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소성(買肖城) 전투는 기벌포 전투와 함께 나당전쟁이 신라의 승리로 끝날 수 있도록 한 결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기록에 따라 최소 4만에서 최대 20만명의 당군이 주둔하였고 신라군이 이를 깨트리기 위해 공략한 것은 이곳이 나당전쟁의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당초에 매성현(買省縣)과 매소성(買肖城)의 한국식 한자음이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며 매소성은 양주 대모산성이라는 설이 유력시 됐었으나; 1984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실측조사에서 매소성의 위치가 연천 대전리 산성으로 뒤집혔고 지금까지 정설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정설이 뒤집힌 근거로는 양주 대모산성이 나당전쟁의 주 전장이었던 임진강에서 20km 이상 남쪽에 위치하여 있다는 점과, 1984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연천 대전리 산성 실측조사에서 신라식 산성 유적과 지리적 조건이 나당전쟁 때의 병력 이동에 부합한다는 점이 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부정하고 매소성이 양주 대모산성임을 강력히 의심하고 있으며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경기 양주의 옛 지명인 매성(買省)과 매소(買肖)가 고대 한국어로 재구되는 음이 같다는 것입니다. 상고한어 벡스터-사가르 재구로 省은 seŋʔ, 肖는 sew로 같은 se 음가를 공유하고 있으며, 제가 앞서 쓴 글에 언급했던 바(링크: 양주의 옛 지명은 말의 땅이라는 뜻)와 같이 경기도 양주의 옛 지명인 매성현(買省縣)의 買省은 말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고대한국어 morese로 재구가 가능한데, 매소성(買肖城)의 買肖 역시 동일한 발음일 가능성이 다분한 고대한국어 morVse로 재구되며 두 명칭은 같은 고대 한국어 발음을 다른 글자로 표기한 사례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한편 매소성 전투 전후를 다루는 675년 9월 기사들에서 당군과 신라군이 칠중성(七重城), 석현성(石峴城)등에서 공방을 보이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 또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칠중성(七重城) 전투가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매소성(買肖城) 전투가 일어난 것은 675년(신라 문무왕 15년) 9월 29일인데, 비슷한 시기인 675년 2월과 9월에 칠중성에서 나당전쟁의 큰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675년 2월에 당의 유인궤가 신라의 칠중성(七重城)을 쳐서 깨트렸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는데, 칠중(七重)이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향문천님이 파주 적성에서 수집되는 전래지명 '늘무기'가 '닐굽=七'+'무겋+重'으로 대응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파주 적성을 가르키는 고유어 지명임을 밝힌 바(링크: (향문천) 지명붕괴-전래지명 소멸의 길) 있습니다.


675년 2월에 적성에서 당군이 신라군을 깨트렸으므로 7개월 뒤인 9월에 적성에서 걸어서 8시간, 자전거로 2시간이면 가는 양주 대모산성에 당군이 진주했던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될 수 없으며 임진강변이 주 전장이므로 연천에 매소성이 있어야 한다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675년 9월의 석현성(石峴城) 전투 기사는 이 일대에서 당과 신라의 공방이 이루어졌다는 확신을 더해줍니다. 이 기사는 당군이 신라의 석현성(石峴城)을 빼앗았다고 전하는데, 석현이라는 지명은 양주 대성산성으로부터 불과 서남쪽으로 6km 떨어진 장흥면 석현리(石峴里)에 그대로 남아있고 이는 해당 지역에서 내려오는 전래 지명 '돌고개'를 한자로 옮긴 것입니다. 석현(石峴)이라는 지명은 전국적으로 몇 곳에서 중복하여 발견되나 한강과 임진강변 사이에 있는 석현은 이곳이 유일하며, 당나라의 석현성 공략은 경기 양주 일대에서 나당전쟁의 공방이 벌어진 정황을 잘 보여줍니다. 대모산성에서 석현리까지의 거리 역시 걸어서 5시간, 자전거로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로 매우 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양주 대모산성이 나당전쟁 시기에 신라군이 주둔했음이 명백한 신라식 석성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근래까지 계속되고 있는 고고학 발굴 결과에 따르면 대모산성은 적어도 고구려를 거쳐 신라, 후삼국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병력이 주둔했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음이 분명합니다.


나당전쟁의 주 전선이 임진강이므로 매소성이 연천 대전리산성이라는 학설은 임진강이라는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연천이라는 근거를 짜맞춘 견강부회(牽强附會)로 의심되며, 매소성은 경기도 양주의 대모산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