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앞에 기묘한 광경이 포착됐다.

 

 

아침마다 얀순이를 기다리던 장소인 공원 벤치

옆에 있던 커다란 오동나무 가지에 

 

 

다크로드처럼 어떤 한 남성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 도... 도와줘야 하나...? ”

 

 

아침 댓바람부터 뭐 하시는 걸까?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남성에게 천천히 다가간 순간.

 

 

“ 으아 아아! ”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거꾸로 매달려 있던 남성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재빨리 기묘한 남성에게 다가갔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 저기요! 괜찮으세요? 다치셨나요? ”

 

 

“ 어... 어... 어.... ”

 

 

“ 아프세요? 구급차 불러드릴까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

 

 

기묘한 남성은 앓는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남성을 부축하려던 나를 밀쳐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자기 팔에 묻어 있던 흙을 털어내며 말했다.

 

 

“ 고마워 학생. 근데 혹시 지금이 몇년도야? ”

 

 

지금이 몇년도 인지도 모르시는 건가? 아무래도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인 거 같다.

 

 

“ 2025년도에요. ”

 

 

“ 다행이다. 연도는 맞췄고... 혹시 오늘이 8월 29일이야? ”

 

 

“ 맞는데요? ”

 

 

“ 드디어! 드디어! 성공했어!!! ”

 

 

기묘한 남성은 성공했다는 말과 함께 알 수 없는 언어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단단히 정신이 나간 사람인 거 같다. 슬슬 자리를 피할까?

 

 

내가 자리를 피하려고 한 순간.

 

 

“ 그럼 니가 전얀붕 맞지? 얀챈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지금 이얀순 기다리고 있는거 맞지? ”

 

 

뭐야...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이 사람이 슬슬 무서워지려고 한다.

 

 

“ 맞긴 한데... 어떻게 그걸 다 알고 계세요...? ”

 

 

“ 제발 세상을 구해줘!!! 부탁이야!!! ”

 

 

기묘한 남성은 갑자기 나한테 무릎을 꿇었다.

 

 

“ 왜... 왜 이러세요? 일어나세요... 이러지 마세요... ”

 

 

“ 오늘 이얀순이 너한테 고백할 거야! 제발 그걸 받아줘! ”

 

 

“ 네? ”

 

 

“ 그걸 받아줘야 이 세상이 평화로워져! 이젠 전쟁은 지긋지긋해! ”

 

 

세계 평화? 세상의 안전? 이 사람 사이비인가? 요즘 새로 나온 포교 방법인가? 

 

 

“ 저어... 죄송한데 제가 지금 학교에 가봐야 해서요. 죄송합니다. ”

 

 

더 이상 저 남성에게 빠져들면 큰일 날 거 같아서 학교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남성이 도망가려던 내 팔을 붙잡았다.

 

 

“ 왜 이러세요! 이거 놔요! ”

 

 

“ 지금 내 말이 믿기는 않겠지만, 나는 미래에서 왔어. 그 빌어먹을 이얀순을 피해서 말이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 ”

 

 

내 팔을 잡은 남성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내 팔을 잡고 있던 남성의 손가락은 3개뿐이었다.

 

 

“ 아니 손은 또 왜 이러신 거예요? ”

 

 

“ 말하자면 긴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까 말했듯이 오늘 이얀순이 너한테 고백을 할 건데 그걸 절대 거부하면 안돼! ”

 

 

얀순이가 오늘 나한테 고백을 한다고? 

 

 

“ 그래요. 고백한다고 칩시다. 근데 그게 세상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

 

 

정말로 미스터리한 남성은 바지에 있던 건빵 주머니에서 두꺼운 책 하나를 꺼냈다.

 

 

“ 이 책은 처음 보겠지? 이건 이얀순이 직접 쓴 자서전 ‘나의 정복기’야 ”

 

 

양장본으로 되어있는 책이었는데, 얀순이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의 얼굴이 표지로 되어 있었다.

 

 

“ 이 책에 따르면, 이얀순은 어릴 때부터 사랑했던 소꿉친구에게 실연을 당한 후.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군대에 입대했다고 해. ”

 

 

“ 얀순이가 군대를요? ”

 

 

연약하고 내향적인 얀순이가 군인이 된다니, 이미지 매칭이 전혀 되지가 않는다.

 

 

“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던 이얀순은 저녁점호 때 자기 소대원 한명이 비는 걸 보고 북한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독단적으로 소대원들을 이끌고 북한을 선제공격해. ”

 

 

“ 아 그래서 우리나라가 위험에 빠진다는 건가요? ”

 

 

“ 아니. 정말로 북한의 소행이 맞았어. 이 일로 정말 화가 난 정부와 국민들은 이얀순의 발 빠른 대응을 모두 칭찬했지. ”

 

 

“ 네? 진짜였다고요? ”

 

 

“ 미국의 중재로 황해도를 정복하는 선에서 전쟁은 끝이 났지만, 국민 여론은 아쉽다는게 주된 여론이었어. 이때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이얀순은 군대를 전역하고 정치에 입문하게 돼. ”

 

 

학교에서 발표를 할 때도 부끄러워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얀순이가 정치를 한다고? 

 

 

“ 이얀순은 정치에 입문한 후 온갖 포퓰리즘 정책들을 내세워. 반중감정을 사용해서 한국에 있는 중국인과 조선족들을 모두 추방하고, 북한을 정복하겠다는 팽창주의 정책들을 내세우지. ”

 

 

얀순이가 중국을 그렇게 싫어했나?

 

 

“ 전국적인 정치 스타가 된 이얀순은 초보 정치인이었지만, 대선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고, 당선되자마자 북한을 다시 침공해서 북한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어. ”

 

 

“ 이번에는 미국이 안 말렸나요? ”

 

 

“ 시기가 딱 맞았지. 하필 그때가 미국이랑 중국이 다시 숨 막히는 패권전쟁을 하던 때야. 북한이 망하는 게 미국 입장에서는 좋은 거였지. ”

 

 

북한이 망하는 건 지금 내가 생각해봐도 좋은 거 같기는 하다.

 

 

“ 그럼 이제 끝난 거 아닌가요? ”

 

 

“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야. 미국은 북한을 정복한 이얀순 정부에게 은밀한 제안을 하나 하는데, 같이 중국을 선제공격하자는 제안이었어. 팽창주의 정책을 내세우던 이얀순은 좋다고 수락했고. ”

 

 

“ 그럼 중국이랑도...? ”

 

 

“ 그렇게 한국은 미국이랑 불가침조약을 맺고 3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어 버렸어. ”

 

 

내가 얀순이의 고백을 거절하면 이런 일들이 생긴다고?

 

 

“ 세상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버렸어... 전쟁터에서는 사망자들이 넘쳐나고. 부모들은 소중한 자기 자식들을 그런 사지로 내몰아야 하고, 부모를 잃은 고아들도 넘쳐나고. 포로가 된 중국인들은 어떤 수용소에 들어간다는데, 거기서 집단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혹들도 있지. ”

 

 

남성은 들고 있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피더니 그 부분을 내게 보여주었다.

 

 

‘ 나는 많은 나라들과 인종들을 정복했지만, 딱 한 가지 정복하지 못한 것이 있다. 전얀붕... 아무리 많은 것들을 정복해봐도 공허한 내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

 

 

“ 니가 그 고백만 받아주면 돼! 제발 부탁이야! 세상을 지켜줘! ”

 

 

그 순간. 바람이 힘차게 불며 오동나무의 잎들이 일제히 떨어져 남성을 휘몰았다. 나뭇잎들은 남성의 모습을 전부 다 가렸고 내 눈 또한 가렸다. 거센 바람이 지나간 후, 눈에 붙은 나뭇잎을 떼어내 봤지만, 내 눈앞에 있던 남성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남자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서 머리가 터질 거 같다.

 

 

얀순이의 입대, 대통령 당선, 3차 세계대전, 세상의 위협. 아니 그것보다도.

 

 

얀순이가 오늘 나한테 고백을 한다고? 

 

 

얀순이를 오랫동안 알고 지내긴 했지만, 얀순이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전혀 없다. 

 

 

원래대로라면 거절하는 게 맞겠지만, 그 남성의 말이 맞는다면 세상이 위험해진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 얀붕아! 미안! 내가 좀 늦었지! ”

 

 

그때 고민할 겨를도 없이 이야기의 주인공 얀순이가 등장해 버렸다.

 

 

“ 웬일이야? 항상 나보다 먼저 나와 있었잖아. ”

 

 

“ 이거 때문에 늦었어. ”

 

 

얀순이는 투명한 포장지에 포장되어있는 쿠키를 나에게 건넸다.

 

 

“ 어제저녁부터 힘들게 만든 건데... 먹어줄 수 있어? ”

 

 

“ 그거야 어렵지 않지. ”

 

 

포장지를 뜯어서 얀순이가 보는 앞에서 쿠키를 한입 베어 물었다.

 

 

“ 음~ 맛있는데? 팔아도 되겠어! 나중에 너랑 같이 살 남자는 부럽다. 맨날 이런 거 먹을 거 아니야. ”

 

 

평소에 하던 대로 리액션을 해줬을 뿐인데.

 

 

“ 아... 아... ”

 

 

얀순이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더니

 

 

“ 얀붕아 더는 못 참겠어! 나 너 사랑해! ”

 

 

갑자기 나에게 사랑 고백을 하였다.

 

 

예상은 하였지만 실제로 들으니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 너는 나 어떻게 생각해...? 나는 이제 더 이상 너를 친구로는 볼 수가 없을 거 같아... ”

 

 

지금의 나는 얀순이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얀순이의 고백에 세상의 평화가 달려있다.

 

 

그렇다면. 승부다.

 

 

“ 나도 너 좋아해. ”

 

 

“ 정말로? ”

 

 

“ 그렇지만, 잘 모르겠어. 지금 나는 너랑 사귀지 못할 거 같아. ”

 

 

얀순이는 손에 쥐고 있던 쿠키를 악력으로 으깨기 시작했다.

 

 

“ 왜? 어째서? 너도 나 좋아한다며...? ”

 

 

“ 좋아하긴 하는데 말이야... 이게 친구로서 좋은 건지 이성으로써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 ”

“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랑 사귀는 건 말이야. 나도 힘들겠지만, 너가 더 힘들걸? ”

 

 

여기까지는 잘 온 거 같다. 살짝 비틀어서 생각해봤는데. 고백을 거부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 그러니까 내가 일주일의 시간을 줄 테니까. 이 기간 동안 내가 너를 이성으로써 좋아하는 건지 확인을 시켜 줄래? ”

 

 

승부수를 두었다.

 

 

나랑 얀순이가 현재 상태인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만 해도 전쟁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일주일만 버티고 지금 상태의 관계를 유지하자.

 

 

“ 얀붕이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

 

 

얀순이는 갑자기 나를 껴안더니 내 볼에다가 입을 갖다 대었다.

 

 

“ 너 이게 지금 뭐 하는! ”

 

 

얀순이는 내 뺨에 짧게 키스를 한 후 입을 떼더니.

 

 

“ 그거야 어렵지 않지. ”

 

 

얀순이는 손에 쥐고 있던 으깨진 쿠키 가루를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 기대해 얀붕아? 일주일 동안 나한테 완전히 푹 빠지게 만들어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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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순이한테 완전 정복 당할 때까지 남은 시간 단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