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에 존재하는 고대 한국어 차용어는 11세기 이후에 어중의 청음 하나가 탁음화하는 괴상한 경향이 있음.

예를 들면


kutara (11세기까지) > kuⁿdara (현대 일본어 kudara) "백제"

siraki (11세기까지) > siraᵑgi (현대 일본어 shiragi) "신라"


같은 것들. 그 외에도 kisaraki, kasasaki, turuki, mitu-ti 등이 같은 변화를 보임.


정확한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산발적 탁음화는 그렇게 흔하지 않은 현상인데

일본어 속의 알려진 고대 한국어 차용어 중에는 거의 절반 정도가 이런 변화를 보이는 걸로 보면

이들이 고대 한국어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탁음화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함.


여기서 문제는 11세기라는 비교적 늦은 시대에 어떻게 고대 한국어 어원이 영향을 미치냐는 것임.

백제의 멸망 이후 한반도에서 일본으로의 문화적 영향은 거의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고

위의 탁음화가 일어난 시기는 백제 멸망 이후 400년이 넘게 지난 시기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어떤 단어가 고대 한국어로부터 들어왔다는 어원 의식을 보존하고 있었다는 가정에는 무리가 있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가능성은 사회언어학적인 요인인데

아스카 시대에 이미 탁음화된 발음이 존재했고, 탁음화된 발음과 그렇지 않은 발음은 평민/귀족계급의 언어차이라는 것임.

(귀족/평민이라는 표현은 약간 어폐가 있을 수 있는데 명문가/비명문가 같은 식으로 생각하는 게 나을수도 있음)


즉 어떤 이유로 인해 아스카 시대에 일본어가 고대 한국어 단어를 받아들일 때

평민 언어에서는 어중의 고대 한국어 폐쇄음을 탁음으로 받아들였지만 귀족 언어에서는 청음으로 받아들인 것임


고대 한국어의 문화적 영향이 소멸한 이후에도 전통 있는 귀족들은 자기들끼리 청음으로 된 차용어 발음을 쓰다가

헤이안 말기 이후 사회적 변화에 의해 기존 계급구조가 녹아나가면서 청음으로 된 차용어 발음은 실전된 것이 아닌가 함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탁음화가 일어나는지 여부와 일어나는 시기가 그 단어의 의미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임


무기의 이름인 turuki "(양날의) 칼"은 고대 일본어 시기에 이미 탁음화된 형태 turuᵑgî가 공존함

반면 현악기를 뜻하는 koto나 부처를 뜻하는 fotoke는 끝까지 탁음화가 일어나지 않았음


아스카 시대의 평민들이 접한 문화에 속한 단어일수록 탁음화된 형태의 세력이 강한 것이 아니냐는거지

koto나 fotoke는 아스카 시대 평민 문화에 속하지 않아서 아예 탁음화된 형태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