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급격히 밀덕이 되면서 궁금한 게 생겼다.


참 많은 주변인들이 겜창인생을 살면서 게임 관련 용어를 막 말하는데


"탱커"라는 단어가 유독 귀에 익었다.


그래서 평소에 하지도 않던 게임 몇 개를 둘러보고 나서 "탱커"가 뭔지 대충 감을 잡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게 진짜 탱크가 하는 역할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탱크는 탱커일까? 한번 알아보자.




일단 처음으로 알아봐야 하는 것은 과연 탱크가 실제로 수행하는 역할이 무엇이냐이다. 탱크 전력의 유래를 알기 위해서는 1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최신형 무기인 기관총이 대량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이 기관총으로부터 병력을 지키기 위해 땅을 파고 들어가 있다가 공격하는 "참호전"이 1차 세계대전의 주된 양상이었다. 기관총이 낳은 가장 큰 변화는 이전까지 전장을 지배했던 기병의 도태를 낳았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빠르고 강한 기병이라도 총탄을 글자 그대로 "끼얹듯이" 갈겨대는 기관총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총기가 나온 뒤로도 많이 쓰였던 기병은 1차 세계대전을 기하여 전장에서 완전히 도태되었고, 말은 보급이나 운송에서나 쓰이게 된다.(하지만 정찰이나 야습 등에서는 여전히 종종 쓰였기 때문에 2차 대전의 군대도 기병을 아예 없애지는 않았다)


그 결과 이제까지 사용되던 전술의 기본이 흔들려버린다. 이제까지의 전쟁은 장창보병(총기가 나온 뒤로는 전열보병)이 적군을 맞아서 싸우며 버티는 동안, 빠르게 움직이는 기병이 적군을 우회하여 후방을 치고 보급을 끊은 후 포위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이제 기병을 쓸 수 없게 되었고 남은 것은 보병뿐이었다. 그래서 양측 군대는 보병들끼리만 교착하면서 끊임없이 물자를 소모하는 지루한 교착 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이것이 바로 1차 대전 최악의 지옥이었던 참호전의 발단이었다.


참호전으로 접어들면서 병사와 장군들 모두가 심하게 지치게 된다. 병사들은 제대로 진격하지도 못하고 참호 안에 눌러앉아 비가 고인 웅덩이를 밟고 다니며 기생충과 파리가 들끓는 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교착상태를 타파하고자 영국에서 재미있는 발상을 해낸다.


그리고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바로 탱크였다. 그러나 이 때 만들어진 탱크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탱크와는 약간 달랐다. 화력이나 방어력이 아니라 철저하게 "적 참호를 깔아뭉개고 지나가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때 영국은 기밀유지를 위해 이 신병기를 물탱크라고 연막을 쳤고, 이후 탱크라는 별명이 붙는 계기가 된다.


이 때문에 이 당시 만들어진 탱크들은 방어력이 형편없었다. 소총탄 정도는 막아낼 수 있었지만 조금 구경이 큰 포로 쏘면 여지없이 두부처럼 뚫렸다. 어차피 방어력은 중요하지 않았고, 무조건 밀어붙여서 참호를 무너뜨리는 게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보고 영국의 라이벌인 프랑스는 더 훌륭한 생각을 해낸다.


그리고 그 결과, 프랑스는 역사상 최초로 선회형 포탑과 후방 엔진 구조를 도입한 경전차, 르노 전차를 만들어낸다. 현대형 전차는 이 르노 전차에 대부분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현대형 전차 운용의 교리는 나치 독일이 완성시켰다. 나치는 자신들의 신형 전차에 두꺼운 장갑과 효과적인 무선을 장착하였는데, 이는 당시 나치 독일의 기갑전의 대가였던 하인츠 구데리안이 구상한 임무형 지휘체계 때문이었다.


나치 독일의 구상에 의해 만들어진 전차들은 웬만한 포격이나 총격은 우습게 씹고 짓밟으면서 진격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런 방식의 전차가 만들어지고는 있었지만, 나치만큼 기갑 전력을 전쟁 초기부터 효율적으로 사용한 국가는 없었다.


그 대표적인 예시는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 구상한 프랑스 침공 작전인 낫질 작전이었다.


2차대전 이후 70년을 뛰어넘어 현대전으로 돌아와 보자. 전차는 물론 공중전력(전투기, 폭격기), 그리고 미사일 전력(지대지 미사일, 공대공 미사일) 등이 비약적인 발달을 이룬 상태이다. 더 이상 참호전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북한같이 제대로 된 공중전력이 없고 전차도 대부분 구식인 적을 상대로는 여전히 참호전이 유효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주력이 될 수는 없다.

(느그나라의 미래가 심히 걱정된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탱크는 탱커가 맞는가? 결론을 내리자면 탱크는 "탱커"로서의 역할을 할 순 있지만 "탱커"는 아니다. 탱커는 적들의 공격을 받아주면서 진격하는 존재를 말하는데, 전차는 적의 공격을 받는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그보다는 빠르게 적들의 진지를 향해 무차별 돌진, 전선을 뚫고 우회하여 적들의 보급을 끊고 핵심 전력의 이동을 망가뜨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대한민국 국군의 제 7기동군단이 전차의 역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조직이다. 이들은 전차로 이루어진 동아시아 최상급의 기갑 전력을 갖고 있으며, 전쟁이 발발할 경우 물러나지 않고 무조건 앞으로만, 앞으로만, 앞으로만 나아가는 글자 그대로 북진군단이다. 그 이유는 이들이 기갑전력이기 때문이다. 기갑전력으로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 적들의 전선을 뚫고, 적지에서 우회하여 보급과 핵심 사령 시설 등을 싸그리 짓밟아버리는 역할.


즉 전차는 "맞아 주면서 나아가는"역할이 아니라, 그냥 "나아가면서 맞는" 역할이다. 탱크의 목적은 "나아가는 것"이지, "맞는 것"이 아닌 셈이다. 따라서 전차는 탱커, 딜러의 역할을 동시수행할 수 있는 딜탱인 동시에,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기동성 있는 유닛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더 든다. 그렇다면 대체 현대전에서 진짜 "탱커"는 무엇일까? 적의 공격을 맞아주면서 보병 앞으로 진격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 사실 현대전에 그런 무기는 없다. 현대전에서는 "맞아 주면서 돌격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냐고? 한 대 맞으면 무슨 무기든 어지간해서는 일격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탱커와 비슷한 개념의 무기가 있긴 하다. 이건 나아가면서 먼저 맞아 준다기보다는, 나아가서 일단 깨부수고 보병들의 경로를 열어주는 존재에 가깝다. 즉 "탱커가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목적인 무기라는 뜻이다. 바로 공격헬기이다.


아무튼 오늘도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배우고 간다. 긴 글 읽어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