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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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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엇갈리는 두 사람







"우와 저두요~~"




해맑게 웃으며 대답해 오는 은하.


비록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상태였지만, 방금 우리의 말은 그녀가 무엇보다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비몽사몽인 상태에서도, 그 말.


좋아한다는 말만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두 우리 쌤, 정말 조아해요.. 헤헤.."


그러고는 행복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은하.




높게 올라간 그녀의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은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 있는 우리를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발걸음을 내디뎠다.




"오늘 너무 행보카다아~

우리 쌤이랑 놀이공원도 가고, 맛난 것도 먹고오.."




그러면서 우리를 껴안는 은하.

우리의 품에 안기듯이 그녀를 껴안은 은하는, 그녀의 냄새를 맡듯이 가슴에 얼굴을 부비적대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아프로도 이런 일만 가득했스며언~~"


그런 은하에게 전해져 오는,


몇달 전 그날,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느꼈던 포근하고도 달콤한 라일락 향기.

그 향기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웅......"


그리고 그 냄새를 확인한 은하는,

우리의 품에서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


그 뒤에 남은 건,

귀가 새빨개진 상태로 은하를 끌어안고 있는 우리.


그녀의 색색거리는 숨결에서는 달콤한 술냄새가 은은하게 퍼져왔다.




'으..'




이 사람은 매번 이런 식이다.


왜 하필 이럴 때 취해서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살짝 불평을 하면서,

하지만 그런 모습마저도 사랑스럽다는 듯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은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우리.




그러면서 그녀는 새근새근 자고 있는 은하의 귓가에 대고, 상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미 곯아떨어진 그녀가 이 말을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내일도, 모레도.."













***













다음날.


악몽이라도 꾼 듯이 그녀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는 은하였다.




'어제 어떻게 됐지..?? 고백은..???'


그리 놀랍지 않게,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번에도 술에 취해서 어느 순간부터 맛이 가버렸다는 것 말고는.




이 정도면 악의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술을 그렇게까지 마신 자신이 일차적으로 잘못이긴 했지만.




"아..ㅠㅠ 고백, 어제 했어야 했는데..

이은하, 이 바보 멍청아아..

술을 진짜 끊든가 해야지."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울상을 짓고는 애꿎은 베개를 마구 내리치며 괜한 화풀이를 하는 은하.

지금은 자신에 대한 원망이 숙취를 앞서고 있었다.




"우욱.."


그러다 곧 메스꺼워지는 속에 그녀는 곧 베개를 괴롭히는 걸 멈췄다.


몸을 움직였더니 머리가 아파왔다.




"앞으로도 이렇게 술을 마시면 내가 개다, 개.."




'......'


근데, 어렴풋한 기억을 되짚어 보니 뭔가 어제 우리쌤한테 고백을 받는 꿈을 꿨던 것 같다.


..꿈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그 생각까지 들자, 뺨을 빨갛게 물들이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실 밖으로 나가 보는 은하.

하지만 거실에서도, 우리의 방에서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점심에 약속 있댔었지.




'나중에 오면 물어볼까..'


아니, 이번엔 그냥 내가 해버리자.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 아닌 다짐을 하며 은하가 다시 그녀의 방으로 들어섰을 때.




그녀의 침대 옆 선반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숙취해소제와 편지가 놓여 있었다.




[계속 이러면 다음부턴 안 챙겨줄 거예요ㅡㅡ


술 좀 적당히 마셔요.


해장하고 있어요. 금방 돌아올게요.]




"..ㅎㅎ."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읽는 은하.

암. 곧 여친 될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이젠 진짜 자제해야지..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점점 울렁거려 오기 시작한 배를 달래며, 점심을 어디서 때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음..'


오늘은 ㅁㅁ해장국집이 좋을 것 같다.


학창 시절 때 신세를 많이 졌던 곳.

넓은데도 자주 붐비는 가게라 평소에는 시끌벅적한데, 지금은 평일 오후고, 밥시간도 좀 지나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흐흥~"


그렇게 갈 곳을 정한 뒤.




곧 돌아올 예정이니, 대충 걸쳐 입고 집을 나서는 은하였다.













***













'딸랑~.'




경쾌한 도어벨 소리를 울리며, 해장국집에 들어오는 은하.


여긴 룸이 있어서 좋았다.


원래는 회식이나 가족용이지만, 사장님이 성격이 좋으셔서 한산할 땐 혼밥 손님들에게도 제공하는 룸.

조용히 혼자 식사하는 걸 좋아하는 은하에겐 안성맞춤인 가게였다.




선불이라 미리 계산을 하고, 자리에 앉는 은하.

곧이어 뜨끈한 해장국이 나왔다.




그리고 얼큰한 국물을 한 숟갈 뜰 때, 문득 들게 된 한 생각.




'근데 우리 쌤 약속, 설마 권채연인가..?'




전에 인별에 올렸던 사진을 보니까 둘이 꽤 친한 것 같았다.

글쓰기 수업으로 친해진 거 같은데..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의 인간관계에 그녀가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은하가 생각할 땐, 채연이 우리한테 관심이 있는 거 같았다.


그 사진을 보면 확실했다.

여자의 감이라고나 할까, 곁눈질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그 눈빛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졌으니까.




그리고 전에 들었던,

"나처럼 잘 숨기고 살든가."


그렇다는 건, 그녀도..




"......"


그 생각까지 닿자, 점점 어두워지는 은하의 표정.




뭐, 어때. 오늘 결판 볼 건데.

술이나 빨리 깨자.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한 번 휘젓고는, 그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한 은하였다.




조금 뒤.




"..후.."


해장국을 먹다 보니 좀 더워져서, 방문을 조금 열어둔 은하.

그 때문에 입구 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식사를 거의 끝마쳐 갈 때.

가게 입구에 익숙한 모습의 두 사람이 보였다.




"..!"




우리랑, 채연이었다.




청바지에 검은 셔츠 차림의 우리와,

머리를 풀고 흰색 블라우스 위에 원피스를 겹쳐 입은 채연.


우리의 옆에 선 채연이 그녀의 팔을 잡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러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험악한 표정이 지어지는 은하.


입구쪽에서 얘기를 하며 들어오는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이런 거로 괜찮겠어?"


"응, ㅎㅎ. 너 어제 과음했다며. 그럼 해장국 먹어야지~

이 집 엄청 잘해. 먹고 카페나 괜찮은 데 가자."




권채연한테 여길 가르쳐주는 게 아니었다.

1학년 때 자주 데리고 다녔었는데.


망할 기집애가..




은하가 이곳에 있는지 알 턱이 없는 둘은, 그녀가 있는 방을 지나 가게 안쪽에 자리 잡았다.


제법 멀리 떨어져 앉은 건지, 가게가 꽤 조용했는데도 어렴풋하게만 들려오는 대화 소리.




"우리 너 근데 동아리 같은 건 안 한다고 했지?

지금이라도 들어갈 생각은 없어??

우린 4학년도 환영인데."


메뉴를 시키고 우리가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자, 채연이 한 팔로 턱을 받치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걸어왔다.




"어, 채연이 너 동아리 한댔던가?"


"응. 독서 동아리.

내가 회장이야."


우리가 나름 관심을 보이자,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권유를 계속 이어 나가는 채연.




"어때?? 남은 학기 동안 같이 활동하는 거.

재밌을 거 같은데.

우리 MT도 정기적으로 가거든. 사진 보여줄까?"


그러면서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건 옛날 사진이고.."


"..어,"


우리의 뜻밖의 반응에, 사진첩을 넘기다 말고 손을 멈추는 채연.




"응? 왜??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그러자 반가운 듯한 표정으로 사진 속 누군가를 가리키는 우리.


5년 전, 지금보다 좀 더 앳된 모습의,

은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두워지는 채연의 표정.


그녀는 미소가 조금 벗겨진 채 다소 무거워진 목소리로 우리에게 물어보았다.




"..이 사람 알아?"


"어? 응, 아는 언닌데.."




그러자 낯빛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채연.




"혹시 둘이 친해?"


"응? 아, 응.. 뭐,, 그렇지??"


우리의 그 말에, 채연은 잠시 말이 없어지더니 이제는 싹 바뀌어 버린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이 사람은 좀 멀리하는 게 좋을 건데.

우리 동아리가 예전에 파탄 난 적이 한 번 있는데, 이 여자 때문이었거든."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그런 우리의 말이 들려오자, 굳어버리는 은하의 표정.




우리의 심각해진 목소리에, 채연은 마치 기회라도 잡았다는 것처럼 물 흐르듯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백희원이라고, 이 사람이랑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사이가 틀어지고 나서는 정치질로 동아리에서 쫓아내 버렸거든.

자기는 오롯이 불쌍한 피해자인 척하면서 말야.


그랬으면서 본인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지.

질타받은 건 이 사람을 욕한 다른 동아리 사람들이었어.


그래서 그때까진 화목하기만 하던 동아리는 분열되었고-"




채연의 얘기가 계속되면 될수록, 은하의 표정은 점점 더 안 좋아져만 갔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서 저 얄미운 입을 한 대 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 여자, 레즈거든."




그 말이 들리자, 은하는 순간 숨을 들이켰다.

몸이 굳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조용해진 우리.

그녀의 그런 반응이 은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모두한테 이해받으려고 한다고?

적어도 상대는 잘 봐가면서 이야기를 했어야지.


자기가 특수하다는 자각이 없는 거야?

조금만 조심했으면, 더 신중했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 갈 일 없었을 거 아냐."




그렇게 조금 뒤.

길었던 채연의 말이 끝나고, 긴장한 채로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은하였다.




쥐고 있던 숟가락에 어느새 힘이 들어갔다.




......




"역겹네."




쨍그랑-.




우리의 한마디가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들려오는, 시끄러운 숟가락 떨어지는 소리.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방 안에서,

은하는 떨고 있었다.




뒤이어서 우리의 말소리가 계속 들려왔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은 지 오래.


은하의 마음속엔, 방금 우리의 그 단 한마디만이 비수처럼 맴돌며 끔찍한 고통을 주고 있었다.




'역겹네.'




가슴에 가시가 박힌 것 같다.


그 아픔을, 견뎌낼 수 없어서,

그녀는 그대로 가게를 뛰쳐나갔다.




'다다다-'


우리가 자신의 모습을 봤을까.

그걸 걱정할 여유도 없이, 그저 눈물을 흘리며 달려 나가는 은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으로부터 도망쳐 버렸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 건, 조금 나중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