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아시카와 헤어진 다섯 명은 디오니사 동쪽 가장자리에서 가만히 기지개를 켰다. 이올레가 여기서부터는 어떻게 이동할지 미리 정하고 가자며 다른 넷을 잠시 멈춰 세운 까닭이었다. 단순히 걸어서 가기에는 먼 거리인 데다가 며칠 동안 마을에 머무르느라 알키데스에 소홀하기도 했으니, 그런 이유를 대며 돌아갈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면 저도 저 알키데스에 들어가야 되는 거죠?”

“당연하죠.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 가는지 알려주셔야 하니까.”


케스티의 답을 들은 세 사람이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 커다란 도시를 어떻게 조종하는지 모르는 이들에게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이올레와 케스티에게 다 방법이 있어서 그러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기에, 라네비아와 크시아는 금세 상황을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길을 알려주기 위해 이올레를 따라갔다고 해서, 둘과 함께 조종석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래 된 것 같은데, 일단 엄청나게 깔끔하네요. 여기에 그렇게 많은 분들이 살고 계실 만해요.”


그래도 외부인을 모시는 대합실은 루아의 마음에도 쏙 들어서, 루아가 알키데스에 품고 있는 감정을 ‘호의’에 아주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깔끔하고 짭조름한 다과도 세 사람의 속을 채우기에 알맞아서, 절로 포근한 미소가 오갔다.

한편, 이올레와 케스티는 조금 전 루아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리며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당장 루아 자신도 ‘영생자’라는 분이 언제 어디에 계시는지 모르기에, 우선 적당한 중간 지점에 내려서 기다리는 동안 루아가 다시 접선하러 떠나기로 했다.


“이 마을에서 보내주는 게 좋겠어. 다른 곳으로 통하는 길이 많으니까, 우리가 주변의 다른 의뢰를 받기도 쉬울 거야.”

“그렇게 전할까요?”

“같이 가지.”


이올레는 케스티의 손목을 가볍게 잡고, 반대편 손에는 지도를 쥐고 앞으로 나섰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듯이 얼굴을 흔드는 것을 보니, 기분이 굉장히 좋아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올레는 손목을 가볍게 비틀어, 자신도 이올레의 손을 잡고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앞뒤로 나란히 걸으며 대합실로 향하니, 루아 한 사람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할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어, 네.”


케스티는 이올레의 물음에 다소 머뭇거리며 답하는 루아의 목소리에서 이유를 알 것만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처음 자신의 마을을 구하러 온 이올레가 ‘남자는 버린다’고 말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한기가 루아의 눈에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올레는 이번에도 그게 뭔 대수냐는 듯 당당하고 탄탄한 눈빛으로 루아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이올레의 입장에서는 그런 자질구레한 것을 이번 대화에 올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루아도 당장 그 생각을 입 밖에 내려는 것은 아니었기에, 이올레가 입을 여는 것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확신에 찬 눈빛을 보면 그 입에서 중요한 안건이 나올 것을 예상할 수 있으니, 사담은 그 뒤로 미루는 게 맞았다.


“이따가 이 마을에서 내릴까 하는데, 어떤가요?”

“자그레이…라는 곳이네요. 디오니사에서 찾아오는 사냥꾼들의 중간 기지로 쓰이는 곳이죠.”

“2년에 한 번씩 들소를 잡으러 오는 사냥철 말이죠?”


가벼운 이야기가 조금 더 오간 뒤, 루아는 이올레의 제안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이올레를 만나러 오기 직전에 들은 ‘영생자님’의 다음 행선지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아, 중간에 정비할 장소로는 최선인 곳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본론을 마친 뒤, 루아는 케스티와 이올레가 자리를 뜨기 전에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잠시 알키데스를 둘러보러 간 라네비아와 크시아가 여기로 돌아오기까지 잠깐 시간이 있기에, 자신이 이올레와 케스티 사이를 보고 느낀 위화감을 입에 올리기에 이만한 기회가 없었다.


“당신들 둘… 혹시 그런 사이인가요?”

“그런 사이?”


이올레는 루아가 말한 '그런 사이'라는 게 굳이 숨기거나 부끄러워해야 하는 거였냐는 듯, 무감각한 느낌의 차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손목 좀 잡았다고 거기까지 의심하는 건가요? 당신을 만나고 나서는 위화감이 있을 법한 일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거기까지요? 뭔가 친근한 사이가 맞긴 한가 보죠?"

"그럼요. 제가 이 성을 얻고 나서 처음으로 구한 사람이니 당연하잖아요?"


이올레가 생각하기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었기에, 사정을 모르는 루아가 보면 다소 뻔뻔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당당하게 나섰다. 그렇게 하니, 루아도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못해도 신뢰나 우정이 끈끈한 건 알아줘야겠네요."

"그럼요."


케스티도 고맙다고 말하는 것처럼 웃자, 루아는 정말로 두 손 들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슬슬 다른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