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사람이 진짜,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을 직접 경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 장담하건데, 막상 일이 닥치면 그 놀라움과 당혹감에 아무 일도 못할 거로 생각한다.

"어어...! 으아아아악?!?!"

아니면, 저렇게 할 말을 잊고 소리치거거나.
물론, 소리지르면서 하던 짓을 계속하기는커녕, 그 자세로 굳는 건 당연하겠지.

무엇을 숨기랴, 나는 지금 실시간으로 현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이 두 눈으로 목격중이다.

천장에는 갈피를 잃은 빗자루가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있고, 방 한가운데에는 펄펄 끓는 가마솥이 있다.
그 속에 얼핏 보이는 거대한 무언가의 꼬리와 그 속에서 나오는 핑크빛 연기는 덤으로.

무엇보다 가장 하이라이트 부분은... 이 모든 기괴한 행위의 주체가 내 소꿉친구라는 것이다.
아직도 말이 나오지 않는지, 입을 뻥긋거리며 가마솥을 휘젓는 모습 그대로 굳은 채로.

그래, 인정은 해.
평소처럼 노크는커녕, 말도 안 하고 들어온 내 잘못도 있지.
그래도, 그녀도 내 방을 마구잡이로 열어 우리만의 흑역사가 많이 생기긴 했잖아?

"그러니까 쌤쌤으로 치자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 생각해!!"

진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맞춰 입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완벽한 마녀 코스프레다.
구부러진 고깔 모자와 검은 드레스라니, 21세기 한국에서 말이야.

가마솥과 저 안에 든 수수께끼의 내용물도 뭐랄까, 잘 어울리는배경 소품이라 할 수 있겠지.
아직도 '중력? 과학? 아아.. 이건 마법이란 것이다.' 라듯 자기의 존재를 어필하는 하늘을 나는 빗자루만 아니면 말이지.

"그럼 실례했습니다... 하던 것 계속 하시길 바랄게요.."

발끝까지 내려오는 검정 고스로릭 드레스를 질질끌며 이미 다 보여 준 광경을 두 팔 벌려 막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대로라면 지금 대치상황이 끝날 것 같지 않으니까.

슬며시 문을 닫고는 바로 옆인 내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태도가 이래서 그렇지, 나도 많이 놀랐다고.

"야!! 너 오해하고 있잖아!"

살포시 그녀의 방문을 닫자마자 바로 열리는 문.
어느새 그녀의 방의 모습이 평소 내가 알던 모습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그녀의 옷 또한 마찬가지로 평상복으로 돌아왔고.

"진짜 매직이네."

"너, 진짜! 하아... 일단 들어와."

"나를 실험재료로 쓸 생각이지! 마치 에로망가처럼!"

"..."

"... 라고 할 뻔.."

나름 굳은 분위기를 풀려고 평소처럼 농담을 던져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저 더 가라앉은 분위기와 사람 몇 담가 봤을 법한 눈초리.
어렸을 때부터 친구인 나였기에 망정이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면 분명 무서워서 기절했을 거라고.

자기 비밀을 들켰다는 것이 그리 불안한 걸까, 그녀의 손은 계속해서 떨리고 있었다.
손으로 치맛자락을 잡았다 피었다를 계속하는데, 계속 그러면 구겨져서 다림질해도 안 펴질텐데.

이런 딱히 상관없는 생각이나 하는 내 눈을 읽은 걸까, 아니면 방금처럼 무슨 수를 쓴걸까.
그녀는 다시 한번 내 얼굴을 보더니 한숨을 쉬곤 말을 이어갔다.

사람을 보고 한숨이라니, 실례야 그거.
마녀라도 상식은 지켜줘야지.

"긴장한 내가 바보 같아졌어."

"괜찮아,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거니까."

"그거 네가 할 대사가 아니거든!"

그냥 그런 이야기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겉도는 아이가 알고 보니 마녀였던 건에 대하여.
흔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 아닌가?

"만화나 소설에서 말이야."

"너 누구랑 얘기하는 거니."

놀란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았다고 해서 딱히 바뀌는 것은 없다 생각한다.
새로운 사실이 사실 현대에는 마법이 존재합니다~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해도 말이다.

우리가 알아 온 시간이 몇 년인데, '나 사실 남자였어' 같은 전개만 아니면 다 괜찮지 뭐.
남자였다고 해도 조금 떨어질 뿐이지 않을까.

결국, 나와 그녀의 관계는 이 일로 인해 딱히 바뀔 것도 없을 것이다.

"아니지, 마녀면 막 마법 같은 것도 쓸 수 있나?"

조금 일상의 바리에이션이 늘 수 있다는 점은 좋으려나.
진짜로 안심한 건지, 아까는 보이지 않던 침대에 털썩 앉더니 이내 뒤로 엎어지는 그녀.

누운 자세로 두 팔을 벌려 침대를 치더니, 베개가 손에 잡히자 내게로 던져 버렸다.
억울하게도.

"여자의 방에 말도 안 하고 들어온 네 잘못이야."

"누가 들으면 오해할라."

"그래도 싸. 진짜, 너가 알던 사람이 어느 순간 태도를 바꾸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래. 경멸, 경외, 혐오. 그냥 모든 감정이 난 싫어."

"마녀여도 성격은 그대로구나."

마녀인 자신과 일상의 자신이 뭐 다를 줄 알았냐며 툴툴거리던 그녀는 들킨 이상 숨길 생각도 없는지 악단을 지휘하는 지휘자마냥 손을 흔들어댔다.

그러자 다시 한번 허공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빗자루.
그리고... 찻잔 세트?

"아아--. 숨기는 거 귀찮았는데 잘됐네."

말은 저렇게 해도 내 앞에 차를 따르며 과자를 세팅해주는 그녀는 기뻐보였다.
속눈썹이 움찔거리고 한쪽 눈이 글썽이는걸 보면 필히 엄청 걱정했나보다.

여전히 자기 마음을 숨기는 것을 참 못하는 친구다.
무심코 나왔던 말들이지만, 참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말없이 도망쳤다면, 우리의 사이는 많이 달라졌겠지.

"근데, 뭐 하고 있었길래 들킨거야?"

너무 엄청난 사건에 조금 묻힌 감이 있지만, 나는 분명 오늘 놀러 올 거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PS5가 나는 없는데 그녀는 있거든.

신규 게임이 나와 오랜만에 둘이서 켠왕 하기로 약속까지 해 놓고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결과가 이거다.
애초에 자기가 한번 오라고 며칠 전부터 그랬으면서.

"흐흐.. 마녀의 비밀을 알고도 무사할 것 같아?"

어느새 그녀의 옆으로 뿅! 하고 나타난 개구리 인형을 흔들며 장난스럽게 말을 거는 그녀.
긴장감이 내려가니 다시 원래 성격이 나와 버렸구나.

"가마솥, 마녀 하면 딱 그거 아니냐? 저주의 물약!"

아직도 조마조마할 그녀라 확신하기에 장난삼아 주제를 던졌다.
궁금한 것도 당연히 많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우리가 안 볼 사이도 아닌데, 저렇게 긴장하는 여자에게 어찌 취조하듯 캐물을 수 있겠나.
마법. 신기하긴 해도 결국, 내 삶이 바뀌는 그런 건 아니니까 말이야.

"어어? 어어어..?!!!"

그래도, 이 여자.
저 반응은 진짜 아니지.

누가 봐도 범인인 얼굴 하고 있잖아.
코난에 나왔다면 검은 실루엣을 안 봐도 범인인걸 알 정도의 얼굴이라고.

심지어 침을 삼키는데,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얼마나 긴장한 거면 꿀꺽. 이라면서 침을 삼키는 거야.
진짜 누구 저주한 거니?

"아,아닌데에~~."

원채 거짓말을 못 하고 솔직한 것이 그녀의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거짓말을 하려 해도 저렇게 티가 나니 할 수 없는 게 맞는 말이겠지만.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돌리는 건 진짜 아니지 않나 싶다.
아까까지 조잘거리며 쉴세 없이 움직이는 손도 무지하게 떨리고 있다.
손에 든 찻잔에서 차가 계속 바닥에 떨어지잖아.

"너 막 사람 저주하고 그러는 거야..?"

사실이라면 조금 무서울지도.
음침하게 방구석에서 저주인형에 못질을 하며 저주의 비약을 만드는 소꿉친구라니, 그거 점프에 투고하면 바로 퇴고당하는 컨셉이라고.

"아니거든! 애착 인형이라면 모를까, 내가 저주를 왜 해!"

"애착 인형..?"

"보, 본 거야?!"

이건 다른 의미로 충격인데.
20살을 먹고도 아직도 인형을 못 버렸다니.

서둘러 술식의 재료라고 황급히 번명을 하는 그녀였지만 나는 이해해 줄게.

"이해 안 했잖아!! 내가 왜 이런애를 좋아하게 돼서는.."

그녀는 이제는 생각하기 싫다는 듯, 웅얼거리며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위로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대답 뿐.

아무리 인형을 안고 잔다는 게 쪽팔려도 그렇지, 저렇게까지 다운될 일인가.
결국 가마솥으로 뭘 만들려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물을 상황은아닌 것 같다.

우리에게 남은 건 남극도 이보다는 따뜻할 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냉담한 분위기와 강아지처럼 내 주위를 날아다니는 빗자루 뿐.
뭔가.. 뭔가 다른 주제가 필요하다.

"게임 콜?"

"..."

틀린 질문이었다는 듯이 빗자루가 내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지가 게임하자고 불렀으면서.

"그럼 이건 어때? 사실 내 엄마도 마녀였다? 나 여동생 있잖아. 걔가 몰래 말해줌. 지 요즘 엄마한테 무슨 마법 배운다고."

당연히 아니다.
그냥 분위기를 바꾸려 한 거짓말일뿐.

그녀도 동족(?)의 등장에 놀라하지 않을까?
잔뜩 흥분한 그녀에게 속았다고 놀리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거다.

여동생은 무슨, 걔는 나만 보면 지랄 발광을 한다.
맨날 내 머리카락이나 뽑아가면서 탈모 걸리라 하는데, 걔가 마녀면 나는 사실 하렘왕이다.

"... 알아."

"어?"

이런 결말은 아니지.
아니, 진짜로?

야, 말 좀 해 보라고.
그녀의 어깨를 잡고 마구잡이로 흔들어봐도 전혀 대답이 없다.

그녀가 왜 삐졌는지는 알 수 없어도 내 충격에 비할 수 있을까.
진짜, 진짜 할 말이 없나?

"나 얀희랑 비밀연애한다!"

얀희야 미안.
이렇게라도 주의를 끌지 않으면 내 엄마의 정체를 알 수 없잖아?

얀진이 또한 얀희랑 같은 반이기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거짓이라고 사과하면 되고, 지금은 내 가족이 우선이다.

"그러니까 빨리 아까 한 얘기를..."

"...발"

"뭐라고?"

흔들리는 그녀의 동체가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이 든다.
뭔가 들리면 안 될 말도 들린 것 같고.

방금까지만해도 볼에 바람을 잔뜩 넣고는 삐져 있던 그녀의 상태가 조금 이상한 것 같기도 하다.
대표적인 부분을 말하자면 눈에 있던 생기가 싹 사라진 것 정도?

"씨발, 이 창놈 새끼!!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오우..
그녀의 고운 입술 사이로 구수한 욕설이 쏟아져나온다.
처음으로 듣는 것 같은데.

뭐가 이럴 줄 알았다는 거고 나는 왜 욕을 먹고 있는 걸까.
그리고 어느새 제 손이 그녀의 어깨를 잡은 상태 그대로 멈췄는데요.

"씨발. 씨발. 씨발. 그 걸레 년이랑 아직 했지는 않았겠지? 응? 응? 응? 아니, 아니지. 대답하지 않아도 돼. 지금 확인하면 되는 거니까."

많이 낯선 모습의 그녀가 내 앞에 앉아 있다.
아까 보인 모습이 이 모습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문 닫고 도망갔을 텐데.

그간 내숭을 잘 떨었던걸까, 오늘 내내 처음보는 모습의 그녀네.

"하도 주변에 꼬리 치고 다니길래 오늘 약 좀 먹이려 했더니, 너는 그새를 못 참고 방에 들어오니?"

이 년이?
저주의 물약 맞네.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마음속으로 사과한 내게 사과해!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않나?
슬슬 진짜로 위험한 것 같은데.

"아가리 벌려, 창놈 새끼야. 그 몸에 밴 역겨운 년들의 냄새 다 지워 버리게 해 줄 테니까. 앞으로는 내 냄새만이 풍기게 될거야. 이것만 마시면 그 더러운 잡 생각 전부 사라질거야."

욕설을 뱉으며 그녀가 손짓하자, 아까 사라졌던 가마솥이 다시 나타났다.
아까와 변한 것이라면 안에 있던 재료들이 어느새 다 녹아 들어갔다는 것일까?
처음부터 불길한 핑크빛 연기도 나고 있었기도하고.

기분이 좋아질거라며 솥에서 액체를 정제하는 그녀에게서 도망가고 싶었지만,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처음 마신 차에 뭘 탄건가?
생각해 보면 그녀는 손을 떠는 척하면서 차를 다 흘려 버렸다.
약효가 돌때까지 삐진척, 말도 안 하고 침대에 앉아 있었고.


결정적으로 이년, 처음 나를 실험할거냐고 장난삼아 소리쳤을때 아무 말 안했던 이유가 뜨끔해서였어.

잘못 걸렸네, 시부럴 것.
돈가스 사준다는 소리에 따라간 어린 꼬마 아이 마냥, PS5 좀 즐기려다 최면 당하게 생겼네.

"다, 다, 다 됐다. 야 흘리지 말고 잘 삼켜라."

사람이 진짜,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을 직접 경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 장담하건데, 막상 일이 닥치면 그 놀라움과 당혹감에 아무 일도 못할 거로 생각한다.

입에서 느껴지는 쓰면서도 달콤한 맛에 정신이 몽롱해지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 것도 못 할 거는 개뿔, 그런 상황이 오면 도망가야 맞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