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기 고조선어(요서~요동): 요서~요동지역에서 유목민과잡거하던 농경민들 중심으로 한국어의 원류 탄생. 가늠하기 어려우나 유목문화성격이 짙은 요서와 농경문화성향이 강한 요동의 방언차가 있을 것으로 추정. 


2. 고조선-연전쟁(기원전 3세기): 연나라의 요동침공으로 고조선에서 다수의 유이민 발생. 유이민들이 동-남으로 이동하며 고조선의 요동 방언이 평양, 부여, 고구려 등으로 이식. 


3. 위만 찬탈(기원전 2세기): 위만이 준왕을 쫓아내며 평양에서의 고조선계 유이민 발생.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고조선 평양 방언 유입. 마한지역 한국어족화 진행. 


4. 고조선-한전쟁(기원전 1세기): 한나라의 평양성 함락 및 고조선 멸망. 한군현 설치로 마지막 고조선인계 유이민 발생. 고조선 멸망당시의 평양 방언이 삼한지역 전체로 이식. 특히 사로6촌이 이때 형성된 것으로 추정. 


5. 전기삼국시대(3세기): 1세기 고구려 초기혼란(모본왕~태조왕계 교체, 왕망신나라 침공 등)으로 남하하는 고구려계 유이민 발생. 고구려계 유이민 남하는 3세기 고발기 반란 및 4연나 이탈까지 지속됨. 200여년에 걸친 고구려계 인구유입으로 한강유역 백제 성장. 2세기 고구려어 이식을 기점으로 백제어 분화 시작. 한편 신라는 고조선 멸망 시 기원전 1세기 평양방언을 기점으로 하여 고구려와 300여년에 걸친 방언차 발생. 북쪽 한반도와 인구교환 요인이 없었던 부여지역은 기원전 3세기 방언부터 지속된 방언차 500년 이상 지속으로 언어가 가장 이질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음. 압록-두만강을 남북경계로 하여 방언차 컸을 것으로 예상. 


6. 고구려 신라지배기(4세기): 광개토왕의 남방원정으로 신라가 고구려 속국이 되면서 고구려어, 신라어 방언차 감소. 백제어는 독자 분화 지속. 한편 북쪽의 부여는 모용선비에 도성이 함락되며 지배층이 대부분이 요서로 끌려감. 잡혀가지 않은 소수는 고구려쪽으로 도망하여 고구려화. 부여에 권력공백이 발생하고 옛 부여 피지배층은 물길이 남하하며 퉁구스화 진행. 


7. 후기 삼국시대(6세기): 4세기 고구려어를 기점으로 하여 고구려, 신라 방언차 200년 발생. 백제어는 2세기 고구려어에서 분화하여 방언격차 400년으로 삼국중 가장 이질적. 5세기 말 한성백제가 멸망하며 한강유역 백제어가 충남지역으로 이식. 북쪽의 (구)부여지역은 고구려 팽창으로 고구려어 통합이 이루어지나, 북쪽 물길의 영향 큰 지역은 물길이 남하하며 퉁구스화 진행. 


8. 삼국통일전쟁기(7세기): 백제 멸망 및 백제부흥운동의 과정에서 발생한 전란 및 대규모 인구이동으로 백제방언 소멸, 고구려방언은 황해도 지역이 상대적으로 수당전쟁의 전쟁피해가 적었고 대당 전쟁 시 비교적 신라 조정에 협조적 태도를 보였던 덕택에 높은 자치권을 인정받아 고구려계 방언 보존. 


9. 발해건국(8세기): 발해 건국 및 초기 수도가 두만강 유역의 중경, 동경에 위치하면서 옛 고구려 동쪽 책성일대 방언이 발해의 표준어 등극. 추후 발해의 수도가 상경으로 옮겨지며 고구려 책성방언이 그대로 상경에 이식됐을 것으로 추정. 신라어와는 4세기를 기점으로 400여년의 방언차가 발생하여 다소 이질적일 것으로 추정. 신라북부 고구려계 방언이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방언연속체 상황일 가능성 높음. 


10. 후삼국시대(9세기~10세기): 후삼국 혼란 인구이동으로 언어통일 및 방언차 감소, 결과적으로 후삼국을 고려가 통일하며 개경중심 고구려계통 방언으로 한반도 내 언어 통일 진행. 비슷한 시기 발해 멸망. 고려수도 개경말 기준 발해와의 방언차는 고구려가 멸망하는 7세기로부터 300여년 차이로 의사소통 가능한 방언 수준으로 추정. 상당수의 발해인이 친척들이 사는 고려북부에 정착하여 동화. 남만주에 남아있던 발해인은 반자치상태로 요나라의 지배 받음. 


11. 고려전기(11세기~12세기): 고려에 안정기가 찾아오며 점진적으로 지역별 방언차 발생, 그 기간은 200여년으로 그리 길지 않음. 한편 요나라의 지배를 받던 발해인들은 금나라 건국되자 고구려~발해 시기 동일 국가에 소속되어 풍습과 문화가 유사했던 여진족의 지배를 받아들임. 금나라가 중원을 정복하며 금나라 지배층과 함께 중국 본토로 이주한 발해인들은 중원에 흡수 소멸. 압록강 유역 및 함경지역 발해인들은 농업경제를 유지할 수 있어 한국어족 언어는 유지. 하지만 발해계 지배층을 잃고 남하한 여진족 추장들을 지배층으로 세우면서 여진족 문명수준으로 퇴보, 고려 본토인들에게서 여진족 취급받음. 한편 압록강 유역 및 함경도의 여진족화에는 이 시기 있었던 백두산 화산폭발이 영향 끼쳤을 가능성도 있음. 


12. 몽골침입(13세기): 몽골침입 전란으로 한반도 전체가 전쟁터 상황. 대규모 인구이동 발생. 지역별 방언차 소멸. 옛 탐라어도 이 시기를 기점으로 소멸. 현존하는 제주도 방언이 13세기 고려인 이주로 발생하여 700년간 분화하여 현존하는 제주방언 탄생. 한편 400여년간 나라를 세우지 못한 발해인들은 남만주에서 소수집단으로 전락. 


13. 원간섭기-여말선초혼란기(14세기): 남쪽으로 제주, 북쪽으로 남만주까지 원제국에 의해 정치적으로 통합되며 교류 및 인구이동 활발. 특히 여말선초 혼란기가 인구이동을 촉발시키며 각지의 한국어족 방언차를 감소시킴. 남만주에 소수집단으로 남아있던 발해인, 함경지역 여진족들은 언어가 비슷했던 고려인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며 언어가 유사했던 개경중심 고려어로 통합 진행. 


14. 조선전기(15세기~16세기): 함경지역이 조선 영토에 편입되고 사민 및 동화의 과정을 거쳐 한반도 남부언어가 함경도에 이식. 함경지역은 기왕에도 여진계 언어와 한국계 언어가 뒤섞여 사용되는 환경이었을 수 있음. 한편 세종의 4군6진 설치 및 사민정책으로 이식된 육진방언은 15세기 언어를 바탕으로 형성. 현대한국어 기준 언어분화 기간은 500여년. 남만주에 남아있던 고려인, 발해인은 명청의 지배를 받으며 중국인으로 점진적 동화. 


15. 임진왜란-병자호란(17세기): 양란으로 다시 한번 한반도 전체 인구가 뒤섞이며 언어 재통일, 현존하는 본토방언(호남,영남,영동,관북,관서) 이 당시부터 300여년간 분화 현존. 단 제주방언과 육진방언은 양란의 영향을 받지 않아 언어통합없이 고려말기와 조선초기에 이식된 방언로부터 분화 지속. 제주방언과 육진방언이 상대적으로 이질적인 이유. 남만주 한국어족은 후금-청 혼란기를 거치며 완전 소멸. 


16. 조선후기(18세기~19세기): 안정기에 따른 한반도 내 방언 분화. 다만 경기만 및 한강 수운을 공유하는 중부방언(경기,충청,황해,강원영서)의 분화와 기타 지역 분화속도에 차이 발생. 산맥으로 가로막힌 경상-영동-함경지역은 옛말이 보존되고 중부방언은 크게 변화하여 상대적 방언차 발생. 


17. 분단-대한민국(20세기): 남북 분단으로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 남북간 언어분화 80여년 지속. 아직 분리기간이 짧아 남북 상호간 의사소통에는 지장없는 수준. 남한 내부적으로는 산업화 이촌향도 및 방송•통신의 발달로 전국적 방언소멸 현상 나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