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 is Temporary, Class is Permanent

-Bill Shankly


70~80년대 유럽을 지배한 붉은 제국,

명문클럽 리버풀의 초석을 마련한 영원불멸의 명장


빌 샹클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1.아무도 몰랐던


샹클리가 처음 리버풀에 도착했을때, 당시 리버풀은

2부리그를 5년동안이나 전전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팀의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고

과거 명문클럽이었던 리버풀은 세계대전과 함께 침몰한지 오래였다


당시 훈련장이었던 멜우드와 구장인 안필드의 상태 또한

참혹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구장인 안필드에는 잔디에 물을 줄 시설조차 구비되지 않았고

훈련장인 멜우드는 이보다 상태가 더 심각했다


이젠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팀

망가진 훈련장을 바라보며, 샹클리는 다짐한다



my idea is was to built Liverpool into a bastion of invisibility 

"리버풀을 무적의 요새로 만들겠다는 것이 내 이상이었다"


2.Boot room


리버풀의 열악한 환경을 직접 마주한 그는 본격적으로

구단을 뜯어고치기 시작한다


노후화된 훈련장과 구장을 정비하여 구단의 인프라를 개선시켰고


단순히 훈련장에서 뛰어다니는 것에 그쳤던 훈련방식을

효과적으로 개선하여 훈련의 효율을 올리는가 하면


톰 손더슨, 제프 트위트먼등의 전설적인 스카우터들을

직접 고용하여 구단의 영입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리고 그의 플랜 중 단연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트 룸"을 만들어낸다


(그당시 부트룸 내부의 모습)


부트 룸은 말 그대로 구장 내부에 선수들의 축구화를

보관하던 작은 창고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 자그마한 공간을 개조하여

밥 페이즐리, 존 페이건등을 포함한 코칭 스태프들과

전술이나 운영플랜등을 논의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이 몇평 남짓한 조그마한 단칸방이, 

그에겐 영감의 샘이었던 것이다


(당시 부트룸의 멤버들, 이중 밥 페이즐리와 존 페이건은 훗날 샹클리의 뒤를 이어 총 4개의 빅이어를 들어올린다)


전술적인 변화 역시 괄목할 만 한데,

당시 샹클리가 강조했던 전술은 패스 앤 무브 전술로

이에 맞춰 훈련체계를 정비하고

선수들을 독려하는 등 차근차근 변화를 준비하게 된다


3.제국의 시작


본격적으로 리빌딩을 시작한 샹클리의 영입과 방출에는

거침이 없었다


부임 두번째 시즌만에 리그 2위를 달성하며

높아진 신위를 기반으로 당시 멤버들을 대거 방출한 샹클리는


이후 두 시즌에 걸쳐 자그마치 24명의 선수들을 방출,

그 빈자리를 이안 갤러한, 로저 헌트등 장차 팀의

주역이 될 선수들로 메우기 시작한다


이후 론 예이츠, 이안 세인트 존을 연달아 영입하며

공격적인 영입을 펼친 결과, 샹클리의 리버풀은 8년만에

디비전 원으로의 복귀에 성공한다


그리고 마침내, 63-64 시즌

샹클리 산하 최초의 우승이자 팀의 6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

샹클리 부임 장장 4년만의 일이었다


기세에 힘입은 리버풀은 바로 다음시즌 FA컵 우승

그 다음시즌엔 리그와 채리티 실드 2연패로 더블에 성공,


근본의 명문클럽 리버풀의 화려한 부활이자

훗날 붉은 제국이 될 거대클럽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4.폼은 일시적이나


샹클리의 리버풀이 언제나 순항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2부리그의 팀을 1부리그로, 

끝내는 리그우승과 FA컵 우승을 안겨줬으나


그 다음시즌 리그에선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7위에 그쳤고


유러피안 컵에서는 에레라의 인테르에게 발목을 잡히며

4강에 머물러야 했다


66-67시즌에는 에버튼을 꺾으며 채리티실드 3연패에 성공하나

리그는 5위, 유러피안 컵에서는 16강에서 광탈한다


그리고 샹클리의 리버풀은 66-67 시즌을 마지막으로

5년 연속 무관의 늪에 빠지며 트로피 수집에 실패하고


믿었던 영입마저 실패하며 내리막길에 접어든듯 보였다


5.클라스는 영원하다


당시 리버풀은 제 2의 암흑기속에서 헤메이고 있었다

리그 순위는 라이벌인 애버튼에게 한참 뒤처졌고


영광의 주역이었던 헌트, 존, 예이츠의 전성기는 끝난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샹클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처음 리버풀에 왔을 때 했던 다짐을 기억하기에


그리고 그것은 아직 못다이룬 꿈이기에

그는 처음에 그랬듯이, 다시 한 번 더 리빌딩을 단행한다


다시 한 번 공격적인 영입을 강행하며

이안 캘러한, 앰린 휴즈를 필두로 수많은 자원들을 쓸어담았고

시간을 들여 투자한 유스에서도 인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리버풀의 전환점이 되어줄 케빈 키건을 영입한다


이때 샹클리는 선수들의 사기를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클럽 내부에 현판 하나를 걸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This is anfield"가 적힌 현판이다


이러한 그의 열정이 선수들에게도 닿았던 것일까?

결국 구단 역사상 8번째이자 본인의 3번째 리그 우승을 쟁취한다


또한 이 시기에 꿈에 그리던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에 진출,

묀헨글라트바흐를 상대로 극적으로 승리하며


샹클리에게도, 그리고 그의 구단에게도 영광적인

유럽대항전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 FA컵 우승을 마지막으로,

그는 훗날 붉은제국을 완성할 밥 페이즐리에게

자신의 전권을 물려주며 길었던 감독생활을 마무리한다


6.리버풀에게 샹클리란


리버풀 역사에 샹클리가 남긴 족적은 하나같이 거대한 것들 뿐이다


그는 2부리그를 헤메던 팀을 당당리 리그 정상의 자리에 올렸으며


구단 최초의 유럽대항전 트로피를 들어어올렸다



여전히 리버풀의 라커룸엔 This is anfield가 적힌

명패가 붙어있으며


지금은 더이상 사용되지 않지만, 그의 부트룸은

리버풀 역사의 한 조각으로써 보존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의부터 하의, 그리고 양말까지

진한 붉은색을 띄는 유니폼마저 그의 아이디어이며


아무것도 없던 공터에 오늘날의 안필드를 세울

뼈대를 마련했다


리버풀은 이러한 그의 업적을 기려

구장으로 향하는 대문에 샹클리 게이트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리버풀의 상징과도 같은 You'll Never Walk Alone을

새겨넣었다


시간이 흘러 1981년, 리버풀의 아버지이자 현신이었던

그는 급성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지만


그가 사망한 날, 리버풀과 라이벌이던 에버튼은

멜우드와 벨필드에서의 모든 훈련을 취소하고

그를 기렸으며


팬들은 Shankly lives forever이라는 현패를 집에

내걸며 그를 추모했다


여전히 리버풀 내에는 그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는 영원히 붉은 제국의 시조로써 기억될 것이다





다음화 예고:"늙은 여우"



+)쓰는데 한시간 걸림 개추 부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