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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빌려달라고?"


 점장의 황당함이 가득 담긴 되물음에, 그렇지 않아도 위축되어 있단 죠시주는 한층 더 움츠러들었다. 점장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시선을 죠시주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붙인 채 손을 머리 앞에 모아쥔 자세를 하고 있었다. 속칭 '도게자'라고 불리는 자세였다. 


 "제, 젬을 좀......"


 "왜?"


 "피, 필요해서...... 요."


 말끝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죠시주의 입에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점장의 현재 감정은 분노라기 보다는 어이없음에 가까웠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물론, 점장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대뜸 문을 열고 쳐들어와서는 힘껏 바닥에 머리를 박고 젬을 빌려달라 구걸하면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게 분명했다.


 "빌려줄 수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못 빌려주는건 아니라는 말에 죠시주가 화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가, 하지만, 이라고 조건을 달자 급속도로 다시 어두워졌다. 


 "어디에 쓸건지 정도는 말해줘야지. 난 아직 죠시주 네가 이러는 이유도 못 들었다고."


 그랬다. 죠시주가 하도 뜬금없이 방에 쳐들어와서 머리를 박고 도와달라 요청한 바람에 점장은 아직 그녀가 왜 이러는지, 대체 무슨 일인건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평소 죠시주의 이미지는 중2병에 제멋대로고 자기중심적인 녀석이긴 해도 사리분별을 못하지는 않는 녀석에 가까웠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쳐서 하는 말이 돈을 빌려달라니?


 이유를 들어야겠다는 말을 하자마자 죠시주가 눈에 확 띌 만큼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이걸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저걸 보고 점장은 심각한 일은 아니라는 확신을 내렸다. 정말 심각한 일이었다면 저런 당황스러운 반응이 아니라 침통한 반응을 보였겠지. 


 저렇게 말하는 것을 망설일 정도로 자존심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만큼, 심각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혼자 해결할 수는 없을 정도로는 심각한, 그런 애매한 정도의 일일 것이다. 점장은 아직도 우물쭈물하며 고민하고 있는 죠시주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다시 몸을 돌려버렸다.


 "아!"


 "이유를 못 말해주겠다면 우리 거래는 끝. 그 도게자는 못본 걸로 해줄테니 그대로 일어서서 나가면 돼."


 "기, 기다려! 말할게! 말할테니까 제발!"


 죠시주가 이번에는 울상이 되더니 점장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드디어 자존심을 굽히기로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점장은 속으로 웃으면서 바짓가랑이에 매달리는 죠시주를 떼어냈다. 죠시주를 바닥에 꿇어앉히고, 자신은 침대에 걸터앉아 그녀를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된 점장이 다시 질문했다.


 "그래서. 왜 빌려달라고?"


 "그, 그러니까......"


 다시 한번 우물쭈물이 이어졌다. 점장이 한숨을 내쉬고 일어서려 하자, 죠시주가 다급하게 내뱉었다.


 "고소! 고소를 당했어!"


 "......뭐?"


 점장도 얘가 대체 왜 돈을 빌려달라는건지 나름대로 상상은 해봤었다. 건담 조립 같은 취미가 있으니 마음에 드는 피규어가 있는데 돈이 부족하다던가, 아니면 아냐에게 신형 부품이 필요하다던가 뭐 그런 이유들 말이다. 하지만 고소를 당했다니, 그건 상상도 못한 이유였다. 점장이 감탄 반, 어이없음 반이 섞인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죠시주의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봐."


 "그, 그게......"


 죠시주가 내뱉은 전말은 대충 이랬다. 평소처럼 인터넷에서 신나게 키보드 배틀을 벌이던 도중, 이번에는 재수없게 고소 요건이 성립돼버린 것이다. 덕분에 옳다구나 하고 상대방에게서 고소를 당했고, 호출당한지 며칠 후에 합의를 하자고 연락은 받았는데 당장 돈이 없다는게 문제였다. 


 합의를 못하기라도 했다간 당장 범죄자가 될게 분명했고, 그러면 그녀의 언니로부터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는 불보듯이 뻔한 일. 그래서 그나마 이 카페에서 친분이 있는 점장에게 돈을 빌리러 왔다는게 일의 전말이었다.


 "......시쥬야."


 점장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투로 한마디 하자 죠시주가 고개를 푹 숙였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엔 쪽팔린 일이긴 했다. 고소를 당했는데 합의금을 내기엔 돈이 없어서 돈을 빌리러 왔다니, 누구에게 상담하든 그녀의 자존심을 개박살낼 고민사항이다. 


 "그래, 고소를 당해서 합의금이 필요하다니 빌려주기는 할건데."


 저 오만한 진성 중2병 여왕님이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친채 돈 좀 빌려달라 머리까지 박았는데 여기까지 와서 매정하게 못 빌려준다고 거절하는것도 점장 입장에선 영 뒷맛이 찝찝한 행동이었다. 그래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얼마나 필요하길래 그래?"

 

 "그게...... 3만 젬 정도......"


 "3만?!"


 이번에는 점장 쪽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이린과 로코코, 이코스가 유카타를 사달라고 하도 조르는 바람에 나중에 있을 주노와의 데이트 비용까지 탈탈 털어 사줬던게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나마 꾸역꾸역 모의 전투에서 실적을 내고 다른 화폐까지 질러가면서 어떻게든 복구해놓긴 했는데...... 그래서 저 3만 젬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큰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 3만 젬 없으면, 다른 사람한테......"


 "아니, 젬은 있어. 어이가 없어서 이럴 뿐이지."


 손을 가슴께에 모으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죠시주를 보며 점장이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죠시주는 한숨 소리에 화들짝 놀라더니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점장의 눈치를 살폈다.


 "뭐, 좋아. 내가 일단 너한테 돈을 빌려준다고 쳐. 그러면 넌 내 3만 젬은 어떻게 갚을건데? 그거 하루이틀로 끝날 돈이 아닌데?"


 죠시주의 눈이 반짝 빛났다. 마치 점장이 이런 말을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어, 어쩔 수 없잖아...... 돈은 없고, 지금 당장 할수 있는건 이런거 뿐이고......"


 상의를 벗으며 나름 넓게 벌어진 어깨와 탄탄한 몸, 군데군데 박힌 잔근육을 드러낸 점장이 죠시주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각오는 한 모양인지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흘끔흘끔 점장의 상반신을 훔쳐보기까지 하고 있었다. 


 죠시주의 방법은 간단했다. 섹스로 퉁치자는 것. 일단 오늘 한번 해보고, 몇 젬이나 몸으로 떼우고 몇 젬이나 돈으로 갚을지 점장이 알아서 판단해달라는 제안이었다. 덧붙여서, 자기는 섹스 한번에 3천 젬 정도로 정해주면 고맙겠다는 아주 발칙한 발언까지 덧붙였다. 왜 하필 3천젬이냐고 물어보니 점장과 다섯 번 정도 몸을 섞어서 1만 5천 젬 쯤 차감 받은 뒤에 나머지 1만 5천은 어떻게든 자기가 마련해보겠다는 생각이라나.


 뭐, 점장으로서도 나쁠 건 없었다. 카페에 미소녀들만 가득하다지만 아직까지는 전부 그림의 떡이었고, 무엇보다 누구 하나를 골라서 사귀었다간 괴상할 정도로 점장을 향한 호감도가 높은 문에게 모가지가 따여 뒤질 가능성도 없잖아 있었으니까. 그렇게 매일 미소녀들만 보다 보니 욕구가 쌓여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마침 그 미소녀들 중 한명이 이런 제안을 해온 것이다. 


 "그런데, 섹스의 범위는 어디까지야?"


 "어, 어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섹스 한 번이냐고. 그건 정하고 해야지."


 점장이 바지까지 마저 벗어 의자에 걸쳐놓으며 질문했다. 이런 질문을 받을거라곤 예상 못 한 모양인지 죠시주의 눈동자가 핑핑 돌았다. 점장의 입장에선 꽤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래야 페이스를 조절하니까. 정작 질문의 당사자는 가뜩이나 빨간 얼굴을 더 시뻘겋게 물들인 채 대답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지만.


 "모, 몰라!"


 "응?"


 "나도 모른다고! 그냥 너 알아서 정하면 되잖아!"


 그러더니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침대에 엎어져버린 죠시주를 본 점장이 피식 웃었다. 알아서 정하라니, 대체 나중에 어떻게 될 줄 알고?


 "알았어, 알았어. 그러면 '적당히' 내가 알아서 정할게."


 속옷까지 전부 벗어서 의자에 걸쳐놓은 점장이 침대로 다가갔다. 발자국 소리에 맞춰 죠시주의 몸이 같이 움찔거렸다. 그대로 시쥬의 옆에 걸터앉은 점장은 얼굴을 가린 죠시주의 손 하나를 붙잡아서는 우악스럽게 끌어올려 자신의 발기한 물건을 감싸쥐도록 만들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뜨끈한 감각에 죠시가 히익, 하고 얕은 비명을 내뱉었다.


 얼굴 돌리지 마, 점장이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아직도 손의 감각이 적응되지 않는 모양인지 어쩔 줄 몰라하더니, 결심이 선 듯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바로 앞까지 들이밀어진 남성기를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바라보았다.


 "일단 입으로 한 발 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