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서두도 없이 용건만을 말하는 침략자는 볼 것도 없이, 하지만 구태여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확인하면 그곳에 서있던 건 당연히 나의 반신.

"하아⋯. 언니, 내가 항상 말했지. 노크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문을 살살 열라는 게 그렇게 어려워?"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는 나에게, 미안함 같은 건 전혀 느끼지 않는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다가오는 언니.

"그치만~. 큰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네가 뭔가 그⋯, 고양이 같아서 귀여워서."

"그치만은 무슨 얼어 죽을 그치만이야. 언니의 한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매번 놀라는 내 입장도 좀 돼 봐."


두근두근이 아니라,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갔다.

이런 대화도 벌써 몇 번째일까, 외모 말고는 나와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나의 반신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이런 짓을 계속하겠지.

결국은 내가 익숙해지는 것 이외에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점프 스케어에는 십수 년을 계속 당해도 익숙해질 수가 없다.

"하아아아⋯⋯. 그래서, 이번엔 또 뭐야? 게임이랬나?"

일부러 과장될 정도로 고개를 떨구며 커다란 한숨을 쉬고, 언니의 손에 들려있는 묘하게 컬러풀한 패키지를 보며 말했다.

언니에게 할 잔소리는 수도 없고, 지금 당장 언니의 무릎을 꿇리고 혼내기 시작한다고 해도 아마 점심조차 건너뛰고 저녁 시간은 돼서야 끝나겠지.

그리고 그 결과, 언니는 내 말을 자체적으로 노이즈캔슬링하여 결국 내 목만 아파지는 것으로 끝난다.

이것은 예상이 아닌, 지금까지의 경험이 가져다주는 확신.


그렇기에 나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언니의 이야기에 타 준 것이다.

"그래, 게임! 요 며칠 진행하면서 대부분의 엔딩은 봤는데, 이번엔 네 도움을 좀 받고 싶어서~!"

대부분의 엔딩이라는 건, 아마도 멀티엔딩이 탑재돼 있는 게임인 걸까.

나는 게임을 취미로 두진 않았지만, 어릴 적부터 수많은 게임을 해 온 언니 덕분에 그럭저럭 용어들에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내 도움이 필요한 게임이라는 건 대체 뭘까. 멀티 플레이라도 필요한 걸까? 그렇다기엔 '대부분의 엔딩을 봤다'라는 말이 모순되는 느낌인데.

"도움? 게임에 관해서 내가 언니를 도울 만한 일이 있어?"

"그럼~! 자, 이거 봐봐! 귀엽지!"

언니는 계속 손에 들고 있던 패키지를 나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그 패키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흔히 말하는 '미소녀'들.


"뭐⋯, 예쁘긴 한데, 이게 뭐 어쨌다고?"

하지만 패키지에 그려져 있는 미소녀들과, 나의 의문점에 대한 인과관계는 전무하다.

싱글거리며 나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언니에게 대충 대답하며 질문을 이었다.

"이게 말이야, 미연시라고 하는 건데. 아, 미연시 알아?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

"단어 자체는 들어 본 적 있어."

"응응, 그럼 '히로인'은 알아?"

마치 어린아이에게 받아쓰기를 시키듯이 설명하는 언니에게 나는 조금 발끈했다.

"알아. 주인공의 연애 대상이잖아."

말하자면 연애 시뮬레이션에 있어서의 핵심. 공략 가능한 캐릭터, 라는 인식으로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호호오, 잘 알고 있네! 아무튼 얘기를 계속하자면, 대부분의 엔딩을 봤다고 했잖아? 거기서 너한테 도움을 받고 싶다는 건 마지막으로 한 명 남은 히로인의 공략이야!"

과연, 이치는 맞는다.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건 대체로 텍스트로 진행되는⋯ 말하자면 내가 즐겨보는 소설들과 큰 차이없는 장르니까.

어떤 선택지가 나왔을 때 나의 의견을 묻는 정도라면 뭐,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언니는 가장 큰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나⋯ 연애 해 본 적 없는데?"

그것은 내가 모태솔로라는 것. 그런 연애력 0의 인간의 의견을 듣는다고 해서 뭔가 도움이 되는 걸까.

하지만 그걸 말한다면 모태솔로인 건 언니도 마찬가지. 지금까지 히로인들을 어떻게 공략했는지는 몰라도, 연애 경험 0인 나와 연애 경험 0인 언니를 합쳐봐야 멀쩡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건 불 보듯 뻔하다.

돌고래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대봐야 상대성이론이 떠오를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그런 걱정은 추호도 신경 쓰지 않는 목소리로 언니는 말했다.

"흐흥, 사실 마지막으로 남은 히로인은 쌍둥이 여동생이거든! 그러니까, 현역 쌍둥이 여동생인 네 의견을 들으면 한 방에 공략할 수 있지 않겠어? Q.E.D!"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았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대체."

캐릭터로서의 동생의 마음을 현실의 나한테 물어봐도 곤란하다. 내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잖아.


그런 나의 마음속 불평이 전해질 리도 없고, 언니에게 손을 붙잡혀 나는 언니의 방으로 끌려갔다.

몇 가지 있는 게임기 중 하나에 게임팩을 꽂고 패드를 쥐어 들고는 모니터를 침대 쪽으로 향하게 하여 언니는 침대에 앉아 벽에 몸을 기댔다.

반쯤 억지로 끌려온 나는 한숨을 쉬고 싶은 것을 참으며 언니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 언니에게 몸을 기대듯이 앉았다. 그러자 언니는 나를 껴안듯이 팔을 움직이더니 내 배 앞쪽에서 양손으로 패드를 쥐었다.

"흐흐흥~, 역시 넌 따듯하네. 껴안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

"사람을 난방기구 취급하지 마."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언니의 가슴팍에 머리를 묻고 모니터를 쳐다봤다.

이 자세가 우리들의 기본자세 같은 것. 어릴 적부터 이 자리를 강요당해 온 나는, 언제부턴가 언니가 시키지 않아도 자동으로 이렇게 앉게 됐다.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가스라이팅? 아니지, 이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한 말이었던 것 같은데.

무슨 개⋯였던 것 같은데. 파트라슈의 개⋯? ⋯⋯뭔가 틀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언니에게 기습 상식 문제. 반복 학습을 통해 특정 행위에 특정한 반응을 나타내는 현상을 뭐라고 할까요."

"어? 응? 파블로프의 개 말하는 거야? 뭐야, 갑자기?"

"아, 맞아. 그런 이름이었구나."

언니의 대답을 듣고 확실히 떠오른 나는 가슴이 뻥 뚫린듯한 시원함을 느꼈다. 후후, 떠오르지 않던 게 확 떠오를 때는 묘하게 기분이 좋단 말이야.

그런데 파블로프의 개도 꽤나 부정적이지 않았었나? 개의 턱에 구멍을 뚫어서 실험했다거나 어쨌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가스라이팅과 비교했을 때 어느게 나은 걸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 어느새 로딩이 끝나고 제법 수려한 그림이 화면에 나오며 게임이 시작됐다.


[언니, 일어나! 지각할 거야! 빨리이~!]


상당히 귀여운 목소리로 주인공을 깨우는 이 아이가 언니가 말했던 쌍둥이 동생인 걸까?

난 이 시점에서 확신했다. 나, 전혀 도움 안 되잖아.

"언니, 큰일이야. 빠르게도 내 존재가 쓸모없음을 깨달아버렸어."

"어!? 갑자기 왜 그래?"

내가 고개를 올려 아래에서 언니를 올려다보며 말하자, 언니는 텍스트를 넘기던 손을 멈추고 당황한 듯이 말했다.

"아니, 봐봐. 평소에 학교 갈 땐 언니가 날 깨워주잖아. 늦잠을 자는 건 아니지만⋯ 저 애랑 나는 아침의 시작부터가 너무 달라."

"에이, 뭐야. 놀라게 하고 있어. 괜찮아!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고 네 의견을 말해주면 되니까!"

나의 말을 그렇게 헤실거리며 부정한 언니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나도 그저 내 의견을 가감 없이 말해주도록 하자.


⋯⋯⋯.

⋯⋯.

⋯.


[언니, 늦었네? 이런 시간까지⋯ 누구랑 있었어?]


"자, 드디어 차례야! 여기선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부활동이 늦게 끝나서⋯

-oo이랑 있었어

-학교에 숙제 거리를 깜빡하고 와서 다시 갔다 오느라⋯


화면에는 세 개의 선택지가 표시됐다.

"으응⋯, 두 번째 고르면 되지 않아? 실제로 조금 전까지 그 애랑 있었으니까."

언니는 내 말을 듣자마자 두 번째 선택지를 골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애초에 이런 선택지가 있는 의미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평소에 언니랑 같이 하교하고, 설령 따로 하교해서 언니가 조금 늦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언니는 늦을 것 같다며 나에게 연락을 준다.

애초에 이런 질문에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나? 늦은 게 언니가 아니라 나였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걱정돼서 하는 질문에 뭐 하러 거짓말로 대답할 필요가 있는 걸까.


[헤에, 흐응⋯. 그렇구나⋯⋯.]


하지만 내 대답은 틀렸던 걸까. [동생]은 명확하게 '나 기분 나빠요'라는 듯 목소리를 깔며 대답했다.

"어라라, 이거 안 좋은 선택지를 고른 모양인데~?"

"⋯⋯납득되지 않아."

[동생]의 반응에 묘한 불편함을 느껴, 나는 뒤통수를 언니의 가슴에 비볐다. 그러자 언니는 한 손으로 텍스트를 넘기며, 다른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푸훗⋯.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나의 그런 모습이 웃겼는지, 언니는 웃으며 나를 위로했다.

흥, 언니 주제에⋯.


⋯⋯⋯.

⋯⋯.

⋯.


[⋯언니 같은 건 몰라. 내버려둬.]


-쫓아간다

-기다린다


[동생]은 [언니]와 말다툼을 하다 집에서 뛰쳐나갔다.


"이번엔 뭘 고를까~? 제대로 골라줘~. 지금까지 절반 이상이 실패였으니까!"

언니는 놀리듯이 내 뺨을 콕콕 찌르며 말했다.

나라고 실패하고 싶어서 한 줄 알아? 잘못이 있다면 내 의견을 곧이곧대로 전부 받아들이고 있는 언니가 잘못이야.

"⋯내버려두라고 말했으니까 기다리면 되겠지. 혼자서 머리 식히고 생각 좀 정리하면 진정되지 않겠어?"

"푸후후."

뭐가 그렇게 웃겨서 바람 빠지는 풍선 같은 소리를 내면서 웃는 거야, 기분 나쁘게시리.

"앗, 미안미안~! 그렇게 삐지지 마~!"

안 삐졌어. 조금 발끈했을 뿐이야. 것보다 내 표정 읽지 말고 게임에 집중해.

"⋯흥."


⋯⋯⋯.

⋯⋯.

⋯.


그렇게 게임을 진행하고 약 세 시간, 하늘 높이 떠 있던 해가 조금씩 기울어 살짝 배가 출출해질 무렵.

화면에는 개 목줄, 수갑, 족쇄를 한 [언니]와 그걸 내려다보는 [동생], 그리고 BAD END라는 글자가 표시되고 있었다.

"⋯납득이 안 돼."

"그야 그렇게 질투심 유발하는 선택지만 고르면 어쩔 수 없지~?"

"질투를 느낄 요소가 어디에 있었다고 그래. 오히려 언니가 친구랑 노는데 일일이 끼어들어서 방해하려는 동생이 이상하지."

결국 나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동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언니가 나보다 훨씬 더 캐릭터를 이해한 느낌이 들어서 뭔가, 뭔가 분하다.


"헤~. 그럼 내가 친구랑 둘이서 놀러 가도 괜찮은 거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나에게, 언니는 마치 장난감을 찾아낸 어린아이처럼⋯ 아니, 어린아이라기엔 조금 게슴츠레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당연히 괜찮지. 날 저 집착병 환자랑 겹쳐보지 마."

나는 가슴 속에서 솟구쳐 올라오려 하는 묘한 짜증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언니는 날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흐응, 그럼⋯ 외박하거나 둘이서 여행 갔다 오는 것도 괜찮아? 이야, 사실 요전부터 같이 여행 가자고 꼬셔지고는 있었는데~."

"그건⋯⋯! 그⋯ 그건, 안 돼."

무심코 언니의 품 안에서 뛰쳐나와 소리를 올렸다가, 내가 왜 이런 반응을 했는지도 알 수 없어 답답하고, 갑자기 큰 소리를 내버린 것이 묘하게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어라아, 왜 안 되는 거야? 문제라도 있어~?"

그런 나를 보고 언니는 내 턱을 잡아 올려 눈을 맞추고는, 초승달처럼 호를 그리는 입을 열어 말했다.

"으⋯ 몰라, 그런 거! 아무튼 안 돼!"

이런 걸 적반하장이라고 하는 거겠지. 괜히 성질을 부리며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안 된다고만 하는 나를 보며 언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 집은 딱히 통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한테도 제대로 설명만 한다면 아마도 외박, 여행의 허가 정도는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뭔가, 싫어.

"아차⋯. 미안미안. 너무 놀렸네. 그렇게 화내지 마."


제 분에 못이긴 걸까, 어느샌가 살짝 고여있던 눈믈을 언니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주고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언니는 너 두고 어디에도 안 갈 거니까. 알았지? 애초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함께였는데, 이제 와서 어디 갈 리가 없잖아!"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웃는 나의 반신은, 그저 그 상냥함으로 주위를 농락했던 [언니]와 좀 닮은 것 같다고, 그런 되지도 않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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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내 최고의 커플은 아직도 그꽃잎의 레오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