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귀족 가문의 자제 얀순이.

그녀에게는 자신보다 한 살 많은, 노예 출신의 수행원을 항상 대동한다.

학교에서는 복도에서, 집에서는 침실 문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호출이 없으면 얌전히 대기하는 생활이 이어진 지도 10년이 지났다.

얀순이 혼인을 할 수 있게 된 지도 2년.

다른 귀족들처럼 혼인을 해야 할 때였다.

"아니 근데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누구 한 명 정도는 골라놓고 여는 게 정상이라고요!"

"지랄, 넌 광대로 나올 준비나 하고 계세요."

"아니 그러니까 전 왜 광대인거죠?"

"까라면 까렴 노예야."

"노예에서 하인으로 만든 본인이 그렇게 부르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아야!"

방을 나서는 그의 뒷통수에 혹이 생겼지만 다행히 다른 사용인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얀순이는 특별한 파티를 준비했다.

원래 파티에서 남편을 찾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녀는 대놓고 그런 목적을 드러냈다.

[여성 출입제한, 입장 남성은 "누구라도" 선택받을 수 있음]

"야... 가문 위신 깎아먹기도 참신하게 하시네요?"

"닥치고... 이거나 옮겨...!"

"예입"

파티가 시작되기도 어느덧 20분밖에 남지 않았다.

얀순이는 늘 그래왔던 것과 같이 얀붕이를 찾았다.

"곧 파티가 시작되고, 난 남편을 찾겠지.
알다시피... 그 이후로는 네가 나를 대하는 모습도 바뀌어야 해. 알지?"

"몇번을 말하시는 겁니까? 알아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두 사람의 눈에는 알기쉬운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파티가 시작되고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즐겼다.

공연은 계속 바뀌었고 이제는 광대 얀붕이의 공연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이 집안의 하인...인데 어째서인지 광대가 되어있는 김얀붕입니다"

하하하!

가면을 쓴 채 나타난 광대의 자기소개에 박수와 웃음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단 한 사람만 빼고.

"그럼 제가 이 공을... 어?"

조명이 일제히 꺼지고, 한 곳에서 등불이 켜졌다.

많은 사람이 직감했다.

지금이 '간택'의 시작이라고.

얀순이는 많은 남자 사이를 지나쳐 다니면서 웃음지었다.

누구도 그것이 비웃음일 줄은 몰랐다.

누구의 손도 잡지 않은 파티의 주인공이 무대 위에 오르자 자연히 광대이자 하인은 자리를 피할 뿐이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계속 물러나던 그가 뒷걸음질 칠 수 없게 되었다.

"어디가?"

"네?"

짝!

박수소리가 울려퍼지자 모두가 그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등불을 든 여성과 손목이 붙잡힌 채 나머지 손으로 가면을 든 광대가 있었다.

"누구라도, 남자라면 선택할 수 있다."

"아. 설마, 그러지 마요 좀."

"선택, 했습니다?"

와아아아!
처음은 환호성.

우우우!
두 번째는 비난.

짝짝짝!
세 번째는 축복.

여러 반응이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상황파악이 안 된 것은 얀붕이 뿐이었다.

"가자, 어차피 이 뒤에는 내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잖아?"

"어쩌자고 이러시는 겁니까? 저랑 장난해요?"

"뭐, 아빠도 뭐라 하겠지만 내가 내 맘에 드는 남자를 골랐는데 뭐라 할 사람이 있나?"

"네...?"

얀순이가 얀붕이를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기억해? 너, 처음에는 그냥 내 곁을 지켜야 한다고 노예로 구해온 거였잖아."

"기억하죠, 긴장되서 죽는 줄 알았는데."

"죽긴 뭘 죽어, 어쨌든 그때는 그냥 있는가보다 싶었지. 근데..."

"잠깐, 무거운 얘기면 잠깐만 시간 줘요.
심호흡 좀."

"계속 분위기 깰래? 여튼 별 거 아냐.
그냥... 개가 끝도 없이 쫒아오는데 개 주인은 재밌다고 웃고 앉았을 때.
손가락 물려서 피나는데도 끝까지 그 개 붙잡던 모습을 보고 나니까... 뭔가 달라 보이더라?"

"아, 그건 진짜 아팠죠."

"그 후로, 너를 내 하인으로 만든 후에는 같이 놀았잖아? 그때부터 날 지켜주는 건 너로구나 싶어서 너랑 관련된 걸 좀 많이 모아뒀어."

얀순이가 일어서 벽장을 열자 병들이 보였다.

"이건 네가 쓰던 펜들. 이 통 안에는 네가 쓰던 손수건들. 아, 그것도 줘."

"어.... 네?"

뜬금없이 가지고 있던 가면을 빼앗긴 얀붕이는 자신이 방금까지 쓰던 것이 전시되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 남자들이면 모를까 너한테는 한 단계를 건너뛰어도 되겠어."

얀순이가 꺼내든 것은 서류였다.

얀순이의 본인증빙용 서류, 얀붕이의 본인증빙용 서류.

그리고... 혼인신고서.

"이게... 대체 뭔..."

"쯧, 하인으로는 마지막까지 별로인 것 같아."

얀순이는 얀붕이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에는 약간의 흉터가 남아있었다.

"그럼... 조금만 참아?"

"네? 아윽..."

얀붕이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낸 얀순이가 얀붕이의 다른 손 엄지손가락을 상처에 가져다댔다.

"여기에 찍으면... 완성."

언제 찍은 것인지 신부 측의 지장은 꽤나 오래되어 보였다.

얀붕이의 손가락, 정확히 흉터가 있던 검지손가락을 다시금 입에 문 얀순이가 혀로 그 상처를 계속 햝았다.

"아파요, 상처 벌리지 마세요"

"닥쳐, 하인. 주인님이 즐기고 있잖아?"

"방금 하인이 아니게 된 거 아니었나요?"

얀순이가 입을 떼자 흥건히 젖은 손가락을 대충 닦고 침대에 앉은 얀붕이가 물었다.

그러자 얀순이는 그를 밀어 눕히고는 옷을 천천히 벗겼다.

"그럼 이제, 너는 언제나 져주는 남편이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