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미챈을 보다 보면 가끔 "왜 괴담에 무당이나 스님이 귀신을 퇴치하는 이야기는 많은데 기독교 성직자가 퇴치하는 내용은 없냐"고 의문을 갖는 글을 자주 봄. 따지고 보면 걍 한국이 기독교 문화권이 아니었으니까 전통 설화로 무속이나 불교 이야기가 많이 남는게 당연할거임


기독교는 서양의 전통 종교고 아마 서양권에선 프랑스나 이탈리아 시골에 가면 지역의 영험한 사제가 귀신을 퇴치했다는 설화를 어쩌면 찾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


근데 그거 말고도 이게 꽤 흥미로운 소재인거 같아서 좀 더 길게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풀어보려 함 


1. 한국 괴담에 기독교 성직자가 귀신을 퇴치하는 이야기가 없는 이유


일단 지금은 기독교가 굉장히 비과학적이고 고집 센 종교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땐 그게 나름 선진 문물이어라서 그런거


구한말에 서양 선교사들이 교육자 겸 의사 겸 하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이 사람들이 전도만 하고 끝인게 아니라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고 하면서 나름 서양의 선진적인 문물을 소개하고 했었음. 그래서 기독교라는 게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근대화로 가는 진입 루트로 여겨졌지. 50년대 분단 이후부턴 한국이 친미국가가 되면서 미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루트이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무당 푸닥거리 같은 미신을 극복하고 합리적인 세상으로 가는 길처럼 받아들여짐. 아마 교회 오래 다녀 본 사람은 이게 무슨 정서인지 알텐데, 예전에 80년대에 골수신자들이 단군상 목 베고 시골에 있는 장승 같은거 뽑아내고 많이 했었어. 그게 그들 나름대로 미신 타파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길이라 생각해서 그런거


2. 기독교에는 귀신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가



서양권에서도 기독교 이전 고대사회에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음.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만 해도 죽은 자의 영혼이 귀신이 되어 나타났다는 식의 설화가 많았음. 그리고 고대에는 일종의 무당, 영매 격인 사람이 강령술을 통해 죽은 사람의 영혼을 지하세계에서 불러와 예언을 듣는 다는 이야기도 많았음...


근데 이게 기독교의 세계관과 많이 안 맞았지. 그래서 중세 초에 기독교 사상가들이 귀신의 개념을 많이 바꿔놓았음. 쉽게 말해서 귀신은 죽은 자의 영혼이 아니라, 그냥 지옥의 악령 같은거라는거 


예를 들어 고대 로마에는 라르바(larva)라는 개념이 있었음. 무덤을 잃고 방황하는 망령을 뜻하는 건데, 이게 중세 기독교 시대를 거치면서 '악령의 가면' 같은 걸 의미하는 걸로 변하게 됨


또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 온다는 고대 로마의 강령술은 중세엔 흑마술이나 악령소환술 같은 걸로 의미가 바뀜


그리고 아예 교회에서 강령술을 법으로 금지시키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죽은 사람을 불러온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악마를 불러오는 사악한 행위라서 그랬다고... 그래서 서양권에선 퇴마가 원혼을 성불시키는 게 아니라 악마를 퇴치하는거였음


거꾸로 천사가 환시를 통해서 죽은 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존재가 계시를 보여줄 수 있다는 논리도 있었음. 다만 이건 진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그냥 이미지 같은거지.


기독교 사상가들이 굳이 이렇게 해야 했던 이유는 대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이 죽으면 사후 심판을 받아야지 어정쩡하게 지상에 맴도는 게 교리에도 안 맞고 신의 권능을 깎아내리게 되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강령술 같은 거로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게 일종의 '지방방송'처럼 성경이 아닌 다른 초자연적 존재의 권위를 인정하게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필히 막아야 했던거


중세 초 기독교 사상가들이 그래서 말 안 듣는 서부북부유럽 무당들 다그친다고 고생 좀 했다더라


3. 그래서 서양권에서 귀신은 전부 다 악령이나 환시인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햄릿을 보면, 햄릿왕자 앞에 죽은 부왕의 혼령이 나타나는데, 이게 악령이 부왕의 모습으로 나타나 수작을 부리는건지, 아님 진짜 죽은 아버지가 원혼으로 나타나 호소하는 건지 답을 내리지 못해 고뇌하는 장면이 나옴. 

심지어 이 작품 끝날때까지 뭐라고 명확한 답이 안 나옴... 셰익스피어가 나폴리탄 괴담 써도 잘 썼을거 같어


사실 죽은 이의 영혼이 귀신이 되어 지상에 다시 나타난다는 믿음은 전 세계 보편적인 거고 중세 초에 기독교 사상가들이 암만 애써도 그 시대 사람들이 전통적인 세계관을 완전히 극복하지도 못함


솔직히 기독교 철학자들이 쓴 책 보면 뒤지게 어려워서 이걸 글 모르는 무지렁이 농민들이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들었을거 같네


서양에서도 시대가 지나면서 거꾸로 기독교 사제들이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나타났다는 식의 괴담(?)을 이용하기도 했다고 함. 당연히 굉장히 도덕적인 교훈이 담긴 얘기가 많았지... 


죽은 친지가 귀신이 되어 꿈에서 나타나거나 환시로 나타났는데, 생전에 악하게 살다가 지금 지옥에서 벌받는 중이라고, 잠깐 악마가 휴가를 줘서 지옥에서 나온 상태라면서 울부짖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음. 그니까 교회 잘다니고 착하게 살라고ㅇㅇ


물론 이런 답답한 이야기 말고도 우리처럼 시대, 문화를 떠나서 괴담 호러물에 환장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지. 중세 유럽도 마찬가지라서 별 무서운 괴담 같은거를 많이 만들었음




15세기 쯤에 '헬레퀴누스 일당(mesnie Hellequin)'이라는 소재가 유행했음... 

대충 그 시대의 호러물 필수요소 같은거. 헬레퀴누스가 뭐냐면 기독교식 악령이랑, 그냥 전통적인 망자들이 뒤섞인 무리같은 거.... 


그니까 지옥의 악령, 마귀들이 지옥의 섬뜩한 짐승들과 지옥에 가야 할 죽은 망자들을 이끌고 어딘가로 가고 있는 건데 한밤 중에 이런 무리를 우연히 목격했다는 식의 썰이 유행했었음


아마 서양권에선 이런거 처럼 기독교에 대한 독실함 여부를 떠나서 악령과 망자 개념이 뒤섞여서 존재했던거 같어


4. 서양에서 귀신은 물질적인 존재인가 비물질적인 존재인가


동양에선 귀신이 비물질적인 혼령이고, 서양에선 물리적 실체를 가진 괴물 같은거다... 는 식의 구분이 익숙할 텐데 사실 서양에서도 비물질적으로 그려지는 귀신이 있고, 물질적으로 그려지는 귀신이 있음


두 가지 관념이 동시에 뒤섞여서 존재했는데, 중세가 끝나고 근대 합리주의 과학시대 들어올 때까지 확실하게 결론을 못 내린 상태로 이어진거 같네


단순하게 말하자면, 기독교 이전 고대 서양에선 그리스-로마권은 비물질적인 귀신이 우세했고, 게르만 북유럽 쪽은 물질적인 귀신이 우세했던거 같음



로마시대의 유령은 라틴어로 'simulacrum'라고 하는데, 죽은 자의 비물질적인 형상 같은 걸로 여겨짐. 로마 때 루크레티우스라는 시인 겸 철학자가 살았는데 이 사람은 사람의 육체가 매미라면, 영혼은 매미의 허물 비슷한거라고 표현함


로마 때 귀신은 불길하게 죽은 자의 유령이었고, 말그대로 원한을 가지고 나타나 공포를 주는 존재였음.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귀신이랑 거의 똑같네



반면에 게르만 신화에는 '드라우그(draugr)'라는 게 있었는데 이건 산송장에 가까운 존재임. 죽음에서 다시 일어난 존재인데 생전의 육체를 다시 갖고 나타나서 산 사람을 해침. 게임 같은데 소재로 자주 쓰여서 아마 많이 봤을거야


서양 고대 시대부터 저렇게 물질적 귀신, 비물질적 귀신이 다 있었고 둘 다 서양 문화 내에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줬을거임. 그래서 중세 때도 시대나 장소, 귀신 본 썰 푸는 놈 가치관에 따라 여러가지 형태로 귀신이 있었음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서양 귀신이 딱 잘라 이렇다 단언하긴 힘듬

기독교 성향이 강하다면 망자의 영혼 같은거 보단 악령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그마저도 항상 그랬던건 아니고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망자의 영혼 개념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았음. 그래서 헐리우드 호러영화 같은 거 봐도 기독교식 악령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고, 죽은 사람 영혼이 빙의되었다는 경우도 있고, 좀비물처럼 죽은 사람의 육신이 힘을 얻어 다시 움직인다는 경우도 있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