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다녀올게"


"응, 여보. 다녀와!"


후순이는 후붕이의 볼에 입을 맞췄고

후붕이는 출근을 위해 밖으로 나섰다.



후순이는, 후붕이가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을 켰다.


남성용 속옷

신작 게임 콘솔


후붕이의 취미

후붕이가 필요한 것

그것들을 사기 위해서.




집안일은 은근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이제껏, 가정부를 불러다 하거나 후붕이가 했던 일이라서


후순이는 좀 서툰 손놀림으로, 간신히 일을 끝마쳤다.




"여보. 오늘은 늦어?"


후붕이에게 전화를 한다.


"아니, 늦진 않을 것 같아."


들려오는 후붕이의 말에

후순이는 안심하고

저녁 식사를 차렸다.


후붕이가 좋아하던 김치찜

후붕이가 좋아하던 미지근한 소주



"다녀왔어."


피곤에 쩌든 모습으로

후붕이는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들어왔다.


"여보, 어서 와!"


후순이는 후붕이를 반겼다.


후붕이는, 바로 욕실으로 향했고

후순이는 그 뒤를 졸졸 쫓았다.



후붕이가 씻는 동안

후순이는 식탁에 차례차례 음식을 올렸다.


오늘은 요리가 좀 잘 되었다.


비록, 손을 또 델 뻔했지만

이제, 실수로 손을 베는 일은 없었다.


점점 집안일도 익숙해져왔다.




씻고 나온 후붕이는 바로 침실로 향했다.


"어, 여보. 저녁 차려놨는데..."


"배 안 고파."


곧 방 안에서는 맥주캔을 따는 소리가 들렸고

후순이는 멍하니, 식어가는 김치찜을 바라보았다.


전화로 후붕이가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후순이는 멍하니, 방 문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후붕이는 후순이와 다른 침대를 쓸 셈인가 보다.

후순이는 오늘도, 거실에서 혼자 자야 했다.



언제던

후붕이는 손쉽게 집을 떠날 수 있었다.

짐도 별로 없어서, 정리 할 시간도 짧았고

이 집에 애정도 없었으니까.





"역할 바꿔서 살자. 못 견디겠으면 말해. 네가 원하는 대로 집 나가 줄게."


아직도 후붕이의 말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똑같이 하자고. 네가 나한테 한 그대로. 똑같이."


똑같이.


후붕이는 후순이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집안일을 끝내두고, 밥을 차리고

후순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였는지, 취미가 뭐였는지 기억하고


후순이는, 그런 후붕이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똑같이.


출근이라 해도, 회사에 가는 게 아니다. 후진이의 집으로 향할 뿐.

후순이가 회사를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내연남의 집에 갔듯이.


집에서 맥주를 따는 이유는, 후진이가 술 냄새를 싫어하니까.

후순이의 내연남이 담배를 싫어해서, 후순이가 집 안에서 피웠듯이.


후진이는 기꺼이 협조했다.

자살해버린 자신의 남편이, 후순이와의 내연 관계를 즐겼으니까.



인터넷에서는 아직도

'뻔뻔하게 살아있는 불륜녀와, 여자 버리고 도망가는 데엔 도가 튼 불륜남' 이라는 제목으로

후진이가 썼던 글이 남아있었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모두 후순이를 버렸고

비틀린 관계로나마 후붕이만이 후순이를 받아들였다.


싫다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된 후붕이에게 겁을 먹고

후순이는 이 관계를 받아들였다.

이러지 않으면 배신감에 괴로워서 자살할까봐

후진이 역시 이 관계를 받아들였다.





"여보, 주말인데 오늘도 출근해?"


"당신도 알잖아. 요즘 바쁜 거."


사실, 둘 다 그게 거짓말인 것을 안다.

그저, 주말에 집을 떠나 내연 관계의 사람을 만나러 갈 핑계가 필요할 뿐이라는 것을 안다.


사실, 후붕이와 후진이 둘 다 서로에게도 애정은 없다.

그저, 후순이의 상처를 쑤시기 위해서 관계를 가지고 사랑을 속삭일 뿐이다.

그저, 저승에서 지켜 볼 자신의 남편에게 보여주기 위한 관계일 뿐이다.




그렇게

비틀린 세 명의 관계는 지속될 것이다.

어느 한 명이 죽거나 지칠 때까지, 쭉.






p.s. 쓰고 싶은 건 은근 많은데, 도입부를 못 쓰겠던가 결말이 안 지어지던가 제목을 못 짓겠던가 해서 그냥 짧고 간단한 것만 쓰게 되네. 하...


소재 제공 및 과거글 모음 : https://arca.live/b/regrets/25502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