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를 죽여라"

상관이 한 여자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에게 명령하였다.

유난히 긴 침묵 속 상관의 목젖이 움직이는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답은?"

"어차피 하나뿐인거 아닙니까?"

"그렇다. 당장 영국으로 출발하도록. 필요한 조치는 취해두었다."

"이유는 안가르쳐 주십니까?"

"사냥개에게 이유가 필요하나?"

"가끔은 변덕도 부리는게 사냥개라 하죠."

"변덕을 부리는 사냥개는 살처분할 뿐이지."

"참나, 국정원 주제에 사냥개니 뭐니.."

"그만! 한번만 더 기관명을 말했다가는 살처분이다. 당장 출발하도록."

"약속대로 이번이 마지막 임무입니다."

"그래."


상관이 나를 보며 노골적으로 혀를 찻고, 나는 방긋 웃어주고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나는 대한민국에 소속된 암살자다. 물론 비공개지만.

세간에서 나는 그저 7급 국정원 소속 공무원일뿐.


과거 경찰로 일하던 나는, 폭동을 진압하다 사상자를 내었다.

그대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내게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이 제안을 했다.

나라의 어둠으로 일하는 조건으로, 일정 건수를 완료하면 과거를 지워주겠다는 웃기는 약속.

그런 웃기는 약속을 나는 받아들였다.


나 자신을 위해 이미 많은 피를 뭍혀왔다. 어린애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사살했다.

이번 임무 또한 마지막이니만큼 여운을 느끼는거지, 딱히 타겟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본건 그저 상관 속을 긁으려 했을뿐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히드로행 비행기를 타며 소녀에 대해 조사를 하였다.

막 20세가 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나이의 소녀는, 외면과는 달리 얼룩진 과거를 살았었다.

부모님이 마약상이라 일찍 상대 조직과의 싸움에서 부모님을 여읜 그녀는 고아임에도 음악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쇼팽 콩쿠르로 대뷔, 그 뒤로도 음악계의 새로운 별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어째서 한국 정치권의 표적이 되었을까.


프레스티시모. 프레스티시모. 

별이 떨어질 시간이다. 공항에 도착해 준비를 한다.

첫 만남은 우연찮게. 그뒤는 우연을 가장한 헌팅으로 보이게.

깊은 관계에 도달하기 전 사살. 

유명인을 죽인 전적은 수도 없이 많다. 주 타켓이였으니.

이제부터 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말단 청소부다.

그렇게, 나의 총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레그로 폰 브리오, 전쟁의 긴장감이 감돈다. 

세계적인 교향악단의 영웅을 볼 수 있을줄이야.

눈은 물론 귀가 호강하는것 같다. 만약 위장한 신분이 아니였다면, 기립 박수를 쳤을거야.

그렇게 피아노를 보던 중, 그녀와 눈이 맞은거 같았다.

그녀는 피아노를 치고 있으므로 그럴리 없을텐데.

오늘은 그녀 염탐을 위해 온 것이지, 아직 만남은 이르다.

1악장이 끝나는 즉시, 자리를 옮긴다.


"알레그로 비바체!" 2악장은 아닐텐데? 

"흠칫하는걸 보니 청소부가 아니라 관객이 맞는거 같네요."

이런, 그녀다. 계획이 헝크러졌다.

"그쪽은 누굴까요?"

어떻게 대답해야하지?

"고민이 많은 얼굴이네요."

그녀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얻은 소녀처럼 발랄했다.

"얀챈 그룹에서 보낸건가요?"


이 여자가 한국 기업을 왜 알고 있는거지?

"역시 한국인이네요. 참 알기 쉬워요, 당신들은. 비리 몇개를 가지고 있다고 이렇게 행동해주면 저 잘못있어요~ 하고 말하는 거잖아요?"

그녀에게 말려들면 안된다. 서둘러 머리를 굴려 중국어로 난 당신을 모른다고 말했다.


"푸훕. 그런 사람이 베토벤의 영웅을 듣고 있었어요?"

".. 만약 너의 말대로 내가 널 죽이러 온 사람이라면 당장 도망가서 경찰에 알려야하는거 아니야?"

마지막 임무에서 삐끗하다니, 너무 들떴었다. 인정한다.

허리춤에 숨겨놓은 총을 장전한다. 여차하면 공개적 장소에서 쏜다.


"제가요? 왜요?"

"왜라니"

"저를 죽여주세요."

"무슨 의미지?"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요. 진짜로 죽고 싶으니깐. 

단지, 자살은 죄악이라 독실하게 믿어서 직접 죽을 수는 없고, 다음을 고민하던 중에 우연찮게 부모님의 유품에서 동양의 한 나라랑 마약을 유통한게 보여서 이렇게 도발을 했어요. 진짜로 생각대로 움직여줄 줄은 몰랐지만."

"너처럼 유망한 사람이 왜?"

"허무해요, 세상이. 그저 반복적으로 하얀색과 검은색을 누르는 세상. 그래서 다들 마약을 했던걸까요?"

"모든 음악인이 꿈꾸는 자리에서 너무하는군."


"그러면 당신이 삶의 재미를 알려주던가요."

"내가 왜?"

"그러면 얌전히 마지막에는 죽어줄게요. 대신 거절하는 순간 당신 얼굴을 온 세상에 퍼트릴거에요. 그럼 아무리 암살자시더라도 힘들껄요?"


힘들 뿐 만이 아니라, 앞으로 뒷세계에서도 벗어나기 곤란해진다.

"아다지오, 아다지오. 좀 더 느리게 생각해봐요. 평온히.

환상교향곡 속 주인공처럼 저를 춤추게 해주세요. 그리고, 단두대에서 쑤캉!"

웃으며 말하는 그녀는 어딘가 망가져보였다.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녀를 여기서 쏠까?

도출된 결과는 잠시의 유흥일뿐, 딱히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거래완료다."

"대가는 제 목숨이고요. 잘 부탁드려요.한국에서 날라온 악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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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데이트 코스부터 짤까요?"

"킬러와 데이트. 영화에 나올법하군."

"영국은 질렸어요. 베를린의 필 하모닉을 먼저 가보고.."

"인생의 낙이 앖다는 사람이 원하는건 많네?"

"원래 가진게 많을수록 바라는게 많아요"

"그러면서 죽고 싶어하고."

"정말, 말 한마디를 안지려하네요. 그럼 여자한테 인기없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킬러씨는 재미있네요."

"얀붕이란 이름 있다."

"그런 킬러씨도 저를 야, 너 라 부르잖아요."

"얀순아."

"그거 좋아요. 앞으로 계속 그렇게 불러주세요."


죽일대상과 이렇게 나돌아다니는건 처음이였지만, 딱히 나쁜 기분은 아니였다. 그녀는 쾌활했고, 자유로웠다.

포코. 포코. 조금. 조금씩.

나는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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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떤 나라인가요?"

"느그나라."

"네?"

"몰라."

"항상 그렇게 단답식만. 저를 재밌게 해준다는 목적은 벌써 잊은건가요? 너무 슬퍼요."

"한번 가보던가."

"정말요? 음.. 됐어요! 그 전에 죽을거같으니깐."

"잘 아네."


"킬러인 얀붕씨에게 저는 어떤 존재일까요?"

"죽여야할 존재."

"아직은 제가 마음속에 안들어왔나요?"

"응"

"흐응~ 저도 죽기까지는 멀었나보네요."

"무슨 의미지?"

"비밀이에요. 그때가 되면 알게될 비밀."

"시시하군."

"시시해서 아름다운 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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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요?"

"말을 안했는데 어캐 알아."

"에펠탑은 처음 지어질 당시에 그렇게나 욕을 먹었데요"

"알아"

그래서 건축가 에펠은...아이씨! 그냥 모른다하고 들어야죠!"

"아는걸 어떻게 모른다해."

"저도 얀붕씨 몰라요!"

그러고선 그녀는 볼에 바람을 잔뜩 넣고는, 사이요궁에서 멀리 걸어갔다. 뒤따라가는 내가 이어 본 광경은 동양인들이 그녀를 납치하는 풍경. 내가 미지근하게 움직이니, 결국 본국에서 다른 손은 쓴 것이다.

서둘러 그녀를 쫓아간다. 

비바치시모. 비바치시모. 그녀가 처음 들려준 운명교향곡이 머릿속을 울린다. 세상이 가속하는 느낌이다.


납치범을 뒤쫓아 가는길, 자꾸만 잡념이 나를 방해했다.

여기서 그녀가 죽어도 결국 임무는 완수되는거 아닌가?

'아다지오, 아다지오, 좀 더 느리게 생각해봐요. 평온히.'

그녀가 언제 이런말을 했지?

생각이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냈을때, 나는 내 목표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다가왔을때와 달리, 겁먹은 표정의 그녀를 구하는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과정이 조금 복잡해 일이 끝날때즈음, 그녀를 데리고 국경을 넘어야했지만.

"깔깔깔"

그녀는 내 품에 안겨서 하염없이 웃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냐?"

"킬러가 타겟을 구하다니. 진짜 영화같잖아요!"

".."

그렇다. 어느샌가 나는 그녀를 살리고 싶어졌다.


"제가 죽질 않기를 원하죠?"

".."

"싫어요. 전 죽을거에요."

".."

말없이 그녀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다린다.


"전 죽을거에요.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하게 돼서, 죽을거에요. 당신의 마음을 지배하고 싶어요. 

말러의 교향곡 6번. 저는 비극이 좋아요.

평생, 저를 그리워해주세요.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당신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요.

당신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싶어요.

당신이 저 때문에 괴로웠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당신이 더욱 더 제게 빠질 수 있도록 노력할거에요.

그리고 당신이 완벽하게 제게 들어온 날! 죽여주세요!

당신의 모든게 전부! 제 것이 되는거에요!!"


역시, 그녀는 어딘가 망가져있었다.


"파쇼나토! 열정적으로 저를 갈구해주세요! 지오코소! 그리고 익살스러운 광대처럼, 저를 죽여주세요. 얀붕씨, 사랑해요. 너무나 사랑해서, 당신을 망가트리고 싶어요. 저만 바라봐주세요. 저도 당신의 모든 것이 되어줄게요."


그렇게 나는 그녀를 살리고, 그녀는 자신을 죽이려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나는 멘델스존의 교향곡 '스코틀랜드'가 좋다.

4악장은 어두운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결말은 밝고 힘찬 해피엔딩이니깐.

에네르지코. 그녀를 고치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정상인이 될때까지, 그녀를 죽이지 않으리라.


"나도 사랑한다, 얀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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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종합 : https://arca.live/b/yandere/20758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