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미하리의 이상은 잠깐 살갗이 밀착했던 크시아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애초에 자신이 초래한 일인 만큼 당연했다.


“저, 괜찮으신가요?”


마치 은으로 빚은 방울이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미하리의 머릿속을 울렸다. 자신을 유혹하던 사람이 그런 말을 꺼낸 셈이라 미하리의 눈이 번쩍 뜨였는데, 애초에 저쪽에서 그런 위화감을 느끼고 정신을 차리기를 의도한 것 같았다.


“아, 네. 그런데 혹시…”


정말로 그 점이 의문스러웠기 때문에, 미하리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혹시…요?”

“당신, 그걸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없는가 보죠?”


그리고 미하리의 입에서 맺어진 말은 곧바로 그 의문의 핵심을 찌르며 둘의 머릿속과 가슴을 파고들었다. 애초에 크시아가 굳이 머나먼 동쪽으로 기약 없는 여행에 나선 것도 그것으로부터 도망칠 곳을 찾기 위해서였던 탓에, 그 말을 낯선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차분하게 꺼내는 광경을 마주하니 그렇게 마음이 놓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곡을 찔려버린 크시아의 눈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자, 미하리의 손이 느리게 그쪽으로 향했다. 그 동작이 무슨 의미인지, 크시아가 거기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생각해내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걸 당신이 직접 마련해야 했을 정도로 말이에요.”

“그, 그렇죠…”

“역시, 그랬군요. 아무튼, 저희 교단의 방침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당신이 아무런 조치 없이 아무 데나 돌아다니는 게 위험하다는 건 사실이니까, 나중에 다시…”


미하리는 천천히 말끝을 끌면서, 방금 자신이 풀어서 내려놓은 사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볼일이 끝나면 다시 저것으로 크시아를 구속해야 한다는 몸짓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입을 열어 그것을 말해주기도 했기에, 두 사람 모두 그 의미를 잊어버리지 않고 다음 대화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화제를 꺼낸 것은 어느 새 다시 눈에 색기가 차오른 미하리였다.


“어쨌거나 영생자께서 당신을 긍정하시는 것 같으니, 저도 그래볼까 해요.”
“그거…”


크시아의 뇌리에 잠깐 ‘고맙다’는 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말은 단순히 스쳐가기만 했을 뿐 입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따로 남겨진 라네비아나 이올레 일행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미하리가 눈의 생기가 흐려진 채 손으로 자신의 몸을 가만히 훑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그게 제정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하는 짓이라는 게 크시아를 질색하게 했다. 영생자가 ‘삶과 죽음에 걸쳐져 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긍정한다면, 미하리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주변을 유혹하는 요물’ 쪽에 주목한 듯했다.


“이, 이런 뜻으로 하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분은 그러셨겠죠. 하지만 정말로 모든 걸 긍정한다면, 이런 것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요?”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크시아의 항변이 미하리의 손가락에 막혔다. 한 손을 올려 손가락을 직접 입에 밀어붙이기도 했지만, 다른 손이 옆구리를 타고 올라가며 손톱이 옷과 가슴 살결 사이로 파고들기 시작한 것의 충격이 더 컸다.


“쉿.”


그런 데다가 방금 입을 막은 손으로 가만히 자신의 입을 막으며 낸 소리 때문에, 더 크게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읏?”

“쉬잇. 저기.”

“아, 앗…”


하필 딱 그 시점에 다른 사제 두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미하리는 허둥지둥 몸가짐을 가다듬고, 자신을 의아하게 쳐다보는 두 사제를 맞이했다.


“미하리 님?”

“아, 괜찮습니다. 보다시피 겉모양은 보통 사람이라, 생리현상 같은 걸 해결하게 해줘야 해서 잠깐 풀어준 거예요.”

“뭐, 그럴 필요는 있겠죠.”


다행히 두 사제도 미하리의 설명을 이해해주었다. 물론 그것은 ‘요물을 묶은 사슬을 풀어준 이유’를 이해한 것이지, 미하리 사제가 크시아의 몸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은 포함하지 않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그 괴물이랑 너무 가깝게 붙어 있으셨던 것 아닙니까?”

“제어장치는 제대로 사용하고 있으니까 문제 없지 않나요?”


당연히 그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지만, 미하리는 능숙하게 그 말을 흘려보냈다.


“그렇긴 합니다만, 방금은 그 욕정에 잡아먹히신 줄 알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 두 사제가 보인 반응이 미적지근한 것도 크시아에게는 제법 신선하게 비쳤다.  미하리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가 아니면 이 영원교단이 크시아가 몸담고 있었던 곳처럼 여자끼리의 교제가 있을 법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건지, 미하리 사제의 행실이나 취향이 꽤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괜찮았다니까요. 아무튼,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습니까?”

“어, 그 이올레 성주의 일로 영생자께서 두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주 일로요?”

“저, 저도요?”


두 사람이 동시에 되묻자, 사제들은 자기들끼리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각각 한 명씩 정해 답을 건넸다.


“예. 용건 한 가지만 더 치른 다음에 돌려보내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 영생자께서 직접 너에게 손을 쓰시겠다고도 하시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