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니까 좆이 없지, 병신아."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한 손에는 연기가 올라오는 담배를 들고, 비어있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만지던 혜지가 친구, 진선에게 적당히 대꾸했다.

술기운에 얼굴이 달아오른 진선은 인상을 구기며 대충 대답하는 혜지에게 다시 말했다.

 

"말장난 하자는 거 아니거든? 네가 이 년 좋을대로 따먹어도 된다며. 근데 씨발 이런 애자년이면 내가 할 생각이 들겠냐? 그나마 처음엔 좀 발광하더니 갑자기 아가릴 싸물어버리네."

 

진선은 입고 온 분홍색 블라우스로 양 팔이 뒤로 묶인 채 침대 매트리스 위에 발가벗고 누워 자신을 노려보는 수현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혜지는 그 모습을 힐끗 바라봤다가 다시 스마트폰으로 관심을 옮기며 말했다.

 

"네가 씹질을 개 병신같이 하니까 그런 거 아냐?"

"지랄 났네. 내가 울린 여자가 몇이나 되는데."

"씹질로 울린 게 아니라 주먹질로 울렸겠지. 분조장새끼야."

"됐고, 나 갈련다. 이년 생긴 것만 예쁘지 존나 재미없어."

 

진선이 애액이 묻은 자신의 손가락을 묶인 수현의 검고 긴 머리카락에 닦아 내며 말하는 동안에도 수현은 진선을 노려보았다.

 

"뭐 씨발년아. 니 씹물이잖아. 야리지 말고 눈 깔아 뒤지기 싫으면."

"..."

 

짜악! 

큰 소리와 함께 수현의 고개가 강하게 돌아갔다.

 

"씨발년이 꼭 말로 하면 안 들어 처먹지? 눈 깔라고." 

"..." 

"아 나 진짜. 존나 빡치게 하네 씨발년이!"

 

퍽!

 

"욱!"

 

진선이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면서 동시에 수현의 배를 강하게 쳤다. 

무방비하게 배를 맞은 수현은 몸을 앞으로 숙이고는 연신 기침을 해댔다. 

진선은 엎드린 수현의 새하얀 등을 밟고 서서 자신의 노랗게 물들인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하, 씨발. 그냥 가려 했는데 쌍년새끼가 진짜 존나 개같이구네. 야! 정혜지!"

 

수현의 등을 밟은 채로 진선은 고개를 돌려 여전히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혜지를 바라보았다.

 

"이년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거 맞지?" 

"죽이지만 마라."

 

혜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선은 수현을 마구 밟기 시작했다. 

수현은 자신의 등, 어깨, 머리, 팔이 짓밟힐 때마다 신음을 억지로 삼키며 소리를 내지 않으려 버텼다. 

혜지는 침대가 삐걱이는 소리와 수현이 맞는 조금 둔탁한 소리를 들으며 담배를 빨아 들였다.

 

 


 


"좋아해."

 

몇 달 전, 갑작스럽게 수현에게 고백을 받은 혜지는 멍하니 자신에게 고백한 여자애를 바라보았다.


근처 원룸까지 구해 강제로 자취를 시킬 정도로 강압적인 부모에 의해 억지로 들어온 명문고에서, 학교의 거의 유일한 문제아인 혜지와 매 시험마다 높은 성적에 성실한 성격으로 교사들의 사랑을 받는 수현은 2년 연속으로 같은 반이 되었다는 것 외에는 접점이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혜지는 수현을 교사에게 예쁨 받는 짜증나는 여자애라고만 알고 있었으며, 그 이상으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애가 수업이 끝나고 둘이서만 보자 해놓고는 뜬금없이 좋아한다는 말을 한 것이였다.

 

멍하니 수현을 바라보던 혜지는 의미 없는 몸짓을 몇 번 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 너 유튜브 하냐? 학교 불량아에게 고백해보았다 그런거 찍어?" 

"아니." 

"아니면 뭐, 담임이 그 씨발 뭐냐, 짝 지어서 챙겨주는 거. 그거라도 시킨 거야?" 

"아니야. 진짜 네가 좋아."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와 교복 치마를 꼭 쥔 두 손이 수현이 꽤 용기를 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치맛자락을 쥐고 있는 하얀 손을 본 혜지는 그녀의 진심을 읽어내고 헛웃음을 지었다.
 

"별 씨발..."

 

설마 하니 여학교에서 고백을 받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던 혜지가 어이가 없다는듯 중얼거렸다.


"..."


부끄러움에 조금 고개를 숙인 수현의 앞에서 담배 생각을 하며 머리를 긁던 혜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야, 난 너랑..."

 

수현의 고백을 거절하려던 혜지가 말을 멈췄다.

위아래로 수현을 훑어보며 무언가를 생각한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현에게 다시 말했다.

 

"... 야, 임수현. 너 진짜 나 좋아하냐?"

 

수현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럼 내가 하는 말 다 들어줄 수 있어?"

 

이번 질문에는 잠시 고민하던 수현이 다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 좋아. 그럼 사귀자. 어차피 지금 남친도 없으니까."

 

혜지의 말이 끝나고 반 박자 늦게 수현이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녀의 대답이 의외였던건지, 크게 뜬 수현의 눈에 놀라움과 의문이 섞여있었다.

 

"대신 나 학교 생활 하는 거나 도와줘라. 선생들이 존나 귀찮게 구는 거 짜증나니까."

"응! 내가 도와줄게!"

"그럼 가서 담배 좀 사와."

 

혜지의 말에 기쁘게 대답한 수현은 이어진 혜지의 말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

"담배 사오라고. 레종 프블로. 이렇게 생긴 거."

 

혜지가 주머니에서 고양이와 에펠탑이 그려진 담뱃갑을 꺼내 수현의 눈높이에서 살짝 흔들었다.

당황한 수현의 까만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지만 혜지는 그런 수현을 보지도 않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저기, 그거..."  

"뭐해. 빨리 안 갔다 오고."

 

수현이 담배에 불을 붙여 빨아들이는 혜지에게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혜지는 수현의 말을 무시하고 연기를 짧게 내뱉으며 다시 말했다.

 

"왜, 담배 사본 적 없어서 쫄려?" 

"..." 

"여기 편의점 말고, 저 아래 사거리 편의점 알바는 신분증 검사 안 하니까 대충 체육복 입고 가서 사 와." 

"..."

 

혜지의 말에도 수현은 어쩔 줄 몰라하며 자리를 지켰고, 그러는 사이 혜지의 담배는 점점 더 짧아져갔다.

 

"내가 하는 말 다 들어 준다며."

 

혜지의 말에 수현이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깊게 숙였다.

 

"못 하겠지?" 

"..."

 

수현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그 모습을 본 혜지는 마지막으로 담배를 빨아들인 다음 다 피운 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겨냈다.

 

"그러니까 앞으로 지랄 말고 그냥 적당히 서로 쌩까면서 지내자. 알겠냐?"


적당히 알아들었으면 가보라는 듯 수현이 손짓을 했다.


"나는 냄새 좀 빼고 들어갈 거니까..."

"... 사 올게."

"뭐?"

"레종 버블... 맞지?"

 

수현의 말에 몇 번 눈을 깜빡이던 혜지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야 씨, 진짜 골때리는 년이네 이거."

 

자신의 말에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삼키는 수현을 향해 혜지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됐어. 화장도 안 하는 찐따 주제에 무슨 담배를 사 와." 

"했는데..." 

"끽해야 비비나 발랐겠지."

 

정곡을 찔린 듯 수현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수현을 보던 혜지가 말했다.

 

"돈이나 줘 봐."

"어?"

"내가 알아서 살 거니까, 돈 달라고."

 

혜지의 말에 수현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 얼마나...?"

"뭘 얼마나야. 그냥 있는 돈 다 줘."

"잠시만... 앗!"

 

수현이 떨리는 손으로 지갑을 꺼내자 혜지는 그 지갑을 뺏어 갔다.

 

"오, 너 돈 좀 있다?"

 

지갑에서 오만원권 지폐 한 장을 꺼낸 혜지는 다시 지갑을 수현에게 던졌다.

 

"오늘은 이정도면 될 거 같네. 그럼 나 간다."

"자, 잠깐만!"

 

떠나려는 혜지를 수현이 멈춰 세웠다.


"왜. 뭐 더 할 말 있어?"


혜지가 발걸음을 멈추고 어깨 너머로 뒤돌아 보았다.

하지만 수현은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한 체 우물쭈물 했고, 혜지는 그런 수현을 내버려 둔 채 그 자리를 떠났다.

 

 

 

 

 

이후로도 혜지는 종종 수현을 부려 먹었다.

수업 과제를 대신 시키기도 하고, 당번 일을 떠넘겼으며, 모의고사 때나 쪽지 시험이 있을 때 컨닝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수현은 혜지의 요청을 들어주면서 그녀가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도록 설득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귀찮게 굴면 헤어진다는 혜지의 말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혜지의 요구는 점점 더 심해졌고, 결국 수현은 혜지의 '부탁'으로 돈이나 담배, 술 등을 가져다 주는 일까지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너 왜 남친 안 만드냐?"

"내가 말 안 했냐? 나 여친 있는데?"

"여친?"

 

혜지가 사는 원룸에서 혜지와 함께 과자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던 진선이 놀라 되물었다.

 

"너 레즈였냐?"

"레즈는 너고 변태년아. 씨발 우리 학교가 여학교에 명문고잖아. 그래서 그런지 남친이 안 만들어져서 셔틀 하나 만들었지."

"누군데?"

"말 하면 아냐? 그냥 나 좋다고 하는 찐따년 하나 있어."

"알 수도 있지. 사진 없어?"

 

진선의 말에 혜지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줬다.

 

"누군지 모르겠다. 그래도 찐따라더니 얼굴은 예쁘네. 사진 이게 다야?"

"알아서 더 보던가."

 

혜지에게서 핸드폰을 건네받은 진선은 수현의 사진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많이도 찍었네. 셔틀이라면서 뭔 사진을 이렇게 많이 찍었냐?"

"어쨌든 여친이니까 좀 좋아할 짓 해줬지. 존나 호구년이라서 여친 행세 좀 해주니까 좋다고 다 해준다."

"다 해준다고?"

"어. 돈도 주고 담배도 사오고 과제 대신 해주고 다해줘 그냥. 씹호구라니까? 아마 대달라 하면 대줄걸?"

"존나 부럽네."

 

진선이 핸드폰을 다시 돌려 주며 작게 혀를 찼다.

 

"어차피 니도 여친 있잖아?"

"아 몰라. 요즘 연락 안 해."

"싸웠냐?"

"씨발 저번에 할 때 딜도 한 번 썼더니 존나 화내면서 연락하지 말란다. 카톡도 차단 당했어. 개짜증나. 지금 그날 끝나서 존나 하고 싶은데."

"병신."

 

시덥잖은 대화가 끝나자 진선이 소주병을 들어 자신의 잔을 채웠다.


"너도 소주?"

"아니. 맥주로 줘."

"빼기는."


말로는 투덜거리면서도 진선은 패트병에 담긴 맥주를 혜지의 종이컵에 따라주었다.

고맙다는 손짓을 하고 종이컵에 따라진 맥주를 마신 혜지는 연이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다 말고 진선을 바라보았다.

과자를 집어 술이랑 같이 씹어먹던 진선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잔을 내려놓았다.


"뭔데?"

"... 야."

"왜."

"너 얘랑 할래?"

"뭐?"

"존나 하고 싶다며. 이년 내가 시키면 다 하니까 너 빌려 줄게."


몇 번 눈을 깜빡인 진선이 피식 웃었다.


"취했네. 미친년이. 개소리 하지 말고 취했으면 잠이나 자."

"..."

"... 진심?"

 

대충 농담으로 넘기려던 진선이었지만, 혜지가 말없이 자신을 보며 담배를 빨아 들이자 진지하게 물었다.

 

"어. 이년이 어디까지 해주나 궁금해졌어."

"너 걔랑 한 적 있냐?"

"아니."

"그럼 너 먼저 해."

"안 할 건데."

"걔 아다잖아."

"아마?"

"아다 따먹을 기회 생각보다 없다?"

"됐어. 나 여자랑 안 해."

"후회 해도 몰라?"

"후회는 개뿔. 지금 부른다."

"그래라."

 

몇 십 분 후, 초인종 소리가 나자 혜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왜케 늦어."

"미안... 욱...!"

 

방 안으로 들어오려던 수현은 술담배 냄새를 맡자마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미 몇 번이나 맡아본 냄새였지만, 아직도 수현은 그 어지러운 냄새에 적응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뭐해. 빨리 들어와."


문을 열어준 혜지는 다시 자리에 앉아 수현에게 말했다.

얼굴을 찡그리고 현관에 서있던 수현은 혜지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얘야?"

"힉?!"


혜지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던 수현이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푸흐흐, '힉' 이러고 있네 씨발. 존나 귀엽게."


진선은 앉은 채로 굳어 있는 수현을 바라보다가 잔에 담은 소주를 한 번에 입에 털어넣고 일어나 수현의 앞에 섰다.


"생각보다 키가 크네. 너랑 비슷할 줄 알았는데."

"거의 비슷하지 뭐."

"흠..."

 

수현은 자신을 품평하듯 바라보는 진선에게서 애써 고개를 돌리고 혜지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혜지야, 이 사람 누구야?"

"내 친구. 걔 때문에 너 불렀어."

"흠..."

 

수현의 몸을 보던 진선이 손을 뻗어 수현의 가슴을 만졌다.

 

"히익!"

"오, 생각보다 가슴 크네. 뽕은 아니지?"

"혜, 혜지야..."

 

수현이 간신히 쥐어짜낸 목소리로 혜지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혜지는 자신과 전혀 상관 없는 일을 보는 듯 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반응에 수현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고, 가슴을 주물럭거리던 진선이 손을 내리자 수현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때?"

"진짜 너 할 생각 없냐?"

"어. 너 맘대로 해."

"나중에 진짜 후회하지 마라. 난 말했다."

 

진선은 말을 끝내자마자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수현의 윗팔을 잡아 억지로 일으킨 다음 침대로 밀어 넘어 뜨렸다.

그제야 본능적으로 자신이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하게 될 지 알아차린 수현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진선이 그녀를 붙잡아 다시 눌렀고, 수현은 버둥거리며 혜지를 찾았다.

 

"혜, 혜지야! 도와줘!"

"가만히 좀 있어봐! 존나 움직이네 진짜!"

"싫어! 혜지야! 도와줘! 혜지야!"

 

패닉에 빠진 수현의 울음 섞인 외침에 혜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이진선. 나와봐."

 

혜지의 말에 진선이 비키자 자유로워진 수현이 침대에 누운 채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흑, 으흑... 싫어... 흐흑..."

 

눈물을 흘리는 수현에게 다가간 혜지는 그녀의 머리맡에 앉아 수현을 일으켜 세웠다.

침대에 걸터앉은 모양세가 된 수현은 얼굴을 옷 소매로 닦았다.

 

"혜, 혜지야, 흑, 나, 훌쩍, 진짜 무서웠어... 흑..."

 

그때, 혜지가 수현의 양팔을 붙잡아 뒤로 돌렸다.

갑작스럽게 팔이 구속된 수현이 놀라 고개를 돌리자 혜지가 말했다.

 

"가만히 있어."

"혜, 혜지야... 뭘..."

"쟤가 너랑 섹스하고 싶데. 한 번 대 줘."

"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니가 나한테 먼저 얘 대준다 했잖아."

"옷이나 벗겨."

 

혜지의 말에 진선이 수현의 블라우스 단추로 손을 가져갔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진선의 손을 본 수현은 어떻게든 혜지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소리쳤다.

 

"시, 싫어! 혜지야! 싫어!"

"내가 시키는 거 다 들어준다며."

"혜지야 미안해! 내가 잘못 했어! 제발!"

"얘 웃긴다. 뭘 잘못했다고 비는 거야?"

 

진선이 눈물까지 흘려가며 애원하는 수현의 말을 비웃으며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수현은 하나씩 풀리는 단추를 보며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진선 한 명에게도 도망치지 못했던 수현이 둘에게 붙잡힌 상황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

두 사람이 수현의 팔을 그녀의 블라우스로 묶는 동안에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공포와 절망이 섞인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혜지야! 너 아니면 싫어! 너 아니면 싫어!!! 하지 마!!! 하지 마!!!!! 혜지야아아아!!!!!"

 

 

 

 

 

담배를 전부 피운 혜지는 아직도 수현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진선을 불렀다.

 

"야."

"씨발! 개같은! 년이! 뒤져! 씨발년아!"

"야, 이진선."

"왜!"

 

땀이 흐를 정도로 수현을 패던 진선은 분노가 섞인 거친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혜지를 보았다.

 

"애 뒤지겠다. 그만 패."

 

그녀의 말에 진선이 고통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몸을 떠는 수현을 내려다 보았다.

침대에 몸을 말고 엎드려 있는 진선의 몸 위에 발을 올린 체로 내려다보던 진선이 작게 혀를 찼다.

 

"... 에이, 씨발."

"아윽..."

 

진선이 욕을 뱉으며 마지막으로 수현의 옆구리를 강하게 밀어버리자 그녀가 신음을 흘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과자를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은 진선은 자신의 핸드폰과 지갑을 챙기고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혜지에게 말했다.

 

"나 간다. 다시는 이년 따먹으라고 부르지 마."

"그래. 가라."

 

쾅. 띠리릭.

 

도어락이 자동으로 잠기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방이 조용해졌다.

억눌린 고통이 담긴 신음을 작게 흘리면서 몸을 뒤척거리는 수현을 바라보던 혜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이컵에 남은 미지근해진 맥주를 마신 혜지는 여전히 괴로워하는 수현의 머리카락을 잡고 들어올렸다.

 

"야, 씨발년아."

"아윽..."

"내가 시키면 다 한다며. 근데 왜 씨발 나 쪽팔리게 만들어? 어?"

"..."

 

수현은 대답 대신 아픔과 분노로 만들어진 눈물이 맺힌 눈으로 혜지를 노려보았다.

 

"눈 깔아 씨발아. 이젠 나한테도 지랄이냐?"

"...싫어."

"뭐?"

"싫다고."

 

처음 보는 수현의 반항적인 태도에 잠시 벙쪘던 혜지가 곧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씨발 진짜..."

 

작게 중얼거린 혜지는 살벌한 표정으로 자신이 머리를 쥐고 있는 수현의 얼굴을 노려보다가 그 얼굴을 침대에 강하게 내려찍었다.

매트리스의 스프링이 충격을 흡수하며 내는 낮은 소리가 방을 울렸다.

코가 짓눌린 수현이 작게 신음을 냈지만 그 작은 소리조차 매트리스에 먹혀버렸다.

 

"씨발년이 좋다고 해서 받아주니까 이제 싫다고 하네. 장난하냐?"

 

버둥거리는 수현을 계속 누르던 혜지가 다시 머리카락을 잡아 올렸다.

코가 짓눌린 바람에 코피가 터진 수현의 입 주변이 매트리스와 마찬가지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혜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혜지는 그 눈빛을 본 순간 가슴이 섬짓해지는 걸 느꼈다.

피에 물든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는 수현의 눈빛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어떤 감정이 실려있었다.

음습하면서도 강렬한, 스산하게 조여오는 뱀같은 감정.


"하지 말라고 했잖아."

"...!"

 

건조한 수현의 목소리에 놀란 혜지가 수현의 머리를 놓고 뒤로 물러나자 수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완전히 몸을 일으킨 수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혜지를 바라보았다.

혜지는 눈 앞의 여자가 팔이 묶여 있고, 힘도 자기보다 약하단 걸 알고 있었음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수현의 붉은 피가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지며 그녀의 다리 사이로 스며들어가 침대를 붉게 물들였다.

 

"풀어 줘."

"..."

 

수현이 묶인 손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으나 혜지는 처음 느껴보는 부류의 두려움에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정혜지." 

"어, 어?"

 

자신의 이름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혜지에게 수현이 다시 명령했다.

 

"풀어."

 

혜지는 수현의 말에 긴장해서 침을 삼켰다.

그녀의 말을 따라야 할 것 같았으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무시한 체 금이 간 자존심과 얼마 없는 반항심을 긁어모은 혜지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 내가 왜?"

"갈 거야. 그러니까 풀어 줘."

"... 싫어."

 

수현은 자신의 말을 거절한 혜지를 조용히 바라보며 몸을 일으켰다. 

검은 뱀이 먹잇감 앞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 같은 움직임에 혜지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몸을 뒤로 조금 뺐다.

혜지의 몸이 크게 떨리는 걸 본 수현이 다시 몸을 낮추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마치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한, 깊이를 알 수 없는 수현의 눈동자에 두려움을 느끼던 혜지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욕을 뱉었다.

 

"씨발!"

 

자리에서 일어난 혜지는 아직 침대 위에 있는 수현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수현에게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몸은 계속해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를 악다문 체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잡아 그 떨림을 억누르려던 혜지는 담배를 떠올리고 몸을 돌려 책상 위에 놓인 담뱃갑과 라이터를 잡았다.

 

"피지 마."

 

그 순간, 다시 한번 수현이 입을 열었다.

혜지는 담뱃갑과 라이터를 손에 쥔 상태 그대로 얼어붙었다.

수현의 시선을 받는 혜지의 옆 얼굴에서 식은땀이 솟아나 그녀의 얼굴 선을 타고 턱끝에 매달렸다.

간신히 매달려있던 투명한 땀방울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진 순간, 혜지는 손에 힘을 주어 책상 위에 있던 것들을 잡은 뒤 그대로 원룸 밖으로 도망치듯 뛰쳐 나갔다.

 

"씨발... 씨발..."


혜지는 쉼없이 욕설을 내뱉으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연타했다.

오래된 연식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며 나는 미세한 마찰음이 혜지의 심장을 긁으며 더욱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온몸을 갉아내는 소음을 견디지 못한 혜지는 엘리베이터를 내버려두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건물을 빠져나와 흡연 구역으로 들어간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구겨진 담뱃갑 속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나 입에 문 담배는 담뱃갑이 구겨질 때 같이 구겨지는 바람에 종이가 찢어져 제대로 타오르지 않았다.

망가진 담배를 뱉어 버린 혜지는 다른 담배를 피우려 했으나 이번엔 꺼내는 과정에서 떨어뜨려버렸다.

 

"씨발!"

 

욕설과 함께 손에 든 담뱃갑을 집어 던진 혜지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오른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그녀의 이마와 손에 마음대로 엉겨 붙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진정된 그녀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땀을 털어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떨림이 사라지자 허전한 감각이 들어찬 혜지의 몸이 담배를 찾았다.


"담배..."


혜지는 자신이 집어 던졌던 담뱃갑을 주워 안에 있는 것을 꺼내 입에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혜지는 연기가 연기를 밀어낼 정도로 급하게 담배를 태웠다.

첫 번째 담배를 순식간에 없애 버린 그녀는 곧바로 다른 담배를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두 개피, 세 개피, 네 개피...

다섯 개의 담배를 연달아 해치운 혜지는 약간의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느끼며 벽에 등을 기댔다.

 

"후우..."

 

담배를 비운 덕분인지 몸과 마음이 진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꺼림찍한 기분이 끈적하게 혜지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던 수현의 눈빛을 다시 떠올린 그녀는 오른손 검지를 입으로 가져가 씹기 시작했다.

까드득.

관절 부위를 앞니로 씹자 작은 통증이 생겨났다.

그러나 혜지는 그 통증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손가락을 씹어댔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통증을 통해 슬금슬금 깊은 곳에서부터 다시 기어 올라오는 감정을 무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고통으로도 덮지 못한 원인 모를 불안함과 두려움에 또다시 몸이 떨리기 시작하자 혜지는 다시 담뱃갑을 들어올렸다.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남은 담배를 꺼낸 그녀는 빈 담뱃갑을 구겨 던져버리고 돗대에 불을 붙였다.

 

"콜록, 콜록, 우엑!"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하루에 피는 것보다 많은 양의 담배를 핀 혜지의 몸이 담배 연기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혜지는 담배를 놓치고 기침과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게헥, 콜록... 씨이, 후우... 씨발..."

 

혜지는 흐르는 침을 닦으며 욕설을 하고는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발로 비벼 꺼 버렸다.

 

"씨발... 병신같네 진짜..."


몸에 들어온 니코틴이 혜지의 속을 헤집어 놓았다.

혜지는 그것 때문에 괴로워 하면서도 당장 몸의 떨림이 없어졌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울렁거리는 속을 견디며 흡연 부스에서 나온 혜지가 다시 건물로 들어가려 한 순간, 건물 문이 열리며 수현이 나왔다.

수현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말끔한 얼굴로 보라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수현이 입은 후드티를 본 혜지의 눈이 커졌다.

 

"야, 임수현..."

"내일 봐."

 

혜지가 말을 걸었으나 수현은 그녀의 말을 자르고는 혜지를 지나쳤다.

수현의 태도에 당황한 혜지가 손을 뻗어 수현의 팔을 잡자, 멈춰 세워진 수현이 고개를 돌렸다.

 

"왜."

"... 이거 내 옷이잖아."

 

혜지가 긴장감에 잠긴 목소리로 말하자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걸 왜 니가 입고 있는데?"

"옷이 없으니까."

"니가 입고 온 건?"

"니 방에."

"그럼 그거 입고 가면 될 거 아냐."

 

수현은 대답 대신 혜지의 손을 떼어 냈다.

 

"갈게."

 

혜지는 멍하니 수현이 멀어지는 걸 지켜보았다.

수현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도 멍하게 서있던 혜지는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혜지가 원룸 문을 열자 찌든 냄새가 훅 그녀의 코를 찔렀다.

먹다 남은 술과 과자가 그대로 남아있는 방은 매우 어수선해 보였다.

어딘가 이질적이게 느껴지는 방을 둘러보던 혜지는 침대에 남은 핏자국을 보고 불쾌함을 느끼며 눈을 바닥으로 돌렸다.

그러나 바닥에도 핏자국이 남아있는 걸 본 혜지는 그 검붉은 흔적들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침대에서 시작된 점선이 현관쪽 싱크대로 이어져 있었다.

그 점선의 끝에는 수현이 입고 왔던, 그리고 그녀의 손을 묶는데 사용했던 분홍색 블라우스가 있었다.

혜지가 자신의 앞에 놓인 블라우스를 집어들자 옷 사이에 있던 칼이 툭 하고 떨어졌다.

옷 사이에서 왜 칼이 나왔는지에 대한 의문은 칼로 찢은 블라우스를 본 순간 해소되었다.

그제야 왜 수현이 자신의 옷을 입고 나갔는지 깨달은 혜지의 등에 이유 모를 소름이 돋아났다.

 

"미친년..."

 

카톡! 카톡! 카톡!

 

그 때, 술병 옆에 있던 혜지의 핸드폰이 연달아 세 번 울렸다.

혜지는 블라우스를 손에 쥔 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나도 이제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너처럼]

[사랑해]

 

이어진 세 개의 문자를 본 혜지는 자신이 건드려선 안 될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예전에 백갤에 올렸던 거 조금 손 봐서 재탕함


이제 할 거 다 했으니 닉 바꾸고 튀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