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다년 간 수 많은 괴담을 봐오면서(채널 내에 올라오는 게시글을 안 읽은 것이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정리해온 생각들이 있는데 이는 한국과 일본의 괴담적 차이에 대한 연구이다. 한국과 일본은 괴담적으로 비슷한 요소들이 많지만, 과거에는 그 요소가 아주 명확하게 구분되어 왔다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괴담은 민간의 언어이다. 구전설화로서의 그 역할을 독톡히 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구전설화의 명맥을 잇고 있는 장르이다. 그 속에는 상류층이나 그 문화를 모르는 이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깊숙한 모습들이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포라는 요소는 세계 공통으로 존재하기에 우리는 괴담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단순한 '신화'와 '설화' 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비록 신화와 설화를 아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문화를 배워야만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우리가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서(情緖)'의 부분들에 존재한다는 장벽이 있다. 


배경지식이 없다면, 멕시코는 왜 인간을 옥수수가 빚어 만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일본의 아마테라스는 왜 동굴에 숨었는지, 주몽과 혁거세는 왜 알에서 태어났는지에 대한 그 '정서(情緖)'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괴담은 아니다. 우리는 일본의 문화를 모르더라도 매우 쉽게 정서를 파악할 수 있다. '키가 8척이나 되며 포-포-포 하고 우는 여성'이 기괴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미국의 문화를 모르더라도 '침대 밑에 숨어있는 미지의 존재'가 공포스럽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이렇듯 괴담은 만국공통의 정서를 담은 마당이면서 동시에 그 곳의 가장 국지적인 문화를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욕망, 두려움, 공포, 그리고 결핍. 각 문화의 귀신을 본다면 그 문화의 사람들이 어떤 존재를 무서워하고 이에 공포를 투영하고 투사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아주 단순하게는 일본의 특정 지역 괴담에서 등장하는 '조선인 귀신'들이나, 아이티 등 일부 지역의 '부두교 좀비'들을 예시로 들 수 있고, 동시에 더 복잡하게는 괴담은 주로 약자성이 있는 대상의 의외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의 괴담


문화적 차이를 알아보는 가장 대표적인 비교로 많은 교류가 이루어졌던 한일의 괴담을 들 수 있다.


흔히들 하는 말 중 하나로 한국과 일본의 귀신의 결정적 차이는 원(怨)한(恨)의 차이라고들 한다.


한국의 괴담은 한국인들 특유의 의 정서가 서려있어, 안타까운 과거를 지닌 귀신이 많아 그 귀신이 생긴 이유에 초점이 놓여 있다면 일본의 괴담은 알수 없는 공포의 의 정서가 서려있어 귀신, 요괴 등의 그 분노의 방향이 불특정적이고 변칙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크게 다르지 않을수도 있으며 실제로 오늘날 한국의 괴담들이 무섭지 않고 슬픈 이야기로 저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괴담에서 이가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원과 한은 딱 잘라 말하기에는 애매한 지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원과 한이라는 개념을 마냥 인정하기도 찝찝하지만, 마냥 부정하기에도 그러한 경향성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기에 여기서는 이에서 더 확실한 방향점을 두고자 한다. 먼저 한국의 귀신은 이러한 공통점을 어느정도 지니고 있다.


1. 시각적인 공포 이미지가 크지 않다

2, '정(靜)'적이다.

3 명확한 원인이 있다.

4. 귀신은 인간의 연장선이거나, 그 삶을 다룬다.



아랑, 억울하게 죽은 여성으로 귀신으로 나타나 밀양부사 이 상사에게 억울함을 토로한다. 이후 나비가 되어 자신을 살해한 이의 머리 위에 앉아 진실을 밝혔다.


두억시니 등 예외가 있긴하지만, 한국의 괴담은 정적인 괴담이 많다. 한국의 귀신들이 한의 정서가 서려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직접적으로,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인간을 해코지하려는 목적을 지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익숙한 한국의 귀신들을 보자. 그들은 대부분 시각적 공포에 기대지 않는다. 한국의 귀신들은 인간과 헷갈릴 정도로 그 외모가 단정하거나, 혹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장화홍련전에서 정동우 등 철산부사로 부임한 이들은 장화와 홍련을 보고 "네놈이 사람이냐 귀신이냐, 바른대로 고하라"라고 할 정도로 그 외모는 사람인지 귀신인지 헷갈렸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오늘날 장화홍련전의 원형이 된 것으로 추정하는 '밀양 아리랑'의 아랑(阿娘) 역시 '이 상사'가 처음 아랑을 보았을 때 "네가 도대체 귀신이냐, 사람이냐"라고 물은 것을 알 수 있다. 쉬운 예시로 '손각시(처녀귀신)', '몽달귀신(삼태귀신)', '달걀귀신' 모두 인간과 헷갈리는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죽은 이후에도 '혼인' 등 산 사람이 해야할 일에 집착하는 등 대부분, 산 사람과 같은 생을 살아가고 있다. 어둠을 구체화한 요괴인 '그슨대'와 인간의 심리적인 공포에서 근간하는 '어둑시니' 등 한국의 귀신들은 그 생성된 원인이 정확하고 대부분 '힘'이나 '폭력'을 위시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다기보다, 점점 커져서 깔린다거나, 본 사람은 시름시름 앓는다던가, 깜짝 놀래켜 사람이 죽는 등 어느정도 간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정적인 귀신들이라고 볼 수 있다. 


장자마리, 몸에 해초를 두른 뚱뚱한 도깨비. 풍요와 익살을 상징하고 두 마리가 모이면 성행위와 비슷한 행동을 하며 풍어를 기원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 한국의 귀신이나 요괴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삶을 은유 조차 아닌,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태풍에서 은유된 착착귀신, 인간에게 장난을 걸어오는 도깨비, 호랑이에게 죽어변한 창귀, 어미 없이 말라죽은 아이 새타니, 신나게 춤을 추는 장자마리, 제주도의 안타까운 삶이 담긴 이어도 등 한국의 귀신과 괴담들은 익살스럽고 음란하며 요사스럽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많다. 이 정서는 고려-조선 시대에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현대 시대 이후에도 이어져 한국의 괴담에서 등장하는 귀신들은 대부분 '1등이 되지 못한 걸 비관해서(콩콩콩 괴담)', '연예인이 되지 못해서', '산업재해의 피해자라서'와 같은 안타까운 사연들이 뒤를 이어붙으며 '잘 대해줬더니 사라졌다', '국화꽃을 올렸더니 시들지 않았다' 와 같이 그들이 현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같은 감정선과 같은 생애를 이어가고 있다는 말 등이 많다. 아주 대표적으로 자유로 귀신 역시 눈이 패여있는 등 어느정도 시각적인 공포에 기대는 면이 있긴 하지만 그가 사람이었다는 것은 명백히 알 수 있고, 직접적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뺑소니의 피해자라는 등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정적이고, 한적이며, 명확한 원인을 가지고 있는 귀신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정리하여 재미있게 비유하자면 한국의 귀신들은 직접적인 피해는 끼치지 않으며, 잘 나타나지도 않지만 외모가 큰 피해를 주며 우리 모두 두려워하는 존재인 한편 요사스러운 손님으로 취급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마치 돈벌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일본의 사례를 들어보자 일본의 괴담은 이러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 시각적인 공포가 강하다.

2, '동(動)'적이다.

3. 명확한 원인이 없는 재난에 가까운 존재이다.

4. 인간 이외의 존재가 더 많다.


슈텐도지, 키가 매우 크고 술을 좋아하는 오니, 오니의 두령급으로 여겨지며 오에산을 거점으로 살았으며 젊은 부인들을 납치해 칼로 잘라 먹어치웠다고도 한다.


자시키와라시 등 예외는 역시 있으나, 일본의 괴담은 동적인 존재가 많다. 키가 몇 척이 되는 거대한 오니인 '주탄동자(슈텐도지)', 거대한 거인 요괴인 '오오뉴도', 거대한 해골 요괴인 '가샤도쿠로' 등 시각적 충격이 크고 동적인 존재들이다. 한밤중에 길을 걷는 사람에게 날아와 목을 옥죄는 '잇탄모멘', 물 속에서 수영하는 사람의 혼을 빼가는 '갓파', 겨울철 사람을 얼려죽이려는 '유키온나' 등 아주 본격적으로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 만이 목적인 요괴들이 많다. 이들은 매우 역동적인 행태와, 직접 '폭력'과 '힘'을 동반한 공격을 하는 등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 다루듯 죽이고는 한다. 즉, 만나면 '토벌대' 등이 필요할 어쩔 도리가 없는 재해 수준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더불어 츠쿠모가미 등 너구리, 여우이 변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분명히 인간이 죽어서 만들어졌음에도 아예 우리의 상식 이외의 존재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가샤도쿠로,  전쟁에서 죽은 자들의 원혼이 모여 만들어졌다. 한밤중에 산자를 발견하면 으깨 죽여버린다.


당장 가샤도쿠로의 경우 전쟁에서 죽은 이들의 원혼이 모여 형성된 귀신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원혼 귀신들이 객체로 여겨지거나, 사람과 같은 삶을 유지하는 것과 다르게 가샤도쿠로라는 거대한 해골로 변해 위해를 가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즉, 일본의 귀신과 요괴는 '죽은 사람이 변한 모습' 이 아닌 '애초에 사람이 아니거나, 사람이 아니게 됨' 에 가깝다. 또 한편으로 '잇탄모멘' 등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조차 파악할 수 없고 서사 조차 부여되지 않은 재난에 가까운 존재들이 많다는 공통점도 존재한다. 이 정서 역시 현대에도 이어져서 '쿠네쿠네'나 2ch의 스레드 '리얼', '원숭이 꿈' 등에 등장하는 존재 등 처럼 설명할 수 없는 악의나 재난에 가까운 인외적 존재로 여겨지는 귀신들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정리하여 돈벌레에 맞춰 비유하자면, 일본의 귀신들은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며, 매우 역동적이고 무조건적인 악이자 재해수준으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마치 바퀴벌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일본과 한국의 변화


어린이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 시리즈'에 나오는 빨간마스크. 최대한 안 무서운 사진을 가져오려 노력했습니다.


앞서 일본과 한국의 정서적 차이는 현대에도 이어져오고 있다고 설명했으나, 동시에 이는 변주를 주기도 한다. 본디 문화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그 양상과 기존의 방향에 따라 오히려 정 반대로 꺾이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이 현상을 보여주는 귀신이 바로 '빨간 마스크'이다. 같은 괴담에서 출발한 빨간 마스크 괴담은 일본에서는 '입이 찢어진 여성(口裂け女)'이 기후현에서 그 발상을 추측할 수 있다. 기후현의 괴담은 밤길을 걷고 있으면 입이 찢어진 여성에게 습격당한다는 전형적인 도시괴담에서 출발해, 입이 찢어진 여성이 질문을 통해 사람을 죽인다는 괴담으로 발전했다.


이야기의 원형인 일본의 괴담은 기존의 일본 요괴 및 괴담과 큰 차이를 볼 수 있는데, 먼저 일본 특유의 동적인 괴담이 아닌 정적인 괴담이다. 입이 찢어진 여자는 역동적인 괴인도, 요괴도 아니며 그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인간이다. 물론 이후 빠른 속도 등이 추가되며 변형된 바가 있으나(나무위키 등에서는 빠른 속도가 한국 빨간마스크 괴담이라 추측하나, 빠른 속도 자체는 일본 괴담에서도 존재했다.), 기존의 일본 괴담 중에서는 '로쿠로쿠비' 정도와 그나마 유사한 명백히 사람에서 근간하는 귀신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본디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을 덜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반대로 사람은 접하지 못한 것을 본능적으로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즉, 일본적 요소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기존의 일본 괴담과 양상의 차이를 보였던 '입이 찢어진 여자' 괴담은 당대 일본의 초등학생들에게 더 무섭게 느껴졌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빨간색 마스크', '아파트 높이의 여성', '모두 다른 색깔의 마스크들' 등의 괴기스러운 괴인 수준으로 묘사되는 '빨간 마스크'는 애초에 귀신을 정적이고 인간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던 전통적인 한국의 괴담들과 다소 다르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두억시니 등 일부거나 소실되었던 동적이고 괴인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일본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었던 빨간 마스크의 행동은 원념을 해결할 방법도 없으며, 그 원념이 불특정 다수에게 향하는 매우 악의적인 원념이고, 용모도 특이하고 강렬하며 그렇다고 도깨비나 구렁이도 아닌 말 그대로 기존의 한국 괴담에서는 그 형태가 적었던 '괴인' 이다. 또한 당대 토요미스테리나 전설의고향에서 묘사되는 사연 있는 구미호, 처녀귀신 등과도 그 모양새가 완전히 달랐으니 이는 당대의 학생들 사이에서 공포거나 문화로 새롭게 다가왔을 것이다. 


물론 두 나라 모두 살과 살이 붙어 '포마드', '사탕', '혈액형' 등 아주 전형적인 괴담이 망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였으나, 이는 기존 양 국 괴담과 다른 양상으로 유행한 지점이 존재했었다는 예시로 쓰이기에 충분하다.


이 변화의 양상은 괴담미스터리 채널은 물론, 한국에서 무당이 나오면 산통이 깨진다, 사연이 나오면 산통이 깨진다 등으로 반응하는 것으로도 증명할 수있다. 우리가 봐왔던 '고루한' 괴담들에 대한 반감이며 '클리셰'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결론


이는 모든 귀신과 괴담이 이렇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도, 강요하고 싶은 내용도 아니며 전술했듯 한국의 두억시니, 일본의 자시키와라시 등 반례는 충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괴담의 대부분은 귀신 등 괴기스러운 존재를 인간, 삶의 연장선에서 해석해왔다는 것과 일본의 괴담의 대부분은 괴기스러운 존재를 인간 외적 존재로 해석해왔다는 차이점에 대한 개인적인 주장을 나열해 보았다. 한국의 괴담은 '인간이었기에' 덜 무서운 것이 아니다. 한국의 괴담은, 인간이었던 것의 연장선에서 공포심을 자아하고 있다. 오히려 더욱 더 일상적인 공포를 추구하고, 삶과 더욱 밀착한 공포를 말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일본의 괴담들이 원한에 서려있는 것이 숱했던 전쟁과 재난으로 인한 비극이라고 한다. 비단 틀린 분석이 아닐수도 있으나 전쟁, 빈곤, 기아, 요절, 차별, 빈익빈부익부 등등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비극들이 첨예하게 붙어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서민들의 삶과 희노애락을 더욱 가까이서 담고 있는 한국의 괴담이 일본보다 특별히 비극이 아닐 수 있을까? 나는 문화적으로 더 무서운 괴담과 문화적으로 덜 무서운 괴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삶을 담고 모든 감정의 공포를 건드리는 모든 괴담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문화적 양상이다. 한국과 일본의 흥미로운 괴담적 차이 역시 이러한 문화의 집대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서 없는 긴 글을 읽어주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