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고대 한반도에 '미오야마(彌烏邪馬)' 같은 일본·류큐 조어 지명이 있었듯이, 고대 일본에도 물론 고대 한국어에서 유래한 지명들이 존재했습니다. 예컨대 고구려 출신의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는 '거마(巨麻 köma)'라는 지명이 붙곤 했는데, 고대 일본어로 고구려를 일컫는 명칭인 이 '거마(巨麻)'의 어원은 뚜렷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모종의 고대 한국어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가정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고대 한국어계 지명들 가운데 일부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쓰이고 있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이러한 일본의 고대 한국어 지명을 다룹니다.




'무레(牟礼)'는 "산"을 뜻하는 고대 한국어 단어의 일본식 표기입니다. '삼국사기' 등 한국의 역사 자료에서는 흔히 '문(文)', '문(汶)' 등의 한자로 표기되는 단어입니다. 오늘날 일본에 '무레'라는 지명은 도쿄 도 미타카 시, 나가노 현 이이즈나 정, 카고시마 현 카고시마 시 등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습니다만, 그 연원이 분명하지 않으므로 섣부르게 고대 한국어 유래의 지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고대 한국어 유래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무레'가 두 군데 있습니다. 야마구치 현 호후 시의 '무레'와 카가와 현 타카마츠 시의 '무레'입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카가와 현 타카마츠 시의 '무레'에 대해 살펴봅니다.




어떤 일본 지명이 고대 한국어에서 유래한 지명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에 왜 고대 한국어 지명이 있는가라는 당연한 의문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한반도에 일본·류큐 조어 지명이 존재하는 것은 일본·류큐 조어가 한반도의 기층 언어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원래 고조선과 부여 등 한반도 바깥의 지역에 살았는데, 삼한이 형성되고 삼국 시대가 시작되면서 한반도의 모든 지역에서 고대 한국어가 쓰이게 되고 일본·류큐 조어는 소멸합니다. 오랜 옛날 한반도에서 쓰였던 이 언어의 후예들이 이후에는 일본 열도에서밖에 쓰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공통 조어를 '일본·류큐 조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일본에 고대 한국어 지명이 존재하는 것은 이와는 다른 현상입니다. 고대 한국어는 일본 열도에서 광범위하게 쓰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서의 일본·류큐 조어가 먼 과거에 널리 쓰이다가 소멸한 언어이기 때문에 아무 곳에서나 그 흔적이 나타날 수 있는 반면, 일본 열도에서 고대 한국어의 흔적은 한반도 국가의 사람들이 건너가서 모여 살았던 지역이나, 또는 한반도 문화를 향유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고대 일본의 귀족들이 살았던 특정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일본 지명이 고대 한국어 유래 지명이기 위해서는, 그 지명이 한반도 문화의 영향이 가장 크게 미친 고대 일본의 수도권, 즉 오늘날의 나라 현이나 오사카 부와 같은 지역에 존재하거나, 아니면 한반도 국가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에 존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어떤 일본 지명이 고대 한국어에서 유래했는지를 판별한다는 것은 (고대 일본의 수도권 지역이 아닌 한) 결국 그 지역에 한반도 국가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찾는 일로 귀결됩니다.




고대 일본의 시가집인 '만엽집(万葉集)' 권1 제5번 시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幸讃岐國安益郡之時軍王見山作歌

"천황께서 사누키 국(讃岐國) 아야 군(安益郡)을 순행하셨을 때, 군왕(軍王)이 산을 보고 지은 시."


이 '군왕(軍王)'이라는 것은 '일본서기' 권14의 '군군(軍君)'과 마찬가지로 고대 일본어로 '고니기시(kônikîsi)'라고 읽고 백제의 왕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다만 여기서의 맥락을 보면, '만엽집' 권1 제5번 시를 지은 '군왕'은 백제의 왕이 아니라, 고대 일본에서 성(姓)을 붙이는 용법대로 백제 왕족의 후예라면 누구나 '백제왕'을 그 성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는 7세기 초 사누키 국 아야 군 (오늘날의 카가와 현 타카마츠 시 서부) 지역에 일본으로 망명한 백제 왕족 후손이 살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8세기 초 일본에서는 고구려 유민들을 특정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고구려 왕실의 후손을 그 지역의 행정관으로 임명합니다 ('속일본기' 권7). 본국에서 명망이 높은 인사에게 망명자들의 통솔을 맡기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조치이므로, 사누키 지역에 백제 왕족 후손이 살고 있었던 배경 역시 이와 유사할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즉, 카가와 현 타카마츠 시 일대는 아스카 시대 (7세기)에 백제인들이 모여 살았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입니다.


카가와 현 타카마츠 시의 '무레'는 원래 카가와 현에 속한 별도의 기초 행정 구역인 무레 정(牟礼町)으로 존재했다가, 2006년에 카가와 현의 현도이자 시코쿠의 중심지인 타카마츠 시에 합병되었습니다. 이 지역 자체는 고대 당시의 아야 군에 속했던 지역은 아닙니다만, 고대 사누키 국 아야 군의 중심지는 마찬가지로 2006년에 타카마츠 시에 합병된 코쿠분지 정(国分寺町) 지역으로, '무레'로부터 직선 거리로 20킬로미터 약간 못 되는 거리입니다.


이러한 거리상의 가까움과 함께, 지형적으로도 다음 글에서 살펴볼 야마구치 현 호후 시의 '무레'와 마찬가지로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산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러한 지역이 고대 한국어 화자들이 전형적으로 '무레'라는 이름을 붙인 지형이라고 추정하고, 카가와 현 타카마츠 시의 '무레'가 아스카 시대에 백제인들에 의해 명명되었을 가능성을 주장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