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헥헥헥헥……."



언젠가부터, 부드럽지만 축축하고 냄새나는 무엇인가가 내 얼굴을 훑고 있었기 때문에, 불쾌한 자극을 견디지 못하고 잠에서 깨고 말았다.


만족할 만큼 수면을 취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머리에는 혼탁함의 안개가 가득 껴서 제대로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상태로 나는 관에서 몸을 일으켰다.



"헥헥헥……."


"……아직 일어날 때도 되지 않은것 같다만, 넌 내 방 멋대로 들어와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월!"



어쩐지 오랫만에 보는듯한 복슬복슬하고 사랑스러운 실루엣을 가진 묘한 짐승이, 침 범벅이 된 입으로 다시금 날 햝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강제로 안식에서 깨워졌을 때마다 으레 찾아오는 극심한 현기증과 두통 등의 불쾌한 감정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욱……. 캬, 캬아아아아악!"


"끼잉……."



평소대로라면 좀처럼 해주지 않아서 아쉬운 사랑스러운 모습이라 할 수 있건만, 한 번 이렇게 심사가 뒤틀리면 천하에 내놓으라는 현인들도 버티기 어려운 불쾌한 감정이 쏟아져서 좀처럼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녀석을 걷어찬 다음 내동댕이 치고, 자신의 주제를 알게 해주고 싶다는 충동이 억누르기 힘들 정도로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저 아이는 역시, 당장 나를 불쾌하게 만들긴 했어도 내가 사랑하는 아이이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내 잠을 방해할 정도로 막무가내인 천둥 벌거숭이는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사려깊다고 한다면 사려깊다고까지 할 수 있는 저 아이가 굳이 큰 실례를 무릅쓰고, 자기에게도 어느정도 피해가 올 것을 감안 하더라도 감히 내 잠을 방해하는데는 필시 내가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데 까지 생각이 미쳤다.


나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밤의 귀족 특유의 정신적 고통에서 기인하는 끔찍한 악의를 억누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연유로 내 잠을 방해하려 든 것이더냐? 비록 네 지금 모습이 제법 사랑스럽긴 하다만, 그것만으론 지금 네가 저지른 무례를 용서받을순 없겠구나."


"끼이잉……."


"그렇게 불쌍한 척 해도 별 수 없다만? 그보다 아직도 동물 형태에서 말을 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면 슬슬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겠느냐? 이대로는 네가 나에게 감히 무슨 변명을 하려는지 알기가 어렵구나."


"끄응, 끄응, 끄응~"



내가 그렇게까지 말했건만 권속 녀석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기는 커녕, 불안한듯이 연신 끄응 하며 신음소리를 내더니, 제자리에서 빙글빙글돌면서 내 관 언저리를 박박 긁어댔다.


그 때, 내 머릿속을 번뜩이며 관통하는 한 가지 가능성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곧바로 지체없이 머리맡에 놔두었던 종이 포장을 열어 환약을 입에 머금고, 내 핏물 병의 내용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곧바로 환약의 끔찍한 맛이, 핏병의 지독한 향료와 섞여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각으로 내 온 입안을 유린했고, 뒤이어 독한 환약의 성분이 곧바로 내 전신을 타고 퍼져,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 약은 사냥꾼들의 함정에 빠져 밤의 여제라는 이름값도 못하고 허무하게 죽을뻔한 '그 날'의(본인들은 어디까지나 생포라고 주장했지만) 굴욕을 곱씹으며, 


비밀리에 준비해둔 잠기운으로부터 정신을 차리는 약이었다.


그 맛은 비록 끔찍하긴 하지만 잠을 방해받으면 한동안 영혼이 뒤틀리는 고통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우리 밤의 일족이 갑작스런 습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수단이다.


이전에 투쟁이 일상이었던 살육이 끝나지 않던 시절에는, 가문이 커다란 규모를 유지했고, 철저한 위계질서로 보안을 관리했기에, 내가 직접 공격받을 일도, 그래서 이런 쓰디쓴 약을 먹을 일도 없었다.


그래서 평화조약 이후 정말로 몇백년동안 인간들에게 한 번도 습격을 당한 적이 없었기에 이런 게 있었다는 사실조차 한동안 잊어버렸었다.


그것은 이것이 이렇게나 독한 약이라는 사실 조차도 잊어버릴 정도로 깊은 망각이었다.



"우, 우웨에에에엑……."


"끼이이잉……."



내가 머리를 감싸고 비명을 지르는 사이, 고통스러워하는 내 모습이 걱정이 되었는지 권속은 내게 주둥이를 들이밀어 얼굴을 햝으려 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집중하는데는 방해가 되었기에, 나는 그 아이의 주둥이를 밀어내 제지하고, 두 뺨을 몇번 때려 정신을 차리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것은 평상시에 내가 바랄때나 좀 해주지, 쯧.



"……됐다. 네가 걱정할 일은 없다. 그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게지?"


"헥헥헥헥헥……."


"사냥꾼들의 습격……이라던가?"


"왕!"



아무래도 정답인 모양이다.


결국 숙면을 제대로 취한 것은 아니었기에 아직 머리가 몽롱하긴 했지만, 이제 몇천년을 살아와도 근원도 이유도 모를 밑도 끝도 없는 폭력성은 어느정도 가셨기 때문에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나는 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지금의 상황을 경고하러 온 이 아이의 노고를 순수하게 칭찬하기 위해, 이 아이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그 아이는 진짜 개처럼 가만히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이렇게만 보면 하는 짓마저 진짜 영락없는 강아지 같아서, 정말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건지, 정말로 그 아이가 맞는건지, 어느 날 나를 비밀리에 찾아온 진짜 개인건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헥헥헥헥헥헥……. 핥핥핥."


"그만, 그만 하거라. 간지럽구나. 그런 건 나중에 상황이 진정되면 하자꾸나."


"월!"


"그래서 언니……는 분명 다른 가문과 협의할 일이 있어서 한동안 집을 비운다고 했고, 그럼……동생 일행은 어찌됐느냐?"


"웍! 월!"



내 권속은 낮은 소리로 작게 짖으며 창가로 달려가 창틀을 벅벅 긁어댔다.



"그래. 휘말리지 않게 제대로 도망쳤나 보구나. 괜히 여기 있어봐야 방해만 될테니……."


"헥헥헥헥헥……."


"그런데 이제 슬슬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겠느냐?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다만……―"


"끼잉, 끼잉, 끼잉, 끼이이잉……."


"……."



어쩐지 권속은 내 말에 구슬프게 끼잉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면 사냥꾼들이 우리 밤의 귀족들을 사냥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권능부터 봉인하려 들지 않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이른 시간부터 습격을 실행했다는 것은, 우리 밤의 귀족들이 전부 자고 있을때 미리 사전 준비를 해뒀다는 뜻일테니, 적어도 동족 만으로는 이런 습격을 할 수 있을리도 만무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어떻게 동물의 형태로 변할수 있었을까?


나는 시험삼아 가벼운 권능을 사용해봤다.



"……되는구나."



권속은 내 눈 앞에 불안정한 형태로 떠오르기 시작한 핏병을 바라보며 혓바닥으로 코를 한 번 낼름 햝았다.


아직 권능의 힘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그들이 우리의 권능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원래대로라면 똑바로 부유해할 병은 불안정하게 허공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었으며, 그 조차도 간신히 내 가슴께에서나 가능했을 뿐으로,


조금이라도 몸에서 떨어트리면 금방이라도 떨어질듯한 갸날픈 수준이었다.


이 정도 봉인이라면 아직 권능을 완전히 자유자재로 다루지는 못하는 내 권속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을 법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능을 내 몸 주변 이상으로 퍼트리지 못할 정도로 약화시키는 정도의 봉인'은 나 같은 거물을 사냥하기엔 성능적으로 조금 불안한 감은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주 무효한 판단도 아니었던게, 봉인의 강도가 약한만큼 저번의 모자란 무뢰한과의 싸움처럼 시간을 끌어 요행을 바라기엔, 


상대적으로 저렴한 부적으로도 충분히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런가……. 이런 식으로 나오기로 했단 말이지?"


"헥헥헥헥헥."


"수고했느니라. 이제부턴 내가 알아서 할테니 너도 이제 몸을 피해서 스스로 몸을 사리거라."


"……끄응."



……어쩐지 권속 녀석은 내 명령에도 불구하고 내 뒤에 찰싹 달라붙어 따라오려 들었다.


지금의 권속은 동물의 모습이니 사냥꾼들이 정체를 눈치챘다고 한들, 어지간해선 먼저 공격해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대로 계속 나를 따라온다면 동물들이 일반적으로 밤의 귀족들을 두려워 한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정체가 탄로날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권속 녀석은 구슬프게 울면서 끈질기게 나를 쫒아왔다.



"……하기사, 먼저 공격해오지 않는다고는 한들, 그거랑 별개로 아무 힘도 쓰지 못하는 상태로 이런 상황에 홀로 남겨지면 두려울 만도 하겠지."


"끄응~"


"알겠다. 더는 뭐라고 하지 않으마. 대신 언제든 위험할 것 같으면 그때는 제대로 도망치려무나."


"왕!"



나는 제 멋대로 녀석의 고집에 납득하고는, 내 뒤를 따라오는 것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 아이에겐 전의 납치사건 이후로 구비하도록 들려준 비장의 약물이 있다.


효과가 강력한 만큼 다소의 부작용이야 있겠지만, 죽을만한 치명상에도 목숨을 구하는데 충분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 정도로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매우 귀하고 강한 약재다.


내가 제조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필시 제대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걸 써야 할 정도로 심각한 일만큼은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그나저나 저 놈들, 하는 짓들이 묘하게 신경쓰이는구나."


"왕?"



권속은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뒤를 졸졸 쫒아오면서, 고개를 하늘로 들고 코를 킁킁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 아이는 우리 뒷쪽 복도의 한 구석을 응시했는데, 그와 동시에 묘한 인영이 황급하게 벽 뒤로 사라졌다.


몸놀림은 제법 좋은 듯 하다만, 아무리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평범한 인간은 숨소리,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 심장이 뛰는 소리, 카페트를 스치는 발소리 까지 숨길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은 방을 나서기 전부터 이미 놈들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놈들이 덮쳐올때의 방심을 이용해 역공을 가하기 위해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다.


이제 상대적으로 감이 떨어지는 권속 녀석도 이 주변에 불한당들이 있단걸 깨닫고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설마 놈들은 우리가 눈치도 채지 못할거라……그렇게 까지는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워웅?"



권속은 내 혼잣말에 고개를 귀엽게 갸웃거렸다.


정말 그런 귀여운 모습은 평상시에나 많이 보여 줬으면 좋겠다만…….


먼젓번 녀석의 기척이 사라지자, 이번엔 빈 방에 숨어있던 기척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들 중 누구도 적극적으로 공격해오려는 기색은 없고, 우리가 가는 길마다 자리를 비우고 도망쳤다가, 우리의 등 뒤로 따라붙는 그런 행동을 반복했다.



"도대체 저 놈들, 뭘 하고 싶은건지……."


"헥헥헥헥헥."



훈련받은 놈들 특유의 시간을 끌면서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드는 이런 전략은 이제 신물이 날법도 하건만, 아무래도 목숨이 걸린 일이니 저들도 섣불리는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놈들은 나를 특정한 경로로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와 직접 싸우는것 만큼은 피하려 들지만,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때면 기습을 하는 척 하면서 계속해서 위협을 가해왔다.


다행히도 놈들은 이 아이가 나의 권속이라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줄기차게 내게만 계속 무기를 겨누며 견제해왔다.



"정말 이런 상대하기 귀찮은 무기를 처음 만들어낸 놈의 얼굴이 궁금하구나."


"월!"



그런 애기를 하면서 또 그들이 정해놓은 경로에서 벗어났는지, 또 놈들 중 하나가 구석 어딘가에서 총격을 해왔다.


피융 하는 소리와 함께 또 한번 권속의 털이 곤두섰고, 그 아이는 내 주변을 어쩔줄 모르겠다는 듯 연신 빙빙 돌면서 끼잉 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그것이 어딜 겨누고 있는가만 확인 했을 뿐, 그것을 막거나 피하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애당초 권능이 약화되었다고 한들, 아주 봉인해놓은 것은 아니었기에, 적어도 내 몸 주변 1m 안에서라면 여느 때와 거의 다를 것 없을 정도로는 권능을 휘두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들도 내가 탄을 막아서 역으로 날려오는 것을 경계해서인지, 섣부르게 나를 정밀하게 조준해서 사격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곤 해도 정말 여간 신경에 거슬리는게 아니었다.


놈들은 분명 나를 습격해서 귀찮게 하고 있긴 하지만, 정작 살의가 없다면 이쪽도 딱히 상해를 입힐 마음은 없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훈련받은 놈들 특유의 귀찮은 움직임으로 이쪽을 흔든다 치면 여간 상대해주기 피곤할 뿐만 아니라, 


놈들이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놈들이 짜놓은 틀 안에서 허우적 대다가 사냥 당하는것도 사양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거라."


"끼잉……."


"원, 네놈 아무리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한들 너무 과몰입 한게 아니더냐?"


"끼이잉……."


"하아…….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하느냐? 훌륭한 강아지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충직하게 주인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구나."


"……월!"


"그래. ……그런 식으로라도 납득했으면 됐다.



나는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권속을 내버려두고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몇발자국을 더 나아갔다가,



"거기 나랑 대화좀 하자꾸나."


"!"



전면의 복도 구석에 있는 녀석을 노리고 뛰어드는 척 하면서, 빈 객실에 숨어있던 침입자에게 달려들었다.


복도 쪽에 숨어있던 녀석은 애송이었던건지, 위협만으로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그대로 도망쳐버렸고(겁이 나서였다기보단 그런 작전이었겠지만), 


그 덕분에 방에 숨어있던 놈은 엄호해줄 아군도 없이 단독으로 나와 마주해야 했다.


복면을 쓴 작은 덩치의 습격자는 내 행동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깜짝 놀라서 잠시 그대로 얼어붙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내게 덤벼들었다.


놈은 내게 총을 꺼내 겨누고 격렬하게 저항하려 했지만, 



"흥, 이 거리에서 나와 격투라도 할 셈이냐?"



권법을 배운거랑은 별개로, 나는 인간과는 궤를 달리하는 반사신경을 지닌 밤의 귀족이다.


놈이 내게 총구를 갖다 대기도 전에, 나는 놈의 손목을 비틀어 총을 뺏아버렸다.



"큭!"


"저항은 무의미하다만? 아직 내가 네놈을 해칠 마음이 없는 동안 얌전히 잡혀주지 않겠느냐?"



물론 제대로 훈련받은 병사라면 그 정도의 압박 만으로 회유당하지는 않을 것이고, 나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어떤 종류건 밤의 귀족 사냥에 연루되는 인간놈들은 어딘가 독한데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


놈은 내가 총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주머니에서 단검을 꺼내서 거꾸로 쥐고 내 옆구리를 노리고 휘둘렀다.


나는 손가락을 회초리처럼 휘둘러서 놈의 손목을 후려쳤고, 그 충격으로 놈은 단검을 놓치면서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렇지만 그대로 쓰러지는 대신, 녀석은 그 자리에서 낙법을 취하고 구른 뒤, 바로 태세를 갖춰 몸을 일으켰다.


그 놈은 투지와 몸놀림 만큼은, 먼젓번 습격에서 마주했던 놈들의 대장놈에 뒤지지 않는 대단한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이제 슬슬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네가 내 존재를 눈치채기도 전에 이미 죽였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하압!"



놈은 내 말을 들은척도 하지 않고 신발에서 또 다른 단검을 뽑아들어서 내게 달려들었다.



"……요즘에도 신발에 칼을 챙겨 다니는 놈들이 있었――"


"――그만, 멈춰! 네놈의 개가 다치는 꼴을 보고싶지 않다면 당장 물러나라."


"끼이잉……."



그때 다른 덩치 큰 사냥꾼 대원이 내 권속의 목을 팔뚝으로 조르다시피 해서 거칠게 붙든채로 방문을 열어제꼈다.


그 놈의 다른 한 손에는 단검이 들려있었고, 놈은 언제든 내 권속을 해칠수 있다는 듯이 그 끝을 권속의 목 주변에 가져다 대고 위협하듯이 쉭쉭 거리며 흔들어댔다.



"네놈……. 감히 내 소유물을――"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화를 내거나 교섭을 하기도 전에 먼저 권속이 움직였다.


숨을 깊게 들이마쉰 권속은, 곧바로 자신을 붙잡은 사냥꾼의 얼굴에 진한 콧김을 내뿜었다.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기묘한 색의 연기가 권속의 까만 짐승 코에서 나와 사냥꾼의 얼굴이 쏘아졌다.



"으윽!? 이게 뭔……."



덩치 큰 사냥꾼은 곧바로 숨을 참고 코와 입을 막았지만,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힘을 풀고 그 자리에 쓰러졌고, 내 권속은 그로부터 풀려나자마자 곧바로 내게 달려……



"웍!"


"꺄악!?"



……오지 않고, 그 대신 나와 대치하고 있던 사냥꾼 녀석에게 달려들어 전신의 무게를 실어 앞발로 밀어버렸다.


난데없이 대형견의 앞발 펀치를 맞고 밀려난 놈은 다시 자리에 쓰러졌고, 권속은 곧바로 사냥꾼의 몸 위에 올라타 의기양양한 듯한 얼굴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래, 잘 해낸 것 같구나. 잘 했다."


"월!"


"그러고 보니 이상하구나. 원래 모습으로는 돌아오지 못하면서, 정작 짐승 형상의 권능을 쓰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권능을 쓸 수 있다니."


"헥헥헥헥헥."


"봉인에 의한 부작용이 아니라면, 어쩌면 네 특기일지도 모르겠구나."


"헥헥헥헥헥헥."


"아니면 역시 너는 그 모습이 인간형태보다 더 적성에 맞는것 아니느냐?"


"끼잉!? 끼잉, 끼잉, 끼이잉~"


"와하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사실이 그런걸 나더러 어쩌라는게냐? 역시 당분간 강아지로 지내는 편이 어떻느냐? 그런 모습이면 외출을 나가더라도 허락해줄 수 있구나.


언젠가 같이 산책이라도 가지 않겠느냐? 내 두번째 꿈이다만?"


"끼이잉……."


"하아…….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인지……."



사냥꾼 녀석이 권속 아래에 깔린 채로 우리의 우행을 지켜보다 김이 새버렸는지, 한숨을 쉬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보니 완전히 이 녀석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녀석이 무전을 켜놓은 상태였다면, 권속의 정체가 드러나 공격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


이제껏 문제를 일으키기는 싫어서 가만히 있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역시 후환을 생각하자면, 본보기도 만들겸 해서 여기서 하나 정도는 죽여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렇지만 그런 섬뜩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 사냥꾼 녀석이 홀리기라도 하듯 자신 위에 올라탄 권속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권속 녀석도 그게 그다지 싫지 않았는지 사냥꾼의 얼굴을 햝으려는듯 머리를 들이밀고…….



"끄아악!?"



……햝아주려는 줄 알았는데, 권속은 그대로 주둥이를 열어서 사냥꾼의 얼굴 전체를 입에 담고 물어버렸다.


다만 사냥꾼 놈에게 상해를 입히려는건 아니었던건지, 적당한 힘으로 물고 이리저리 흔들다 그대로 얼굴을 내동댕이치듯 뱉아내고는, 뒷발로 놈의 가슴팍을 한 번 걷어찼다.


더 가관인건 사냥꾼 녀석의 반응이었는데, 그런 매몰찬 반응에도 싫지는 않다는 듯이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권속의 뒷모습을 아쉬운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대화할 마음이 생겼느냐?"


"……작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도만."


"뭐, 좋다. 지금은 그 정도로 충분하겠지."


"……."


"그럼 물어보마. 네놈들의 목적은 뭐지? 당장 나를 어떻게 해보려는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만?"


"물을 것도 없이, 네놈을 여기서 해치우는 것 뿐."


"그래? 그런 것 치고는 그다지 공격적이지 않은 듯 하다만?"


"웡! 컹!"



그때 권속이 다시 사냥꾼에게 다가가더니, 이번엔 앞발을 사냥꾼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앗! 아앗! 아아앗! 아하앗! 하앗! 하앗…… 하아아……."



어쩐지 사냥꾼은 덩치 큰 개에게 앞발로 맞아 비명을 지르면서도, 묘하게 기분 좋은 것마냥 늘어진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만 하거라. 어느 쪽이든 발길질을 하는건 지금 상황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을거 같구나."


"으르르릉……."



권속은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내 쪽을 한번 바라보고는, 사냥꾼을 노려보면서 으르렁 소리를 내면서 몇발자국 뒷걸음질을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사냥꾼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네놈들 내가 누군지 알고는 있는것이냐? 겨우 이 정도 준비로 나를 사냥하겠다고 한다면 조금 실망스럽구나. 혹여나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만?"


"네놈들 같은 괴물의 별명에 대해선 별로 알고싶지는 않다만, 네놈이 딴에 '밤의 여제'니 뭐니 하고 불리며 꺼드럭 댈 정도는 된다고 알고 있다."


"호오?"



나는 사냥꾼이 다음에 할 말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놈은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한참 기다려도 입을 열 기색은 없었기에,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다른 질문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를 해치우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이거보단 더 적극적으로 덤벼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꼭 그렇지만도 않지."


"그래? 그럼 너희들이 유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그 길 끝에는 나를 해치울 수 있는 비장의 수단이 준비되어 있다 그런 얘기냐?"


"……."



사냥꾼은 다시 입을 다물어버렸다.


사냥꾼들은 정보를 주는데 예민한 편이라, 어쩌다 말을 걸어보면 늘 이런 식이다.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놈의 조끼에 걸쳐있는 무전기를 뺏아들었다.



"……! 내놔! 돌려줘!"


"성급하게 굴지 말거라. 네놈이랑은 대화가 안 통하니 네놈 상급자에게 물어봐야 할 참이구나."



나는 무전기를 손에 쥐고 잠시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역시 TV에서 본게 다인데다,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어떻게 조작해야 할지 난감하게 느껴졌다.



"그런데……이거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이냐?"


"헤. 내가 그걸 네놈한테 알려줄거 같으냐?"


"끄응……."



내가 잠시 무전기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살펴보는 사이, 잠자코 있던 권속이 내게 다가왔다.



"갑자기 무슨 일이냐? 난 지금 바쁘다만?"



권속은 대뜸 내 손에서 무전기를 덥석 하고 빼앗가 가서 탁자에 올려놓은 뒤, 앞발을 휘둘러서 제일 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무전기에서 삐익 하는 소리가 났다.



"!?"


"호오…….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거였나? 생각보다 쉽지 않느냐."



나는 도끼눈을 한 채 나를 노려보며, 여차하면 달려들 듯한 사냥꾼 녀석에게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무전기를 작동시켰다.


다시 삐익 하는 소리가 났고 나는 무전기에 대고 말을 걸어봤다.



"아, 아, 들리나?"



그렇지만 무전기에선 별다른 응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그 이전에 내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이 된 것인지 확신 자체가 서지 않았다.



"월!"



그때 권속이 다시 짖으면서, 이번엔 앞발로 내 허벅지를 꾸욱 눌렀다.



"……누르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더냐?"


"월!"



분명 내 권속은 짐승의 형태로 변신한 것일 뿐 진짜 짐승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나는 짐승인 권속보다 못한게 아닌가 하는 묘한 부끄러움이 느껴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몇번 헛기침을 한 뒤 다시 무전기를 작동시켰다.



"아, 아, 들리나?"



이번엔 내 말에 반응하듯 무전기에서 무슨 삐익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무전기 너머에선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쩐지 이번엔 분명 내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이 되었다는 느낌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금 무전기에 대고 말을 걸었다.



"아, 아. 네놈들한테 묻고싶은 게 있다. 응답 바람. ……이렇게 하는 것 맞나?"



여전히 무전기 너머에서는 어떤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무전기가 고장났거나, 아니면 놈들이 내 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무전기가 작동했다.



"우리는 네놈같은 괴물과 나눌 말은 없다. 지금부터 올빼미3은 사망한 걸로 간주하고 주파수를 변경하겠다. 만약 살아있거든 알아서 자력으로 탈출하든, 맞서 싸우든 해라. 이상."



그리고 조용해졌다.


사냥꾼 쪽을 바라보니,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이 쪽을 죽일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생포당해서 사망으로 처리됐다는게 어지간히도 수치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뭔가 미안하구나."



나는 멋쩍게 뒤통수를 긁으며 무전기를 사냥꾼에게 돌려주었고, 사냥꾼은 그것을 빼앗듯이 자신의 조끼에 다시 부착했다.


잠시 사냥꾼은 내 쪽을 말 없이 노려보았다.


그때 기대하지도 않았건만 무전기가 다시 작동했다.



"황조롱이1, 2 다운. 현관에 위험한 해골이 돌아다니고 있다. 평범한 해골은 아닌것으로 보이며, 자기 길을 막고있는……멍청아! 주파수 변경한다고 했잖아! 놈이 엿듣――"



그런 소리를 내뱉고는 다시 조용해졌다.



"……."


"……스승님인가."


"헥헥헥."


"그래서……."


"응?"



잠시간의 침묵 이후, 사냥꾼 쪽에서 먼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날 어쩔 셈이지?"


"음……. 지금 다시 복도로 나갔다간 네놈들이 귀찮게 할 것 같고, 그렇다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계속 집 안을 멍하니 다니는 것도 좀 그렇고."


"흥, 시간을 끌어봤자 부적이 터지기 전에 동이 틀껄? 시간을 끌어봤자 네놈한텐 좋을게 하나도 없다고?"


"역시 그럴 속셈이었나……."


"흡!?"



사냥꾼은 아차 싶었는지 급하게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엎어진 물 처럼 한 말을 다시 되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기 입이 방정이라는 듯, 놈은 연신 자신의 입을 때리면서 땡깡을 부렸는데, 그 와중에도 스스로를 진심으로 힘줘서 때리고 있었는지 맞을 때마다 작게 신음 소리를 냈다.


어쩐지 그 얼빵한 모습이 조금 귀엽게 느껴져서, 나는 이 사냥꾼의 얼굴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놈의 복면에 손을 뻗었다.



"……! 내 몸에 손대지마!"


"그럼 죽을테냐?"


"으윽……."



놈은 내가 농담삼아 던진 가벼운 협박에, 진심으로 분하다는 듯이 무릎을 꿇으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게까지 심각한 기분으로 만들면서까지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만…….



"호오? 생각보다 귀엽지않느냐?"


"크윽……."



의외로 복면의 안에는 짧은 머리의 곱상한 여자아이(아마 틀림 없을것이다)의 수치로 잔뜩 찌푸린 채 붉어진 얼굴이 있었다.


녀석은 곱상한 얼굴이 아깝게도, 내게 붙잡혀 얼굴을 드러낸 게 그렇게도 분했는지 연신 이빨을 갈아대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런 일에 종사하기엔 아직 새파랗게 젊지 않느냐? 얼굴도 곱상하니 태도만 괜찮다면 더 건실한 일을 찾을수도 있을진데……."


"시끄러! 닥쳐! 니가 뭘 알아?"



녀석은 그렇게 쏘아붙이더니, 이제는 그대로 자기 무릎에 머리를 파묻어 버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역린은 건드렸던것 같다.


근데 그러면 지가 어쩔 것인가?


설령 내가 어디에나 널린 흔한 흡혈귀라고 한들, 권능의 힘을 부적으로 제한받고 있다고 한들, 무기도 전부 뺏긴 채 홀로 내 앞에서 대체 뭘 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일단 재미삼아 사냥꾼의 얼굴도 확인하긴 했지만, 이대로 아무 수확도 없이 다시 놈들의 농간에 빠지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인질극 같은 추한 짓은 하고싶지도 않았다.


역시 정보가 더 필요했다.



"후, 그건 그렇다 치고, 역시 정보가 부족하구나. 하다못해 네놈들이 시키는 대로 간 끝에 무엇이 있는지 정도는 말해주지 않겠느냐?"


"……."


"그렇게 나오겠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이 쪽도 사양않고 조금 괴롭혀 줘야 겠구나."


"……힉!"


"너무 걱정하진 말거라. 지금처럼 별다른 짓을 저지르진 않은 시점에서 피벌레 같은걸 심지는 않을테니깐."


"히이이익……!"



놈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천천히 놈에가 다가가는 내 모습을 노려보며 작게 떨었다.


나는 일부러 그 발걸음을 느리고, 또 발소리가 크게 나도록 한 발, 한 발 강하게 내딛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새삼스럽다만 고문의 핵심은 고통을 가하는 게 아니라, 공포심을 자극하는 데에 있다.


그러니 이렇게 일부러 공포를 일으킬 법한 몸짓을 하는것도 전략의 일환이고 필요한 일이며, 또 어떤 관점에서는 일종의 자비이기도 하다.


놈이 나를 두려워 하면 두려워 할수록, 그래서 알고 있는 것을 이른 시점에 내뱉을수록, 놈에게 가할 고통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월!"


"꺄아아아악!?"



그때, 잔뜩 긴장해있던 사냥꾼에게 권속이 다시금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지 딴에 고문이라고 하는건진 몰라도 머리카락을 물어서 잡아 뜯더니, 앞발로 놈의 등짝을 연달아 내리치기 시작했다.



"월! 월월! 으르릉…컹컹! 월!"


"아, 아얏! 아야얏! 아얏! 아퍼!"


"……그만 두거라. 네가 그래봐야 저 녀석한텐 고문이 아니라 포상이 될 것 같구나? 이 놈의 입가에 맺힌 저 묘한 미소를 좀 보거라."


"오울? 끼이잉……."



……저 사냥꾼 녀석도 대단하다면 대단한게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끝끝내 멈추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저 녀석의 복슬복슬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을까.


솔직히 나 같아도 그럴 것 같지만…….


만약 이런 식으로 만난게 아니었다면, 이 녀석과는 의외로 친하게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용병님, 대체 여기서 뭘 하고 계신건가요?"



그때 왁짜지껄한 녀석들의 기행에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누군가가 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방에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자마자, 나는 그 순간 이 모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냥꾼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신음과도 같은 절규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단정한 검은 장발을 길게 늘어트리고, 초하루의 초승달처럼 가느다랗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뱀의 혀가 훑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저 녀석은…….



"아, 아아아……."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싶었는데, 설마 이런 곳에서 제 수행원들을 괴롭히고 계실 줄이야……. 역시 여제님에겐 못당하겠군요."


"……네 얼굴을 보는 것도 정말 오래간만이구나."


"어머나, 안녕하신지요? 그간 잘 계셨나요?"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나는 네가 왜 여기 있는지 알고싶다만?"



그 낯익은 불청객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이미 눈치 채신 것 아니었나요? 평화 조약이 맺아질때 누구보다도 강하게 반발했던 주전파의 행동대장 격인 제가, 


평화조약의 주인, 평화의 구세주라고 까지 불리시는 여제님의 앞마당까지 아무 연락도 없이 불쑥 쳐들어왔다는 것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것 아니었나요?"



나는 이 습격이 어떤 식으로 설계되었는지를 깨닫고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원래 만전의 상태라면 이 녀석이랑 싸우는 것이 그렇게까지 큰 부담은 아니었지만, 놈들이, 그리고 이 녀석이 짜놓은 지금의 판 위에서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나와 내 언니를 최강의 흡혈귀라고 치켜 세우거나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강함과 능력을 계량화하고 수치화 해서, 일률적으로 평가내리는 것을 제법 경계하는 편이다.


수천년을 살아오며 온갖 위기를 겪어온 내 경험에 따르면, 힘의 총량이 높거나, 낮거나 하는 식으로 평가를 할 수는 있어도, 누군가의 강함과 약함은 절대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 목숨을 건 생사결은 오히려 상대적인 것에 가깝고, 상성 싸움쪽에 가까우며, 본질적으로는 지혜 겨루기에 가깝다.


즉, 진짜 싸움의 본질은 상대의 약점을 노출하고, 내 약점은 가리며, 내가 유리한 판도로 상대를 끌어들이고, 상대의 흐름에 끌려가지 않도록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원리와 원칙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운과 직감 기책으로 상대를 흔드는 심리전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전제 하에, 지금 상황에서 저 녀석과 적대하는 것은, 언니라면 모를까 나에게 있어서는 적지 않게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일단 나가서 얘기하지 않겠느냐?"


"작은 여제님은 언제나 바로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걸 좋아하지 않으셨나요?"


"틀린 말은 아니다만, 일단 이 가엾은 외부인, 아주 외부인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녀석이 우리 싸움에 휘말릴 필요까진 없지 않겠느냐?"



상대는 내 제안에 손가락을 턱으로 괴면서 짐짓 생각하는척을 하더니,



"……솔직히 여제님의 속셈은 뻔히 보이긴 하지만, 네,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네요. 오히려 제쪽 사람이 다치지 않는건 저에게도 이득이기도 하고요."


"네 편인 것이냐?"


"후훗, 일단은 협력 관계라고만 해두죠."


"그럼 일단 방에서 나가주지 않겠느냐?"


"네, 기꺼히."



녀석은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뒷걸음질 쳐서 방에서 나갔다.


나는 잠시 녀석이 문 밖에서 우리를 속이려던건지 떠보려 가만히 있다가, 사냥꾼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넌 알아서 여기 있든, 방을 나서서 도망치든 알아서 하거라."



그리고 이제껏 내 뒤에 병풍처럼 서서 우리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권속 녀석을 품에 안았다.


내 작은 덩치로 어지간한 대형견보다 훨씬 큰 녀석을 강아지처럼 품에 안고 드는것은 근력과는 별개로 제법 불편한 일이었다.



"헥헥헥헥헥."


"잠시만 참거라."



나는 창문을 열고 창문 밖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저택을 둘러싸고 대기하고 있던 사냥꾼 중 하나의 머리를 밟으면서 착지했다.


워낙 순간적인 일이라, 아무리 나를 감시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들은 내 기행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고, 그들이 당황해서 공격할 태세조차 갖추지 못한 틈을 타서, 나는 다시 현관을 통해 집 안으로 들아갔다.


나는 현관 문을 닫자마자, 권속 녀석을 땅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동이 틀때까지 저 녀석과 술래잡기를 해야겠구나."


"월!"


"네가 따라오겠다고 한 것이니, 책임지고 끝까지 잘 따라오거라."


"월월!"



때마침 내가 이런 식으로 도망치리라 예측했던 건지, 응접실 옆 계단과 이어진 복도에서 녀석이 나를 쫒아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저 녀석은 아주 예전에 이 저택에 협의 건으로 와본 일이 있는만큼, 이 집의 구조에 대해서도 대강 알고 있었다.



"……잘도 도망쳐 주셨군요."


"미안한데, 나는 지금 별로 싸우고 싶지 않다만?"


"정말 언제 대적하더라도 무슨 짓을 저지르실줄 모르겠군요. 정말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제 적수로는 최고인 분이세요♡"


"난 언제라도 딱히 누군가와 싸우고 싶지 않지만 말이지."


"그렇죠. 작은 여제님은 소란 따위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니깐. 덤으로 저 같은 괴물도요."



녀석은 이해한다는 듯 팔짱을 끼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잠시 차분한 사람인 척하고 여유롭게 서 있던 녀석은, 곧 돌변해서 두 눈을 부릅뜬 채, 내게 달려들면서 외쳤다.



"그리고 저는 그런 사람에게 싸움을 걸어서 괴롭히는게 너무나도 좋답니다! 그게 설령 작은 여제님 같은 강자라고 할지라도요!"


"돔황챠~~~~"


"워우우울~~~~"



나와 권속은 약속이라도 한듯 흩어져서, 저 무도한 밤의 귀족 녀석으로부터 거리를 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