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는 계림유사에선 漢(한)으로 나와서 방언 차이 아닐까. 내 알기로 할아비는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초출인데, 여기선 방언형이나 다른 책에서 안 보이는 희귀어도 드문드문 나와서 '한'을 사용하는 방언, '할'을 사용하는 방언으로 나뉘어 있었을 듯?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할-이 접두사인지 형용사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헐-다'와 동원어일 것 같음.
헐다의 뜻이 물건이 오래되어 쓿리거나 닳아져 없어지는 걸 말하거든. 몸이 마찰이나 감영으로 생채기가 나거나 살이 까져서 피가 나는 걸 말하기도 하지. 그런데 한국어에서는 모음을 바꿔서 의미를 미묘하게 바꾸는 특징이 있어. 그래서 헐의 모음 ㅓ를 ㅏ로 바꿔서 할로 바꾸었다면 헐아버지->할아버지, 헐어머니(헐머니)->할어머니(할머니), 이렇게 됐다고 생각해. 헐다가 대체로 물리적인 손상을 뜻한다면, 할다는 세월에 의한 자연적인 손상을 뜻한다고 봄직함.  그러니까 세월이 많이 지나서 몸과 마음이 헐어버린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뜻임.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늙다와 낡다'라는 표현임.
늙다는 사람이나 생물에게 쓰는 표현인데 반해 낡다는 사물, 사상과 제도 같은 것에 쓰여. 이건 유생물과 무생물, 유형물과 무형물을 과거의 한국인들이 분별해서 썼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헐다는 물건이나 신체 일부에만 국한해서 쓰고, 생물(특히 인간) 자체에는 할이라는 표현을 쓴 거지. 처음에는 헐다 하나로 퉁쳐 쓰다가 아버지의 1음절 모음 ㅏ에 동화시켜서 할이라고 바꿔 썼을 거라고 봐. 부계 중심 사회다보니 헐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가 발음하기 더 편하지. 헐머니는 그냥 발음 구색 맞추려고 할머니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