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자취방. 스피커와 턴테이블이 두 소녀의 앞에 놓여있다. 두 소녀는 나란히 앉아있다. 두 소녀는 나신이다. 한 소녀는 머리가 길고, 한 소녀는 머리가 짧다. 머리가 짧은 소녀가 먼저 말한다.)



나는 내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고 생각해.


자신이 없으니 '생각해' 라는 말을 덧붙이는군. (사이) 비루한 녀석.


누구나 똑같을 걸.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서?


(서성인다.) 나는 한 번에 나름 괜찮은 예체능 대학을 들어갔어. 엄마도 아버지도 기뻐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에 열 네 시간을 갈아 넣었는데, 앞에서만 그럴 뿐이었어. 두 사람은 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좋은 예체능 대학 따위에 들어가기보다 문과라도 이름 높은 다른 대학에 들어가길 바랬던거야.


네 망상 아닌가?


방 안에서 뒷담화를 하더라고. (높은 목소리를 낸다.) 애가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턱을 뒤로 빼며 낮은 목소리를 낸다.) 이상한 헛바람을 불어넣은 네 잘못이지. 아이돌이니 뭐니 애가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소리를 한 주제에.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다 들었어. 듣고 말았어.


아.


이제 곧 졸업인데 다시 수능이라니. 나는 이해할 수 없어.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린다.) 사실상 삼수야. 이렇게 해서 학교에 붙어봐야 고작 문과인데 대체 학벌이 어떤 의미가 있지? 상위 오 퍼센트 대학이 아니면 만족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면서.


너희들은 참으로 쓸모없는 이름에 집착하는 군. 이해할 수 없어.


너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한 뻐꾸기지.


새장에 갇힌 새지.


물에 빠진 셈이지.


의미없는 셈이지.


오늘도 밤을 세지.


여자를 본뜬 새지.


우리 다 그러겠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지?


나는 모르지. (한숨을 쉰다.) 가슴이라도 만질래?


머리에 야한 생각만 가득 차서는!


안 만질거야?


그렇다고는 말 안 했어. (뻐꾸기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다.) 아, 죽어버리고 싶어. 이대로 죽어버려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 영원히 이렇다면 죽지 않아도 괜찮아. 공부는 못해도 이렇게 사는 데에는 자신 있어.


그럼 이렇게 살지?


안 돼.


왜?


부끄럽잖아.


부끄럽다?


여러모로. (뻐꾸기의 가슴에서 얼굴을 떼어낸다.) 애초에 내가 뭐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야. 그냥, 모르겠어. 나는 엄마 아빠가 어떻게살았는지 몰라. 키워주기도 했지. 그러니까 아무런 말도 안 해. 할 수 없지. 그게 싫은거야. 싫은데도 말할 수 없는 걸 아니까 부끄러운거지. 나는 밥 딜런도 폴 매카트니도 베토벤도 모차르트도 될 수 없으니까 더더욱!


굶어 죽어도 입을 다물 생각인가?



배 부르고 싶은 사람이 예술을 하지는 않겠지.


그것도 그렇지.


다들 왜 이러는 걸까? 왜 몰라주는거지? (멍한 목소리로.) 나도 노력해서 이렇게 된 건데.


(한숨을 쉬며 소녀를 껴안는다.) 나는 뻐꾸기니까 잘 알아. 탁란으로 태어났으니까 알지. 가족이나 연인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남에 불과해. (사이) 더 친할 수야 있겠지. 그래도 남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슬픈 사실이지.


거기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지.


음. (고개를 떨군다.) 그래도 만남이란 칠십 억 분의 일을 꿰뚫은 행운이잖아? 가족이나 연인이라는 관계성은 한정된 만큼 더 확률이 낮지. 더 소중하게 여겨도 되지 않을까?


벼락에 맞아 죽을 가능성도 낮기는 마찬가지야. 그리고, 음. (고개를 내린다.) 우리 아버지는 나를 탁란당했어. 이런 일이 벌어질 확률도 굉장히 낮겠지.


슬프네. (다리를 끌어안는다.) 그럼 우리는 왜 살아가는 거지?


(가벼운 말투로.) 모르지.


(어이없어하며.) 모른다고?


몰라. (사이) 예를 들면 이런거야. 아버지는 나를 친자처럼 길러주셨지. 죽여버려도 마땅찮을텐데. 나는 내 아버지가 나를 좋아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어. 아버지를 아끼지만 이해할 수는 없지. 이미 누군가에게 배신당하고도 나를 아낀 이유를 알 수 없어.


그만큼 소중했겠지.


소중했겠지. 하지만 왜 소중했는가, 하고 묻는다면 아버지나 나나 그냥 '가족이니까' 같은 모호함 말고 정확한 말을 꺼내지 못할거야, 아마. 남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아끼는거지. 그러다보니 다 알고 있다고 착각 하는게 아니겠어? 모르기 때문에 아낀다고 생각하는 것보다야 전부 알아서 아낀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합당하겠지.



그래. (턱을 팔로 받친다.) 잘 모르겠네.


나도 모르니까 괜찮아.


음. (뻐꾸기의 옆모습을 본다.) 일단 뭐, 너랑 하는 건 기분 좋아.


그래?


섹스라는 게 그렇잖아. 옷을 벗으면 부끄럽고, 하고 싶지 않으면 꽤 불쾌하고, 하고 싶을 때는 더 좋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그렇지.


너랑 하는 건 좋아. 가슴을 비벼도, 커널링구스를 해도. 하지만 언젠가는 너랑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오겠지. 네가 목을 조르면서 하고 싶다고 한다거나. 하지만 그 때 정말 거절할 수 있냐고 한다면 잘 모르겠어. 그런거야. 나는 그냥, 그냥... 벗은 채로 하고 싶지도 않은 섹스를 참고 하는 거지.


...



이제야 알겠어. 그런 기분이야.


(침묵. 뻐꾸기, 정적을 깨고 전화기를 들어 소녀에게 건낸다.)


받아.


뭐야? (당황하며.) 왜?


(옷을 입으며) 나는 네가 섹스를 하기 싫다고 하면 멈추겠지. 목을 조를 일도 없을거야. 조금은 화가 날지는 몰라. 하지만 말을 멈춘다면 도리어 답답해질거야.


......


이제 옷을 입어.



(소녀, 전화기를 열어 연락처를 본다. 가족의 연락처가 나온다. 소녀는 침을 삼킨다. 뻐꾸기는 소녀에게 가운을 덮어준다.)

























































오랜만에 창작... 이번에는 짧은 희곡이다.......


최근 생명의 위기도 겪고 뭐 많은 일이 있었다 어떤 일인지는 말 안 하겠지만


모르겠다 멘탈 좀 추스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