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해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빛을 거두는 동안, 시하와 이올레는 주교가 안내한 자리에 앉아서 영생자를 기다렸다. 주교가 둘을 앉히면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 말을 생각해 보면, 한 두어 마디 정도 말을 나눌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올레는 그간 시하를 지켜보며 가장 궁금하게 느껴졌던 것 한 가지를 확인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당신, 용케도 참은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시하가 입구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케스티가 있을 듯한 방향이어서, 이올레는 역시나 하는 직감을 느끼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시하는 그 웃음을 보더니, 오히려 마음을 놓은 듯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이올레가 가볍게 고른 말이 마음을 다지는 데에 적잖은 용기를 준 모양인지, 표정을 살짝 고치며 답하는 시하의 목소리도 여태까지 들었던 것 중 가장 맑게 느껴졌다.


“꽤나 노골적이었나 보죠?”

“그래. 나랑 동류라는 게 훤히 보일 정도였으니까.”

“동류…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던데.”


시하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자신은 남성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올레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시하도 이올레 일행을 지그시 관찰해 보니, 이올레의 감정은 시하 자신이나 라네비아와는 그 결이 조금 다른 게 분명했다.


“그 라네비아라는 분보다도… 오히려 저기 묶어 놓은 마녀에 더 가까울걸요.”

“그래?”


이올레는 라네비아도 자신처럼 유난히 다른 여자, 특히 크시아에게 진한 호감을 보이던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라네비아는 주변 사람에게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 뿐, 자신처럼 타인에게 먼저 날을 세우는 모습은 별로 본 적이 없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하가 이올레 자신과 동류가 아니라고 받아들인 게 좀 더 자연스럽긴 했다.

그 점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 막 들었을 때, 안쪽 문이 열리면서 기묘한 중압감을 풍기는 세 사람이 들어왔다. 왼쪽에 선 사람은 조금 전에도 시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주교였고, 그 옆에 서 있는 조금 키 큰 인물이 교단에서 말하는 그 ‘영생자’인 듯했다.


“오셨습니까.”

“네, 인사는 거기까지. 손님 앞에서까지 각을 세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알았습니다.”


그 사람은 시하의 인사를 받으면서 자신을 수행한 두 사람을 뒤로 물리고, 혼자서 여유롭게 이올레의 앞으로 걸어왔다. 이올레는 그 당당하기가 짝이 없어 보이는 모습을 보고, 그가 정말로 이 교단에서 숭배하는 ‘영생자’가 맞음을 확신했다.


“반갑습니다, 이올레 싱 성주. 제가 그 영생자입니다.”

“어, 반가워. 벌써 날 알고 있다니,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겠네?”

“그런 셈이죠. 그나저나 당신, 들었던 것보다 더 당돌하군요?”


영생자는 부드럽게 손을 위로 저어, 자신을 이리로 모셔온 두 사람을 물렸다. 이올레가 그에게 건넨 답이 무례하기 이를 데 없다고 판단한 둘이 뭐라 손을 쓸 것 같기에, 굳이 이올레까지 척을 질 필요는 없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이올레 자신도 그가 보인 반응이 어떤 의미인지 금방 알아채고,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표정을 고쳤다.


“당신도 그런 점에서 불만을 느끼는 건가?”

”아니오, 듣던 그대로라서 오히려 마음에 든다는 겁니다.”

“아, 그래…?”


영생자는 이올레가 자신을 대놓고 언짢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빙그레 웃었다. 요 몇십 년 동안에는 거의 느껴보지 못했던, 다른 사람이 자신을 대놓고 내려다보는 경험이 그만큼 즐겁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이올레보다 더 중대한 문제도 있기 때문에, 굳이 ‘운반책의 성질머리’ 따위에 일희일비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나저나 당신과 함께 온 일행 중 몇 분이 저희의 처우에 불만을 품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교단에서는 그걸 ‘마물’이라고 부르면서 엄중히 다루었을 뿐인데, 그게 언짢았던 것이겠지요.”

“그래서, 당신 본인의 생각은 어떤데?”

“글쎄요?”


영생자는 아직 실물을 본 적이 없는 그 ‘마물’에 대해 들은 평판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당장은 할 말이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 눈앞에서 말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고, 이올레도 그런 뜻으로 알아들었다.


“정 할 말이 없으면 가서 보게, 이만 일어날까?”

“그러지요, 슬슬 바깥 공기가 쐬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으십니까?”

“그렇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