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학.

 

 

 

그레고르는 눈을 번쩍 뜨며 채 삼키지 못한 숨을 뱉었다. 

 

그곳은 그의 방이었다.

 

벌레에게 딱 어울리는 낡은 콘크리트.

 

 

 

‘아으...’

 


 

머리가 지끈거렸다. 주먹으로 관자놀이를 비빈다.

 

무슨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꾸었다면 보나마나 악몽일 것이다.

 

...

 

최근에 관리자 양반이 거울던전으로 가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그러면서 관리자가 특정 인격만 골라 쓰는 느낌이 들었다. 

 




침잠이 어떻니 저떻니 하면서 그... 달갑지 않은 인격을 씌워 댔다.

 

...

 

뭔 소리인가.

 

관리자 그 양반 탓을 할 순 없다.

 

다 똑같이 고생하는 사람들끼리. 헛 참.

 

다들 이런 저런 인격들을 써가면서 저마다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다만, 그 인격을 쓰는 날에는 꼭 밤만 되면 악몽을 꾸는 것 같다.

 

자신의 팔을 뜯어가버린 늑대새끼가 나오는 꿈.

 

아직 남아서 덜렁거리는 한 팔로

 

끝없이 몰려오는 그림자들에게 한 맺힌 칼끝을 휘두르는 경험은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

 

며칠 동안이나 생생한 그 악몽들을 꾸고 있자면,

 

어쩌면 지금 수감자들과 버스를 타고 황금가지를 찾아 다니는 게 오히려 꿈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그건 둘째치고,

 

머리가 아프다.

 

악몽만 꾸고 나면 말 그대로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다.

 

진짜로 머리가 터져버리기 전에 

 

머리에 구멍을 내서 가득 차 있는 무언가를 빼내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였다.

 

 

‘후아...헉...흑...’

 

 

어째선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이대로 이 눅진하고 차가운 콘크리트 관에서 질식해서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

 

굳이 살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숨은 쉬고 싶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레고르는 벌레가 기어가듯 빌빌대며 가서 방문을 열었다.

 

 


‘허억..’

 

 

숨이 들어온다.

 

오늘따라 복도의 공기는 너무나도 차다.

 

...

 

숨을 좀 뎁혀야 쓰겠다.

 

방문을 연 채로 그레고르는 다시 방안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라이터가 든 겉옷을 챙겨 문 밖 복도로 나섰다.

 

 

 

버스로 가는 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으니

 

복도에서부터 장대비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밖은 비가 오는 모양이다.

 

아니, 비보다는 폭풍에 가까운 느낌이다.

 

좋지.

 

비 올 때 담배 맛이 또 다르거든.

 

 

 

 

버스와 복도를 가르는 문이 열리고,

 

어둑어둑한 버스 좌석들이 보인다.

 


 

그레고르는 로쟈가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T사의 밤은 좋아.’

 

‘낮이랑 다르게, 누구든 시꺼먼 색이니까.’

 

 

말 그대로, 거무스름하게 칠해진 버스 좌석들 사이를

 

거센 비바람 소리만이 평등하게 채우고 있었다.

 

 


“좋네.”

 

 

그레고르는 말했다.

 

 

부스럭부스럭.

 

 

“에...?”

 

 

혼잣말의 답으로 뭔가 부스럭대자 그레고르는 적잖이 놀랐다.

 

어두워서 비어있다 생각한 좌석에서 누군가 움직인다.

 

히스클리프였다.

 

두 칸짜리 좌석에 반쯤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킨 것 같았다.

 

 


“너... 뭐냐?”

 

 

“다짜고짜 사람보고 뭐냐니.”

 

 

“오늘 야간보초 담당이 너였냐?”

 

 

“어음... 잠깐. 오늘... 로슈? 아니었나?”

 

 

“하. 걔가 보초 서란다고 서겠냐.”

 

 

히스클리프는 그렇게 말하곤 몸을 세워 두 칸 짜리 좌석에 몸을 기댔다.

 

 

“헛. 그건 그렇지.”

 

 

“...”

 

 

“그러면 너는 왜 여깄는데?” 

 

 

“뭐.”

 

 

히스클리프는 길게 숨을 빼었다.

 

 

“그냥.”

 

 

슬슬 그레고르는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흉터가 가득한 히스클리프의 손이 뭔가를 꽉 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진이 들어간 로켓 펜던트. 

 

폭풍우가 치는 이 밤.

 

대충 상황을 이해한 그레고르는 히스클리프 건너편 두 칸짜리 좌석으로 향했다.

 

 

“어어. 그렇구만.”

 

 

“넌 왜 왔냐? 이 시간에.”

 

 

“글쎄다.”

 

 

 

그레고르도 길게 숨을 빼었다.

 

속에 연초 넣을 공간을 좀 만드려는 듯이

 

 

“그냥. 담배나 좀 피러.”

 

 

“...그러냐.”

 

 

그레고르가 자리에 앉고, 천천히 속을 뒤적이며 담배와 라이터를 찾고,

 

평소 들고다니던 휴대용 재떨이를 옆자리에 놔두고, 라이터를 칙칙거릴 때까지. 

 

어둑진 이 버스 안에 말소리는 없었다.

 

둘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둘은 딱 그 정도의 사이었고,

 

서로 굳이 말로 묻지 않아도 대충 이 밤에 무엇을 달래러 왔는지는 알 수 있을 정도로

 

문자 그대로 서로의 마음 속을 헤쳐나갔던.

 

뭐 그 정도의 사이였다.

 

하지만 그 침묵이 어색치 않게,

 

폭풍의 속의 장대비가 버스 창을 두드리고 있어서, 

 

별 상관은 없을 것이었다.

 

 

그레고르는 불을 붙이기 위해

 

연초를 빨았다.

 

시린 목을 뜨신 공기가 때렸고,

 

평소답지 않게 그레고르는 목구멍에 이물감이 일었다.

 

곧 그레고르는 엄청난 기세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럭쿨럭쿨큭. 케엑. 으허켘 켁. 쿨럭.쿨럭쿨럭. 으흐. 쿨럭쿨럭쿨럭.”

 

 

젠장할. 

 

맞다.

 




그 인격을 사용하고 나서는 꼭 첫 연초를 빨 때 미친 듯이 기침이 났다.

 

마치 몸이 담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그 인격을 끼면 기침이 잦은 느낌이었고,

 

어쩐지 그 인격으론 거울던전을 몇 바퀴를 돌다가 와도 품속의 담배는 줄어들 지를 않았다.

 

인격 낄 동안 담배 못피는 것도 서러운데, 지금까지 난리라니.

 

그레고르는 알아먹지 못할 욕지거리를 기침과 함께 뱉으며

 

온 몸을 떨었다.

 

 

“야...”

 

 

얼마나 기침이 심했으면 히스클리프가 답지 않게 말을 걸었을까.

 

 

“괜찮냐?”

 

 

“어흐. 켁. 어흐. 아니. 그.”

 

 

“너 그 꼴에 담배를 뭐하러 피냐? 끊어야 되는 거 아냐?”

 

 

알고 있다.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일 것이다.

 

애초에 별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 놈이니까.

 

하지만 상황이 문제인지. 기분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목에 끼는 가래가 성질을 긁어대서인지.

 

또는 계속해서 그 인격을 끼고 있는 중에, 

 

히스클리프를 볼 때마다 올라오는

 

표현하기 힘든 깊은 우울과 질투가 기침과 함께 속에서부터 지금 올라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알고도 싶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레고르는 짜증이 확 올라왔다.

 


 

“하.”

 

 

그레고르는 답도 해주지 않고. 다시 담배를 입에 대었다.

 

쭈욱 빨아들이고, 다시 연거푸 기침을 해대었다.

 

기침과 함께 뿌연 연기가 이리저리 퍼진다.

 

그 모습을 히스클리프는 안쓰러운 듯, 미련한 걸 보는 듯 눈길을 준다.

 


 

“그거... 왜 피냐?”

 


 

“뭐가?”

 

 

그레고르는 기침 때문에 제대로 듣지 못한 말에 퉁명스레 답하면서 

 

다시 담배를 입에 문다.

 

올라오는 짜증보다 그냥 그레고르는 담배가 급했다.

 

 

“담배. 왜 피냐고.”

 

 

“그게 뭐.”

 

 

“그냥. 그렇게까지 피는 이유가 궁금해서.”

 

 

그레고르는 휙하고 고개를 돌려 히스클리프를 쳐다보았다.

 

폭풍우 속에 번개가 친다.

 

히스클리프는 번쩍이는 섬광에 비친 그레고르를 보았다.

 

색을 잃은 T사 안에서도 분명이 구별될 정도로

 

진하게 충혈된 눈이 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힘은 빠져있지만. 

 

맹렬한 적대감에 가득찬. 

 

질투에 가까운 복수심과.

 

부딪히다 자기 자신까지 녹여버릴 듯한 여러 감정의 열기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히스클리프는 너무나도 익숙한 눈빛이라 볼 수 있었다.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여자의


남편이었던 사람의 눈빛. 


분명 그 눈빛이었다.

 

섬광이 지나가고

 

이내 천둥이 울리운 뒤

 

둘 사이는 연기만이 있는 공간에서

 

히스클리프는 재차 물었다.

 

 


“너 임마... 괜찮냐...?”

 

 

“내가 담배를 왜 피냐고?”

 

 

“...”

 

 

“응? 왜 피냐고? 엉?”

 

 

그레고르는 자신의 외투를 거칠게 뒤져대더니

 

품 속에서 담배 한 개비를 뽑았다.

 

그리고는 마치 칼을 겨누듯 

 

담배를 히스클리프에게 건네었다.

 


 

“너도 피어봐. 응?”

 

 

“...”

 


 

“그럼 알게 될거니까.”

 

 

 

손에 쥔 담배의 끝이 떨린다.

 

그레고르의 숨이 거칠다. 비집고 올라오는 기침을 삼키고 있어서 그런걸까.

 

담배를 입에 문 그레고르는 히스클리프를 노려보며

 

독하게 웃고 있었다.

 

독이 가득한 사과를 건네주는 마녀처럼.

 

 

 

“...”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이라.

 

자신의 말을 곱씹어보던 히스클리프는 

 

본인의 잘못을 대충 느낀 것인지.

 

아님 이 사과를 쥐어들지 않으면

 

저 벌레 팔이 달려들 것 같아서인지.

 

묘한 분위기에 결국 히스클리프는 담배를 쥐어들었다.

 

순간 그레고르의 표정에 환희가 잠깐 스쳤고,

 

힘이 풀린 그레고르의 팔은 툭하고 떨어졌다.

 

이내 그 팔로 다시 입에 문 담배를 쥐어 들곤

 

참았던 숨과 함께 힘껏 담배를 빤다.

 

잔기침 소리가 들린다.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쿨럭. 아. 그래. 거. 불도 필요하지?”

 

 

그레고르가 라이터를 들어보인다.

 

 

“...”

 

 

“어이?”

 

 

히스클리프는 담배를 빤히 쳐다본다. 

 

묘한 느낌이었다.

 

뒷골목 조직 생활을 하면서, 담배는 물론 사치품이었지만.

 

그런 이들을 위한 싸구려 연초도 분명 있다.

 

조직의 같은 식구들 중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도 더러있었고.

 

근데... 왜?

 

나는... 왜?

 

 

 

“...”

 

 

그레고르는 생각에 잠긴 히스클리프를 잠깐 지켜보았다.

 

담배를 아까 옆에 둔 재떨이에 비벼 끈다.

 

그리곤 라이터가 무안하지 않게, 새 담배를 입에 물곤 다시 불을 붙이었다.

 


 

“푸우우...”

 

 

그레고르는 다시 히스클리프를 보았다.

 

그는 지금 한 손에는 담배를 이리저리 굴리며 보고 있고, 

 

나머지 한 손은 로켓 펜던트를 꽉 쥐고 있었다.

 

...

 

그레고르는 뭔가 깨달은 듯 웃음 지었다.

 

온몸에 힘이 축 풀린다.

 

담배를 태우며 허탈한 듯 웃었다.

 

자신이 타들어가는 듯 웃었다.

 

 

 

“히히.. 허허허.. 흐흐.. 쿨럭... 크흐흐흐...”

 


 

“...??? 왜?”

 

 

“흐... 그 여자.”

 

 

“무슨 여자?”

 

 

“로켓 속 그 아가씨. 얼굴은 모르겠다만.”

 

 


뜬금없는 그 여자 이야기에 이번엔 히스클리프가 그레고르를 노려봤다.

 

 

“어지~간히 담배를 싫어했나보네. 앙?”

 

 

“!”

 

 

“뻔하지. 너 같은 사람이 담배 안 피우면.”

 

 

“!!!”

 

 

“좋~겠다.”

 

 

“으응...”

 

 

“좋은 사람이었겠어. 그 아가씨.”

 

 

“...”

 

 

“푸우우우”

 

 

“부럽네.”

 

 

그 말과 함께 그레고르는 다시 낮게 웃었다. 연기와 잔기침이 가득 낀 채로.

 

독한 연기 때문에 눈물이 질금 난다.

 

 

“... 그닥 좋은 사람은... 아니야.”

 


 

“어?”

 

 

“아니다... 아냐.”

 

 

“하이. 참. 말을 하다가 마냐.”

 

 

“담배. 고맙다.”

 

 

“? 어. 그래. 불 필요해?”

 

 

“아니, 나 이거 가져가도 되냐?”

 

 

“어?”

 

 

그레고르는 살짝 당황했다.

 

히스클리프는 품에서 꺼낸 냅킨인지 종이인지 뭐에 담배를 싼다.

 

 

“뭐. 준 거니까 알아서 하면 되는데...”

 

 

“고맙다.”

 

 

히스클리프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진짜. 고마워.”

 


 

“어? 그래...”

 

 

그리고는 복도 쪽으로 쭉 걸어가서 문을 연다.

 

그레고르는 히스클리프가 문을 열며 남은 손으로 로켓을 열어보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 히스클리프가 뒤돌아본다.

 


 

“야.”

 


 

“뭐.”

 


 

“너무 늦게까지 있진 마라. 별로 좋진 않더라.”

 

 

“...” 

 

 

“내일도 일해야지.”

 

 

“허. 참. 진짜. 어이가 없어서.”

 

 

“우수 직원 납셨구만. 대~단하셔. 엉? 근데 나는 금주의 우수 직원상 같은 거는 관심 없어서.”

 

 

“너... 저번처럼 쫒던 거 놓치면 가만 안 둔다.”

 

 

“어어? 이거봐라? 야. 그건 솔직히 너가 잘못 몬 거...”

 

 

고개를 돌려 맞받아 치려던 그레고르였지만 이미 히스는 문을 열고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하이. 씨. 저 새끼가 끝까지 사람 속을 그냥.”

 

 

 

그레고르는 담배를 뻑뻑 피운다.

 

어느새 기침은 멎어있었다.

 

 

 

 

 

 

 

 

담배 몇 개피를 연거푸 피우고,

 

재수없는 놈이 빠지고 홀로 낭창하게 남으니,

 

질퍽해보였던 날씨도 꽤 운치있어 보인다.

 

덕분에 그레고르는 더 깊게 담배를 빨아서

 

천천히 맛을 즐기어ㅆ

 

 

 

 

벌컥

 

 

 

 

“오.좋.”

 

 

단 두 글자로 평화를 부수는 여자가 버스에 자욱한 담배 연기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조금 걸어나오다가 좌석에 앉아있는 그레고르를 보고 말했다.

 


 

“오.좆.”

 


 

“저기... 로슈씨... 당신 말.. 전부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나. 방금 거는 정확히 알아들었다?”

 

 

“어.쩔.”

 

 

“끊어 말한다고 다 줄임말이 아니라고.”

 

 

“방금은 안 줄였다. 벌.양.”

 

 

“허... 진짜 오늘 밤은 재수가 없으려니까.”

 


 

로슈는 말을 가볍게 씹으며 벌레 양반의 뒷좌석에 앉았다.

 

이 여자랑 말 섞는 게 퍽이나 피곤한 것을 알고 있는 그레고르도 

 

그냥 얌전히 다음 담배의 불을 붙일 뿐이었다.

 

로슈가 품속에서 담배를 꺼낸다. 

 

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

 

지 못했다.

 

라이터에 불이 붙지 않는다.

 

 

 

“어이 벌.양.”

 

 

“왜 불러 로.슈.”

 

 

“이제야 자신이 벌레라는 걸 자각한 모양이군.”

 

 

“로슈 씨가 그냥 씨이비걸려고 사람 부르는 타입은 허어~ 아니었던 거 같.은.데.?”

 

 

“불.좀.”

 

 

“아. 불 필요해?”

 

 

그레고르는 대충 어깨너머로 라이터를 건네 주었다.

 

뒷자리의 로슈가 라이터를 받아든다.

 


 

“라.좆.”

 

 

“하이. 진짜. 라이터가 담배 불만 재깍재깍 붙이면 되지 뭐가 문제라고.”

 


 

“정말 벌.양. 다운 대답이로군.”

 


 

“그렇게 맘에 안 들면 이리 내놓지?”

 

 

 

그레고르가 굳이 몸을 돌려 뒷자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로슈는 그레고르의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예술을 생각없이 즐기는 게 안타까워 그런다.”

 

 

 

로슈는 쓴 라이터를 휙하고 앞으로 던졌다.

 

 

 

“어어어...?”

 

 

 

그레고르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겨우 날아가던 라이터를 붙잡았다.

 

 

 

“하, 이 여자가 진짜.”

 

 

“불 값으로 하나 가르쳐주지.” 

 

 

“네 놈은 왜 담.탐.을 가지나”

 

 

“담배를 왜 피냐고?”

 

 

그레고르는 받아든 라이터로 새 담배에 불을 붙인다. 

 

...

 

그리고 숨과 함께 담배를 삼킨다. 


이번엔 정말로 발끝까지 연기를 삼킨다.

 

한 숨에 담배가 절반은 탄 것 같았다.

 

 

 

“푸아아.”

 

 

“글쎄...”

 

 

 

그레고르는 주먹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른다.

 

 

 

 

 

 

 

 

 

 

 

“죽고 싶어서.”

 

 

 

 

 

 

 

 

 

 

장대비 소리가 구슬프다.

 

갈 곳을 찾지 못한 연기들이 흩어지는 모습은 애잔하기까지 하다.

 

그냥 새까만 어둠이 전부 삼켜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눈치 없는 담뱃불만이 반짝인다.

 

 

 

“하.”

 


 

“나쁘지 않아.”

 

 

그레고르는 바닥만 바라보다가 

 

로슈를 바라보았다.

 

로슈의 끝나가는 담배 끝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말없이 자신 옆의 재떨이를 들고 로슈에게 건넨다.

 

 

 

“벌.양.치곤 제법이군”

 

 

 

로슈는 재떨이 따위 보이지 않는 듯 대충 버스 벽에다가 담배를 비벼 끈다.

 

 

 

“상으로 선물을 주지.”

 

 

 

 

로슈는 자신이 피우던 담배갑에서 돛대를 건네었다.

 

 

 

“예술적이야.”

 

 

“...”

 


 

“죽여주는 맛이지.”

 

 

 

 

그레고르는 로슈가 건넨 담배 한 개비를 받았다.

 

로슈는 원하는 걸 얻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복도로 향하였다.

 

복도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비로소 가라앉은 이 버스에 지옥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아까 자신에게 담배를 받았던 히스클리프처럼.

 

그레고르는 로슈가 준 담배를 손에서 굴린다.

 

유품을 정리하듯 천천히 코에다 담배를 가져다가 냄새도 맡아 본다.

 

마침내, 실로 엄숙하게 그레고르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곤 좌석에 쭉 기대어 양 팔을 벌려 걸치고는 

 

고개도 뒤로 쭉 젖혀서

 

지나치게 낮아보이는 버스 천장을 바라본다.

 

빤다.

 

깊게.

 

그리고 더 깊게.

 

더욱. 깊이.

 

그레고르는 뱉지 않았다.

 

다만 담배연기가 새어 나올 뿐이다.

 

한 참이나 뒤에

 

그레고르는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별 거 없네.”

 

 

 

 

 

 







 

 

 

 

 

 

 

 

 

 

 

 

 

“히.스.클.리.프!”

 

 

“어...어어?”

 

 

“너, 그거 뭐야? 설마 그거...?”

 

 

나는 손에 쥔걸 급히 뒷춤으로 숨겼다.

 

하지만 자욱한 연기도 숨길 수 없다는 걸 

 

처음 이 일을 벌인 나는 몰랐다.

 

 

 

“히스! 너 설마 담배피니?”

 

 

“...”

 

 

“그래. 폈어.”

 

 

“니가 그런 짓을 하면, 잘못 걸리면 조세핀이나 우리 오빠가...”

 

 

“아버지 없는 날을 골라서 개패듯이 패겠지.”

 

 

“...”

 

 

“뭐, 그 자식한테 이르기라도 할 거야?”

 


 

“난 상관 안쓰니까. 너 알아서 해.”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나는 그녀가 실망한 얼굴로 가버렸으면 했다.

 

하지만.

 

하지만 그녀가.

 

그녀가 다가온다.

 

숨이 막힐 것처럼.

 

 

 

“남는 거 있어?”

 

 

“...?! 뭐?”

 

 

“나도 필래. 그러니까 남는 거 있음 줘.”

 

 

“뭐.뭐뭐뭐. 뭐라는거야 지금.”

 

 

“없어?”

 

 

 

그녀가 나를 쳐다본다.

 

가늘어지는 눈으로 나를 훑는다.

 

그녀는 살짝 혓바닥을 내보인다.

 

 

 

“그럼, 어쩔 수 없네.”

 

 

“그...그래... 이런 건..”

 

 

“네가 피던 거, 같이 나눠 피자.”

 

 

“뭣. 너너너. 너.”

 

 

“왜냐면, 히스가 하는 건, 나도 같이 하고 싶은 걸.”

 

 

 

그녀가 한 걸음 더.

 

나에게 다가왔다.

 

심장이 뛴다. 나는 미치고 말 것이다.

 

 

 

“뭐든지.”

 

 

 

한걸음 더 그녀가 다가온다.

 

아니. 이미 나는 미쳤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가깝다. 

 

그녀가 가깝다.

 

너무나도.

 

마침내 우리의 입술이 한 뼘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을 때.

 

그녀의 숨결이 내 입술에 닿았을 때,

 

뱀처럼 그녀의 손이 뻗어왔다.

 

 

 

“그러니까. 히스.”

 

 

그 손은 내 뒷 춤의 불을 더듬거며 찾기 시작한다.

 

 



“같이. 하자.”

 

 

 

 

 

“안돼!!!”

 

 

 

 

나는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그리곤 담배를 귀신들린 물건인 양 바닥에 내팽겨 치고

 

미친 사람처럼 발로 밟기 시작했다. 

 

 

 

“이런... 이런! 이런 거! 하면 안돼!”

 

 

“뭐하는 짓이야 히스?

 

 

“너는 이런 거 하면 안돼!!”

 

 

“무슨 말이야 그게.”

 

 

“네가 하면, 나도 하고 싶은걸”

 

 

 

게슴츠레 눈을 뜨며 

 

내 몸짓을 광대라도 되는 양 바라보며

 

잔잔히 웃음을 띄는 그녀에게

 

나는 공포마져 느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기쁘게 하는 광대로써,

 

더욱 크게 춤을 추었다.

 

 

 

“이거! 별로야! 맛! 없었어! 기침만! 나고! 이상하고! 이딴! 거! 안해도! 돼!”

 

 

 

담배가 형체도 남지 않을 때까지 밟아서 으스러진 꼴을 보고서야

 

헉헉대며 나는 멈췄다.

 

 

“못됐어.”

 

 

“왜 혼자 했어?”

 

 

“아... 그...”

 

 

“그러면 안돼.”

 

 

“미안해....”

 

 

“그게 다야?”

 

 

“어...?”

 

 

“그게 다냐고.”

 

 

“어어....?”

 

 

그녀가 입맛을 다시듯 혀를 돌리는 걸 보았다.

 

나는 저당 잡힌 빚쟁이처럼 마음이 급해졌다.

 


 

“오....오늘! 오늘은 니가 원하는거 해줄게!”

 

 

“응? 뭐라고?”

 

 

“오늘! 니가 원하는 거 뭐든지 해줄게!”

 

 

“어어~ '뭐.든.지'?”

 

 

“한....한가지만...”

 

 

“그래?”

 

 

“...”

 

 

그녀의 눈빛이 이리저리 구르다가.

 

방긋 웃으며 눈웃음을 내보일 때.

 

나는 마음속에서 많은 것을 결심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장면을 절대 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절대로.

 

 

그녀가 나의 손을 낚아챈다.

 

 

“그럼 놀러가자! 히스!”

 

 

“어? 그...그래!”

 

 

“시시콜콜한 조세핀의 수업도 빼먹고! 같이 노는거야!”

 

 

“어....? 그건...”

 

 

“안 해줄 거야?”

 

 

“아니! 아냐! 할게! 오늘은 '뭐든지' 해준다 했으니까!”

 

 

“히히히.”

 

 

 

기억한다.

 

그 날.

 

한참을 보랏빛 꽃이 핀 언덕을 굴러다니다가

 

문득 그녀가 나에게 건넨 말을.

 


 

“히스. 약속 하나 하자.”

 

 

“...또 뭘...”

 

 

“또라니 얘도 참.”

 

 

“네가 하는 건. 나도 같이 하는 거야.”

 

 

“왜냐면, 혼자 하면... 외롭잖아? 나는 히스랑 '뭐든지' 같이 하고 싶은 걸.”

 

 

“...”

 

 

 

내가 뭐라 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의 얼굴만이 기억난다.

 

환하게 웃어주던. 그녀의 얼굴만이 기억난다.

 

그 장면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앞일을 모두 까먹어버리곤 

 

그때 그녀의 환한 얼굴만으로 


내 모든 기억을 덧칠 했던 것이었다.

 

 

 


 

“...병신같이”

 

“'그 새끼'도 보나마나 이거 까먹었었구만. 안다면 그딴 짓거리 안 했을 텐데 말이지.”

 


 

“내가 지옥에 간다면 지옥 끝까지 쫒아올 여자를 두고, 그딴 짓거리를 하니까. 뻔했지.”

 

 










“진짜... 병신같이...”

 

 

 


히스클리프는 냅킨에 싼 담배를 만지작거린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그저 평소와 같이.

 

 

 

 

 

 

 

 

 

 

 

 

 

 

 

 

 

 

 

 


 

p.s.) 히스클리프는 어째서 담배를 피지 않을까요?

라는 생각에 잡혔습니다.

슬프게도 벌.양. 아저씨는 담배를 끊지 못하는데. 

유일하게 퐁그렉 아저씨만 담배를 피지 않더군요.

뭔가 슬퍼져서 글을 적어봅니다. 

 

참고로 저는 벌.양. 아저씨가 행복해졌음 좋겠습니다.

 

벌. 양.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런 글도 있답니다.

https://arca.live/b/lobotomycoperation/93381954?target=all&keyword=%EB%B0%94%EC%A7%93%EC%86%8D&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