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거래했던 몇몇 챈럼들은 알겠지만

할 줄 아는 건 책보고 공부하는거 밖에 없어서 학계쪽에서 종사하는 평범한 챈럼임.

나는 10년 정도 '집단지성'을 수학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연구를 해왔음.

지금이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온라인 집단지성 하면 동기들도 '디씨 아니냐?ㅋㅋ' 할 정도로 인식이 낮았었음.

각설하고 혹시 이 분야에 관심있는 챈럼들은 읽어주면 좋겠어. 관심 없으면 지루하니 패스.


집단지성을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conformity (동조) 또는 concurrence (의견일치) 경향성임.

우리 속담에 초록동색이나 유유상종이라는게 있듯이 '모여있으면 비슷한 놈들'이라는 인식은 고대부터 내려오는 인식이었음.

그래서 사람들은 연구를 하기 시작했지. 


'사람들은 왜 비슷한 놈들끼리 모이는가?'.


그런데 연구를 하던 중 놀라운(?) 사실이 발견됨. 바로 '비슷한 놈들끼리 모이는 것'이 아니라 '모이면 비슷해 진다는 것' 이었음.

즉 유유상종이 아니라 상종유유가 맞는 것 이었음.

지금이야 뭐 당연한 이야기 처럼 들리겠지만 1990년대 이전, 인터넷 커뮤니티가 발달하지 않았던 때에는 놀라운 발견이었음.


그래서 학자들은 '진짜로 사람들이 모이면 비슷해 지는지?'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음.

수 많은 삽질 끝에 관련 연구들은 사람들이 모일 때 나타나는 이상한 경향성을 몇 가지 포착하게 됨.


뭐 여러가지가 있지만, 모든 연구가 동의하는 경향성이 바로 앞에서 말한 '동조' 현상이었음.


분명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됬는데, 막상 조직생활(?)을 시작하면 생각이 거짓말처럼 비슷해져 가는 것을

심리학자들이 수 많은 노가다 실험을 통해 밝혀냈음. 


드디어 심증이 확신으로 바뀌고, 이제 연구자들은 사람들의 생각을 비슷하게 만드는, 즉 동조현상의 원인이 뭔지 찾아 헤매기 시작했음.


이에 대해서는 확실히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몇 가지 유력한 가설이 있음. 


첫 번째 가설은 '조직적 압력'임.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내가 반론을 냈을 때 이 조직에서 왕따 당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조직의 의견에 동조하는 척 한다는 것임. 

그런데 몇 몇 연구에서는 동조하는 척이 아니라 진짜 생각이 바뀐다는 것을 밝혀내서 '조직적 압력'은 동조현상의 부수적 원인으로 치부 되고 있음.


두 번째 가설은 '친밀성' 임.

같은 조직원들 끼리 같이 지내다 보면 친해지고, 그러니까 그냥 서로 '좋은게 좋은거니까!' 서로서로 동조해준다는 가설임. 

그러나 이 가설은 친밀성이 높을 수록 반박을 더 잘하게 된다는 연구들이 나오면서 사실상 폐기됐음. (찐친일 수록 막말하는거 알지?)


세 번째 가설은 '침묵의 나선'임.

이건 들어본 사람들 있을 거야. 길에서 강도 당하는 여자를 여러 사람이 목격했는데 서로 '다른 사람이 신고하겠지' 해서 아무도 신고 안했다던(물론 구라로 밝혀졌지만). 근데 이 침묵의 나선은 실제로 있는 현상이고, 몇 몇 학자들은 이 현상이 '동조현상'의 직접적 원인이라 주장했음. 조직의 결정이 틀린 걸 알아도 '에이. 다른 사람이 지적하겠지' 하면서 미룬다는 거임. 

그런데 이 가설에 대해서도 몇 몇 연구들은 '책임이 있는 사람도 조직의 의견에 맹목적으로 동조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모든 경우에 '침묵의 나선'이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임.


네 번째 가설은 '무결성'임.

요건 우리가 선동당했다라고 할 때 그 선동이랑 비슷함.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조직의 의견을 수용해서 무조건 믿는거임. 즉, 자기가 속한 조직이 '무결하다' (=결점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조직의 의견에 순응하는 경우임. 근데 이건 일반적 조직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고 '권위 있는' 조직에서 잘 나타남.  권위 있는 조직이라 하면 뭐 청와대, 서울대, 삼성 이런거 타이틀 달고 말하면 뭔가 믿음직 스러운거 있잖어? 이런 조직들이 권위 있는 조직임. 이게 극단으로 나타난 케이스가 바로 전체주의, 나치즘임.


마지막으로 다섯번 째 가설은 '도덕성'임.

주의해야 할 점은 여기서의 '도덕'은 그냥 상식적인 도덕의 개념이 아니라, 조직에서 만들어진 규범, 관습 등의 준수에 대한 도덕성임.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나쁘지만, 테러를 시도하는 테러리스트를 사살한 것은 OK 잖슴? 요런게 여기서 말하는 도덕성의 기준임. 요 가설이 전반적으로 가장 지지 받고 있음. 그에 대한 이유는 이에 대한 반례가 적은 것도 있지만, 비슷한 현상이 전혀 다른 연구 분야에서도 밝혀졌기 때문임. 바로 온라인에서 허언증 (정확하게는 가짜뉴스) 대해 연구하던 사람들이 비슷한 현상을 발견한거임. 이거는 소위 말하는 '투영'이라는 현상인데,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 처하고 싶은 상황을 투영해서 마치 사실인 것 처럼 온라인에서 행세한다는 것임. 이 두 연구를 합쳐서 몇 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함.

'어떤 조직에 오래 있으면, 그 조직의 사상에 뇌가 절여 져서 그 조직의 규범에 따르는게 '도덕적'이라고 믿게 되며, 그런 도덕적으로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온라인에 '투영'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조직적 '동조'현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는 것 이었음. 


이 밖에도 '강압적 리더십', '구조적 경직성', '인센티브/페널티' 등 여러가지 가설이 있지만 위 가설들이 가장 유력함.


(현재 진행중인) 찻집 사태를 보면 위 5가지 현상이 다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임. 와. 시바 이걸 어떻게 해결을 하냐?


근데 여기에 대해서 재미있는게 있음.


문제의 원인은 존나 다양한데, 해결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거임. 

이에 대해서 2010년도에 CM대학에 Woolley은 Science지에 논문 하나를 기고하게 되고, 이 논문은 지금까지도 집단지성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중 하나가 되었음. 

이 논문에서는 조직이 멍청해 지지 않기 위해서, 다시 말해 건전한 집단지성이 나타나기 위한 솔루션이 담겨있음. 

이 논문의 표면적 결론은 다소 웃김.

조직 내 '여성의 비율'이 높을 수록 집단지성 수치가 높게 나타남. 여기서 끝났으면 페미 논문이었겠지만 Science지에 실린 이유가 있음.

Woolley는 대체 왜 이러는지 추적을 했고 그 원인을 찾아냄. 

여성이 전반적으로 남성보다 '프로불편러'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었음. 

즉, 연구결과를 다시 말하면 조직내 '프로불편러의 비율' (=여성의 비율)이 높을 수 록 건전한 조직이 된다는 것이었음.

그 이유는 프로 불편러들이 조직에 가져오는 두 가지 긍정적 효과 때문이었는데, 하나는 '의견의 다양성'이고 다른 하나는 '인지적 민감성'임. 


의견의 다양성은 한마디로 말하면 '언냐들. 이거 나만 불편해?' 이거임. 

인지적 민감성은 공감능력과 비슷한데, 다른 사람들의 의견, 감정, 상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거임. 쉽게 말하면 우리 주딱이 '몸이 아파서... 어제 불을 끄지 못해 죄송합니다' 라고 했을 때 남자들은 '그래도 주딱인데! 아파도 관리는 해야지!' 이렇게 할 가능성이 높고, 여성의 경우에는 '몸이 많이 아팠구나. 나도 아팠을 때 생각해보면 아파서 아무것도 못했었지. 그러면 비록 주딱이지만 불을 끄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되네' 라고 반응하는거임. 


결론적으로 Woolley와 다른 후속 연구들은

의견의 다양성은 조직이 가진 지식의 범위를 확장시켜줌 -> 고려할 수 있는 대안들이 많아짐

인지적 민감성은 상호작용의 동등성(equality)를 확보해줌 -> 모든 대안들이 동등하게 고려되고 논의될 수 있음

이 두 가지 작용이 집단지성 발현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강조하고 있지.

당연해 보이지만... 이걸 통계적으로 증명해 냈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지.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니까.  


현재 찻집을 보면 이 두가지가 완벽하게 결여되어 있음.

의견의 다양성을 묵살하였기에 레드윈, 옥타곤, 알리 등등 좋은 대안들이 폐기되었고 언급조차 불가하게 되었지.

또한 실명/지역/나이/연락처 등이 공개되어 있어 인지적 민감성이 발현될 수 있는 통로를 막아버렸고, 논란의 종착지는 나이, 직업, 찻집 활동 등으로 귀결되어 상호작용의 동등성이 박탈되었지. 


연구에서는 이런 조직을 뭐라고 하는지 암?

바로 Fiasco임. 처음 보는 단어라고? Disaster는 뭔지 알지? (현직 대통령 떠올리지 말고)


우리나라 말로하면 재앙적 사태, 실패작, 좀 거칠게 말하면 쓰레기같은... 쯤으로 번역 가능함.

이런 조직을 학계에서는 재앙적 조직이라고 부름. 그냥 좀 부족한 조직, 문제 있는 조직 정도가 아니라 '재앙'이라고 함. 

한마디로 쓰레기같은 조직이고 사회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판단되는 조직인거임. 


여기까지 찻집을 '이론적'으로 분석해 봤음.


실천적 영역과 학문적 영역은 너무 다른 부분이라 뭐 어떻게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전문가들 만큼 잘 알지는 못함.


암튼 챈럼들은 마음에 이 내용을 새기고 


우리 챈이 집단지성이 없어진 재앙같은 조직이 되지 않도록 모니터링 하고 피드백 해주길 바람.


솦붕이 인증 하고 끝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