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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입법예고도 끝나서 타이밍이 늦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계속해서 한 목소리를 낼 알페스 반대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적어본다. 


1. 알페스 이슈를 성별 갈등 이슈로 보는 것

사실 이전에도 많이 지적했던 문제라 다루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에 대한 쉬운 해결방법이라도 제시하기 위해 다루기로 했다. 

우리가 알페스 이슈에 분노하는 이유는 "몇몇 여성이 현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동성애 음란물을 제작해서"인가? 

그보다는 "몇몇 네티즌들이 현실의 인물을 대상으로 한 동성애 음란물을 제작해서," 나아가 "이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세간의 분위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 아닌가?

같은 소리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두 문장은 정당성과 파급력 면에서 차이가 크다. 

우선 전자는 이 문제를 제대로 정의내리고 있지 않다. 알페스 작성자 모두가 100% 여성임을 증명할 수 있는가? 만약 알페스의 대상이 현실 남성이 아니라 현실 여성이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올바른 해결법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라도 문제의 정의는 올바르게 내려져야 한다. 

또한 전자처럼 성별 갈등 프레임이 씌워지면 성별 갈등에 큰 관심을 두지 않거나 일부러 회피하고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맨날 있는 네티즌들의 병림픽'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다. 그러면 문제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감소하고 우리가 원하는 알페스 작성자들의 처벌은 크게 지지받지 못한다. 

성별 갈등 프레임을 벗는 제일 간단한 방법은 문제를 정의내릴 때 '남성'이나 '여성' 같은 단어를 빼고 정의내려보는 것이다. 

군 가산점제 이슈를 예로 들어보자. "남성의 군 복무 경험에 대한 정당한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가산점 제도 폐지를 문제 삼는 이유인가? 앞의 문장에서 '남성'은 빼도 되는 것 아닌가? "군 가산점제 재도입으로 인해 군 복무한 여성이 가산점을 받아도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암묵적으로라도 표현하는 쪽이 성별 갈등 프레임도 벗으면서 더 폭넓은 지지를 받을테니 말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남성만을 위한 제도 아니냐?"라고 이의를 제기해도 "아니, 남성이라고 특정하지는 않았는데? 싫으면 너희도 자원입대해서 가산점 받던지."라고 반박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만약 문제를 정의내릴 내 무의식적으로 '남성'이나 '여성' 같은 단어를 포함하고, 그 단어들을 떼기 힘들다면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 한 번 정도는 고민해보기 바란다. 무조건 컷하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문제 정의에 저런 단어가 필수적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문제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알페스와 가상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음란물(이하 2D 음란물)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

알페스와 다른 성별 관련 이슈를 연결지어서 얘기하는 건 채널에서 자주 보이는 얘기다. 어쩔 수 없다. 안 그러면 채널이 활성화가 안 되니까. 해서 이 글에는 그 중 대표적인 것 하나만이라도 연관짓지 말자는 의미에서 적어본다. 

표현의 자유 운운하면서 2D 음란물은 금지하자고 주장하면서 알페스는 허용하자고 주장하자는 것이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의견인 것으로 안다. 당연히 모순이다. 하지만 우리 중 대부분이 "2D 음란물은 허용하면서 알페스는 금지하자"는 의견을 지지한다면  "표현의 자유 운운하면서 자기들 입맛 따라 같은 창작물을 다르게 대우한다."는 부분을 지적하면 안된다. 우리가 지금 지적한 모순점을 나중에 페미니스트들도 똑같이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알페스 금지가 예상대로 진행되었고 이후에 2D 음란물은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고 가정하자. 페미니스트들은 "알페스 금지했는데 2D 음란물은 왜 허용하느냐, 모순이다"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때는 '표현의 자유' 같은 말은 먹히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면 알페스도 다시 허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때는 다시 병림픽 되겠지. '피장파장의 오류'이다.(오류라고 지적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오류 수반도 경우에 따라서는 토론 전략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을 한 논리학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당장 중재자도 없는 저런 진흙탕 싸움에서 오류 지적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미지수이다.)

우리가 알페스를 문제 삼는 이유는 무엇인가? 상기했듯이 "현실의 인물을 대상으로 한 동성애 음란물 제작은 처벌하는 것이 정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D 음란물은 왜 허용해야 하는가? "현실의 인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 페미니스트의 주장에서 지적해야 할 모순점은 "현실의 인물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은 허용하면서 가상의 인물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은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가 될 것이다. 

이런 함정은 2D 음란물 이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A 문제와 B 문제를 연관지어서 얘기하는 것은 많은 토론이 삼천포로 빠지는 이유 중 하나이며 논점을 흐리는 주된 원인이다. A 문제를 얘기하는 중에는 A 문제만 얘기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B 문제까지 끌고오면 나중에 B 문제에 대해 얘기할 때 다 끝난 것 같았던 A 문제가 재소환될 수 있다. 앞에 적었던 것처럼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본인도 이해하고 있지만 이런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아주기 바란다. 


옳은 말 열 개를 끌고 와야 모순 하나를 겨우 반박할 수 있다는 걸 요즘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알페스 반대자들은 정말 가성비 안 나오는 힘들고 혈압 오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침묵하는 다수가 목소리 내주는 반대자들을 믿고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계획 없이 쓴 글이라 횡설수설이 좀 있지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응원할게.


2줄 요약

1. 알페스 이슈가 성별 갈등 이슈로 보인다면 '남성'이나 '여성' 같은 단어를 빼고 문제를 재정의해봐라. 정당성과 파급력이 오른다. 

2. 알페스 이슈에 B 이슈를 묻히면 나중에 B 이슈를 논할 때 알페스 이슈가 재점화될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