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담배 피우고 올게. 솔이 너도 쉬어.”


브레이크 타임.

사람이 없는 한적한 시간에 사장님이 그렇게 말해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해오던 일이라 이제는 익숙한 일이었다.


냉장고에서 손질해야 할 재료만 대충 꺼내놓고 자리에 앉아서 쉰다.

처음에는 먼저 손질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장님은 그 모습을 보고 나를 혼냈다.

제대로 안 쉬면 일할 때 지장이 간다나 뭐라나.

결국 나를 위해서 그렇게 말한 거라 생각하면 고맙긴 하지만.


아무튼 우리 사장님은 정말 상냥한 사장님이다.

다크블루색의 S컬된 단발머리, 머리가 귀 뒤로 살짝 넘겨져 보이는 펄 피어싱.

조금 날카로운 인상에 잘 어울리는 패션에,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잘빠졌다.

관리만 잘하면 어디 잡지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외모.

골초만 아니라면 참 좋을 텐데.


“으으…”


팔다리를 쭉 뻗고 스트레칭한다.

작은 유리창으로 뭉게구름이 하늘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저런 모습을 보면 괜히 나도 담배를 피워보고 싶어진다.


뭐, 저번에 “저도 펴볼래요”라며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가 딱밤을 맞았지만.

여자애는 피면 안 된다니 자기는 남자인 줄 아나 보다.

그리고 이제 대학도 들어갔는데 애라 불러서 짜증 난다.


그때 일을 생각하며 한숨을 푹 쉬니, 사장님이 들어왔다.


“뭐해, 담배 피는 연습?”


“네, 네, 담배 연습합니다.”


“여자애는 피면 안 된다고 했잖아.”


조금 아니꼬운 듯이 대답하자 사장님이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정리하고 온 머리가 엉망이 돼서 싫지만, 장난기 가득한 사장님의 표정을 보면 용서된다.


“그럼 시작할까?”


사장님의 머리를 만지며 복수하고 있자니, 사장님이 그렇게 말해왔다.

나도 손을 다시 씻고 와 손질을 시작한다.


탕탕하는 일정한 속도로 재료를 써는 소리가 식당을 채웠다.

아까까지는 장난스럽던 사장님은 어느새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끔은 말없이 이렇게 작업을 하다 보면 혹시 화났나 싶기도 하다.


“사장님, 오늘은 특별 메뉴 있어요?”


“으응? 아니 재료가 안 와서 없어.”


“이따가 먹고 싶은데 아쉽다.”


“뭐, 다른 거라도 만들어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이렇게 말을 걸어본다.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오면, 아, 사장님이 집중하느라 그랬구나하고 생각하게 된다.


“스튜 되나요?”


“우린 양식집이 아닌데. 뭐, 알았어! 해줄게. 토마토도 괜찮지?”


“네, 좋아요.”


껍질을 다 깐 야채들을 사장님 옆에 가져다주고 밖에 나가 칠판을 수정한다.

‘오늘 특별 메뉴 없음’

동글동글한 글자만 덩그러니 놓여 조금 심심해 보여서, 옆에 일러스트 몇 개를 그리고 들어왔다.


“아, 고쳤어? 고마워.”


“아녜요. 손이 비잖아요.”


사장님 앞쪽의 의자에 앉아 칼질을 바라본다.

아직 재료는 산더미같이 남았지만, 사장님이 칼을 못 쓰게 해서 썰어줄 수는 없었다.

집에서 요리도 자주 하는데 난 언제쯤 칼을 잡아보려나.


“칼은 위험하잖아. 다치면 어쩌려고.”


그런 내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사장님이 씩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또, 또 애 취급이다.

사장님에게 애 취급당하는 건 정말 화가 난다.

꼭 나를 어른으로 인정하게 만들겠어.


그런 내 마음도 모른 채 나를 놀린 게 재밌었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칼질하는 사장님을 몰래 노려본다.

사장님을 노려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얼굴이 풀어졌다.

얼굴만 봐도 행복해지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미 깨닫고 있던 이 감정의 이름은 아마 사랑이겠지.

나는 어느 날부터 사장님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 감정을 깨닫고 한동안은 예쁘게 꾸미고 가게에 왔었다.

그럴 때면 “오늘은 어른스럽게 입고 왔네”, “남친 만나러 가?”같은 애매한 관심만 전해올 뿐.

하아,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수치스러운 기억이다.


“뭐 할 말 있어?”


“느, 네?”


갑작스럽게 사장님이 말을 걸어와서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생각을 들킨 것 같아 괜히 부끄러워져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아니, 아까부터 빤히 쳐다보길래.”


“아, 아뇨! 칼질하는 모습이 예쁘다 싶어서요.”


“그래? 고마워.”


아으…

평소에는 하지 않는 말을 입에 담은 게 기쁜지 사장님은 활짝 웃어줬다.

그 웃음을 보니 가슴 속 깊이 숨겨뒀던 말이 튀어나올 것 같다.


“저, 저 잠깐 화장실 갔다 올게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간다.

조용하고 작은 화장실은 마음을 진정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거울에 비친 나는 여태까지 본 어떤 사람보다 빨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장미에도 지지 않을 것 같은 새빨간 얼굴을 냉수로 식힌다.

뺨을 짝하고 두 번 때리고 심호흡한다.


아직 마감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때까지 단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가 오늘 버틸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사장님이 내게 보여준 웃음이 떠오른다.

곧바로 냉수를 얼굴에 뿌려 그 상상을 날렸다.


오늘따라 내가 이상하다.

무언가 저질러버릴 것 같은 기분.

그 두근거리는 기분에 잠긴 채로 나는 식당으로 돌아갔다.



***



놀랍게도 일을 시작하는 순간 그런 감정은 사라졌다.

내가 성실한 성격인 것도 아니고, 이중인격인 것도 아니다.

그냥 미친 듯이 바빴다.


오픈부터 밀려들어 오는 손님들에 머릿속은 주문표로 가득 찼다.

우리들 사이에 오가는 말은 주문과 테이블 이름뿐.

그래도 바쁜 덕분에 재료가 빨리 소진되어 마감은 빨리하게 되었으니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 무슨 날이야? 왜 이렇게 많이 와.”


“물어보니까 근처 학교에서 축제를 해서 사람들이 많이 왔나 봐요.”


“어쩐지.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나 담배 피우러 갈게. 오늘 힘들었으니까 먼저 퇴근해.”


“마감할 거 많잖아요. 혼자서 괜찮겠어요?”


“음… 시간도 많고, 담배도 한 대론 안될 거 같아서.”


사장님은 그렇게 말하며 새 담뱃갑을 꺼내 흔들었다.

힘들다는 말과는 달리 줄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안달이 난 듯한 표정이었다.

사장님이 먼저 담배를 피우러 나가고, 나는 티슈랑 수저만 채우고 밖으로 나섰다.

어둑어둑해진 골목에서 빛나는 붉은 불이 사장님의 위치를 간단히 알려줬다.


“사장님, 저 갈게요?”


“어, 뭐, 하고 왔어?”


“네, 그냥 티슈랑 수저 정도만 채웠어요.”


“오, 땡큐.”


그렇게 말하며 사장님은 담배를 바닥에 떨구고 새로운 담배를 꺼냈다.

바닥에는 이미 꽁초가 2개 있었다.


“사장님, 담배 좀 줄이세요.”


그 꽁초를 주우면서 툭 던지듯이 말했다.

사장님은 “그러고 싶은데 잘 안되네”라고 말하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에 머금었다.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그걸 보고 조금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보고 맨날 애 같다고 놀리는 사장님은 정작 담배 하나도 못 끊는다.

그리고 평소에 시시대고 장난치는 것도 내가 아니라 사장님이잖아.


사장님이 다시 담배를 입에 머금었다.

어떻게든 그 연기를 뱉게 하고 싶어져 사장님에게 달려들어 입을 맞췄다.

그대로 숨을 들이마셔서 연기를 빼낸다.


“켈록… 켈록…”


목이 뜨겁고 매캐한 느낌이 들어 곧바로 입을 떼고 기침했다.

입에서 하얀 연기가 나오는 모습도 이상해서 다시는 입에 넣지 않고 싶었다.


“소, 솔아! 괜찮아?”


자기 입을 뺏긴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나를 먼저 챙겨와서 분했다.

마치 아이한테 뽀뽀 받은 어른 같은 태도.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달려들어 입을 맞췄다.


어른스러운 키스를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영화에서 본 것처럼 입술을 물며 빨았다.

몸을 뻣뻣하게 경직시키고 내게 키스를 당하던 사장님이 같이 입술을 빨아줬다.


입술을 빨릴 뿐인데 찌릿한 기분이 들어 다리가 떨린다.

사장님은 그런 내가 넘어질까 등을 잡아줬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입을 맞추다 천천히 떨어졌다.

어느새 사장님이 들고 있던 담배는 짧아져 있었다.

사장님은 그걸 바닥에 떨어트리고 밟아서 불을 껐다.


“저, 저도 어른이에요.”


뭐라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말을 아무거나 꺼냈다.

사장님은 말없이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다.


“담배 피면 또 뺏어 먹을 거에요!”


“알았어, 안 필게.”


내 외침을 듣고 사장님은 담배를 다시 담뱃갑에 집어넣었다.

그 뒤로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정적이 계속됐다.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었는데, 서로 타이밍이 겹쳐 우리는 다시 입을 닫았다.


“저 사장님이 담배 피는 거 싫어요.”


“응, 그래 보이네.”


내가 먼저 저지른 일이니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아니지만 내가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한 말이었다.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들어주었다.


“솔이가 어느새 어른이 다 됐네.”


다음은 사장님의 차례.

위에서 내려보는 듯한 말투에 조금 화가 났다.


“어른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알아?”


“그, 그야 당연하죠. 이제 애가 아니니까요.”


“책임 져줄 거야?”


사장님이 조금 장난스럽게 웃으며 하지만 진지한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처음 보는 진지한 눈에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크게 소리쳤다.


“저 사장님 좋아해요!”


사장님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나를 꼭 안아줬다.

조금 담배 냄새가 나는 그 품속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내 목에 들어왔던 매캐한 연기보다 뜨거운 이 감정은 아마 아이에게 향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으리라.

그야 사장님이 이제는 내가 애가 아니라며 계속 중얼거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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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밥을 살짝 덜 깐 거 같아서 아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