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10년 전.

수시 합격 후, 가장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던 시기.

WHITE ALBUM 2와 처음 만났던 2011년 12월.


10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느 한 해 크리스마스 이브, 짝사랑이 결국 끝을 맞이했을 때에도. 혼자선 안 마시던 소주를 땄을 때에도.

어느 늦가을, 한 한패팀에서 구인 글이 올라왔는데 조건에 미달되어 화앨 한패에 참여하지 못했을 때에도.

그러다 어느새 그 한패팀이 터져서 한패가 요원해졌을 때에도.

어느 겨울, 해외여행 중 '그 도시'에서 안개 자욱한 아침을 맞이했을 때에도.

또 어느 겨울, 잊지 못할 연애가 파국을 맞이했을 때에도. 또다시 혼자선 안 마시던 소주를 땄을 때에도.

또다른 어느 겨울, 눈이 내리는데 감성은커녕 골절 환자만 끝없이 와서 하늘을 욕했을 때에도

작년 겨울, 혼자서 준한패라도 만들겠다고 CC 시작부터 1인 번역을 시작했을 때에도.

올해 봄, 평소엔 들어오지도 않던 유자챈을 술먹고 갑자기 들어왔더니 마침 그날 화앨 한패 모집글이 올라왔을 때에도.

하나하나 열거할 수는 없지만, 크고 작은 일이 있었던 그 어느 해에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바빠서 죽어 버리고 싶었을 때나 할일이 없어서 천장 무늬나 헤아리고 있었을 때나

곁에 있었던 WHITE ALBUM 2와 세츠나.

언제든 정말 마지막이다 싶을 때, 언제나 세츠나가 짓는 그 미안한 듯한 미소를 보고 기운을 얻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을 했다.


10년간 8번의 정주행 올클리어. 그것도 최대한 다양한 루트 순서로.


4번에 걸친 성지순례.


박스와 PS3판, 기타등등 굿즈 모으기.


화앨2 한글패치 작업.


처음 번역, 검수 시작할 때는 막막했다.

일단 양이 많아서 혼자 하려니 적어도 준한패 만드는 데만 1년은 꼬박 걸린다는 계산이었다.

일단 잡아 보자 싶었다.

그렇게 반년 정도 작업했을 때, 다른 분이 기존 번역본을 준한패로 이식해서 올리셨다.

번토라레 느낌처럼 막막하긴 했지만, 어차피 더 완벽하게 하고 싶었기에, 마무리해 뒀던 CC 공통루트만 일단 배포해 두고 작업을 계속했다.

다행히 한패 팀을 딱 맞는 타이밍에 발견하고, 들어와서 속도가 올랐다.

그러나 기존 번역본들이, 단어 선택 같은 부분은 좋기도 했지만 비문 및 오역이 너무 많았다.

검수를 빙자한 재번역을 시작했다. 다행히 이제껏 번역과 검수 혼자 하고 있던 보람이 없지 않았다.


중간 이후로도 쉽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애착이 없는 작품이면 오히려 편했을지도 모르겠는데, 너무 애착이 많다 보니 괜히 더 진행이 안 됐다.

특히, 세츠나파로서는 속이 쓰리다 못해 터질 장면이 너무나 많아 갈수록 작업이 어려웠다.

다른 팀원들도 1차 검수는 함께 열심히 진행해 주셨지만, 통일성 문제와 내 애착 때문에 최종 텍스트 검수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마무리하면서,

계속 작업해 봤자 어차피 카즈사파한테는 세츠나 욕이나 먹을 거고, 하면서 나도 의욕 안 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고민되는 시간도 많았다.

스토리 문제뿐만 아니라, 안 그래도 8클에, 반년간 번역하며 적어도 5번씩은 다시 봤기에 그냥 더 보기 힘들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했다.

어떤 욕을 먹어도, 얼마나 힘들었다 해도,

결국 세츠나는 미소를 보여 줄 테니까.

결국 다 괜찮다며, 힘든 내색 하지 않고, 그랬구나 하고 보듬어 줄 테니까.


정확히 10년, 내 20대의 시작부터 끝까지 WHITE ALBUM 2와 함께 했던 날들.

그 장대한 역사의 마무리를 내 손으로 지을 수 있다는 게, 영광이면서도 안타깝다.

그래도, 즐거운 청춘, 힘든 일도 많았지만 즐거웠던 20대였다.


2021. 07. 29.

WHITE ALBUM 2 스크립트 번역/검수 완료.

Coming Soon.



* 검수 완료라고 쓰긴 했는데 스크립트도 오타 확인 등 살짝 남긴 했고 다른 파트 작업도 있으니 금방 확 나오는 건 아님. 다른 파트 분들도 고생하고 계시니 너무 재촉하지 말고 WHITE ALBUM의 계절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주십쇼

* 그래픽파트 담당자분께 허락받지 않고 로고 써서 죄송합니다. 혹시 문제 있으시다면 연락 주시면 내리겠습니다.

* 아직 먼 이야기이긴 한데 혹시 ef - the latter tale. 이나 소녀이론 한패/준한패 작업하실 의향 있으신 분은 프로젝트 생길 수도 있다 정도로 알고 계시면 좋을듯. 정말로 혹시 지금 당장이라도 작업하고 싶다 그런 분 계시면 댓글 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