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헤라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정신병자가 나와요, 자해도 해요.

싫으면 뒤로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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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진 돌이 수면에 닿아 통통 튕긴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순서대로 생겨난 파형이 서로 부딪혀 깨지고 사라진다.


다섯 번 튕기면 집에 가기로 했으니 주변에서 적당한 돌을 하나 더 찾아본다.

딱히 누구한테 명령받은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다.

참고로 지금까지 내 최대 기록은 네 번이다.

그 기록도 어제 세운 거지만.


적당히 평평한 돌을 찾아 다시 던지려는데 갑자기 통통 돌이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번…

누가 던진 건지 궁금해 옆을 보자 우리 반 반장 승아가 있었다.


“안녕, 민채야. 물수제비하고 있었어?”


예쁘장하게 생겨서 착한 척하려는 건지 학교에서도 자꾸 말을 걸어와서 무서웠다.

그런데 이런 곳까지 따라와서 말을 걸다니.


손에 들고 있던 돌을 툭 바닥에 던지고 그녀를 무시한 채, 집을 향해 뛰었다.

보기만 한 거지만 다섯 번도 채웠으니까.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걸리는지 뒤에서 뭐라, 뭐라 소리쳐댔지만,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듣지 않았다.

해는 모습을 감추고 붉었던 하늘은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색을 없애버린 하늘이 너무 싫어서, 지붕 아래로 들어간다.


“다녀왔습니다.”


당연히 대답은 없다.

그렇다고 집에 아무도 없는 게 아니다.

부엌에서는 달그락달그락하는 생활음이 분명히 들리고 있고, 거실에서는 TV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말소리는 없다.


싸우고, 때리고, 괴롭히고, 뒷담하고, 다시 싸우고.

우리 집에 계속 내려오던 그 굴레는 이런 단절로 완전히 끊어졌다.


밥도, 잠도, 취미도, 여행도 우리는 공유하지 않는다.

나는 부모를 씨를 붙여 부르고, 그들도 나를 부를 때 씨를 붙인다.

그런 상황이 되고서야 나는 집이라는 장소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외도였던가, 어머니의 외도였던가, 나의 비행이었던가.

각각이 얽히고 섥혀 서로의 이유가 되었고 다른 이유를 만들어냈다.

그래도 이제는 별 상관없다, 그저 남일 뿐이니까.


방에 들어가서 옷을 걸었다.

이런 일도 하기 싫었지만, 셔츠와 치마가 구겨지면 학교에서도 괴롭다는 걸 중학교 때 배웠다.

학교에서만큼은 평범하게 있고 싶어.


배가 조금 고파 가스버너에 불을 켰다.

부엌에 가기도 싫은 나는 끼니도 방에서 해결했다.


틱, 틱 소리만 나는 버너는 아무래도 가스가 다 닳은 모양이었다.

부엌에 가스가 쌓여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가고 싶지 않다.

오늘은 굶고 내일 아침 아무도 없을 때 몇 개 올려두자.


한 손에만 끼고 있는 손목 장갑을 벗었다.

처음에는 애들이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손목이 아프다는 핑계는 나름 잘 먹혔는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에 녹아들었다.


장갑 안쪽의 붕대를 풀자 검은 선들이 수십 개가 그어져 있었다.

서랍에서 커터 칼을 꺼내 조심스럽게 그어본다.


바람이 통하는 시원하고 상쾌한 감촉, 그리고 뒤늦게 찾아오는 쓰라림.

내가 사랑하는 색의 피와 질긴 동맥의 감촉이 기분 좋다.


뭐, 자를 생각은 없다.

죽어봤자 쟤네들은 신나서 춤을 출 테니까.


팔뚝을 따라 흐르던 피가 팔꿈치에서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따듯함과 소리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칼을 내려놓고 반대 손으로 쭉 짜내 피를 왈칵 쏟아봤다.

머리가 어지럽고 손이 덜덜 떨려서 기분 좋다.

이 상태가 되면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계속했던 물수제비의 감각이 모두 사라진다.

매일같이 초기화되는 감각에 물수제비는 언제나 재밌다.


슬슬 많이 어지러워져서 잠을 조금 자기로 했다.

적갈색의 얼룩이 얼룩덜룩 묻어있는 침대 위에 몸을 올린다.


아, 내일까지 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그래도 내일 애들한테 보여달라고 하면 되니까.

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


어지러움은 더욱 커지고 눈앞이 깜빡인다.

이제 슬슬 잠들 시간이구나.

잘자, 모두들.



***



“흐아…!”


새들이 지저귀는 아침.

기지개를 크게 키며 일어났다.

손목에 붕대를 감고 손목 장갑을 낀다.


어제 밥을 못 먹어서 그런지 아직도 머리가 어지럽다.

아, 저번에 냉장고에 시금치가 있던데 그거를 먹고 철분을 보충해야겠다.


아무도 없는 집안을 뛰어 냉장고를 열어본다.

다행히 아직 시금치가 한 단 남아있었다.

달콤한 시금치는 정말 좋다.


등교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으니, 시금치를 물에 데쳐 간장에 버무리고 즉석밥을 데워서 아침을 먹었다.

시금치뿐인 식사지만 꽤 맛있었다.


밥을 먹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빠르게 설거지를 하고 내가 밥을 먹었다는 흔적을 없앤다.

교복으로 갈아입고 학교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상쾌한 공기, 조금씩 아파져 오는 다리가 기분 좋다.

오늘도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내자.


“민채! 어제 왜 도망갔어?”


“미, 미안. 갑자기 일이 생각나서.”


“맨날 일, 일. 누가 보면 사업가인 줄 알겠어.”


“미안해…”


교실에서 승아가 어제 일을 캐물었다.

이렇게 몰아치면 사과밖에 못 하겠다.

옆에서 다른 애들이 말려줘서 겨우 소란이 진정됐다.


안 들킬 정도로 연한 염색, 규정에 딱 맞는 짧은 치마.

애매하게 착한 아이인 승아는 항상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게 격해지면 조금 약한 아이 같은 나를 지켜주기 위해 다른 애들이 도와준다.


이 루틴은 우리 교실의 커뮤니케이션 중 하나로 완전히 녹아있었다.

어쩐지 반의 중심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오늘도 물수제비 하러 갈 거야?”


“응…”


“좋아! 오늘은 내가 알려줄게! 어제 봤지, 나 잘 던지는 거.”


“응, 알았어…”


어차피 안 된다고 해도 올 거니까 그렇게 말하는 건 내 손해다.

그래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평범하게 만드니까.



***



평범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승아와 함께 어제의 그 강가로 향했다.

다른 애들은 다들 할 일이 있다며 거절해서 우리 둘뿐이었다.


“봐봐. 이렇게 평평한 돌을 수평으로 만들어서 손목으로!”


통, 통, 통, 통, 통, 통.


“아싸! 6번!”


확실히 승아는 물수제비를 잘했다.

나도 그 포즈를 따라서 던져봤지만 4번 튕겼다.


“스, 승아는 어쩌다 물수제비 시작했어?”


옆에서 계속 물수제비를 하는 승아에게 궁금한 걸 물어봤다.

혹시 나처럼 안 좋은 계기로 시작한 건 아닐까 걱정된다.


“응? 우리 오빠가 좋아하거든. 어렸을 때, 따라다니면서 하다 보니까 잘하게 됐어.”


아, 다행이다.

그런 어두운 이유는 아닌 듯했다.


“그리고 민채가 하는 걸 보니까 나도 하고 싶어져서 간만에 해봤지. 안 녹슬었네.”


“내, 내가 하는 거 봤어?”


“응. 맨날 여기서 했잖아.”


“매, 맨날 본 거야…?”


“응. 말 걸까 싶었는데 열심히 하길래 그냥 멀리서 보기만 했지.”


왜 맨날 나를 따라다니면서 구경한 거지?

나 승아한테 뭔가 나쁜 짓 했나…?

머릿속에서 학교에서의 일을 생각해보지만 생각나는 게 없다.


“미, 미안…”


그럴 때는 일단 사과하는 게 상책이다.

먼저 사과하면 대부분 용서해주고, 어떤 일인지 알려주니까.


“응? 아, 아냐! 민채는 잘못한 거 없어.”


“어…?”


승아는 손사래를 치더니 고개를 들어 붉은 노을을 바라봤다.

옅은 염색이 노을빛을 받아 붉은빛을 띠었다.

승아의 얼굴은 그 빛에 지지 않을 정도로 붉었다.


“나, 사실 너 좋아하는데.”


“으, 응?”


내가 잘못 들은 걸까?

부모도 버린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걸.


“나 너 좋아한다고.”


그런 의심을 승아는 또박또박 날려주었다.

학교에서는 본 적 없는 부끄러운 듯한 미소.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가득한 그녀를 내가 싫어할, 아니 좋아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지, 진짜로? 고백하는 벌칙이라던가 그런 거 아냐?”


“응? 그런 벌칙이 있어?”


“읏… 흐윽…”


순수하게 나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내게도 흘러 들어왔다.

나도 감정을 빼내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눈물이 흘러 나와서 두 눈을 가렸다.

“어? 왜, 왜 그래? 싫었어?”하며 소란스럽게 떠드는 승아에게 나는 고개를 저으며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은 어느새 보랏빛이 되어서 밖에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옆에는 붉은 그녀가 있으니까 그 옆이라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나, 나도 너 좋아.”


그 말을 들은 승아는 눈물 맺힌 눈으로 활짝 웃으며 나를 껴안아 줬다.

몇 년 만에 느낀 따듯함에 가슴속의 응어리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



승아와 밝게 인사하고 집으로 향했다.

언제나 기분 나쁘던 귀갓길은 조금 가벼웠다.

내가 사랑하는 색이 눈앞에 아직도 어른거렸으니까.


“엄마, 아빠, 다녀왔습니다~”


내 기분을 자랑하고 싶어서 신나게 외쳤다.

부엌과 거실에서 “읏”하는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내 방에 올라가 옷을 건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승아한테서 메시지가 와있었다.


[내일도 물수제비 할래?]


[응, 좋아! 내일도 둘이서만!]


[OK!]


연락만 주고받아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버틸 수가 없다.

행복한 기분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 가스버너에 불을 켰다.


틱, 틱.


아, 맞다. 아침에 가스를 안 가져왔네.

지금이라면 부엌 정도는 간단히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문을 열었다.

문에 무언가 걸리는 달그락하는 소리.


문 뒤에는 카레가 한 접시 놓여있었다.

카레를 어렸을 때 굉장히 좋아했었던 것 같다.


방에 들고 가서 한 입 먹어보니 그때의 그 맛이 났다.

몸을 따듯하게 데워주는 승아가 내게 준 사랑과 같은 맛.


그 맛을 느끼며 다짐했다.

정말 오랜만에 잘 먹었다고 인사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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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글이 쓰고 싶네 -> 이 글 나옴 ???


암튼 내일은 다음이야기를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