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맨날 불침번 서는 기분이네..."

나는 흉측한 그림이 그려진 담배들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군대에서 전역한 뒤 뭐라도 해야겠다며 시작한 편의점 알바.

군 생활 동안도 잠 못자는 건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사회 나와서 이 짓을 또 할 줄은 몰랐다.

지루하고 또 지루한 새벽의 편의점. 금방 후회하긴 하지만 진상손님이라도 와 주기를 바라는 몇 시간.

이럴 줄 알았으면 출근 전에 유튜브를 안 보는 건데. 이미 다 봐버린 영상들의 썸내일을 의미도 없이 손가락으로 훑어본다.


[딸랑 딸랑]

"어서오세요"

"....."

오랜만에 들어온 손님은 아주 마른 채형의 안경을 쓴 여자였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안경 너머로 비친 눈빛은 아주 피곤해 보였다.

"저.. 담배..."

"네?"

"담배.. 하나 주세요..."

보통의 손님들은 '맨날 피던 거' 라고 는 해도 그냥 담배 라고는 하지 않는데... 혹시 미자인가?

"신분증 보여주세요."

"......없는데....요..."

"네?"

"...."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거... 딱 잡았네.

"신분증이 없으시면 담배 구입은 불가 하십니다. 손님."

"....집에 다녀올게요."

"네"


[딸랑 딸랑]


'집에 있다고 하면 믿어줄까봐?'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러나 잠시 후


[딸랑 딸랑]


"어서오.....어.. 오셨네요?"

"......여기요."

"네.."

그녀는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굳이 얼굴을 대조해 볼 필요도 없다.

"여기 손가락 대주실레요?"

"....."

그녀는 말 없이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자신감 없는 동작을 보니 분명...

"....어?"

"왜...요?"

"아.. 아니에요"

의외로 그녀의 주민등록증이 맞았다. 나는 생각과 다른 전개에 잠시 당황했다.

"........담배.. 팔거죠...?"

"아.. 네.."

"......."

".......무슨 담배 드릴까요?"

".....아무 거나요."

나는 의아해 하면서도 이참에 재고나 털자는 생각에 제일 안 팔리는 담배를 꺼내 그녀에게 건냈다.

"4500원 입니다."

"...."

그녀는 말 없이 카드를 내밀었다.


"네 카드 받았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신분증과 카드, 그리고 담배를 건내주며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네"

그녀는 건내받은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넣고는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나의 시선은 무의식 중에 그녀를 쫒았고. 시선은 편의점 창 밖에 머물렀다.

그녀가 편의점 앞의 탁자에 앉아 담배를 꺼내어 보고 있었다.

그녀는 담배를 한참 쳐다보더니 편의점으로 다시 들어왔다.


[딸랑 딸랑]


"어서오세요."

".....라이터.. 주세요.."

"네."

그런 거였나. 나는 라이터를 계산 해주었다. 왠지 그녀가 담배를 원래는 피우지 않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담배 안 피워 보셨죠?"

"........"

안 피우는 구나

"왜 피우시려고요? 담배 피우면 빨리 죽는데?"
나는 농담조로 그녀에게 말 했다.

"......"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카운터에 놓인 라이터를 보고 있었다.

'실수였나..'

살면서 여자친구 한번 없었던 내가 여자한테 농담을 하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지.. 라고 생각하며 말을 돌리려 했다.

"저.. 라이터 계산..."

"지금 죽을 거니까... 피워도... 상관 없지 않을까요.."

"....네?"

큰일이다. 라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이 죽는다는 이야기를 한 다는 건 분명 쉬이 넘길 일은 아니니까.

"저.. 그.. 자.. 자살...하신다고요?"

".....네"

"아..아니... 왜요?"

"......."

어.. 이건 아니었나...?

"왜 살아야 하는 데요?"

그녀는 내게 되물었다.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어.. 그러니까.. "

"....."

그녀가 처음으로 내 눈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슬프고 또 슬픈 눈빛이었다. 나는 무엇인가 반드시 답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다.

"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분명 슬퍼할태니까요!"

"........"

"......."

너무 구린 대답이었나...?

"...저를.. 사랑하는.. 사람.. 없어요.."

"네..?"

"......아무도 저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은... 이제 없어요.."

".........."

그녀는 지금까지 그랬 듯 힘 없는 어조였지만. 확신이 느껴지게 말 했다. 

"저...제가 있잖아요?!"

나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지도 모르고 짓걸였다.

"......뭐라고요?"

아.. 또.. 잘 못 말 한 것 같은데..

"...정말...정말이에요...?"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환희로 빛나는 것이 보였다. 이 얼굴을 보고 어떻게 실수였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아....네...."

"헤에...."

".....?"

"헤헤....그럼.. 우리집.. 우리집 가요!"

그녀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신이 난 듯한. 아니.. 그보다 더한 무엇인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네..?"

"안...돼요...?"

그녀는 다시 슬픈 눈으로 돌아가 나를 올려다 보았다. 나는 그 눈빛에 잔인해 질 수가 없었다.

"그.. 아직 근무 시간이니까..요..."

"그러면 그러면!! 끝나면 같이 가는 거죠?! 네?!"

"아....네...."

"히히....헤헷... 저 .. 그럼 기다릴게요. 어디서 기다릴까요?"

"어.... 그게..."
"옆에 서 있어도 되요?"

"아...네..."

그녀의 기세에 눌려 나도 모르게 그렇다고 답 해버렸다.

"히히..."

그녀는 웃으며 카운터를 돌아 내 옆에 찰싹 붙어 섰다.

"저.."

"왜요?"

그녀는 내 팔을 붙잡고 웃으며 올려다 보았다. 여자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너무 자극적인 상황이었다.

"너무.. 가까운....데..."

"........"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사랑한다면서..."

".....네?"

"사랑한다면서...요..."

그녀가 내 팔을 강하게 쥐었다.

"이런 거 사랑하면.. 하는 거 잖아요....."

"..."

"이런 거 안 하면.. 사랑 안 하는 건데.... 나 사랑 안 하면.. 나 살 이유가.. 없는데...."

그녀는 마치 자신의 목숨을 인질로 잡은 듯 이야기했다. 잔인한 이야기를 들은 것 처럼 등 허리에 전율이 흘렀다.

"...미안해요.. 해도 되요..."

"..... 네!"

그녀는 다시 웃으며 내 팔을 끌어 안았다.


그리고 그렇게 근무 시간이 지났다.


[딸랑 딸랑]

"어... 왔냐?"

"네 형 근데.. 누구에요?"

"아.. 그게..."

"여자친구에요."

나는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자기야 빨리 가자.. 나 급해... "

"....."

"아 ㅋㅋ 형. 여친 있으면 말 하지. 내가 일찍 깨서라도 오는 건데 ㅋㅋ"

"헤헤..."
"....수고해라"

"응~ 축하해!"

나는 응원을 받으며 그녀와 함께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

정말 가야 하는 걸까..?

"자기야~ 빨리 가자~ 나 졸리다~"

그녀는 나를 자연스럽게 자기라고 부르며 내 팔을 끌었다. 뭔가.. 뭔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이 사람 손을 뿌리치면.. 아마.. 이 사람은....

그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그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 있자나~ 자기한테 꼭 보여주고 싶은 거 있다?"

"......뭔데요..?"

"엥? 왜 존댓말? 무리 그런 사이 아니잖아~ 나 섭섭해"

그녀는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치 발랄하고 애교 많은 여자친구를 연기하듯 행동했다.

그 모습에 압도되어 나도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게 되었다.


"......어.. 미안.."

"히히.. 하아.. 행복해...."

그녀는 웃고있었다.


그녀의 집은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그녀는 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더니 내게 말했다.

"자기야. 이거 써봐."

"안대?"

"응! 깜짝 선물이니까!"

"......어 그래."

나는 그녀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주기로 했다.

나는 눈을 감고 그녀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있으니 다른 감각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그녀의 손이 닿아있는 손의 감각. 지금도 신난 듯 재잘거리는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왜 인지 익숙한.. 냄새....?


"이제 눈 떠도 돼!"

그녀는 나의 안대를 벗기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 눈을 떴다. 그리고. 눈에 비친 건.....................................

내....방...?

"히히.. 놀랐지?"

아니.. 내 방이 아니다... 하지만 이 구조.. 내가 어제 먹고 책상 위에 올려둔 물 컵까지.. 똑같다..

"이.. 이게.. 뭐야...?"

"자기 방이랑 똑같지?"
의도 했다는 거야?

"아니.. 어떻게...?"

"응? 자기 핸드폰으로 다 봤지! 컴퓨터랑!"

"....."

"자기도 참.. 어플같은 거 함부로 받으면 안되지~ 내가 보낸 거니까 망정이지!"

"어?"

"너무 좋았어~ 자기는 항상 핸드폰을 두고 다니지 않으니까? 언제 자기가 뭘 하는지 뭘 먹는지 다 알 수 있구~"

무섭다.

"특히.. 자기 혼자 할때... 나도 같이 했어... "

도망치고 싶다.

"아아.. 나한테 한 마디만 해주면 전부 해줄 탠데.. 너무 아쉬웠다구!"

"어...어떻게..."

"어떻게?"

"...."

"어떡하긴~ 자기 물건을 하나 하나 몰래 바꿔치기 한 거지!"

"......"

"엄청 힘들었어... 특히 저 이불.. 옮기는 내내 자기 냄새가 너무 좋아서.. 몇번이고 갈번 했는데 참고 겨우 옮겼잖아.."

"....."

"나 오늘을 얼마나 기대했는지 몰라.. 자기를 처음 봤을때.. 나 알아버렸어.. 이게 사랑이구나! 하고.."

이런 게 사랑일 리 없어.
"그래서 그날부터.. 차근차근.. 자기가 언제 와도 잘 지낼 수 있게 준비했어.. 나 잘했지!"

".......집에 갈래..."

"......응? 무슨 소리야 여기가 자기 집이잖아. 자기가 덮고 자던 이불. 어제 쓴 물 컵. 어제 저녁에 자기가 싼 정액이 묻은 휴지까지 있는데.. 여기가 자기 집이잖아?"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중요한 무엇인가가 죽어있었다.

이곳에 계속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 없이 몸을 돌려 뛰려 했다.

"안돼!!!"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를 찢을 듯 날카롭게 울렸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멈추지 않고 뛰어 현관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철컥 철컥]

문이 열리지 않는다.


"........랄까나....? 헤헤.."

그녀가 내 뒤에서 웃기 시작했다.

"헤헤.. 우리 자기는.. 너무 단순하다니까~ 그랬다가는 나쁜 사람한테 잡혀간다구~ 누가 자살한다고 해도.. 말리려고 한다거나.. 따라 간다거나.. 그러면 안되지~"

"....."

순간 다리가 풀려버려 자리에 주저 앉았다.

"히히...헤헤..헤헤헤... 나는 그런데~ 자기를 너~무 사랑하니까..... 그러니까.. 다 안단말이야... 자기가.. 어떻게 할까...? 하고? 하루 종일 생각하니까.. 그러니까..히히... 다 알아버려..."

그녀는 주저앉은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행복하게 살자?"


나는 그 순간 도망을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