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이는 소심했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 용기도,

누군가가 호의를 베푸는 것도 의심하고

바로 옆에 있는 여자의 본심도 알아채지 못했다.


고등학교에서 얀붕이의 포지션은 그저 그런

지나가는 엑스트라3 정도의 포지션.


하지만 그런 얀붕이한테도 유일한 자랑거리가 있었다.


그건 바로 10년지기 소꿉친구 얀순이,

얀붕이 뿐일까 그녀는 학교의 자랑이다.

성적, 외모, 무엇하나 꿀리지 않는 그녀였다.


그러나 자신과 비교되는 점 때문에 얀붕이는 그녀를 더욱

가까이 두는 것이 두려웠다.


좋아하는 그녀의 이미지가 자기와 친하게 지내는 것 때문에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자신의 그 행동이 그녀의 마음에 더 상처를 준다는 것도 모른 채.


얀붕이는 얀순이와 자신은

언젠가 멀어져야 할 사이라고 생각하며

고등학교 입학 시절부터 거리를 뒀었다.


얀순이가 얀붕이한테 정말 연인마냥 치근덕거린 것은 아니다.


그저 어릴 때부터 같이 등교, 하교하는 것 일상적인 대화 정도 등

어릴 적 얀붕이와 지냈을 때의 버릇이 지금 계속 유지되는 것

딱, 그 정도 뿐이었다.


얀순이에게는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그건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기쁠 때도, 슬플 때도 그녀는 차가운 얼음장처럼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얀붕이는, 얀붕이만큼은 알고있다.

그녀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얼굴에 무슨 감정을 띄고있는지.


그녀의 유일한 이해자, 유일한 구원자 얀붕이.

얀붕이가 없으면 그녀는 살아갈 수 없다.

그가 없으면 자신의 존재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를 사랑하고있다.


그러나 얀붕이는 정작 그녀의 가장 중요한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는 얀붕이를 뒷담화를 하는 세력이 종종있었다.


찐따같다, 소심하다, 자기 반인지도 몰랐다 등등


말이 뒷담화지 그냥 다 들리라고 하듯이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심한 얀붕이는 이를 못들은 척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얀붕이의 뒷담화 때문에 맨 앞 책상에서 공부하는

얀순이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어느 날 부터인가 얀붕이에 대한 뒷담화가 없어졌다.

얀붕이는 살짝 의아했지만 그냥 자신을 하도 까서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나보다 하고 넘어갔다.


모든 것은 얀순이 덕분이었다.

얀순이 눈에 보이는 얀붕이에 관한 문제는 전부 해결해주었다. 선생님을 이용하거나 학생회를 이용해서,

얀붕이의 뒷담화, 괴롭힘 등등 전부를.


얀순이가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

외모를 남몰래 가꾼 이유

학교의 인기인이 된 이유는 전부 얀붕이를 위해서였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얀붕이를 지키기 위해.

얀붕이에 대한 얀순이의 마음은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턱 없이 부족할 정도로 얀붕이를 사랑하고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의 이 마음을 억눌러왔다.

얀붕이에게 어울리는 여자는 자신이 아니라며

자기는 그저 얀붕이를 웃게하는 광대같은 존재로 만족한다며, 계속 그렇게 억눌러왔다.


게다가 얀붕이는 자신과 거리까지 두려고하고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백을한다 한들 받아줄 수 있을지 그녀에겐 큰 의문이었다.


얀붕이에겐 그래도 친구가 3명있었다.

인싸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그렇다고 아싸도 아닌 그저 그런 친구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얀붕이와 반이 갈라져

극도로 불안했던 얀순이에게 그 친구들의 존재는 정말 그나마 안심할 만한 존재였다.


그런데 얀순이는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그 마음 깊은 곳에서 얀순이를 유혹하는 악마가 속삭였다.


"얀붕이는 너만의 남자야 너만이 소유할 수 있어, 

여태까지 얀붕이를 위해 힘써왔잖아? 

괜찮아, 얀붕이를 독차지해도 친구들은 이해해 줄거야"


악한 마음이 점점 새어나오고 있는 것을

얀순이는 겨우 억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점점 한계가 다가왔다.


그렇게 시간은 점차 흘러 가을이 되었다.


얀순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챈

친구들은 얀붕이를 얀순이에게 고백하라고 부추겼다.


그리고 소심한 얀붕이는 결심했다.

슬슬 이 마음을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얀순이에게 고백하기로한 이 마음을,

글자로 쓰는건 정말 간단한 '좋아해' 그 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을 10년동안 얼마나 연습해왔는가.


언제 고백할까 고민하는 얀붕이의 반에서는

매년마다 열리는 축제에서 연극을 하게 되었다.


연극의 이름은 웃지 않는 공주


줄거리는 단순히 웃지 못하는 저주에 걸린 공주를

한 광대가 웃게 만들어 결혼하는 이야기.


하지만 연극인 만큼 배우 역을 꺼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던 중 얀붕이가 손을 든다.


"....광대 역할 내가 할게"


모두가 얀붕이를 쳐다본다.

친구들은 그런 얀붕이를 말린다.


"이게 아니면 안돼

나 이 역할 못하면 분명 후회할거야"


반장은 얀붕이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흔쾌히 역할을 맡게 해주었다.


연극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얀붕이의 소심함은 점점 없어져갔다.


그도 그럴게 연극의 주연이다.

주변인물의 케어, 대사 연습, 복장 등을 맞출 때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연극 준비 기간에도 반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주어져 얀붕이는 많은 친구와 사귀게 됐다.


이를 본 얀순이는 점점 자신의 마음이 더 어둠에 빠져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연극 연습때문에 자신과 같이 등하교도

해주지 않아서 얀순이의 마음은 점점 더 피폐해져갔다.


자신만의 얀붕이가 점점 빛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분명 기뻐해줘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를 보지 못하는 시간에 비례해 얀순이의 독점욕과 집착은

점점 더 늘어만 갔다.


빛으로 나아가는 얀붕이, 어둠에 빠져드는 얀순이

갈라지는 듯한 둘.


그렇게 둘은 엇갈린 채로 축제 당일이 밝았다.

연극의 차례는 공교롭게도 제일 마지막 순서,

얀붕이를 포함한 모두가 긴장을 한 상태였다.


연극의 차례가 되던 시간에 일이 생겨버렸다.

공주 역을 맡은 여자애의 부상, 모두가 패닉 상태였다.


감독을 맡은 반장과 선생님은 공주 역할을 얀붕이의

친구를 시키기로 했다.


로맨스 분위기의 연극을 코믹의 분위기로 가자고 한 것이다.


일부는 울기 시작했다.

이럴려고 연극을 준비한게 아니라고,

우리는 진지한 분위기를 연기하고 싶었다고.


얀붕이는 흐느끼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얘기한다.


"걱정 마 내가 이 연극 꼭, 성공시킬게"


공주 분장을 급하게 하고있는 친구가 말한다.


"야, 너 진짜로 고백할거냐

아무리 봐도 내 눈엔 실패각밖에 안보인다"


"....맞아, 후회할 수도 있어

근데 정말 아무것도 안하면 난 평생 이 순간을 후회만 하며 살아갈 것 같아"


그렇게 웃긴 연극의 막이 올랐다.


"공주님 저는 별 볼일 없는 광대일 뿐입니다

저 따위 광대가 어찌 공주님과..."


"광대씨, 저는 일생을 웃지 못하는 저주에 걸려 웃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 저의 웃음을 되찾아준 당신말고 결혼할 상대가 어디 있겠습니까?"


관객들은 웃는다.


광대인 얀붕이도 남자고 공주도 남자였기에

그저 웃긴 코믹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만큼은 우리의 연극을 제대로 봐주고 있었다.


누구보다 차가운 표정을 하고있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녀만이.


웃긴 연극은 그렇게 웃음바다로 끝이 났다.


그러나 얀붕이에겐 지금부터가 연극의 시작이었다.


머뭇거린다.


얀순이가 날 싫어하는 건 아닐까?

어째서 이렇게 웃긴데 그녀는 웃지않을까?


탁-!


얀붕이의 등 뒤를 공주 역할을 맡은 친구가 밀어준다.


"아무랑도 대화 안하는 저 웃지 않는 공주가 너랑만 얘기하는데 

널 싫어할리 있겠냐 빨리 갔다 와라"


얀붕이는 그렇게 마이크 2개를 가지고 무대 아래

맨 앞 관객석에 위치한 그녀의 앞으로 간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어...? 얀붕아?"


전신이 떨리는 얀붕이,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그녀에게 말한다.


"광대 아가씨, 저는 일생을 웃지 못하는 저주에 걸려 웃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 저의 웃음을 되찾아준 당신 이외에는 결혼할 상대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저와 결혼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지금 얀순이의 표정은 누구라도 알아 볼 수 있을만큼

놀란 얼굴을 하고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뺨에 눈물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한다.

이내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 답한다.


"왕자님, 말씀을....거두어 주세요 어찌 저 같은 광대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저는 별 볼일 없는 광대입니다

당신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이 기대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상관없습니다"


"저는...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집착도 강하고

마음도 여립니다 그저 강한 척을 하는 것일 뿐"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양 뺨에 천천히 흐르던 눈물은 이내

고장나버린 수도꼭지 같이 소나기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청하겠습니다

광대 아가씨, 저와 결혼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저 얀붕이의 손을 꽉 잡으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답한다.


"네...! 기꺼이!!"


그녀 안에 있던 어둠이 얀붕이라는 강한 빛으로 

가득 채워진다.


얀순이가 얀붕이의 손을 잡고 무대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어설프지만 뜨겁게, 입을 맞춘다.


그렇게 관객들의 환호와 기립박수를 받으며 

무대의 막이 내린다.


"....10년을 기다렸어 바보야"


"나도, 10년동안 계속 고민했어"


10년간의 짝사랑,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바보같은 

연극도 동시에 막을 내렸다.


소심한 남자는 왕자로,

웃지 않는 공주는 사랑을 하는 평범한 소녀로. 





















마지막 연극대사는 돈키호테 이거 참고했음 다 읽고 

부랄뜯으면서 ㅈㄴ 울었다

안 읽었으면 보는거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