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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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치료.

그 말에 내가 반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회중전등을 켜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 마법사 여자를 응시했다.


"...사라의 치료라뇨."


목이 잠겨 있었다.

그녀가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너도 알겠지만" 하고 말을 시작했다.


"사라가 보통의 방법으론 치료받을 수 없다는 걸 너도 알고 있겠지."


"..."


침을 삼키고, 그녀를 응시한다.


"보통이 아닌 방법을 알아."


"...그게 무슨 말이죠?"


그 말은...이 여자는 지금 사라의 치료 방법을 안다는 소리다.


"...하지만 조건이, 대가가 있어."


"...뭔데요?"


말투가 저절로 사나워졌다.


"네 마력."


"마력...마력을?"


"네 마력을 전부 내게 줘. 그럼 사라의 병을 고쳐 줄게."


"...어떻게요? 어떻게 고친다는 건데요?"


내로라하는 치료사들이 진찰했을 때도 별 소득이 없었는데, 무슨 수로.

점점 믿음이 사라진다.


"날 못 믿겠니?"


침을 삼켰다.


마력.

분명 내가 지닌 마력의 양은 매우 많은 수준이고, 이것의 가치는 내가 가장 잘 안다.

하지만 그걸 알기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가치 있는 마력이라고 할지라도 병을 낫게 하는 것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즉-


"만약 못 고치면요? 못 고치면 어떻게 하실 거죠?"


"사라의 병이 낫지 않으면 마력은 그대로 돌려 줄게."


손해 보는 거래는 아니다, 어차피 급한 건 너다 - 하는 얘기다.

내 마력을 가지고 도주한다고 할지라도...


잠시 눈을 감고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알겠어요."







직후 그녀의 앞에서 나는 마력을 결정화시키는 주문을 외우게 되었다.

수 시간동안 나는 마력을 전부 토해냈으며, 이내 결정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마력이 바닥났고 그때는 그녀가 내 마력을 대신 빼냈다.


그리하여 새벽녘, 펼쳐진 천 위에 마력 결정의 산이 쌓여 불결한 빛을 내뿜고 있게 되었다.


극심한 피로감과 무기력을 느꼈다.

이 뒤에 방으로 돌아가 쓰러졌다는 것을 대충은 기억하지만, 그러한 사실 이외의 모든 것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언니."


내리쬐는 햇빛.

눈을 떴다.


사라가 걱정스런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사라?"


"언니, 나 안 아파."


아, 됐나.

아직 탈력감은 가시지 않았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사라의 몸을 훑었다.

정말 괜찮아 보인다. 사라는 정말로 두 발로 서서 허리를 펴고 맑은 목소리로 젊음을 노래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파스텔 톤으로 밝게 메워졌다.


조금만 더 자자-






"-줄기에만 검푸른 빛이 도는 게 특징인 한해살이풀이며..."


...네피라는 마법사와 그녀의 제자-아마도 페리라는 이름의-는 그날 종적을 감췄다.

둘이 살았다는 것도 모를 만큼 사람 두 명분의 생활감은 사라져 있었으며, 남아 있던 것이라곤 얼마간의 생활비로 쓸 돈뿐이었다.


한 해가 지난 지금까지는 쓸 만큼이었지만.


어쨌든 그날 이후 수 년간 쌓아온 마법 실력은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시간은 충분치 않았다. 일단 어느 정도 지식은 있는 약학과로 전입해 겨우 견습 딱지를 붙일 수 있었고, 나는 그때 나라는 존재에서 마법이라는 부분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거기에 더해 내가 얼마나 마법에 열정이 있었는지도.


"...현재 수출은 불법이란 것만 중요합니다. 일단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며..."


강의가 끝났다.

식물학과 교수의 눈짓.


짐을 싸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를 좇았다.

낡은 나무 바닥 위, 통행량이 줄어들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요즘 집중을 못하더구나."


"..."


"잠은 충분히 자고 있니?"


그녀는 교수인 동시에 기숙사의 사감이기도 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묘한 눈빛으로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아까 널 찾는 애가 와서, 기다리라고 했단다" 하고 가르쳐 주었다.

그녀가 이른 대로 정원 한구석의 휴식 공간으로 향했다.


"입학생 수석-이라."


입학식에는 실습 시험의 준비로 구경조차 가지 않았다.

다만 수석이라는 사람이 굳이 나를 찾아올 이유까지?


누가 뭐래도 지금의 나는...


"야, 얼굴 보기 힘드네. 약은 잘 만들어지고?"


목소리의 주인은 날 찾은 사람이 아니다.

수 년 전, 내가 귀족가에서 마법 스승을 하루에도 여러 번씩 바꿔칠 당시 본 적 있는 얼굴일 뿐이었다.


대충 고개만 까딱여 인사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누구야 쟤? 알아?"


"그 아가씨잖아, 3년 전엔가...여기 수석 졸업생도 선생으로 받았다가 바꾼 애."


"근데 왜 약학과야?"


"몰라, 마력 다 없어졌다던데."


"진짜?..."


거의 뛰는 수준으로 발이 빨라졌다.

하나하나 신경쓰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알지만, 생리적인 반응이었다.


바닥을 노려보며 거칠게 걷던 와중.


"오랜만이에요, 라즈 씨."


고개를 들었다.


눈 앞의 소녀는 분명...페리였다.







사실 조금 짐작은 하고 있었다.

페리가 수석을 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지만, 1년간 나와 '잃어버린 그 방대한 마력' 이외의 주제로 얘기할 법한 사람이라고는 사라뿐이었으니 나를 개인적인 이유에서 찾는다면 몸담았던 아이스트 가의 사람이거나, 혹은 그 직후의 둘이거나.


"간식 드실래요."


고개를 저었다.


근처 빵집의 것인 듯한 종이 봉투를 끌어안고, 그전보다 조금 성숙해진-나이만 든-외모로 내 맞은편에 서 있었다.

바뀌었지만, 1년 전과 똑같다.


"사라 씨는요?"


"...괜찮아."


잠시 말을 골랐다.

어떠한 의도에서 내게 접근했는지 나는 모른다.


"스승님은?"


"지금은 잠시 여행 중이세요. 출장이던가."


출장.

직업은 있는 모양이다.


"식사하셨어요?"


내가 어째서 약학과의 복장을 하고 있는지, 그러한 것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신입생이라 몰랐으리라곤 절대 생각하지 않지만, 어째서 묻지 않았는지 또한 생각나는 바가 없다.


"여기 음식 맛있더라고요."


소녀는 내 의견 따윈 아랑곳않고 어딘가의 식당으로 향했다.

1년이 지났음에도 나는 이 근처를 다 둘러본 적이 없다.


도착한 곳은, 못 먹는 음식을 내어주는 곳은 아니었다.


식사를 하며 페리는 내게 이런저런 것을 장황하게 말했다.

전에 식사를 준비했던 일이나, 사라와 단둘이 있었을 때, 혹은 그녀의 스승에 관한 잡설 따위를 이리저리 늘어놓았다.

신났던 경험을 설명하는 어린아이처럼 그녀는 꽤 흥분해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스승님이."


눈동자가 점점 차가워져 갔다.

잠시 숨을 삼키고, 말을 끊었다.


"근데, 날 찾아온 이유가 뭐야?"


"...이유요?"


"나한테 할 얘기가 있던 거 아니었어?"


그녀는 여전히 상기된 목소리로, "지금 얘기하고 있잖아요, 할 얘기." 하고 말했다.

실없고 장황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은 눈동자로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낼게요."


체면 혹은 상황 탓에라도 그럴 수는 없다. 저 돈 많은데 하고 비죽이는 걸 무시하고 값을 치뤘다.


"저 장학금도 받아서 돈 많다니까요."


장학금...그러고보니 수석이었던가.


수 년간 귀족가에서 마법사들을 스승으로 받았다가 갈아치우며 보는 눈은 길러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상 외였다. 이 애가 수석이 될 만한 인재였다니.


품평하는 것은 예의없는 행동이지만 속으로 이야기하자면, 처음 봤을 때도 사라지기 전날에 봤을 때도 별볼일 없는 실력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눈과 지금의 눈이 거의 같을 텐데도, 눈앞의 소녀는 그전의 평범했던 마력이 아닌 정말 '수석' 혹은 그 이상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녀가 성숙해 보였던 건 그 마력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었다.


...오늘 봤을 때부터-혹은 그 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다만 별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해 머릿속 한구석에 박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내 것이었던 그 마력은, 지금 이 아이에게 있다.





전체 스토리라인의 반도 안 온거 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