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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들의 마을에는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금기가 하나 있었어

바로 [인간 남자와 정을 통하지 말 것]

어린 마물들이 나이 들은 마물들에게 왜 그러면 안되냐고 물어볼 때면, 

‘인간들은 천성이 잔혹하고 사악해 살육과 파괴밖에 모르는 존재들이다, 

 자신과 다른 존재들을 보면 잡아가서 고문하다가 죽인다, 

 인간들과 접촉하면 순수한 자신들의 정신이 오염되어 타락하게 된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지

 

 


호기심 많은 한 어린 엘프가 있었어

어느 날 그녀는 동생에게 선물로 주려고 토끼 사냥을 나섰다가, 

흉폭한 야수에게 쫓겨 정신 없이 도망가다 보니 처음 보는 숲에 오게 되었지

그녀는 여기가 어디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야수에게 입은 상처와 쫓겨 다니느라 쌓인 피로가 겹쳐 그만 숲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어

 


그녀가 깨어난 건 3일 후, 숲 속의 한 오두막 이였어

상처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머리맡에는 조금은 딱딱한 빵과 아직 따뜻한 수프가 있었지

사흘간 아무것도 못 먹고 잠들어 있던 차에, 준비되어 있던 음식은 소박했지만 그녀에게는 충분히 맛있게 느껴졌어

그녀가 식사를 마쳤을 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지

“일어나셨네요. 어디 아프신 데는 없으신가요?”

“아, 저를 구해주신 분이신가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대화를 하던 중,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어

자신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남자의 귀가 이상하게도 너무 작고 짧았거든

“저... 혹시... 인간..?”

“네, 맞아요. 그쪽은 엘프 맞죠? 우와, 엘프는 이야기 속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자신을 구해준 이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버렸어 

말로만 듣던 그 무서운 인간이 눈 앞에 있다니...

여기서 빨리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넘어지고 말았지


그러자 남자가 그녀를 들어 다시 침대에 눕혀줬어

“다리를 심하게 다쳤어요. 일단 간단한 치료는 해두었지만 지금 움직이면 덧날지도 몰라요. 

 다리가 나을 때 까지는 여기서 쉬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왜... 저에게... 이렇게..?”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단 둘이 같이 살던 누나도 얼마 전에 저 멀리 도시로 시집 가서 이제 저 혼자 살게 되었거든요.

 아버지를 보고 배워 나무를 베어다 팔아서 먹고 사는데 문제는 없지만, 쓸쓸한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다리가 나을 때까지 제 말동무라도 되어 주세요”

이야기로 듣던 것 과는 다른 인간의 모습에 그녀는 당황하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그와 지내면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주는 그의 모습에, 웃으며 자신과 대화하는 그의 미소에 점차 경계심이 허물어져 갔지

 



이윽고 시간이 흘러 엘프의 다리가 다 나아 떠날 때가 되었지만,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어

“아, 이제 다리가 다 나은 거 같아요. 다행히 흉터도 거의 안 남았네요. 이제 돌아갈 수 있겠어요”

“저기, 나 이제 가면 우리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넌 아쉽지도 않아?”

“물론 아쉽기는 하지만...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 아니에요. 연락도 없이 이렇게나 오래 여기 있었잖아요”

“인간은 정말 우리 엘프에 대해 잘 모르는 구나? 우리처럼 오래 사는 종족한테 이정도 시간쯤은 눈 깜짝할 새라고.

 게다가 네 치료가 미숙해서 그런지 나 아직 다리가 좀 아픈 것도 같고...”

“어? 다리 아직 아파요? 저 나름대로 열심히 치료한 건데... 어? 그러고보니 어제는 잘 걸어 다녔잖아요..?”

“이 바보야! 아무튼 나 아직 다리 아파서 못 갈 거 같아. 여기 좀 더 있어야겠어”

“풋, 그래요 그럼. 다리 다 나을 때까지 여기 있어요”

그렇게 둘은 같이 지내며 서로를 알아가면서 서로에게 빠져들었지

그리고 엘프의 은근한 유혹 끝에 남자가 수줍게 고백하며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되었어

 

“우리 마을에는 인간 남자랑 사랑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었어.

 인간은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라고.

 그런데 이렇게 너를 보면 그 이야기가 다 틀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어른들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걸까?”

“인간이라고 다 저 같은 건 아니에요. 분명 나쁜 사람들도 있어요.

 아마도 어른들은 나쁜 인간을 만났던 게 아니였을까요?

 그래도 나중에 마을에 가면 저처럼 착한 인간도 있다고 말해줘요”

“응, 그래야겠다. 우리처럼 다른 엘프들도 인간이랑 사이 좋게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그 둘은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어

남자는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었지

그에 반해 엘프는 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침대 곁에 앉아 남자의 손을 잡고 있었어

“이제 내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아... 널 두고 나만 먼저 가서 미안해... 그래도 널 만나 정말 행복했어.

 내 생에 가장 잘 한 일은 그날 숲에서 상처입고 쓰러진 엘프를... 너를 구한 거야. 

 너와 만나 함께한 그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축복 이였어.

 이런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너와 처음 만난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그때는 내가 여기 누워있었고 네가 날 돌봐줬는데... 

 고집불통에 심술쟁이인 나하고 지내느라 그 동안 힘들었지? 이제는 편히 푹 쉬어. 

 나도 사랑해.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말하며 엘프는 남자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하고 남자의 눈을 감겨주었어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그녀에겐 그리 긴 세월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겐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지

 


 

그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가득한 오두막의 뒤편에 그를 묻고 그녀는 그녀의 마을로 돌아왔어

마을은 어린 엘프들이 몇 늘어난걸 제외하면 그다지 변하지 않은 모습 이였지

가족들은 어디 여행이라도 갔다 왔냐며 그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어

 

마을에 돌아온 그녀는 잠이 늘었어

하루의 대부분을 잠에 취해 지냈지

꿈에서는 사랑하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기에, 

잠에서 깨어나면 사랑하는 그가 이제는 그녀의 곁에 없다는 현실이 다가왔기에

 

식사를 할 때면 눈물이 났어

‘아 이 과일 그 사람도 좋아했는데... 이 수프는 그가 처음 해줬던 수프랑 비슷하네...’

평생을 한 사람만 사랑하는 엘프이기에 다른 사랑으로 그를 잊는 것조차 불가능했지

 

그와의 기억들이 그녀를 괴롭게 했어

하지만 그 괴로움을 잊게 해주는 것도 그와의 추억들 이였지

 

가끔은 밖에 나가 어린 엘프들이 뛰어 노는 것을 바라보곤 했어

그럴 때면 그와 만나기 전의 자신도 저러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엘프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어

“밖에서 인간이랑 만나본 적 있어요?” 

“근데 왜 인간이랑은 정을 통하면 안돼요?” 

“인간은 정말로 다들 못됐어요?”

그녀는 예전에 그와 나눴던 약속이 생각났지

나중에 마을에 가면, 모든 인간이 나쁜 건 아니라고

착하고 친절한 인간도 있다고 말해주기로 했던

“인간? 만나봤지. 인간은 말이지...”

 

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어

어린 엘프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거든

자신이 좋은 인간도 있었다고, 마을의 금기는 틀렸다고 말하면 이 아이들도 인간과 사랑을 하게 되진 않을까?

지금 자신이 겪는, 인간과 사랑을 나누면 찾아올 수 밖에 없는 이 괴로움을 이 아이들에게도 겪게 하는 게 옳은 것일까?




“인간은... 마을 어른들이 말한 대로 사악하고 잔인하단다. 머리 속에 죽이고 부수는 것만 가득 차 있지. 

인간들끼리도 서로 공격하고 죽여대고, 특히 엘프를 발견하면 산 채로 잡아먹는단다.

나는 운 좋게도 인간들끼리 싸우는 동안에 도망쳐 나올 수 있었지만, 하마터면 나도 잡아 먹힐 뻔 했어.

그러니까 너희는 인간이 보이면 절대 말도 걸지 말고 바로 도망쳐야 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만이 흘러 내렸어

 

‘나는 당신을 사랑한 것을 후회해.

그래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또 다시 당신을 사랑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