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바람이 좀 거친 것 같네요.”

“누가 일부러 속도를 높여 놓고 자러 간 건가?”

“뭐, 그렇겠죠. 다들 자러 가 있을 시간이 됐잖아요?”

“하긴.”


이올레와 케스티는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거닐며, 엷고 서늘한 밤 바람을 즐겼다.

두 사람이 다스리고 있는 이 도시는 어지간한 산보다도 높이 떠오른 채 하늘을 가르며 이동할 수 있어서, 작정하고 속도를 높이려 한다면 숨쉬기 어려워질 정도로 공기가 엷어지는 상층부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이고 이런 식으로 여러 지역을 이동하면서 점차 이 옅은 한기에 적응해 나갔기에, 지금은 적당히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올레는 조금 전부터 묘하게 흥분해 있는 까닭에, 그런 것이 별로 심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면 아까부터 손목이 좀 뜨거운데… 괜찮아요?”

“손목이? 난 괜찮은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케스티는 등 뒤를 잠깐 돌아보는 것처럼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저쪽으로 떠나간 크시아의 잔향이 정말로 짙게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올레가 지금까지도 유난히 들뜬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보면 왠지 오늘은 제대로 잠들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케스티 자신이 그걸 싫어하지 않기에,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이올레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조종석은 둘이 떠날 때 그대로 둘을 반기며, 아무 문제 없이 바카사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대로 두고 들어가면 되겠어.”

“그러네요. 내일 정오 즈음에는 도착할 거고요.”

“그때까지 별일 없겠지?”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올레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먼저 침실 앞으로 걸어갔다. 그 발걸음이 가볍다 못해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같아서, 뒤에서 지켜보는 케스티의 입꼬리도 절로 가볍게 올라갔다.

잠시 후,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항로를 한 번 더 살펴본 케스티도 방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쯤이면 이올레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조금 전 이올레를 들여보내며 올라갔던 입꼬리가 다시 솟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두 사람의 시간 감각이 어디선가 조금 꼬인 것 같았다.


“까, 깜짝이야!”


막 잠옷을 발에 걸치던 이올레가 케스티를 돌아보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하필이면 오늘은 웃옷을 나중에 입을 생각이어서 상반신은 알몸이나 마찬가지여서, 부끄러움이 이올레의 목을 쥐어짜 날카로운 소리를 내보냈다. 그나마 그 모습을 보고 만 상대가 케스티였던 까닭에, 그 비명이 방 너머 공간을 뒤흔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치기 직전의 모습을 들켰다는 충격은 그대로 이올레의 피부에 푸르스름한 형광으로 남았고, 그렇게 선명히 보여지는 나신이 케스티의 가슴을 조금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뭐, 뭘 그렇게 놀라요?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그래도 몇 번이나 이런 일을 겪어 보았었기에, 두 사람 모두 금세 정신을 차렸다.


“그,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놀란 티가 다 나는데?”

“아, 그, 그렇죠?”


두 사람은 서로 멀뚱멀뚱거리면서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거리를 좁혔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두 사람 모두 이러한 애정 표현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아서 몇 번이고 고온과 고성이 오가고는 했지만, 지금은 그런 적이 있었느냐는 듯 서로의 몸을 섞는 데에 거침이 없었다.

가장 먼저, 케스티의 손이 이올레의 팔과 허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특별히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막 잠옷을 허리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이올레에게 다가가자니 절로 그런 구도가 됐다.


“어머, 꽤 적극적이네?”

“누구한테 배운 건데요?”


이올레는 대답 대신 능청스럽게 웃으며, 케스티의 팔이 거의 방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능숙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팔이 몇 번이고 맞닿으며 뒤엉키는 감촉이 절로 이올레와 케스티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여전히 말은 잘 하네.”

“그럼요.”


두 사람은 서로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팔을 풀고, 약간의 희롱이 섞인 가벼운 농담도 자연스럽게 주고받으면서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오늘은 왠지 여느 날보다 훨씬 뜨거운 밤이 될 것 같다는 기대에 걸맞게, 케스티도 이올레도 서로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낀 손깍지가 유난히 뜨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기분이야 어쨌거나,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나란히 앉은 침대는 역시나 서늘해서, 뜨겁게 들떠 있던 두 사람의 기분을 잠시나마 서늘하게 가라앉혔다.


“그나저나 내일…”

“네.”


그래서 그런지, 이올레가 먼저 침대에 누우며 꺼낸 말도 곧 있을 중요한 일에 대한 것이었다.


“...잘 되겠지?”

“글쎄요.”


물론 지금은 그런 미지의 사건보다는 바로 옆에 있는 서로에게 집중하는 게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