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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하고 반년.


복학도 안 하고 알바도 안 하고 인생을 광전사의 그것처럼 갈아버린 지가 반년이다.


부모님은 제주도로 여행 가버리고 집에 혼자남은 나는 소파에 누운 채 유튜브만 보기를 몇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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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현관문 초인종이 울린다.


따로 온다는 친구의 연락도 없었고, 부모님에게서 오늘 택배가 온다는 연락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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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친하게 지낸 동생이 있었다.


5살 어린 여자아이, 외동아들에 맞벌이하는 부모님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던 나에겐 꼭 여동생이 생긴 기분이었다.

다니던 남중을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인 학교로 진학하였다. 학창 시절의 풋풋한 연애가 하고 싶은 마음에, 운동도 하고 머리도 다듬고 몸을 꾸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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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일까 친한 여동생이 나에게 연애 상담 같은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 취향이나, 받고 싶은 선물이나, 성격, 말투…. 이제 중학교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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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여동생의 집착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문자가 좀 자주오는 정도였다. 어디야? 뭐해? 누구랑 있어? 아까 누구야? 같은 문자가 틈만 나면 나에게 온다.

주말이면 함께 놀자면서 집으로 찾아오고, 성숙해지기 시작한 몸을 내게 부딪혀온다. 난 그런 모습이 부담스러웠던 걸까 거리를 두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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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한 이후 만남이 줄었다. 처음엔 울고불고 나에게 거짓말쟁이, 배신자, 쓰레기, 창 놈 기타 등등 욕을 쏟아냈지만 얼마 안 가 미안하다고 안기더니 퀭한 눈으로 어떤 여자냐고 내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사실 여자친구는 없다. 아무리 꾸며봤자 원판은 바뀌지 않고, 그냥 안 생기는 현실에 적응하고 남자애들이랑 게임이나 하면서 지냈다.

어떤 여자냐고 물어봤을 때 사실 없다고 말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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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한 여동생의 집착이 무서워서 바로 입대했다.

혹시 날짜가 알려질까 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도망치듯 집에 편지 한 장 놔두고 입대해버렸다.

쓸쓸한 입소식이었지만 마음 한편은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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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간의 훈련소가 끝나고 수료식이 다가온다.

제발 제발 부모님이 올 때 그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으면 했다.

퀭한 눈으로 날 쳐다볼 때 느껴지던 한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몸에 소름이 돋는다.

심지어 이렇게 도망치듯 입대했으니 다시 만났을 때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다리가 덜덜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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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의 힘든 수료식 연습이 끝나고 수료식 당일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어 저녁을 먹었다.

도망치듯 입대한 것에 대해 섭섭하신 듯 했지만 금방 이해해주셨고 저녁밥을 먹은 후 복귀했다.

친한 여동생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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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동생이 지금 내 앞에 서 있다.


" 오빠, 오랜만이네. "

" ... 야... 얀순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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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그간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 어릴 적 나와 놀았던 이야기, 내가 군대 입대한 거 알고 엄청나게 울었다는 이야기,

수료식 날 가고 싶었지만 학교 때문에 못 가서 미안하다는 이야기, 전역한 거 부모님께 들었다는 이야기,

집에 혼자 있는 거 알고 밥해주려고 찾아왔다는 이야기.

부모님 여행 간 거를 나도 오늘 처음 알았는데 어떻게 알고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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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나누고 얀순이는 주방으로 갔다.

통통통 도마 위에서 울리는 기분 좋은 소리에 긴장이 풀리고 다시 소파에 앉아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 브레이브걸스_롤린_댓글모음 ...'

군대 있을 때 정말 많이 봤었는데 이렇게 역주행이라니 오랜만에 한번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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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뭐 봐? "

넋을 놓고 무대 영상을 보고 있으니 연순이가 다가와 물어본다.

나는 얀순이에게 군대 있을 때 아이돌 영상을 많이 봤다는 이야기, 브레이브걸스 롤린 영상은 하도 많이 봐서 다 외웠다는 이야기, 몇 년 된 노래가 갑자기 역주행했다는 이야기 등등 군대 이야기를 해주었다.


" 흐 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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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오빠는 연하가 취향이지? "

어릴 적 얘기했던 이상형에 대한 얘기가 생각났다.

사실 그때 이상형을 물어보는 얀순이의 표정이 무서워서 연하가 좋다고 둘러댔었다.

" 나이를 먹으니 연하보단 연상이 더 좋은 거 같아. "

나는 유튜브를 보며 ' 꼬부기 눈나 나 죽어 ' 하면서 웃었다.





" 하아...? 무슨 소리야 오빠? 오빠 이상형은 연하에 요리 잘하고, 양 갈래머리가 어울리는 사람이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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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엣.. "







" ... 아니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