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초코케이크와 레모네이드 








ㄱ대 근처, △△빵집의 안. 

우리는 고로케 매대 앞에 서서 반대편에 있는 초코케이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케이크. 




하지만. 


오늘의 우리는 저 케이크를 보며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며칠 전, 그녀가 여느 때처럼 집에서 고로케를 먹고 있을 때였다. 




"..또 고로케 드세요? 

엄청 좋아하시나 보네.." 


거실 탁자에서 고로케를 물어뜯고 있는 그녀를 보고, 은하가 말을 걸어왔었다. 




"그 집은 초코케이크가 진짜 맛있는데~ 혹시 알고 계셨어요?" 




윽. 


그냥 케이크도 단데 초코라.. 우리의 취향과는 맞지 않는 메뉴였다. 




"아.. 전 단 거 별로 안 좋아해서.." 


"아하 ㅎㅎ.. 그건 좀 아쉽네요. 진짜 맛있는데. 

전 △△빵집에서 그 메뉴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그러고는 그녀는 살짝 아쉽다는 듯이 덧붙였었다. 




"뭐, 몇 번 먹어보진 못했지만요. 

갈 때마다 매진이었어가지고.." 




다음에 생각나면 한번 먹어보세요, 맛은 제가 보증할게요. 

밝은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을 끝맺었었던 은하. 




..그런 얘기를 했었지. 




그리고 그 케이크가, 지금 우리 앞에 남아있었다. 




'저걸 사 가야 하나..' 


몇 분째, 계속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 




은하랑 제대로 화해를 하고 싶은 그녀였다. 


어제 몇 시간 동안 은하를 내팽개쳐 둔 건 무조건 자신의 잘못이었으니까. 

그것도 밤에, 자기가 데려와놓고 말이다. 


아무리 논문에 필요했다곤 해도, 너무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렇게 했으면 안 됐는데. 




그런데 사실, 은하는 이미 괜찮다고 하긴 했었다. 

집에 돌아오는 동안에는 살벌한 분위기였지만, 

도착할 즈음에는 그녀도 화가 좀 풀렸는지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게 정말로 화가 전부 풀려서 한 말인지, 

아니면 그냥 표면상 한 소리고 아직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도 그건데. 




'이럼 너무 신경 쓰는 거 같잖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보통은 이런 일이 있으면 사과를 하고, 

그 이후로는 별다른 행동 없이 시간의 흐름에 해결을 맡기는 걸 선호하는 우리였다. 


회복된다면 이어 나가면 되고, 회복되지 않는다면 거기까지의 관계. 

이전까지의 우리의 인간관계는 그녀에게 있어서 딱 그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은하는. 

은하에게는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읏,.' 




그리고 다시 떠오른, 

어제의 그 느낌. 




우리는 그 감정에게서 또다시 눈을 돌렸다. 


더는 사람과의 관계 문제로 귀찮아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건, 우리에게는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특히나, 연애 관련해서는 더더욱. 




그리고 애초에, 나도 여자를 좋아하는 성향이었던 건가?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한 번도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우리였다. 




아니면 정말로, 이건 연애 감정이 아닐 수도 있겠지.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그녀였으니까. 

그러니 가늠이 가질 않았다. 




'..모르겠다.' 


지금이 그에 대한 결론. 




생각하지 말자. 

그것이 우리가 어제, 그리고 오늘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빵 사러 와서까지 이런 고민을 하고 싶진 않았다. 

케이크 하나 보고 어디까지 온 거야, 대체. 




그렇게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원래 하고 있던 일에 다시 집중하려 할 때. 




"저기요, 이 빵 안 사시는 거죠?" 


"어, 네.." 


갑자기 걸려 온 질문에, 순간 당황해서 뭔지도 모르고 긍정해 버렸다. 




그러자 그녀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지막 고로케. 


아. 저게 마지막이었구나.. 




요새 갑자기 고로케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서 한 번씩 재고가 없어지는 상황이 생기고 있었다. 


빵집 사장님에겐 호재겠지만, 우리에게는 썩 좋지 않은 소식. 

예전엔 항상 남아있어서 좋았는데. 


빵을 들고 간 사람에게로 가서 

죄송한데 사실 사려고 하는 중이었다고 말해볼까도 살짝 고민해 보았지만, 

역시 그러지 않기로 했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 특히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건 평소의 우리에겐 쥐약이었으니까. 




그냥 다음에 먹지 뭐.. 




"내 빵..ㅠㅠ" 




그녀는 앞으론 뭔갈 하는 도중엔 딴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 













그렇게 원래 목적을 이루는 건 무산된 채로, 

이제는 다시 초코케이크 앞. 




우리는 하나 남은 초코케이크와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 케이크를 사 가면 뭔가 지는 듯한 느낌. 

지금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하는 기분이었다. 




사실은 별거 아닌데. 




..그래. 


그렇게 결심을 하고 그녀가 케이크를 집으려고 할 때. 




그녀의 뒤에 서 있던 한 남자가 자신의 트레이로 케이크를 가져가 버렸다. 




어. 




"아, 잠시만요! 그거 제가 집으려고 했던 건데.." 




그러자 당황스럽다는 듯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는 남자. 




"네? 계속 보고만 계시길래 안 사시는 건 줄 알았는데요." 


"아, 죄송해요. 이제 막 집으려고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 













"흐흥~." 


주방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무언갈 썰고 있는 은하. 

그녀의 옆에는 조금 전 가지고 들어온 장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주방 전체를 감도는 새콤한 냄새. 

오늘 그녀가 사가지고온 건, 레몬이었다. 




요리랑 만들기는 특기기도 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취미였기에, 

우리에게 뭔가 먹을 걸 만들어 주기로 한 것. 




오늘은 뭔가 가벼운 먹거리가 좋을 것 같았다. 

사과의 표시로 식사 대접은 과한 느낌이라고 할까, 좀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아마 우리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그래서 그녀가 오늘 준비하기로 한 건, 레몬청과 레모네이드. 


만들기도 간편하고, 맛도 좋은 음식이었다. 


특히 레몬청은 휴대하기도 좋고, 만들기도 간편한 데다 따뜻하게 먹어도 맛있는 건강 음료였기에 

이래 봬도 꽤 신경 쓴 우리 맞춤 선물이었다. 




'천체 관측하러 갈 때 들고 다니면 좋지 않을까.' 


레몬은 비타민C도 풍부해서 피로 회복에도 좋다고 하니까. 

새콤달콤한 음료를 마시면 잠도 깨고 기분전환도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설탕과 함께 버무린 레몬을, 사 들고 온 예쁜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이대로 상온에 하루 놔뒀다가 냉장고에 넣어서 이틀 정도 숙성시키면 끝. 


꽤 괜찮게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럼, 누구 작품인데. 


기분이 좋아진 은하는 다시 흥얼거리며 이번엔 레모네이드를 만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레모네이드는 레몬청을 바로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같이 준비한 메뉴. 

재료도 똑같고, 만드는 방법도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준비할 수 있었다. 


우리 쌤이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이것도 설탕을 조금 덜 넣을까. 




'아, 쿠키 사 온다는 걸 깜빡했네.' 


이제 섞기만 하면 되니까, 지금 나가서 사 와야겠다. 




음료에 곁들일 음식이 빠지면 섭하지. 


그렇게 은하가 현관 쪽으로 가서 신발을 신으려고 할 때,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며 우리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 안녕하세요.." 


"아, 네.."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또 어색해진 둘. 

서로 눈을 잘 쳐다보지 못했다. 




"ㅎㅎ., 좀 일찍 오셨네요??" 


"네.. 오늘 좀 일찍 끝나서.." 


현관에 서서 열심히 꼼지락거리기만 하고 있는 우리와 은하. 

서로 눈치를 보면서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서 드디어 입을 열었을 때. 




"저기, 우리 쌤-" 


"저.. 작가님." 




둘이 말이 겹쳤다. 




" "아, 먼저 말씀하세요." " 




-또. 




그러자 뭔가 부끄러워졌는지 둘 다 다른 곳을 쳐다보며 잠시 말이 없다가, 은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우리 쌤, 어제 정말 미안해요. 제가 너무 화만 냈죠? 

우리 쌤도 어제 중요한 일 중이었을 건데.. 너무 저만 생각했나 봐요. 

어제 정말 즐거웠는데.. 저 때문에 괜히 마지막에 안 좋게 끝내버렸네요. 죄송해요.." 




그런 은하의 사과에 당황하는 우리. 

계속 어떻게 은하의 화를 풀어줄지만 생각하고 있었어서, 

그녀가 이렇게 나올 줄은 전혀 상상하고 있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 아녜요. 어제는 제 잘못인걸요.. 제가 같이 가자고 한 건데, 끝까지 신경 못 써 드리고 제 할 일만 하고. 작가님이 차도 운전해 주시고 과외 대신 가는 것도 허락해 주셨는데.. 정말 죄송해요. 그래서 전 아직 화 다 안 풀리셨을 줄 알고.." 


"네, 네?!! 아니에요, 저 이제 진짜 괜찮아요! 계속 신경 쓰고 계셨던 거예요..?? 괜찮은데.." 


"아.. 하하. 다행이네요.." 




그리고, 이거.. 하며 우리는 들고 있던 비닐 포장백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눈이 휘둥그레지는 은하. 




"..어, 뭐예요?? 아..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와-ㅎㅎ. 꺼내봐도 돼요??" 


"아, 네.." 


은하가 포장백 안에 들어있던 상자를 열어보자, 그 안에서는 조각 초코케이크가 나왔다. 




"-와!! △△빵집 초코케이크! 저 주려고 사 오신 거예요?? 저 이거 진짜 좋아하는데.. 뭔가 감동이에요. 고마워요..ㅎㅎ. 잘 먹을게요." 


케이크를 보고 엄청 기뻐하는 은하. 

뭐가 나왔어도 정말 기뻤겠지만, 우리가 예전에 자신이 한 말을 신경 써 준 것 같아 더욱 기뻤다. 




뭐야.. 이 사람. 은근 세심하잖아. 


은하는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다. 




그러다 그녀는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어딘가로 도도도 달려가서는 무언가를 가져와 우리의 손에 쥐여주었다. 




"저도요, 선물. 사과의 의미로..ㅎㅎ. 

레몬청이에요. 천체 관측 가고 하실 때 드시라고.." 


"..우와, 감사해요.." 




선물까지 받을 줄은 몰랐는지 우리도 적잖게 놀란 표정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던 새콤달콤한 냄새가 이거였구나. 

우리는 은하의 화가 다 풀렸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며 한편으로는 마음 한 켠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신경 써서 만들었다는 느낌이 가득 담겨 있는 수제 선물. 

이런 걸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말, 기뻤다. 




그렇게 우리가 은근히 감동받아 있는 사이, 

초코케이크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던 은하가 생긋 웃으며 우리에게 물어보았다. 




"저, 우리 쌤, 지금 바로 먹어봐도 돼요?? 같이 먹어요ㅎㅎ" 


"아, 전 단 거 안 좋아해서.. 작가님 다 드세요." 


"에이, 저 레모네이드도 만들었으니까 같이 먹어요. 

안 그래도 곁들일 거 사가지고 오려 했는데 잘 됐다." 




그래서 결국 같이 먹기로 했다. 


은하가 음료를 준비해 오는 사이, 꼼짝없이 거실의 탁자에 앉아 있게 된 우리.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접시 위의 초코케이크와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초코케이크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은하의 수제 레모네이드는 마셔보고 싶었다. 

마침 목이 말랐기도 하고. 


별다른 뜻은 없었다. 




"자, 먹어요ㅎㅎ" 


어느새 음료 두 잔을 가져와 자리에 앉은 은하.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에게 포크 하나를 내밀었다. 




"전 괜찮은데.." 


"한 입만 먹어봐요, 한 입만. 진짜 맛있다니까." 


그렇게 계속 빼는 우리와 살포시 씨름을 하다가. 




은하는 뭔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그녀의 포크로 케이크를 작게 잘라서 집더니, 

그걸 그대로 우리의 입 쪽으로 내밀었다. 




"자, 앙-." 




이래도 빼? 하는 느낌. 




억지로 먹이려는 듯하면서도 은근한 권유라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건.. 




갑작스러운 난관에 봉착한 우리는 살짝 당황한 채, 눈앞에 놓인 케이크 조각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인싸들은 원래 다 이러나..? 




결국, 못 이기는 체 고개를 숙여 은하가 내민 초코케이크를 앙 하고 받아먹는 우리. 

살짝 볼이 상기된 채로 우물거리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은하가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어때요?ㅎㅎ" 




"뭐, 나쁘지 않네요.."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단 거 같은데..' 




그게 초코케이크의 단맛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은하가 만들어 준 레모네이드는 너무나도 상큼하고 달달한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