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독자들은 여성 작가의 소설만 읽는다.


 비슷한 현상이 미국에도 있는거같더라.

 독자들이 여성 작가 작품을 찾는 현상에 대해 리타 펠스키(미국 문학비평가/페미니즘 문학 연구가)는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이 문학적/예술적으로 뛰어나다는 믿음이 독자들에게 있다'라고 분석한 적이 있음. 똑같은 작가가 쓴 비슷한 퀄리티의 작품이라 해도 필명을 남성스럽게 내느냐, 여성스럽게 내느냐에 따라 독자의 감상 자체가 달라져버린다는 거.


 여성적인 필명을 쓸 경우 독자는 더욱 더 깊이 작품을 탐구하고 문학성을 발굴하려 애씀.

 하지만 남성적인 필명일 경우에는 적당히 읽고 치워버림. 


 필명이 여성스러우면 실제보다 고평가되기 쉽고, 남성스러우면 저평가되기 쉬운거지.

 이는 한가지 잣대로 독서를 하는게 아니라 작가의 성별에 따라 작품을 감상하는 법을 바꾼다는 뜻임.




 여성작가가 썼을 경우 작품이 고평가되는 경향.

 이 경향에 대해 리타 펠스키는 상당히 비판적임(다시 말하지만 이 사람은 페미니즘 문학이론의 권위자임).


 리타 펠스키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진다.


 남성 작가들이 쓴 글에는 '여성의 진실된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인가?

 그렇게 단정짓기에는 반례가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그녀의 말을 풀이해보면 이런 이야기가 된다.


 역사 속 수많은 남성 문호들이 썼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 그 여성인물들의 심리에 공감하면서 자신 또한 그녀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이렇게 행동했을거라 생각한 적은 없는가? 남성 작가가 만든 여성 캐릭터에 전혀 공감할 수 없고 이해도 할 수 없다면 그건 그 사람이 문학을 이해할 역량이 다소 부족한거 아닌가? 근현대의 뛰어난 여성소설가들 중에서는 남성소설가의 영향을 받아 소설을 쓴 작가도 많다. 남성소설가의 영향이 여성혐오적이라면 그들을 본받은 근현대의 모든 여성소설가들은 여성혐오를 내재한 문학을 해왔다는 말인가? 이러면 페미니즘 문학이란게 뭐가 남는가? 


 페미니스트는 대체 어떤 기준으로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을 구분해야 한단 말인가?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생생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문학작품임에도 남성이 썼다는 이유로 호평할 수 없다면, 그건 결국 여성이 썼느냐, 아니냐가 작품성을 가르는 모든 것이 되어버린다는 뜻이 아닌가? 이게 맞나. 작품의 내용을 보고 평가하는게 아니라 작가의 성별을 보고 평가하는 이게 정말 맞다고 생각하는가?


 리타 펠스키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저렇게까지 말한건 아닌데 온갖 뛰어난 남성작가 소설을 반례로 가져오면서 '작가의 성별은 작품성과 관계없다'를 외치는걸 보면 저렇게 대놓고 말하고 싶은거 맞는듯.


 여기에 더해서 리타 펠스키는 '남자 독자들은 그렇게 안읽어!'도 시전한다.

 펠스키의 주장에 따르면 남성 독자들은 작가가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이 별로 안바뀐다고 한다. 이런 것이 과학적으로 측정된 건 없지만,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라고 했을 경우 여자가 주인공이라고 작품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거. 여성 등장인물의 심리를 여성 못지 않게 파악하고 때때로는 더 정교한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남성은 작가의 성별도, 주인공의 성별도 신경쓰지 않는다.

 여성은 작가의 성별도, 주인공의 성별도 신경쓴다.


 그 결과 문학은 작가의 필명도 여성화되었고(남성작가 상당수가 여성필명을 씀), 주인공도 여성이 많아지는 경향으로 바뀌었다.

 문학의 주체가 여성이 된 것이다. 이러면 여성에게 좋은거 아닌가.


 리타 펠스키는 이건 좋지 않다고 말한다.

 이러한 흐름 위에서 보이는 문학 속의 여성이란건 결국 '페미니즘 사상'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영웅적 여성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그건 진짜 여성의 모습에서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페미니스트들은 말한다.

 남성작가들이 쓴 소설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는 여성혐오적이라고.


 리타 펠스키는 여성혐오 낙인이 찍힌 캐릭터에 대해 너무 온건한 예제만 다루니 좀 더 극단적인 예제도 끌어와보자. (원래 리타 펠스키는 톨스토이 같은 클래식 소설 중에서 여성혐오적이라 비판받는 여성캐릭터들을 끌어왔다. 아래 예제는 내가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현대적으로 바꾼거)


 코노스바에 나오는 다크니스는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음탕한 생각만 하는 여자다. 

 농림의 바이오 스즈키는 낮에는 열심히 공부하지만 밤에는 남몰래 BL을 쓰는 부녀자다.

 하루히는 미쿠루에게 음습한 질투심을 품고 왕따를 조장하는 여자다.


 전부 우스꽝스럽고 추하게 묘사되는 여성 캐릭터들이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여성은 실제 여성의 모습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허구인가?

 남성들의 망상에서만 존재하는 날조된 여성의 모습일 뿐인가?


 리타 펠스키는 이러한 것들 또한 여성의 진실된 모습 중 하나이고, 문학에서 다뤄야 할 주제라고 말한다. 이런 것들이 여성의 전부라고 말하면 그야 당연히 말도 안되는거지만, 여성에게 이런 모습도 존재한다는건 여성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여성 독자들이 남성 작가들의 작품을 거부하는 이유.

 그건 아마 남성 작가들이 그런 우스꽝스럽고 추한 여성의 모습을 잘 포착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 적나라한 여성 캐릭터 또한 여성의 진실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안전한 여성 작가 소설로 도피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막짤은 '우정, 노력, 능욕'의 왕도 BL을 추구하는 대작가 바이오 스즈키 선생으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