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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모음

 

읽으면서 듣기 좋음.




숨이 꺼진 요우카의 몸이 점차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모래알처럼 흩어지며, 바람을 타고 쓸려나간다.

머지않아, 요우카가 있던 곳에는 빈 공간만이 자리했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허무하고 쓸쓸한 결말이었다.

요우카.

내 친어미.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 짓고있던, 그 표정은 누구를 향한 감정이었을까.


호롱, 호롱...


꼬리에서부터 무언가가 느껴진다.

요우카의 말대로, 이제는 내가 대요호가 되는 때였다.

고개를 돌리자, 다섯 개였던 꼬리는, 어느새 아홉개가 되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아아...


순간 사위가 어두워지는 감각과 함께, 돋아난 꼬리로부터, 새로운 경험이 전해져 온다.

그것은 본디, 요우카의 분신에 불과했던.

진짜 요호가 아니었던 나이기에 몰랐던 것이었다.

꼬리를 다루는 힘.

요호의 근본. 혹은 본질.

수많은 정보와 경험이 머리로 들어온다.


"으읏....아윽!"


하지만, 쉬운것은 아니었다.

기억에 섞여 요우카의 감정이 새어들어온다.

기백년동안, 쌓여온 인간에 대한 증오.

편린처럼 스쳐지나가는 요우카의 경험들은, 괴로울 정도로 처절하고, 온 몸이 떨릴만큼 끔찍하기 그지 없었다.

모든 것이 밤처럼 어둡기만 하다.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들 그 전부.

새카맣게 타버린, 숯, 혹은 재처럼 요우카의 내면은 오로지 검기만 하다.


'여기 숨으세요! 어서!'


'당신은요... 당신은!'


하나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얼마나 오래된 기억인지 빛바래보일 만큼, 흐릿하기만 한 장면이다.

검고, 질척거리는 것들과는 달리 잿빛의 색을 띠고 있던 기억.


한 남자가 요우카를 누군가로부터 숨기고 있었다.

울며, 난 괜찮으니 같이 도망가자고 외치는 요우카의 품을 꼭 안아주며, 미안하다고 말한다.

슬픔. 괴로움.

증오와는 다른 감정이 교차한다.


'미안해요. 요우카. 어쩌면 잠깐 헤어져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싫어...으흐흑 싫어! 떠나지 마요...제발...'


'떠나지 않을게요. 다만, 잠깐 다녀올게요. 아이랑...같이 기다려 주세요.'


배가 부풀어올라, 걷는것도 힘들어하는 요우카를 동굴에 숨긴, 남자가 뛰어간다.

하지만, 남자는 요우카가 며칠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기억이 지나간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커다란 외침.

너무도 괴로워, 피눈물을 흘리는 요우카가, 쓰러진 남자를 품에 껴안고 있었다.

이미 늦어도 너무 늦었다.

차갑게 변해버린.

자신이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었다.

너무나 큰 절망.

너무나 큰 슬픔에 파묻힌다.



이내.



분노가 휘감는다.

증오가 끓어오른다.

요우카의 사타구니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그녀는, 그 날 모든걸 잃었다.


증오.

증오.

증오.

증오.

증오.

증오.

증오.

증오.

증오.

증오.

증오.

증오.

증오.

증오.

증오.






끝났다.










다시금, 넓은 공동이 눈에 들어온다.


...끝났구나.


아홉 개의 꼬리가, 돌연히 부는 바람에 살랑거린다.

기억.

경험.

모든 것을 전해받은, 눈으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


허무한 탄식이 튀어나온다.

마음의 한 쪽, 산산조각난 희망이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미안해."


고개가 떨어진다.

공허함과, 어찌할 수 없는 분함이 맴돌아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


"미안해, 아빠."


열심히 했는데.

이제, 그 누구보다 강한데.

그런데도....

아무리 강해졌어도.

그 기억을 전부 되짚어보았음에도.

대요호가 되었음에도, 아빠를 살릴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얼굴을 파묻었다.

죽어가면서도, 잔뜩 비웃던 요우카의 말이 떠오른다.


이미 죽었어야 할 운명이라고.


...아빠는 멧돼지에 치였던 순간, 분명 아빠는 죽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억지로 되살린것은 나였다.

절대 불가능했던 억지.

요우카도 해내지 못했던, 그 불가해한 억지가 어찌 가능했던 걸까.

대요호가 되며 개안(開眼)한, 눈으로, 내 가슴을 본다.


미약하지만 하얗게 타오르는 기운.

어느새, 질척거리며 검게 물들은 나와는 다른 것이었다.


요우카가 말했던, 신선이 내린 축복이었다.

이것이 아빠를 되살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가질 수 조차 없었다.

이 힘이 있어도, 이제는 너무나 작아 더이상 쓸 수가 없었다.









[아해야.]


부름이 들린다.

어째서인지 그 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멍하니 고개를 돌려, 천천히 한 곳을 바라보았다.


공동의 한 켠.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에, 하나의 형상이 생겨있었다.

빛무리에 휩싸인 짐승의 형상.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신비한 기운과 똑같은 기운을 온 공동에 퍼뜨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해야, 가엾고 딱한 아해야. 본녀를 알겠느냐.]


머리에 직접 말을 거는 듯한, 신비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처음 보지만, 처음 듣지만, 알고 있다.

본능적으로 알 수 밖에 없었다.

요호라는 것이 모두 그녀의 손에서 태어났기에.

옥산(玉山)에 기거하며, 죽음과 생명을 관장하는 신.

세상에 퍼져있는 모든 짐승들의 모태.

청조(靑鳥)와, 구미(九尾)들을 거느리는, 어머니.

보는 것만으로도, 고개를 조아리게 만들만큼, 그 눈에는 엄숙함과 신비함이 담겨있었다.


[기구하구나, 채이고, 멍들어 병들었구나. 딱한 것.]


그리 말하며, 나를 보는 그 존재의 눈에는 동정이 담겨있었다.

그 시선은 아빠를 제외한 그 어느이에게도 받아본적 없는 것이었다.


[아해야, 이리 오너라.]


그 분이 부른다.

나는, 멍하니 그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점차 씻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온 몸에 가득했던, 상처들이 아문다.

마음 가득히 자리했던, 아프고 괴로운 감정들도 가라앉아간다.

평온해지는 마음 속에서, 존재는 이내 말을 이었다.


[이미 오랫동안, 호조사(狐祖師)의 자리가 공석이었느니라, 원래의 업을 이어받아야 할 네 어미의 타락이, 너무나 길었던 탓이었지. 본녀가 축복을 내린 이유를 알겠느냐?]


"........"


[본디, 인세에 깊게 관여해서는 안되거늘, 요호의 난세 속에, 인간의 왕이 나오지 않은지 기백년이 흘렀다. 이대로 갔다간 맥이 끊기는데도 머지 않았을 게지.]


그러니, 그 업을 잇거라.

시간이 없느니라.


그 분이 그리 말했다.

내가 짊어질 업.

세상을 태평히 할, 인간의 왕을 만드는 것.

본디 내 어미가 해왔어야 할, 요호의 본질이었다.


[힘에 겨울게다. 인간에게 뿌리박힌 요호의 공포를 전부 지우기는 분명 힘들게지. 특히 이미 인간에게 상처받은 네게는 더욱 가혹하기 짝이 없는 것을 본녀도 안다. 허나, 아해야. 믿어야 하느니라.]


어려운 일이었다.

분명 그 말처럼, 가혹했다.

그 마을에서의 일이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릴 만큼.

이미, 사람들은 나를 무서워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어.

그 순간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떨리는 내 몸을, 그 분이 바라보았다.


[믿을 수 있다. 아해야, 이미 인간의 선함을 네 눈으로 보지 않았느냐. 지금도, 네가 오길 기다리며 믿는 인간이 있지 않느냐.]


순간적으로 머리를 치켜들었다.

아빠.

아빠가 있어.

아빠같은 사람들이 있을까.

남들과 다른.

모두가 무서워하는 나를 믿어줄 사람들이 있을까?


[선함과 악함을 모두 가진 것이기에 인간이니라. 올곧게 이끌고, 올곧게 나아가거라. 그것이 네 업이다.]


그 울림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이끌고 나아갈 수 있게, 확실한 지표를 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간절히 바라던 것.

어쩌면 이루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쩌면 헛된 바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절박한 나로서는 이제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무릎을 꿇은채 있던 나는, 채 떨어지지도 않으려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어머니, 만물의 어머니...더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어머니의 말대로, 인간을 이끌겠습니다. 어떠한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인간을 믿겠습니다. 그러니, 단 하나의 소원만...그저 단 한번의 소원입니다...아빠를...아빠를 제발 살려주세요."


[...어리석은 아해야.]


탄식이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큰 침음에, 나는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처절했다.

이렇게 아빠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빠에게 저지른 잘못들이.

그저 내 욕심으로 저지른 모든 일들이.

내가 저지른 죄를, 모두 사과할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보내서는 안됬다.

적어도, 용서를 빌 시간이라도...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제발...흑...흑....제발 부탁드려요...."


[...네 어미와 똑같구나. 다른 짐승보다 정이 깊은 것까지도,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도, 모두 똑같구나. 본녀의 실수이니라. 그대들에게 인간을 사랑하기를 바랬던 본녀의 욕심이 아해들을 괴롭게 했구나...]


[허나, 딱하다고 해서 그 것을 이루어 줄 수는 없다. 그대의 아비는 한계에 달했느니라. 이미 깨진 독에 물이 찰 수 있겠느냐.]


그러면, 저는...이제 어찌 살아야 하나요.


그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제는 보내야만 하는 것 같았다.

아빠의 긴 여행을 보내주어야 한다.


"으흐흑....."


오랫동안 같이하고 싶었다.

언제나 같이 씻고, 언제나 같이 밥을 먹으며, 평온한 생을 보내고 싶었다.

아직 쌓아나갈 추억이 많았다.

너무나 짧은 끝.

길 줄 알았던 아빠와 나의 추억은, 잘려버린 붉은 실처럼 너무나 짧기만 했다.

하지만, 보내야 한다.

주먹을 그러쥐었다.

그것이 괴롭다.

너무나 아프다.







하지만










...적어도 마음속에 물들어있던 검은 도화지만큼은, 다시금 하얗게 변해 있었다.









[받아들인 게냐.]


"...네."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그 분은 천천히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장하구나. 정말 올곧은 아비의 품에서 자랐어.]


"감사합니다."


이내 빛무리가, 흩어져간다.

시간이 다 된걸까.

그 분의 몸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짧게만 느껴졌던지, 그 분의 눈에 언뜻 아쉬움이 담겨보이는 것만 같았다.


[근시일에 다시 오마. 앞으로 바빠질테니, 준비해야 할게다.]


"...네."


[아해야.]


문득 부르는 소리.

고개를 들자, 사라져가는 형상속에서 그 분의 본래의 모습이 언뜻 비쳐보였다.

따뜻한 눈을 가진 여인.

사랑하는 자식을 보는 듯한, 그 눈빛을 보며, 나는 왠지 모르게 울컥 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네 아비는, 아해를 셋카라고 부르더구나. 참으로 고운 이름이니라. 그러니 본녀도 아해를 그 이름으로 부르마. 셋카야. 그 소원을 이루어주마.]


"네....?"


[허나, 지금 네 아비를 되살리는 것은 아무리 본녀라도 불가능하다. 허나, 기백년, 기천년이 지난다하더라도, 그 마음을 간직한다면, 분명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 그것은 본녀, 서왕모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마.]


약속이라고 했다.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너무 놀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가능한거야?

오래 걸린대도 상관없다면, 다시 아빠를 만날 수 있는거야...?


[아, 잊을뻔 했군. 집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마. 건너거라.]


폭탄과도 같은 발언에 굳어있는 내 앞으로, 어떤 기운이 일렁인다.


스르륵.


틈과 틈을 이어놓은 것 같은, 균열같은 곳.

그 너머의 풍경에는 아주 익숙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집 한채가 눈에 들어왔다.


[어서 가거라. 시간이 없느니라.]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아이를 챙기는 것이 어미의 도리니라. 괘염치 말거라.]


그 말을 남기며, 기운은 완전히 사라졌다.

정을 느낀다.

오랫만에 느끼는, 따뜻함에 차가웠었던 가슴에 작지만, 따뜻한 열기가 감돌았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 분의 앞에 깊게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옮겼다.

아빠가 있는 곳.

원래, 돌아가야 할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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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조절 대 실패해버렸다.

다음편에 끝내볼게.

자러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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