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교양있는 개새끼



레나는 하루종일 클레어의 저택 구석에 있는 나무에서 시간을 보냈다매달려서 운동을 하고튼튼한 가지 위에서 낮잠을 자기도했다.


자유 하나로 레나가 맡는 공기가 달라졌다.



"정말 하루종일 나무에 붙어있네."


"항상 나무 위에서 놀았으니까."



레나는 가지에 다리를 걸고 상체를 아래로 늘어뜨렸다클레어의 눈에 비치는 레나의 눈은  이상 날이  늑대의 눈이 아니었다.


클레어의 눈이 레나의 탄탄한 근육 위에 새겨진 흉터에 집중되었다클레어는 걷힌 레나의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흉터를어루만졌다.


클레어는 햇볕에 그을린 피부 위에 조각상의 흠처럼  흉터를 꽤나 오랫동안 쓰다듬었다.



"뭐하는거야?"


"… 아파보여서."


" 정도로는 아프지 않아."



레나는 이만 나무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 아픈적도 많지."



클레어는 이만 입을 다물었다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근데… 상업 가문이라 그런가이리스 백작이  보이네."



클레어의 눈빛에 경계심이 섞였다.



"네가 어떻게 어머니를 아는거야?"



레나는 입을 다물었다그러다 클레어의 부추김에 입을 열었다.



" 바닥에선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알게 그리고 그것도 있잖아이리스 가문의 아이보리 잡화점그것만 봐도-"


" 바닥?"



레나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저택으로 향했다클레어는 그렇게 떠나는 레나에게 말했다.



"용병이었구나."



레나는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아주 깊은 어둠 속에 있던."


"너도 그러면…."



 지옥 속에 너가 있었을까클레어는 입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레나는 클레어의 반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10  이리스 저택 습격알고 있지."



클레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클레어의 인생에 두고 두고 남을 순간이었다.


레나는 말하지 않았다.



'… 안돼… 안돼요어머니…!!'



 순간에 연약한 울음소리를 내던  계집애였다니레나는 꽤나 놀라고 말았다.



' 때의 내가  말은 아니지만.'



클레어는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레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클레어를 뒤로하고 저택에 들어갔다.



' 마음속에 나는 붉은 강아지로 남아있길.'





——————





우편물을 하나씩 살펴가던 집사 알프레드는 중얼거리며 내용을 흩어보았다.



"잡다한 문서… 초대장… 초대장… ."



알프레드는 얇은 편지 하나를 들며 말했다.



"티파티 초대장이군요."



클레어는 미소를 지으며싸늘한 음색으로 말했다.



"… 초대장은  반송하라 하지 않았나요?"


"이테르오 공작가에서 보낸것입니다."



종이를 넘기던 클레어의 손이 멈추었다.


언젠가 그녀의 어머니가 당부한 적이 있었다.



'둘이서는 친하게 지내거라.'



꾸욱



클레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종이가 조금 구겨졌다분명 '그녀' 보냈을 것이다.


그녀는 따스하고여린 사람이다둔하고미련 많은 사람.


엘린 이테르오.



' 미련 곰탱이 같은 .'



티파티에 가지 않는다는 명성은 충분히 들었다고 생각하여 보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주변에 있는 뱀같이 간사한 공녀들이 그녀에게 속삭였을 것이다.



'이리스 공녀는 이테르오 공녀의 초대장 밖에는 받지 않는 걸요…   써보는게 어떨까요?'


'맛있는 다과와 화사한 분위기까지 모든게 완벽한데이테르오 공녀가 외로운 늑대같은 이리스 공녀를 외면하지야 않겠지요?'



둔하고 여린 그녀가엘린이 거절할  있을리가 없었다클레어는 약간의 짜증을 섞으며 말했다.



"… 초대장은 받아두세요답장은 바라지도 말라 하죠."


"알겠습니다."



'이테르오 공작도  불쌍하기도 하지.'



온실의 화초처럼 키워서는 이게 뭐람.


클레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서적을 읽어나갔다.



"별일이네상업 가문은 사교성이 좋다고 들었는데."


"편견이야그리고 순수 귀족들은 상업 가문을 좋아하지 않아."



레나는 탁자에 놓인 깃펜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귀족들이  놀이를 싫어하던가내가 알기론 상인보다  하던데."


"겉으로는 싫어해야지그래야 위상이 사니까."



레나는 어련하시겠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같이 가줄까티파티."


"너가?"



클레어는 비웃음을 띈채로 오랫동안 레나를 바라보았다레나는 약간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파트너도 필요할테고."


"그런거 없는데."


"… 요즘 티파티는 그래그럼 … 그냥 같이 가지 ."


"마구간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거야그래도?"



레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겐 기대어도 전혀 나약함이 아니리라.


클레어는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오늘은 오셨군요이리스 공녀오는 초대장이란 초대장은 전부 거절하셔서 많이 섭섭했답니다?"


"."



짧은 대답 하나클레어는 친절한 웃음을 답했다무례를 빚어내고 적을 만들기 충분한 일이었다.


클레어는 자신의 바로 앞에 앉아있는 엘린에게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엘린. '덕분에좋은 시간을 가지겠네요."


"… 하하… 클레어…"



이름을 서로 부른다는 것은 사교계에서도 친한 이들만 가능한 것이었다클레어가 둘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자 공녀들은 엘린에게 물었다.



"이리스 공녀와 많이 친하신가요?"


"어릴 때부터 많이 친했어요."



엘린은 사교계에서 살아남을 만큼 강하지 않았으나그녀의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이 적을 만들지 않았다.


그런 앨린이  반대인 클레어와 친구였다니믿을  없었다.



"그렇… 군요…."



다들 믿기 어려워했으나 엘린이 거짓말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믿으려 노력했다.



"이리스 공녀마차에서 같이 내린 사람은 누구인가요?"


"보셨군요정말… 잘생기지 않았나요황가 기사단의 여기사 같아보였어요그분은 대체 누구인가요?"



클레어는 단박에 풀어지는 공녀들의 얼굴을 보고는 어이가 없는지 정색하며 말했다.



"…  경호입니다."


"아까 우연히 마주쳤는데계단 위에서 손을 잡아주는  있죠아주 교양있으신분 같아요이리스 공녀정말 부럽네요."



손까지.


클레어는 작게 헛웃음을 지었다.



'개가 아니라 여우인가?'



클레어는 한동안 레나에 대한 칭찬들을 듣느라 귀가 아팠다.





——————





"… 여기를 다시  줄은…. ."



레나는 신경질적으로 흙을 걷어찼다샛노란 눈동자가 꿈을 헤엄치듯 몽롱했다.


달콤하고 포근한 무화과 아직도  향이 레나를 스쳐가는듯 했다레나의 귓가에 종소리만큼 맑고 고운 목소리가 쟁쟁히 울리는듯 했다.



'냄새로 사람을 구분하는거야그럼 나는 어떤데?'



레나는 나지막히 마음의 울림처럼 남아있는 목소리에게 답했다.



"아주 달콤하고 포근한 무화과 향이죠."



레나는  이름을 내뱉길 꺼려했다. 10년이 지나도 전혀 잊혀지질 않는구나지겹기도하지레나는 중얼거렸다.



'사실 전혀 지겹지 않아.'



"… 앨린 아가씨."



 이름을 밖으로 내뱉을때마다레나는 가슴이 욱씬거렸다.



"붉은 ."



움찔.


레나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위를 보자 창가에  여성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레나는  여자를  기억하고 있었다레나는 한숨을 뱉고는 말했다.



"… 아가씨."


"이리  나가고 오랜만에 돌아온건데 반겨줘야지."


"돌아온거 아닙니다."


"그래이제 앨린도 상관없다 이거지."



그르렁.


레나가 노려보자이테르오 가문의 장녀 레베카는 태연스레 말했다.



"  새에 버릇이 나빠졌네빨리 ."



레나는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허억…."



레나는 그저 고통에 가득찬 숨을 토할 뿐이었다.



"이리스 가문에 빌붙어서 살고 있었어순순히 받아주든?"


"… 아직  모습을 몰라요."


"그래누가  같은 괴물을 받아줄까?"



레나는 이만 바닥에서 일어서려 했으나레베카는 레나의 가슴팍을 살며시 즈려밟았다레나는 밀쳐낼  있었다허나   없었다.



"계속  집에 살아그리고 속여이리스 가문의 아이를."


"  이상-"


"그럼 앨린이 결혼하는 모습이나 보던가."



레나는 그저 얼굴을 찡그릴 가만히 있을  밖에 없었다레베카는 한숨을 쉬며 레나를 내려다보았다.



"붉은 진짜 이럴거야?"


"… 아닙니다알겠습니다."



레나는 분명 레베카를 갈기 갈기 찢을  있을 것이다허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그럴  없음을 외친다.





——————





"하아…."



티타임을 갔다온  레나는 과묵해졌다.


아니과묵해졌다기 보다는 무언가를 미치도록 그리워하는듯 했다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기에 말수가 적은 것이다.



"…."



 일주일동안 어딘가  곳을 바라보거나작디작은 들꽃만 보면 한참을  자리에 서서 보낸다.


마치뭔가에 홀린 사람같이.


클레어는 레나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가끔씩 자신과 시간을 보내던 도중 그런 기색을 보이면 짜증이치밀어 올랐다.


차를 마시다  멍을 때리는 레나를 보자 클레어는 찻잔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았다.



딸칵-



감정섞인 날카로운 소리가 레나를 자극했다클레어는 마침내 초점을 되찾고 자신을 바라보는 레나를 보며 말했다.



"하루종일 멍청하게 흐리멍텅한 얼굴로 있네티파티에서 기다리는게 그렇게 싫었어?"


"아니그런건 아니고…."


"그럼 뭐야?"



레나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언제나처럼 멀찍이서 바라보던 앨린을 생각하고 있었다.



"… 그런 일이 있어."


"그것보다영애들의 말을 들어보니 네가 아주 교양있는 사람 같다 하더라아주 인기가 많았어무도회에   다녀오면 엄청나겠네."


"잠입 용병으로 쓰이면 그런 일도 마다하지 않지사람에게 좋은 인상만 남겨주면  다음은 쉬워."


"개처럼 꼬리나 흔들어주면 된다는거구나?"



레나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고분 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개처럼."



레나의 표정은 우울감으로 가득했고클레어는 그런 레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