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그녀는 내 위에 올라타 한껏 날선 폭언을 내뱉고는 얼굴을 붉히며 나와 눈을 맞추었다. 


"얀붕아...♡ 울지 말래도♡"


그러면서도 얀순이의 입과 눈에는 희미한 희열의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잔뜩 만취하고도 이제 어떤 일을 벌일지 작정이라도 한 듯 그녀의 손은 자연스럽게 나의 허리와 등을 훑기 시작했다. 


"어제도 잔뜩 해놓고...갑자기 또 하고싶게 만드네, 우리 얀붕이♡"


그녀가 내 몸을 쓰다듬는 동안, 한껏 숨을 고르고 나서야 내 주머니 속에 있던 녹음기의 존재가 떠올랐다. 비록 그녀에게 깔아뭉개진 상황이라 팔을 움직일 순 없었지만 분명 내 주머니 속엔 딱딱한 플라스틱의 감촉이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녹음기를 만지겠답시고 섣불리 몸을 움직였다간 들킬 위험이 다분했다. 게다가 위에서 누르고 있던 얀순이가 허리를 굽혀 내 위에 엎드린 지금의 불안정한 자세도 악재였다. 

그녀가 힘을 풀고 체중을 나에게 실자 얀순이가 내뿜는 부드러운 살냄새와 지독한 알콜 냄새가 섞인 오묘한 체취에 또다시 어젯밤처럼 하체에 피가 쏠렸다. 그런 나의 이런 생체 반응을 빠르게 눈치챈 그녀는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곧바로 내 윗옷을 들어올리고는 온몸 구석구석을 핥기 시작했다.    


"으으윽...흐읍..."

"으음...♡ 츄릅...♡...으응...가만히 있어."


마침내 그녀의 혀가 쇄골 부위에 닿자 참을 수 없던 나는 입술을 깨물고 신음을 흘리며 바둥댔다. 그러나 그녀는 약한 부위를 찾아냈다는듯이 집요하게 내 몸 한곳을 훑었고, 내가 도망칠 수 없게 자기 팔로 온몸을 끌어안아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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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이제 침ㄷ, 아니다, 거실에서 할까...♡"


얀순이에게 한참을 안긴 채로 애무당했던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녀는 한올한올 훌렁훌렁 벗어던지고는 나체로 다시 그에게 다가갔고, 이번엔 또다른 체위를 원한다는 듯이 멍한 눈빛을 짓던 그의 앞에 섰다. 


"이번엔...얀붕이 네가 해야지♡ 개새끼처럼...♡"


그녀는 그의 머리를 향해 자신의 음부를 슬며시 내밀었고, 그는 무기력하게 그녀에게 붙잡혔다.



그때 그녀에겐 불운하게도(당연히 그에겐 다행스럽게도) 요란하게 진동을 내며 그녀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던 그녀가 멀뚱멀뚱 자기 폰을 바라보다가, 이내 남자친구와의 섹스를 망쳤다는 생각에 아까보다 훨씬 차갑고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왜."


전화를 건 사람은 그녀의 매니저였는지, 옆에 있던 그에게 들릴 정도로 다급하게 무언가를 그녀에게 설명하고 있었고,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표정은 어두워져갔다. 


[!%^!)!#!!#!#]

"개새끼야, 분명히 오늘 없다고 했잖아. 무슨 개좆같은 소리야."

[@#!%!@!$$##...]

"...너, 내가 우스워? 씨발 말같지도 않은...야, 다 필요없으니까 그리...하."


그녀는 전화기를 내려놓더니 아무렇게나 벗어둔 옷가지들을 다시 챙겨입기 시작했다. 얀붕이는 멍하니 얀순이를 바라보다가 "거기 내 옷 좀 줄래?"라며 한껏 날선 그녀의 말을 듣고는 부리나케 그녀에게 옷을 건내주었다. 


"야, 5분 안에 차 세워놔. 안 하면 바로 조질 줄 알아, 알겠어." 

[!%!#$##...]


전화를 받던 매니저는 힘없는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한껏 욕을 내뱉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얀붕아."

"어...! 어?"


갑자기 그녀에게 이름을 불린 얀붕이가 고개를 들어 얀순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말그대로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것처럼 보였지만, 그에겐 제법 상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잠깐 일이 있어서 어디 갔다와야하거든? 아마 내일이나 모레까지 못 볼 것 같아."

"...어." 

"오늘 일은 미안해~.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나서...그래도 내가 사랑하는거 알지? 얀붕아♡"


얀순이는 이제서야 그에게 험한 폭언과 폭력을 휘두른게 마음에 걸렸는지 사과 아닌 사과를 하고는 그의 볼에 입술을 맞추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눈을 질끈 감으며 자신을 두려워하는 그에게 그녀는 "왜 이렇게 쫄았어~? 헤헤, 연락할게~♡"라는 말을 남긴 뒤 곧바로 집을 떠났다. 


.

.

.


그녀에게 목을 졸려서일까, 아니면 평소에 접하지 못한 와인에 취해서일까, 그는 그녀가 떠나고 한참이 되어도 그녀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남아있었다. 함부로 몸을 움직였다가 금방이라도 문을 벌컥 열어재끼고 또다시 목을 조를 것 같은 공포심에 옷도 여매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문득 그녀는 단순히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조종하고 휘두르는 데에 능한 여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에 맴돌았다. 평소에는 잘해주면서 그를 회유하다가도 얀붕이가 선을 넘어버리면 곧바로 그녀는 폭력을 써서 그를 심리적으로 가두는 방식을 부담없이 사용했다. 

이제 슬슬 그녀의 폭력은 그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가스라이팅이 점점 그에게 먹혀 들어가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따금씩 숨이 막혀 거센 재채기를 하던 그는 거실에 앉아 천천히 주머니 속의 녹음기를 꺼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지지직...씨발, 아직도 이해 못했어?....지지지직...하, 처음부터 얘기해줄까....지지지직...] 

          

갑자기 쩌렁쩌렁하게 그녀의 목소리가 울리자 그는 반사적으로 흠칫 놀라 녹음기를 집어던졌다. 하지만 녹음기는 그 충격에도 아랑곳않고 녹음된 그녀의 음성을 계속 재생했다. 


[그러면서...지지지직....그때 한참 외국에....지지직...좆같은 새끼들 꼬이고 완전 개지랄이었거든...]


그의 몸이 눌린 바람에 군데군데 노이즈가 끼긴 했지만, 다행히 녹음기 안에는 그녀가 말한 핵심 내용들이 담겨있었다. 이제 이 음성파일이 세간에 공개되고 그의 증언이 추가된다면 틀림없이 그녀의 이미지는 적잖은 타격을 입을게 분명했다. 


"..."


얀순이는 늦으면 모레, 아무리 빨라도 내일이라는 말을 남겼었다. 시간은 일단 얀붕이의 편이었다.    

아직 새벽의 잔잔하고 차가운 공기가 맴돌았지만, 얀붕이는 조용히 베란다에서 바깥 바람을 쐬었다. 


 

이제 얀순이와의 연애도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

.

.

.

.


"여보세요...아, 얀붕 씨?"

"네, 어제는 잘 들어가셨어요?"

"네네! 뭐 잘 들어갔죠! 안 그래도 제가 카톡도 보냈는데 안 읽으셔서 엄청 걱정했다구요! 어제는 너무 얀붕 씨한테 무거운 말을 해서 제 나름대로도 취재나 조사ㄹ..."

"괜찮아요."

"...네?"

"얀진 씨, '녹음 파일'.... 확인 가능할까요."


아침 8시 20분, 다른 직장인에게 사적으로 통화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기꺼이 내 전화를 받아주었고, 부리나케 "출근하고나서 바로 연락드릴게요! 아, 어디냐...!?! 얀봉광장? 거기서 봬요!"라는 말을 끝으로 허겁지겁 전화를 끝냈다. 그녀 나름대로도 제법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받아들여준 모양이었다. 



얀진과의 통화를 마친 뒤, 나는 옷을 챙겨입고 방을 둘러보았다. 

기사가 나고 방송이 보도가 되면 내가 영영 쓰지 못할 방이었다. 남자 혼자 살기에는 터무니없이 넓고, 침실이 유독 정성껏 꾸며진 이 집에서 언젠가 그녀와 단둘이, 혹은 둘이서 낳은 아이 여럿을 데리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내 짐은 쓸데없는 것들을 버려두고 캐리어에 모아 놓은 상태라 여차하면 곧바로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빌라를 나오니 몇 달간 그녀의 택시로서 몫을 하던 고급 스포츠카가 눈에 들어왔다. 

요란한 배기음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차였지만, 이미 집과 마찬가지로 모든 일들이 해결되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물건이었다. 차 키도 집 안에 고스란히 놔두었고, 차량의 양도에 필요한 서류들도 함께 가져다두었다. 


그녀가 마련한 집을 한걸음씩 빠져나올 때마다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짐들이 한꺼풀씩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편해질 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도움을 받을걸 하는 후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 정도로 그녀가 주는 마음의 무게는 상당했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병적인 성격을 모두 받아줄만큼 성인군자는 아니었다. 


오래간만에 혼자 버스를 타자 마치 나는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들떠 창가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았고, 얼마 지나지않아 얀진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기 시작했다. 


.

.

.


"얀붕 씨이~!"


광장에 들어서자 한참을 기다렸다는 듯 얀진이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겼고, 그런 그녀의 반응에 머쓱해진 나는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사를 건냈다. 


"자, 잘 지내셨어요? 어제 보긴 했는데..."

"네네, 잘 지냈죠...아! 여기는 우리 카메라맨 박얀기 씨에요."

"반갑습니다. 김얀붕 씨 맞죠?"

"네, 반갑습니다."


그녀는 들뜬 목소리로 함께 온 카메라맨을 소개했고, 나는 그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오늘은 인사만 나누러 온 것이 아니었기에 이내 곧 인적이 드문 허름한 벤치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그녀는 내가 건내준 녹음 파일을 듣고는 큰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카메라맨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곧바로 촬영을 준비했다. 


"우선, 저에게 피해 사실과 그 경과를 말씀해주시고, 이런 피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얀붕 씨의 생각을 털어놓으시면 돼요."

"하...잘 못하겠는데..."

"괜찮아요, 구체적인 증거들은 얀붕 씨가 준 녹음 파일이 핵심으로 들어갈 거구요, 얀붕 씨는 추가적으로 빠진 부분이나 디테일한 부분만 메워주세요!"        

   

카메라를 보자 긴장한 나를 그녀가 열심히 설명하며 다독여주었다. 거기에다 카메라의 위치를 물리적으로 전혀 신경쓰이지 않을 저 멀리 구석으로 옮겨준 탓에 그녀와 1대 1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형태로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긴장하고 있던 것을 들켰던 것일까, 얀진은 부들부들 떠는 나의 손을 붙잡아주었고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할 수 있어요."라고 응원해주었다. 나는 이렇게까지 도움의 손길을 건내는 사람과, 또 얀순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찰 순 없었다. 

  

"준비됐어요? 그럼, 시작할게요?"

"...네."


그렇게 나는 얀진의 눈을 바라보며 그녀의 질문에 따라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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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근 군붕이 이번주 훈련받는다고 많이 늦었다... 미안해

원래 근무시간에 조금씩 끄적인 거를 퇴근해서 옮겨쓰고 그랬었는데 폰도 못쓰고 집도 못가니까 업로드할 타이밍이 없었네    


그러고보니까 얀붕이 불쌍하다고 정의구현해달라는 댓글이 많던데 

내가 생각하는 엔딩이랑 완전 정반대라서 고민해봐야할듯 


봐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