저는……. 저는 아닙니다. 당신과는 다릅니다. 다르단 말입니다. 저는 아가씨를 사모하지 않습니다. 연정이 아닙니다.” 


겨우겨우 입을 열어 답하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저택에 돌아가자 엘시 양이 나를 향해 쪼르르 달려와서는, 걱정하는 어조로 말을 걸었다.


“미시즈 웰링턴!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만신창이로. 아아, 빨리 갈아입을 옷을 준비할게요!”


“괜찮습니다. 엘시 양. 제가 직접 준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준비하겠습니다.”


“그래도, 아아.”


“괜찮습니다. 배려는 감사합니다.”


나는 먼지 투성이인 채로 엘시 양을 끌어안았다. 엘시 양은 내 등에 손을 올린 채 발을 동동 굴렸다. 나는 어젯밤 느꼈던 비열한 안도감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불륜을 행한 아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만큼 타락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전이라면 느끼지 않았을 감정을 엘시 양에게 느낀다. 이제 나는 볼품없는 인간이다.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고마워요.”


나는 몸을 떼며 엘시 양의 머리와 뺨을 쓰다듬었다. 


























공지 : 돌아옴

전처럼 하루에 1화씩 올리지는 못함

미연시 분량이 책 2권 정도 나와서 그거하고 병행하면서 적어야함

그래도 최대한 끝까지 연재할것

백합 버리냐는 문의가 있었고 어떤 미친 놈은 갤로그에 비밀글까지 쌌던데 (지금은 지움)

백합 안 버리니까 안심하십쇼 백합은 글 접지 않는 이상 계속 적을 것

그러니 괜히 일 커지거나 좆목이 될 만한 일은 하지 마십쇼

나는 고로시를 당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