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나 마후유는 한 마디로 말해 어떤 사람인가요?' 라는 질문을 들으면 굉장히 곤혹스러울 것 같다. '한 마디로 말해 어떤 사람' 이냐니. 주어진 분량이 너무 적다. 밝기도 밝지만 의외로 센티멘탈한 면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웃음이 안 어울릴 수도 있지 않는가. 애시당초 질문 자체가 굉장히 뜬구름 잡는 감이 크다. 대체 어떤 점을 바라는 건지 모르겠다. 취미를 알고 싶은 건가 인격을 알고 싶은 건가?



어렵다. 센터 시험에 출제되는 문학 문제와 비슷한 난제다. "질문 : 이 대목에서 아사히나 마후유가 '죽도록 지루해 한' 이유를 서술하십시오." 와 궤를 같이 한다. 사람을 한 마디로 귀결하는 행위 자체가 이렇게나 어려운데, 하물며 그 대상이 아사히나 마후유라면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나로서는 도통 이 여자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가를 노리는 몸 답게 표면부터 파고 들어가볼까. 외모는 미인 축에 속하지만 솔직히 그리고 싶은 대상은 아니다. 일단 표정이나 움직임이 너무 적다. 가식을 부릴 때야 말 할 필요도 없고, 평상시에는 '응.' 이나 '그렇구나.'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만을 지으니 그림이나 사진을 수백장 남겨봐야 전부 비슷하게 보일 것 같다는 인상이다. 그 불변성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더 표정이 다양한 모델을 그리고 싶다. 물론 이런 평도 '평소'에 한할 뿐, 작정하고 감정을 이끌어낸다면 충분히 매력있는 대상이 된다.


실제로 몇 번 그려봤을 때에는 꽤나 괜찮은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무심코 지은 웃음. 고뇌하며 미간을 찡그린 순간. 이러한 순간을 포착할 때마다 나는 문득 '아, 이 녀석도 사람은 맞구나' 하고 생각한다. 동시에 걱정도 된다. 대체 어떤 환경을 거쳐야 저런 인간이 되는걸까?


처음에는 그냥 짜증나는 여자라고만 생각했다. 왜, 만화를 보다보면 세상이 잘못됐다고 느끼는 쿨한 캐릭터가 자주 나오지 않는가.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세상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오만한 주인공들. 막 말하자면 헛바람이 든 녀석들이라고 해야하나. 마후유도 이런 축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딘가 정말 '동떨어져 있다' 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학원에서 두 번이나 혹평을 들었을 때였나, 아니면 세카이에 틀어박혔다가 나왔던 때였나. 시기는 가늠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녀석에게는 이 녀석 나름대로 고민거리가 있다. 아니,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그렇기에 지금으로선 마음이 복잡하다. 대체 마후유는 바이올렛 색에 가까운 머리카락 뒷편에 대체 어떤 고뇌를 숨기고 있는 걸까?



"에나."



- 먹먹한 목소리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내 정신을 붙잡는다. 조용한 목소리가 마치 영화 감독이 메가폰에 대고 '컷, 컷. 자, 여기까지.' 라며 고함을 지르는 듯 하다. 나는 체념하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시야 속에 검은 스커트가 들어온다. 얼핏 보면 교복 치마처럼 보이지만 조금 생김새가 다르다. 교복 치마는 색이 훨씬 더 밝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연회색에 가깝다. 반면 지금 보이는 치마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타이어를 보는 듯한 색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회색이 아니라 검은색이라고 부를 법도 하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스커트 천 밑에 존재하는 물체다. 어딘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보라색 조각.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어딘가 안경 닦이랑 비슷한 질감으로 보이기도 하는 저 작은 삼각형 천.



그래, 팬티다. 그 아사히나 마후유가, 감정이 없어보이는 그 아사히나 마후유가, 내 앞에서 스커트를 까뒤집어 팬티를 보이고 있다.



딱히 누군가가 시키지 않았다. 내가? 내가 시킬리가 없잖아. 애초에 마후유가 시킨다고 할 사람도 아니고. 마후유는 어디까지나 자의로 스커트를 뒤집어 팬티를 드러낸 것이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차라리 눈 앞에 존재하는 여자가 환각이기를 바라게 될 정도다. 적어도 십 분 전 마후유에게 '세카이로 와줘' 라는 문자를 받기 전 까지는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 생각해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영문을 모르겠는데 과거에야 어련하겠는가?



물론 나도 마후유를 저지할 생각이었다. 다짜고짜 스커트를 들어올리기 시작했을 때는 "바보, 미쳤어?" 라는 말을 내뱉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마후유가 스커트를 들어올리며 너무나도 처량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마치 아이가 어머니에게 팔목을 강하게 붙들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절박한 표정으로 "에나, 부탁해. 잠시만 가만히 있어줘." 라고 말하는 소녀를 어떻게 저지할 수 있겠는가?


"어때?"


마후유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어떠냐고 말해도..."


"그런 걸 묻는게 아니야."


냉정한 대답이 돌아와 다시 머리를 잡았다. 대체 어떤 말을 듣고 싶은 걸까? 팬티라는 대상에 대체 어떤 수식어를 붙이기를 바라는 걸까? 이쯤되면 슬슬 억울해진다. 나는 고민하다가 될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으로 진솔한 심정을 내뱉었다.


"왜 이런 걸 묻는건데? 아니, 애초에 왜 이런 짓을 하는거야?"


그러자 마후유는 가슴을 부풀리며 작게 심호흡했다. 부풀어오른 가슴이 되돌아가자 작은 목소리가 세카이에 울려퍼졌다.


"-이해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대체 뭘? 혼자만 아는 말을 하지 말라고."


"...나도 모르겠어."


 "뭐?"


내가 무심코 얼빠진 목소리를 내자, 마후유는 한숨을 쉬었다.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지."



전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더라? 나는 기억을 상기하려 애썼다.


떠올리려고 하니 의외로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분명 마후유가 내 집에 머물렀을 때였다. 그림을 그리다가 힐끗, 집중하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찰나, 마후유가 팬티를 드러낸 적이 있다. 물론 자세를 바로잡다가 생긴 일이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실제로 지금 이렇게 떠올리려고 하기 전 까지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마후유는 고개를 떨구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 뒤에, 집에 돌아가고 나서... 문득 생각났어. 아, 그러고보니 보여졌구나, 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전이라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을거야.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 들었어. 이런 기분이 든 건 처음이라, 대체 뭔지 모르겠어-"



그제서야 나는 오늘 줄곧 마후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소리 뿐만이 아니다. 스커트를 쥔 손도, 뒤로 넘긴 곱슬거리는 포니테일도, 눈동자도 전부 벌벌 떨리고 있다. 마후유는 나를 의식하고 있다. 두려움, 혹은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스커트를 들어올렸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나도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위험해. 얼굴이 뜨거워졌을지도. 심장 박동도 빨라진 것 같다. 거울이 없어서, 다른 25 멤버나 미쿠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지금 내 얼굴을 보인다면 무심코 비명을 지를 것 같다.



"저기, 에나. 지금 어떤 기분이야?" 마후유는 재차 물으며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온다.



나는 팬티를 바라본다. 평소 무뚝뚝한 그 마후유가 부끄러워하며 내보인 속옷. 다른 25 멤버들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았을 사적인 영역. 이 상황 자체가 너무나도-


"...야해."


 정적.


"-에나낭?"


그 순간,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난 곳을 향해 홱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사람의 발이 세 쌍 서있다. 구두를 신은 발이 두 쌍,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맨 발이 한 쌍. 얼빠진 채 고개를 들어 발의 주인을 확인한다. 미즈키, 미쿠, 그리고 카에데가 멀찌감치에 서서 나와 마후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 오늘은 안 모이는 거 아니였어?!"


"그게, 좋은 MV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불렀는데...설마 두 사람이..."


나는 마후유를 봤다. 마후유는 여전히 스커트를 들어올린 상태다. 즉 미즈키가 보기에 지금 나는 '벌벌 떠는 마후유의 스커트 안에 거의 얼굴을 파묻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리라. 이 사실을 인지하자 갑자기 몸에 돌았던 열이 싹 사라지고 한기로 대체되었다.


"잠, 이건 -"


뒤늦게 변명을 늘어놓으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미즈키는 공교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쿡쿡 웃었다. 아. 며칠 동안 놀림거리가 될 미래가 훤하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설마 설마, 그런 관계였다니, 하는 식으로 골려먹겠지. 그 옆에서는 미쿠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홱 돌리고 있다. 머리가 아파오지만 괜찮다. 미쿠는 착하니까 아마도 설득을 하면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옆이다. 이 두 사람 옆에 선 소녀 - 요이사키 카나데가 지금 반쯤 울법한 표정으로 겨우겨우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거대한 문제다.


카나데는 난생 처음보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세카이에 틀어박혀 머리를 쥐어 싸맸을 때도 저런 표정은 짓지 않았으리라 단언할 수 있다. 그림 학원에 다니던 시절 '절망'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라는 과제를 받았을 적 본 듯한 얼굴이다. 에드바르트 뭉크가 경의를 표할법한 표정이다.



카나데는 그런 표정을 지은채,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아... 두 사람..." 눈을 피하고 마저 말했다.

"그런........응.........몰랐어.......그렇구나............"



아니야, 아니야. 아니지 않지만- 마후유에게 너도 무언가 해명하라는 시선을 던진다. 아무리 둔감한 이 녀석이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


마후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야!" 


........  해명을 마치기까지 꼬박  시간이 걸렸다.


































당분간은 프로세카 글 가끔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