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법에 따르면 격이라는 것은 명사가 문장 내에서 어떤 문법 기능을 가지는지 나타내는 문법 범주임.


왜 전통문법이라 했냐면 지배결속이론이니 인지문법이니 공의존멘헤라문법이니 하는 다른 이론적 틀에서는 격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고 그것들에 대해서 나도 잘은 몰라레후이기 때문임.


그럼 주격은 뭐냐, 주어를 표지해주는 격이겠죠? 그럼 또 주어는 뭐냐, 술어부의 술어를 통제하는 문장 성분입니다.


한국어의 주격 조사는 그럼 주어를 표지해주는 역할이겠죠? 주격 조사로 인정받는 '이/가'를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카스미가 달린다.


달리다라는 술어를 통제하는 주어인 카스미를 주격 조사인 가를 통해서 나타내고 있죠?


그럼 '은/는'도 '이/가' 자리에 많이 오잖아요? 그럼 '은/는'도 주격 조사인가요?


카스미는 달린다.


카스미가 달린다랑 별 차이 없어보이는데... 그럼 '은/는'이 주격으로 쓰인게 아닌가요?


애석하게도 아닙니다. '은/는'은 주제를 나타내는 조사입니다. 주어와 주제는 엄밀히 다릅니다. 주어는 통사론에서 다루는 영역이고 주제는 화용론에서 다루는 영역입니다.


다음 문장들을 봅시다.


1. 카스미가 책은 사왔다.

2. *카스미가 책이 사왔다.

3. 카스미가 책을 사왔다.

4. 책은 사왔다.

5. *책이 사왔다.


'은/는'이 만일 주격 조사라면 1번 문장은 2번 문장과 같이 비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한국어는 주제 중심어라고 하는걸 봤는데요? 뭐 그런 가설도 있죠! 근데 주제 중심적인 언어라고 해서 주어가 모두 주제가 되는건 아닙니다!


4번 문장을 보면 주어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주제인 책이 나타난거죠? 그래서 주제인 책을 주어로 바꾸니까 비문이 되었죠? 주제 중심이라 해서 주제=주어는 아닙니다!


만약에 통사론 의미론 화용론 다 안배웠으면 subject=agent=topic이라는 세상 환장할 개념이 탄생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