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얀붕이라는 장인이 살았어.

항상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문제작을 받아 가구등을 만들거나,

여인들의 작은 장식품을 만들어주거나

아이들의 장난감을 만들어주었지.

이렇게 착한 얀붕이를 마을 사람들은 모두 좋아헀어.

우락부락한 산적이 아닌 미남형이었던 얼굴에다가,

작은 체격에서 나오는 섬세한 모습에

보기만 해도 보호본능을 끌어올리는 그런 그를

많은 여자들이 좋아했지.


그러던 어느날, 기존의 왕이 죽고 새로운 인물이 즉위했어.

그 이름은 바로 얀순, 

얼음 여왕으로 불리우던 여자였지.

어깨를 타고 내려오는 찰랑거리는 은발,

눈처럼 새하얀 피부,

그리고 무언가 공허함이 느껴지는 푸른 눈.

그녀의 미모는 왕국은 물론이요 타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지만,

딱 하나,

그녀의 성격이 문제였어.

얀순이는 명군이라고 할 순 있었어도 성군이라고 할 수는 없었어.

별명답게 차갑기로 유명했던 그녀의 성격은,

깔끔했고 냉정했어.

그녀를 죽이고 본인이 직접 왕이 되려고 했던 오빠를 죽여버렸고,

그 오빠를 지원했던 귀족가문들을 모조리 숙청해버렸어.

2개의 백작가, 3개의 공작가가 내전까지 이어지지도 않은채 하룻 밤만에 숙청되었지.


하여튼 얀순이가 즉위를 하자마자 대신들은 전국에 공문을 내렸지.

공문의 내용은 여왕의 배우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고,

노예를 제외한 대부분의 왕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었지.

이 행사는 왕국에서 여성이 왕위를 이을 때마다 열리는 행사였어.

왕국의 첫 여왕이었던 사람이, 정략결혼으로 인한 불우한 삶을 살다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남편을 죽여버리곤,

후대의 여왕들은 최소한 자신의 배우자는 직접 선택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자살을 해버렸다는 전설을 기반으로 생긴 행사였지.

얀붕이의 마을에서는 만장일치로 얀붕이를 보내기로 했어.

애초에 얀붕이의 마을에서는 남자를 보낼 의무도 없었지만,

변두리 마을에 살던 사람들의 눈에는 얀붕이가 제일이었기에,

얀붕이를 마구 치켜올리며 그를 보내기로 결정했어.

얀붕이는 자신이 여왕의 배우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하겠다는 목적으로 나가기로 했어.

마을의 이장이 직접 나서서 얀붕이의 가슴에 명찰을 걸어주었지.

그렇게 얀붕이는 왕궁으로 향했어.


왕궁에는 수많은 사랃들이 모여있엇어.

휘황찬란한 장신구를 매달고 다니는 느끼하게 생긴 남자,

갑옷을 풀 세팅 한채로 서있는 남자,

반지를 닦으며 콧노래를 부르는 남자 등등.

수많은 귀족들이 왕궁에 모여 나름대로의 기대를 품었지.

그곳의 평민은 얀붕이가 유일했어.

그도 그럴 것이, 말이 '누구나 가능'이지

그 어떠한 평민도 왕족을, 그것도 얼음 여왕를 탐내진 않았던거야.

얀붕이가 어버버 하면서 대기실에 들어서자,

날카롭게 그를 노려보던 귀족들은 이내 긴장을 풀곤 그를 조롱하기 시작했지.

얀붕이는 귀족들 때문에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꼬박 5시간을 서 있었어.

마침내 자신의 차례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침을 꿀꺽 삼킨다음 방 안으로 들어갔지.


얀순이 역시 상당히 지친 상태였어.

허영심, 오만함, 자만감, 무모함.

모두 다 얀순이와는 맞지 않는 자들이었고,

거의 모든 귀족들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가문을 뽐내기 바빴지.

그런 사람들을 몇 백명이나 보자, 이젠 다 때려치고 그냥 돌아가고 싶었어.

하지만 마지막 남은 참가자가 평민이라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고는 

그를 들여보내라고 했지.


"아..아아 안녕하십니까...! 아카 마을의 얀붕이 전하를 뵈옵니다!"


"그래. 어디 한번 뭐든 해봐."


그러자 얀붕이는 품에서 작은 나무 조각 하나를 꺼냈어.


"전하를 생각하며 만든 것입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얀순이는 벙찐 표정으로 책상에 놓인 조각을 바라봤어.

어떻게 나무를 저렇게 정교하게 조각했는지도 궁금했지만,

실재의 자신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 조금 더 따뜻해 보이는 조각상이었어.

하지만 옆에서 얀순이를 보좌하던 나이든 시종은 기겁을 했지.


"네... 네 이놈!!!! 네 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이런 불경한 짓을!!"


그도 그럴것이 왕족의 외모를 어떠한 형태로든 기록하는 것은

불경죄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급에 속한 죄였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그런 것을 만들며 살아오던 얀붕이는 그런 것을 알 턱이 없었지.

그렇게 눈물을 그렁거리며 용서를 비는 얀붕이에게

얀순이는 자리에서 벌떡 이러나 다가갔어.

얀붕이는 고개를 조아리고는 공포에 떨며

미친듯이 사죄를 할 뿐이었어.

또각거리는 발소리가 얀붕이의 머리 바로 앞에서 멈췄고,

차가운 손이 얀붕이의 턱을 잡곤 들여올렸어.


"가여운 것...."

"여봐라."


"예! 전하! 지금 당장 죄인을 가두도로..."


"아니."

"이자로 정했다."


".....예?"


그러곤 얀붕이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어.


"이런 것을.... 더 만들어줄 수 있겠느냐?"


"ㅇ..예...?"


"이러한 것들을 나를 위해서 더 만들어 줄 수 있겠냔 말이다."


"예....! 얼마든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목숨만ㅇ..."


"그렇게 꼴 사납게 행동하지 말아라."

"너는 지금부터 왕가의 일원이니 말이다."


왕궁은 발칵 뒤집혔어.

쟁쟁한 귀족들을 전부 퇴짜 놓고 내린 결정이

변두리 마을의 평민이었다니.

하지만 워낙 얀순이의 결정이 완고했기에, 

대신들은 어쩔 수 없이 한 발 물러나야만 했어.

그리고 그 회의에서는, 앞으로 벌 돈을 죄다 쏟아부어도

그걸로 손수건 하나 만들지 못할 만큼 비싼 옷감으로 만든옷을 입고

여러개의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을 쓰고 있던 얀붕이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자세로 앉아있었지.

회의가 끝나자, 얀순이가 얀붕이를 불렀어.


"자, 이제 가자."


"예? 어디를...."


"야."


"예?"


"세상에 어느 사람이 배우자에게 극존대를 쓰니?"

"앞으로는 말 놓도록 해. 공식석상에서도 예외는 아니야."


"하...하지만....!"


"왜? 난 이 나라의 여왕이고, 넌 내 배우자잖아."

"누구도 너에게 뭐라 할 권리는 없어."

"네 과거 신분이 어쨌든 간에, 넌 지금 왕족이고, 그에 알맞은 대우를 받아야 해."


"네....."


"말."


"으..응...."


"옳지, 착하지."


그러곤 얀붕이의 볼을 쓰담는 얀순이었어.

얀순이가 얀붕이를 끌고 간 곳은 왕국의 별실.

호화스럽게 꾸며져 있는 다른 방들과는 다르게

흔한 평민의 가정집같은 공간은

얀순이가 얀붕이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준 작업실이었어.

그곳엔 얀붕이가 기존에 쓰던 도구들부터, 

얀붕이가 쓰고 싶었던 각종 기구들까지 전부 구비되어 있었지.

얀붕이가 필요하다면 길거리의 흔한 풀부터,

설산의 녹지않는 얼음수정까지, 모든 것들을 가져올 수 있었지.

그리고 오늘은, 얀붕이가 처음으로 왕궁에서 만드는 물건이 완성되는 날이었어.

그것은 바로 목걸이.

철 보다 상급의 재료는 본적도 없는 얀붕이었지만,

엄청난 재능을 발휘해 처음 보는 각종 보석들을 가공해서

그것들로 사슬 모양의 목걸이를 만든거야.

얀순이는 어떻게 보석을 사슬형태로 가공한 것인지 신기해 하면서도,

목걸이 한 군데에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보고 그게 뭔지 물었어.

그러자 얀붕이는


"아... 여왕ㄴ...아니 너한테 처음 줬던 조각.... 좋아하는 것 같길래...."

"그거 여기에 달고 다닐 수 있게 해놨어...."

"항상 들고 다니면 불편하잖아..."


얀붕이의 솜씨에 다시 한번 감탄하면서도,

얀붕이의 귀여운 모습에 반했어.

처음에 얀붕이를 배우자로 정한 것은, 

더러운 귀족들에 대한 일종의 반항심이자

처음 보는 종류의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었지만,

이제는 점점 그것이 애정으로 채워지고 있던거야.

얀순이는 기쁘게 목걸이를 받아들며,

손에 있던 나무 조각을 목걸이에 건 뒤,

그 목걸이를 목에다가 걸곤 작업실 한쪽의 거울을 봤어.

지금까지 착용했던 그 어떠한 장신구보다 아름다웠지.

얀붕이 역시 자신이 만들어준 것을 좋아하는 얀순이를 보고 나름 기뻐하는 듯 했어.


결혼식 같은 공식적인 행사를 제외한,

그들의 첫번째 사적 만남은 그렇게 앞으로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향한 첫걸음으로 보였어.

하지만 둘의 결혼생활은 곧 흔들리기 시작했지.

사랑이 식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어.

다만 귀족들의 견제가 점차 노골적이 되었던 거야.

회의 도중 얀붕이를 은근 무시하는 듯한 발언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누군가 얀붕이의 작업실에 파괴 공작을 해놓은 적도 있었지.

얀순이는 비록 뛰어난 전략가였지만,

나라의 대부분의 귀족들이 자신의 남편을 향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는 것을

어떻게 할 도리는 없었지.

하지만 얀순이는 그렇게 항상 골머리를 썩히는 도중에도

얀붕이가 조심히 고개를 내밀어 방으로 들어오면

바로 미소를 지으며 얀붕이를 안아줬어.

그리곤 얀붕이의 순진한 눈동자를 보면서 

어떻게든 그를 지켜야겠다고 다짐할 뿐이었지.


얀붕이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었어.

그렇게 좋아하던 조각이나 공예도 잡히지 않고

오직 작업실에서 이것저것 만지작 거리며 한숨만 쉬고 있었지.

얀붕이가 아무리 왕궁의 사정에 어둡다곤 한들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자신이 왕궁에서 미움받는 처지였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어.

자신과 친하게 진해던 몇몇 시종들에게서 들은 소문은

그것을 더욱더 확실하게 해주었지.

얀붕이는 얀순이가 자신과 있을때마다 짓는 그 미소의 이면에는

끝없는 걱정과 근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비록 시작은 급작스러웠지만,

어느새 얀순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얀붕이 역시

어떻게 해야 얀순이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지.

그러던 중, 얀붕이는 어느날 갑자기 왕궁 안의 정원을 거닐던 중

몇몇 귀족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어.


"이게 말이나 되는 일 입니까? 어떻게 하찮은 평민 따위가...."


"말 조심하시오. 이러다가 여왕 전하께서 들으시면 우리 다 죽습니다."


"이 왕국은 이 대륙 최강대국입니다! 그런데 그 왕국의 왕이 고작 평민이란 것을 알게되면"

"주변 국들이 저희를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차라리 금태양 백작님이...."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역시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곧 조치가 취해질 것 입니다."

"제 아무리 그녀라고 한들, 저희 귀족들이 연합한다면,"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얀붕이는 숨이 턱 막히는 듯 했어.

귀족들이 이런 저런 작당모의를 하는 것을 뒤로 한채,

그는 작업실로 다시 돌아갔지.

그리곤 그곳에서 생각했어.


'확실히.... 나는 얀순이와 어울리지 않아.'

'애초에 나 따위가 얀순이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됬어.'

'얀순이를 위해서라도 내가 사라지는게 옳아.'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가서, 조용하게 사는 거야.'


그리고 그날 밤, 얀붕이는 몰래 왕궁을 빠져나왔어.

왕궁 근위대장이 참수된것은, 그날 오후였지.


"찾아....!! 어떻게든 찾으라고!!!!"


"전하! 이제 그 평민은 잊으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자는 자신이 속하던 곳으로 돌아갔을 뿐, 전하의 올바른 배우자를 구해야만 합니다!"


"닥쳐!!!! 저 새끼들 당장 끌어내서 목을 쳐버려!!!"


"그만하십시오."


금태양 백작이 선두에선 귀족 수십명의 행렬이 나타났어.

얀순이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지.


"꺼져. 아무리 너라도 얀붕이와 나 사이를 갈라놓을 순 없어."


"아니요, 저희는 그럴 수 있고, 그래야만 합니다."

"보십시오. 한때는 총명했던 전하를, 한낱 평민이 망쳐놓지 않았습니까?"

"원래의 전하로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여기, 이걸 보시고 잠시 쉬시지요."

"전하게 깨어나실 때면, 이 왕국은 알맞게 바뀌어 있을 겁니다."


그러곤 백작은 품에서 보라색 팬던트를 꺼내들었어.


"무슨 지랄....."


얀순이는 이내 눈이 뒤집어지며 바닥에 쓰러졌지.

웅성거리는 귀족들을 뒤로 한채,

금태양은 앞으로 걸어나가,

공석이던 얀붕이의 왕좌에 있던 왕관을 쓰곤 말했어.


"새로운 왕으로써 내리는 첫 명령입니다."

"여왕을 방에 모시고, 전국에 다시 공문을 올리세요."

"새로운 왕이 즉위했다고."


귀족들은 백작의 급발진에 꽤나 놀랐지만,

이내 환호하기 시작했지.


얀붕이는 자신의 마을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었어.

마을 주민들은 얀붕이가 다시 돌아오자 놀라서 무슨일이냐고 물었지만,

얀붕이는 그들에게


"워낙 대단하신 분들이 많아서... 그냥 여행 좀 하다가 왔어요. 하하."


라고 말하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

마을 어른들은 얀붕이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된 것이냐고 역정을 냈지만,

얀붕이는 그저 웃으며 어른들을 달래드렸지.

물론 얀순이가 자신 옆에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펐지만,

그것이 진정 얀순이를 위한 일이라고 믿고있었던 얀붕이는 그런 슬픔을 억누를 수 있었어.

왕궁에서 보았던 도구들을 기억해내, 

이제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들로 보석도 만들어낼 수 있었지.

그렇게 나무의 수액으로 보석을 만들려고 틀까지 준비해놓고,

얀붕이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어.

그러던 찰나,

기사들이 마을에 몰아 닥쳤어.


"이곳에 여왕 전하를 능멸한 역적이 있다!"

"마을 전체를 불살라 역도들을 소탕하라!"


비명소리.

가축이 타 죽는 소리.

나무로 만든 집이 불에 타는 소리.

쇳소리.

다시 비명소리.

얀붕이는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어.

얀붕이는 작업실에서 벌벌 떨며 밖에서 불타 오르는 마을을 보며 벌벌 떨었지.

얼마뒤 얀붕이의 작업실까지 기사들이 쳐들어왔어.

그리고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지.


"당...당신은...?"


"아아. 여기 계셨군요."


백작은 주위를 힐끗 보며 말했어.


"확실히... 다시 주제를 아신 것 같긴 하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전하의 당신을 향한 사랑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당신을 아예 없애버린다면..."

"전하께서도 포기 하시지 않을 까 싶어서요."

"물론 처음에는 많이 화내시겠지만,"

"당신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내 수긍 하실것이라 믿습니다."

"자, 그럼. 감히 왕좌를 우롱한 벌을 받아야겠죠?"


얀붕이는 목이 떨어졌어.

얀붕이의 몸은 허우적 거리다가 책상에 엎어졌고,

보석 만드는 틀에 얀붕이의 피가 고였지.

다음날, 기사들이 마을을 정리하고 떠나려고 하던 찰나,

백작, 아니 왕은 다시 얀붕이의 작업실에 들렸어.

그곳에는 아름다운 핏빛 보석이 하나 있었지.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생겨난 보석을 왕은 의아해 했지만

틀 위로 엎어져 있는 얀붕이의 시체를 보곤,


"하,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던 겁니까."


라고 나지막히 중얼거리며 그 보석을 주머니에 넣었어.


왕이 얀순이의 방으로 들어갔을 때, 상황은 꽤 많이 심각했어.

방 한가운데에는 하녀가 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있었고,

나머지 하인들은 벌벌 떨며 벽에 붙어있었지.

침대 위에는 피를 뒤집어쓴 얀순이가

과도를 들며 씩씩거리고 있었어.


"이... 개새끼야!!!!"

"우리 얀붕이 어딨어!!!!"


왕은 가식적인 슬픈 표정을 짓고는 보석을 꺼내보였지.


"그의 마지막 흔적입니다."

"안타깝지만... 이내 수긍 하시지요."

"당신에게 어울리는 건...."


왕은 말을 끝맺지 못했어.

얀순이가 갑자기 튀어올라, 그의 눈에 과도를 박아넣고 마구 비틀자

그는 비명을 마구 지르며 손발을 내질렀지.

하인들이 기겁하여 달려들자,

얀순이는 그들을 노려보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반대쪽 눈을 손가락으로 후벼냈어.

아무도 그녀를 건들 수는 없었지.

약 1시간동안 정신나간 칼질이 이어졌어.

얼굴부터 발 끝까지, 모든 곳이 넝마가 되어있었고

얀순이는 피 범벅이 되어서 마치 누군가 물감을 뿌려놓은 것만 같았지.

이젠 잘 들지도 않는 과도가 고깃덩어리를 더 이상 썰지도 못하자,

얀순이는 그제서야 옆에 나뒹굴던 보석을 발견했어.

딱 목걸이에 알맞은 크기의, 처음 보는 것이지만 가슴이 미친듯이 아리는

핏빛 보석을 얀순이는 집어들곤 작게 흐느꼈어.

이내 흐느낌은 오열이 되었고,

그녀는 그렇게 기절할때까지 울부짖었어.


얀순이는 그 이후로 일어나서 울고, 기절하고, 일어나서 또 울고, 기절하고를 반복했어.

그러다 10일 째 되는 날, 갑자기 침대에서 나와 비틀 비틀 걸어갔지.

그런 얀순이를 보고 근위병이 겁에 질려 얼어붙었지만,

그녀는 그런 그를 무시하고 문을 나섰어.

그러곤 바로 지하에 있는 왕실 도서관으로 갔지.


16년.

얀순이가 도서관에 틀어박혀 지내던 시간이었어.

20살이었던 얀순이는 어느덧 36살이 되었지만,

관리도 하지 않고,

끼니도 겨우 그녀가 기절할 때를 틈타 하인들이 억지로 먹이던 것을 제외하면 먹지않았기에,

그녀의 몰골은 왕국의 빈민보다도 끔찍했지.

그 나이대 왕국 귀족들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지만,

얀순이는 그런 것 따위를 신경 쓸 순 없었어.

그녀의 머릿속에는, 왕국이 설립되었을 때부터

마법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던 시기까지의 마법서적의 내용들로 가득차있었어.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얀붕이를 되살릴 방법을 알아냈지.

.

.

.

[블러드 젬]

블러드 젬은 전설속에만 전해져 내려오는 핏빛 보석이다.

특이한 점은, 이것이 단지 핏빛을 띈다는 것이 아니라

실재 인간의 피로 만들어진 보석이라는 것이다.

얀챈가는 뛰어난 장인가문이었는데,

이 가문의 사람들이 정해진 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게된다면,

그들의 피가 고여 순식간에 굳어버린 뒤,

블러드 젬이 된다.

이로 인해 얀챈가의 장인들은 대부분 살해당했고,

소수만이 남아 지방으로 피신하였다고 한다.

다만, 이 보석은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한 자의 피로 만든 것이기에,

적절한 주술이 실행된다면 그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

보석의 재료였던 자를 극히 사랑했던 인간에 한하여 실행될 수 있는 이 주술은

자식을 아꼈던 얀챈가의 장인에 의해 성공적으로 실행되었다.

아래에는 그것을 실행하는 법이 적혀있다.

.

.

.

얀순이는 말라비틀어진 손으로 보석을 꺼내었어.

보석은 아직까지도 그 빛을 잃지 않고, 환하게 빛나고 있었지.

얀순이는 16년동안 한번도 다듬지 않아

기형적으로 꺾여버린 손톱을 뜯어 내곤

그것으로 팔을 그었어.

약해진 얀순이의 피부는 순순히 갈라졌고,

이내 피가 뚝뚝 흐르기 시작했어.

얀순이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에,

얀순이는 서둘러 원을 만들어냈어.

그리곤 문양을 흩부려 낸다음, 보석을 가운데에 올려놓고

희믜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어.


.

.

.


"....순아....."

"얀.......!"

"얀순아...! 얀순아!!"


얀순이는 조심스레 눈을 떴어.

무언가 묘하게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지

자신의 손을 봐보니, 말라 비틀어졌던 그것은 사라지고,

원래 자신의 새하얀 손이 다시 돌아와 있었어.

이게 무슨일인지 당황해하며 다시 고개를 올리자,

그곳에는 얀붕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앉아있었어.


"얀순아.....!"


얀순이가 상황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얀붕이가 냅다 자신을 안았어.


"ㅇ...얀붕...아?"


"그래....! 나야!"


"아....아아...! 얀붕아...!!!!"

"얀붕아....!!!!!!"


"바보야... 왜 여기까지 왔어...."

"이런 나를 위해... 어째서...."


"얀붕아....!!! 미안해....!! 내가...!"


"얀순아."

"미안하지 않아도 돼."

"다 알고 있으니깐."

"내가 멋대로 내린 결정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얀붕아...."


"비록 내가 원했던 결말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만나니 기뻐."

"자, 여기."


얀붕이는 얀순이에게 상자 하나를 내밀었어.

그곳에는 얀붕이가 얀순이에게 만들어줬던 여러가지 것들이 있었지.

얀순이는 눈물을 흘리며, 조각이 걸린 목걸이를 향해 손을 뻗고는

그것을 목에 걸었어.


"얀붕아...."


"얀순아."


"응...?"


"사랑해."


"......."

"나도.... 사랑해...."


"갈까?"


"그래."


두 남녀는 손을 잡고,

환한 빛이 쬐이는 황금빛 문을 향해 걸어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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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에 걸쳐서 쓰긴 썼음

나름 처음에는 '에헤헿 신비한 소재닿 헤헿'

이러면서 막 썼는데

설정도 개판이고 등장인물도 개판이고 해서

원래 쓰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대대적인 수정이 이루어졌음

일단 마지막 엔딩이 너무나도 괴랄했기에 부가설명을 덧붙이자면

얀순이의 마법은 당연히 실패했고 과다출혈로 죽어버림

하지만 얀순이와 얀붕이는 천국에서 만났다는 스토리임


어째 처음에 쓰던 것들보다 더 필력이 떨어지는 것 같긴 한데

정말 얀붕이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귀한 시간 들여서 이런 사소한 글 읽어줘서 너무 고맙다

꽤 오래 글을 못쓸 수도 있고,

아니면 금방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하지만

다음에 글을 쓸때는

얀붕이들의 사료 미친듯이 읽어서

얀붕이들에게 만족스러운 글 제공하도록 하겠음

읽어줘서 고마워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