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에 침묵은, 다행히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손으로 덮었던 얼굴 너머로 뭘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손을 얼굴에서 내린후 그녀에 표정에는 평정심이 들어있었다.

그러고는 나무와 풀이 섞이듯한 녹색에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되게 부담스럽…

가 아니지. 아니 옷달라니까, 옷!

아마 상황이 이따꾸만 아니었어도 되게 아름다운 뭐 그런 장면이었을거다.
 
근데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자나!


"신께서는…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그건… 일단 옷이라도 주고 질문해주세요.."
"아아.."


질문을 하던 그녀는 이제야 생각이 난듯 당황한 모습이었다. 예쁜건 둘째치고 답답해 죽겠다.


확실히 정신이 없어보이는것 같긴한데..

아까 처음 만났을때도 탄생기간이니 뭐니 같은 말을 하는걸 보니 아마 그 기간을 지나면 신이 태어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기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깜짝 등장한 나는 그녀를 정신 없게 만들기 충분하다는거다.

이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때.

탁!
당황하던 그녀가 손바닥을 한번쳤고, 날개소리와 함께 아까 봤던 꼬마요정들이 날아왔다.

그 요정들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내몸을 실같은 무언가로 감쌌다.

그리고 순식간에 아름다운 옷이 만들어졌다. 꽃모양 자수로 덧대어져있는 하얀색 원피스는 마치 내몸에 맞춰서 만들어 진것처럼 딱 맞았고, 방금 만든것처럼은 보이지 않는 예쁜옷이었다.


요정들로 옷을 만들 생각을하다니..


"옷은 마음에 드시나요..?"
"네... 마음에 들어요."


뭐가 나사가 하나 빠진거 같은데… 그래도 다행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저 모습은 되게 예뻤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냐.

뭐 뻔하지. 의복문제는 해결됬고 상황 파악도 대충은 됬다. 그럼 이제 그녀에게 내가 지금까지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모르는 정보들을 제공받고 내 위치를 파악하는거다.

그래야지 사랑이니 뭐니 하는 그, 그걸를 하던지 말던지 할거다.


"다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신께서는…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녀는 다시한번 나에게 아까와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그래 말해준다. 말해줘.


"꽤 긴이야기가 될것같은데요……"

"괜찬습니다. 신께서 어떤분인지 알아야 제가 조치를 취할수있기에 이야기의 길이는 상관없습니다."


그건 그렇게네. 근데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하나.


"그럼 시작할게요……"


그녀의 괜찬다는 말을 들은후에 나는 지금까지 겪은 일에 일부분만 제외하고 거의 다 말했다. 창조신이 말한 목표ㅡ사랑ㅡ같은거는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상관없겠지만, 그것까지 말하면 여기서 혼란만 가중할 뿐이니까.

"..."

"저기. 저기요?"

또 무슨 버퍼링 존나걸리는 고물컴퓨터 인터넷 마냥 멈춘 그녀를 보니 한숨밖에 안나온다.

그리고 꽤 긴시간동안 정지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한 말과 행동은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숲의 수호자 바네크. 미천한 제가 최고신을 뵜습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매우 정중하게 말했다.

뭐…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

마치 신하가 왕을 대하는듯한, 그녀의 태도를 보면 내 생각대로 최고신이라는게 신계에서 높은 존재 즉 지배계층이라는거다.

근데 그 위치는 지금은 하나도 도움이 안된다는거다.

"그건 둘째치고, 전 지금 부족한 설명을 듣고싶은데..."
"사, 사실 이건 제 선에서 처리할수없는 일 이에요…"


그래. 어쩔수없겠지…

지금까지 그녀를 지켜본 결과 그녀는 자신의 권한 이상은 행동하는게 되게 조심스럽다는거다.
처음에 내가 나타났을때도 버퍼링 걸린듯한 모습은 아마 이때문일거다.


"그래도, 방치할수는만은 없어요. 저를 따라와주시겠나요?"


그녀는 생각을 골똘히 하더니 결정했다는듯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결국 그녀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여기 있어도 별 소용 없을거고, 나사는…… 하나빠진것 같아도 따라가는게 맞는거 같았다.

그녀는 숲을 헤치면서 앞에서 길을 인도했다.

역시 숲을 잘아는것 같았다. 그녀는 이런 울창한 곳에서도 길을 잘찾았다.


이미 숲의 수호자 라고 말하기도 했고..

가지각색에 꽃들, 여기저기 자라있는 풀들, 높게 솟아있는 나무들 까지. 이색적일것만 같았지만, 내가 알던 숲과 별반 차이는 없어보였다.

숲을 다헤치고 나온곳은……


와 미친....


감탄이 절로 나오는 엄청나게 웅장하고 커다란 회색성이 우리앞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크고 웅장한것과 달리 그곳은 이미 예전부터 쓰지않은듯했다. 성 여기저기에는 넝쿨이 감겨져있었고, 성벽에도 식물들이 자라있었다.

그런것 외에도 낡은티가 팍팍났다. 딱 판타지 만화에서 봤던 고성처럼 생겼다.

그녀는 나를 그 고성앞으로  안내했고, 그리고 우리는 성문 앞에서 멈췄다.


"선,선배님, 바네크 입니다. 문을 열어주세요."


철컹.

그녀는 선배 라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는듯 했고, 그후에 문이 커다란 소리와 함께 열렸다.

선배라... 누굴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성 안으로 들어가니까, 밖에서 보았던것보다 훨씬 많은 식물들이 있었다.

넓은 마당에 기둥들은 넝쿨에 묶여있었고 동상, 건물의 잔해 같은것들도 죄다 식물에 침식당해있었다.


이런데서 살수는 있는걸까?


멀쩡한데 하나없는 이곳에서 생명체가 살수있을것 같지 않았다. 뭐 그녀가 선배라고 부르는 그 존재도 신일거니까, 여기서 사는데 문제는 없겠지.

그녀를 따라서 천천히 걸어서 도달한곳은 서재 아니 도서관 수준으로 보이는 책이 가득한 어떤 건물이었다.

끼익...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나와 그녀는 함께 그 도서관으로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흩어져있는 책들, 넘어져있는 책장, 깨져있는 샹들리에. 지금까지 본 이 고성과 마찬가지로 외부는 웅장하고 멋지긴한데 내부는 관리가 전혀 안되어있었다.

딱하나 다른점이라면, 이곳에는 식물이 없다는거 정도였다.


"바네크."


부서진 조각상이 중앙에 자리한 양옆으로 나있는 계단 위에서 무게감있는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단 위에는 잘보이지는 않았지만, 덩치가 꽤 큰듯한 남성의 실루엣이 보이는것 같았다.

팟.

그리고 무언가 이동하는 소리와 함께 아까 본 그 실루엣은 순신간에 우리 앞에 나타났다.

우리앞에 나타난 남자는 근육질인 몸, 깔끔하게 차려입은듯한 검은색 정장, 그리고 얼굴은……


개?


누가 판타지 아니랄까봐...


놀랍게도 그남자는 목부분부터 얼굴까지 전부 개 였다. 그것도 그냥 개도 아니고 되게 멋있는 도베르만 처럼 생겼다.

그리고 굵고 무게감있는 목소리가 더해지니, 얼굴이 개처럼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중압감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아직 탄생기간이 아니건만, 바네크여 어째서 날 찾은거지?"

그는 귀찮은듯한 표정으로 내 옆에있는 그녀를 힘이 깃들어있는 그 금안으로 바라보았다.


"그,그게 긴급한 상황이라서… 어쩔수없이.."


긴장한게 역역히 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 저 남자ㅡ일단 몸통은 남자다ㅡ는 보다 높은 존재임을 예측할수있었다.


"무슨일이기에? 탄생기간은 아직 한참남지 않았나."
"그,그게……"
"그리고, 너 옆에 그 소녀는 누구기에 이곳까지 데리고온것이냐."


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 남자는 옆에 있는 나를 쳐다보면서 책망하는듯한 말투로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 성격상 평정심을 찾기란 여려운일 일거다.

또다시 버퍼링 상태에 들어간 그녀를 보면……

에이씨.

이제는 한숨 쉬기도 귀찮아졌다.

뭐 어쩌겠냐. 그냥 내가 설명 해야지.


"저기…"


버퍼링을 걸린듯한 그녀를 제치고 근엄하게 서있는 그 남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실례가 안된다면, 제가 설명을 드려도 될까요?"


그남자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설명 해보란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제 정체부터 말씀을………"


나는 전에 바네크ㅡ지금은 저어기 버퍼링 걸려있는ㅡ에게 설명한거보다 조금더 깊고 길게 설명을 이어갔다.

설명하는동안, 그 남자는 가만히 듣고있다가 최고신 이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별반응을 보이지도않았다.


"……해서. 지금 이상태가 됬죠."


이상하네.

표정 변화가 원래 없는건지 아니면, 감정이 고장이라도 났는지 그는 오랫동안 말한번 하지않았다.

이 침묵에 익숙해질뻔할때 였다.


"으왓!?"


한동안 버퍼링에 걸렸던 바네크가 제정신으로 돌아온건지 깜짝 놀란듯 소리를 질렀다.

이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거냐. 참 오래도 걸렸네… 여기 놈들은 성격이 죄다 이상하다니까.


"아하하… 죄,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긴장을 해서.."


그녀는 째려보고있는 나를 향해 변명을 하듯 말했다. 그리고 정지해있던, 그 남자도 다시 말을하기 시작했다.


"방금 신계에 네트워크를 통해 최고신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곧 그곳으로 가는 포탈이 열릴겁니다."

일처리 한번 빠르네.

사실 그가 멈춰있었던것은 신계에 연락망을 통해 나의 존재를 보고하고 조치를 취하기 위했던거였다.

바네크와는 비교도 되지않게 유능하고, 깔끔한 판단력에 나는 감탄을 할수밖에 없었다.


"그럼 못했던 통성명부터 먼저하시죠."


그는 아까와는 나를 대하는 분위기도 태도도 바뀐채로 허리를 숙이면서  먼저 이름을 말했다.


"제 이름은 베르. 지옥의 수문장으로 상급신 입니다."


역시 높은신이었다.
근데 그것보다 통성명이라는게, 내 이름도 말해야하는데, …아직 생각해둔 이름이 없는데.

어떻게하지...

내가 곤란해하던 그 순간.




파지직!
까악!?



갑자기 도서관 가운데에 포탈이 생기더니 우리는 그것에 대처하지도 못하고 삼켰져버렸다.


이건또 뭔 지랄이...

작가후기

2화만에 순간이동만 3번째인 주인공은 드물지.

노벨피아: https://novelpia.com/novel/228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