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https://arca.live/b/yandere/42685395?category=%EC%8D%A8%EC%A4%98&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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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너무 아프다.. 시야는 흐릿했고 주변에서는 비명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나의 머리를 울렸다. 머리 쪽에서 무언가 흐르는 느낌이 드는데 아무래도 피인 것 같았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119에 전화한 듯 했다. 점점 의식이 멀어져 가던 와중 구급차에서 내린 걸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의 의식은 완전히 가라앉았다.


아.. 연애라도 한 번 해보고 죽고 싶었는데..

.

.

.

.

결론적으로 나는 죽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깨어났을 때 병실에 누워 있었으니까 나는 살았다는 것에 안도하고 침대에서 움직이려고 했는데... 나의 하반신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 왜 이러지?"


내가 움직이지 않는 하반신에 당황하고 있을 때 병실의 문이 열리며 의사가 들어왔다. 나는 의사에게 곧바로 내 하반신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고 의사는 그런 내 말에 착잡한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말했다.


"환자 분의 말씀대로 환자 분께서는 하반신 마비가 오셨습니다. 아무래도 차에 부딪치며 등 쪽으로 충격이 가해진 게 원인으로 보입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이미 손상된 신경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시발 뭐? 하반신 마비라고?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일을 겪게 된 거지?  난 그저 열심히 살아갔을 뿐인데..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거지?


나는 이제는 움직이지 않을 나의 다리를 붙잡으며 절망감에 빠졌고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의사의 말에 답했다.


"하하.. 괜찮습니다. 어떻게 선생님 탓을 할 수 있겠어요... 근데 좀 혼자 있고 싶네요 나가주실 수 있나요?"


"예.. 편히 쉬십시오."


병실 문이 닫히며 의사가 완전히 떠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너무 억울했고 앞으로의 인생이 너무 막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흐.. 흐흑.."


한참을 눈물을 흘리며 조용하게 울음을 터뜨린 나는 몰려오는 피곤함에 잠에 들었다. 몸이 여기저기 욱씬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다행히 편히 잠들었던 것 같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회사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특히 나를 꽤 아껴 주셨던 박과장님은 빨리 나아서 자기하고 한잔 하자며 유쾌하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는 내 하반신에 대해 이야기와 함께 퇴사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 이야기에 모두 숙연해지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과장님은 나를 위로해 주며 이만 가 볼 테니 편히 쉬라고 말하시며 병실에서 나가셨다. 떠나가는 과장님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나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간은 어느덧 해질 무렵이 되어 노을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노을 빛에 휩싸여 있는 바깥의 모습은 분명 밝고 아름다웠지만 이미 곤두박질친 내 기분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살게 될 거였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시간에 찾아온 사람이 누굴까 싶어 문 쪽을 바라보았는데 어딘가 낯이 익은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는 여자 하나가 나에게 인사해왔다.


"안녕하세요 김얀붕 대리님 저는 신입 사원 이얀순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인사를 받은 나는 그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







그녀는 서글서글한 눈매와 예쁘게 정리된 단발 머리 그리고 누가 봐도 미인이라고 생각할 만큼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아 그래! '이얀순' 어디서 들어봤던 이름이다 했는데 이제야 생각났다.


한 일주일 전에 옆 부서에 들어왔다는 신입 사원의 이름이 이얀순이었다. 아마 엄청 예뻐서 처음 출근 하자마자 회사가 난리가 났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나도 관심이 가기는 했지만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던 걸로 기억한다.


"저.. 대리님?"


들려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번뜩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아.. 미안해요 순간 누구인가 생각을 하고 있었네요, 옆 부서에 새로 들어온 얀순씨 맞죠? 초면인데 병문안 와준 거 고마워요"


"초면 아닌데.."


"예?"


그녀의 작은 중얼거림에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내 물음에 조금 수줍어 하는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그.. 지난 번에 저 도와주셨잖아요 그래서 완전 초면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제가 그랬나요?"


"제가 종이 복사하는 거 실수했을 때 저 도와주셨잖아요 설마 잊으신 거에요? 그때 도와주신 다음에 커피도 타 주셨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랬던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다만 그때 도와줬던 사람이 얀순씨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때 나를 바라보던 남자들의 시선이 따가웠던 건가..


어쨌든 기억이 난 나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미안해요, 그때 도와줬던 사람이 얀순씨라고는 생각 못했네요 이렇게 예쁜 분을 기억 못하다니.. 이제라도 생각 났으니 다행이네요."


나의 말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그렇게 칭찬해 주실 거 없어요.."


그 모습은 굉장히 예뻤고 조금은 가라 앉았던 나의 기분이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아까보다 기분이 나아진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근데 그것 때문에 병문안 와 주신 거에요?"


"아, 네! 이건 과일이에요 나중에 드세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근데 이제 집에 가보시는 게 어때요? 시간이 꽤 늦었는데"


"조금만 더 이야기 하다가 가면 안될까요?"


"저 같은 아저씨하고 대화해봤자 재미없을 텐데요?"


"그.. 그래도!"


어딘가 간절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의문이 들었지만 나도 남자인지라 차마 이런 미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알겠어요 조금만 더 이야기하죠"


"네!"


그렇게 우리 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야기를 듣는 입장에 가까웠고 그녀가 더 말이 많이 했다. 다양한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던 그녀는 나의 다리에 대해 물었다.


"근데.. 대리님 다리에 무슨 문제가 있으신 거에요?"


"그, 그건 왜요?"


"그게.. 아까부터 몸은 움직이는데 발이 아예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아서요.."


그 말에 나는 순간 움찔했지만 딱히 숨길 마음은 없었기에 사실대로 말해줬다.


"하반신 마비라고 하더라고요"


"하, 하반신 마비요?"


"네.."


"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경솔했어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사과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괜찮다고 말해줬다. 잘못한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나를 차로 들이받은 사람이니까.. 그나저나 그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나의 말에 사과하는 것을 멈춘 그녀는 어딘가 부끄러워하며 나에게 말했다.


"저.. 그럼 앞으로 제가 계속 찾아와도 될까요?"


"네?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제가 좋아서 오는 거에요 대리님하고 있으면 뭔가 편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런 건데 안 될까요?"


뭔가 내가 거절할 것 같은 기색을 보이자 애교를 부리듯 나에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지며 허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저도 얘기할 사람 하나 생기고 좋네요"


"아싸!"


그렇게도 좋을까? 과장스럽게 기쁨을 표하는 그 모습에 나는 다시 한 번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그녀에게 한 가지 사실을 더 말해줬다.


"근데 이제 저한테 '대리님'이라고 안 부르셔도 돼요."


"네? 왜요?"


"이제 그만 뒀거든요 이 몸으로는 아무래도 업무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아.. 그럼 이제 뭐라고 부르죠?"


"뭐 편하신 대로 부르세요 저는 상관 안 하니까요 뭣하면 아저씨라고 부르셔도 좋고요"


"...."


호칭을 고민하는 듯 조용하던 그녀는 어딘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빠"


"네?"


"앞으로는 오빠라고 부를게요 괜찮죠?"


그렇게 말하며 눈 웃음을 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순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 지금 얼굴 빨개졌죠? 그쵸?"


"아, 아니에요.."


"거짓말 하면 안되죠 오빠~ 자, 제 얼굴 한 번 봐보세요"


나는 그 말을 애써 무시하며 말했다.


"저, 저는 이제 쉴게요 그러니 이제 얀순씨도 돌아가세요 시간이 늦었으니"


"흐응~ 알겠어요 오늘은 가볼게요 오.빠"


그 소리에 흠칫 떨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나는 그녀를 배웅해 줬다. 그녀는 나가면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나갔다. 뭔가 많은 일이 있었어.. 그래도 나쁘지 않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잠에 들었다. 그날 따라 잠이 더 잘 왔던 것 같다.







****







그 이후로 얀순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에게 찾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오빠라는 호칭은 어색하기만 했다. 물론 그녀는 내가 오빠라고 불리는 걸 부끄러워 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불렀다. 착한 것 같으면서도 짓궂은 면모가 있는 그녀였다.


그래도 그녀가 휠체어를 밀어줘서 산책도 하고 바깥 구경도 할 수 있었기에 고맙다는 건 진심이었다. 물론 휠체어를 탄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기도 하고 뭔가 씁쓸하기도 해서 별로 많이 타지는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녀의 한탄을 들어주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상사가 자기를 음흉하게 바라봤다느니, 어떤 남자 직원이 자기한테 자꾸 추근거린다느니 하는 그런 고민을 나에게 가감 없이 털어 놓았고 나는 그것을 묵묵히 들어주며 맞장구를 쳐줬다. 그러면 그녀는 역시 선배가 편하다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그런 그녀가 나는 참 고마웠다. 이렇게 되어버린 나에게 항상 찾아와 주며 나를 위해 줬으니까 물론 그녀의 행동이 어느 정도 동정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녀에게 호감을 품었으면서도 숨겼다. 


하지만 이런 그녀에게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건 그녀가 내게 찾아온 지 한 달 정도가 됐을 무렵이었다.


그날은 나의 상태를 봐주기 위해 간호사가 나를 찾아왔고 생각보다 상태를 확인하는 게 오래 걸려서 그 간호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그녀가 들어오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지금 뭐해요?"


"왜, 왜 그래요 얀순씨?"


나는 그녀의 싸늘한 말투와 눈빛에 당황했고 간호사도 당황했는지 급하게 마무리를 하곤 병실에서 나갔다. 간호사가 나간 것을 확인한 그녀는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방금 그 간호사하고 무슨 이야기 했어요?"


"별 이야기 안 했어요..."


"오빠.. 앞으로 그러지 마요 알겠죠? 그럼 오늘은 산책 가실래요?"


"그, 그러죠"


이때부터 알게 모르게 그녀의 집착이 시작되었다. 간호사가 들어올 때마다 그 간호사를 노려보거나 조금이라도 어떤 대화를 하려고 하면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자신이 대신 이야기를 했다.


이런 그녀의 행동은 내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부담을 느끼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래도 차마 그녀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 항상 나를 찾아와 주고 편하게 대해주는 그녀가 두 다리를 잃고 가망이 없는 나에게는 천사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저 웃으면서 그녀의 행동을 받아들여 줬다. 그녀와 싸워서 멀어지기는 싫었으니까... 그렇게 나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그녀는 서서히 나와의 거리를 더욱 좁히기 시작하더니 나에게 음식을 떠 먹여주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나는 그것이 부끄러워 한사코 거부했지만, 내가 거부했을 때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싸늘한 눈빛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나쁘지는 않았기에 괜찮았다.


그렇게 그녀가 나를 찾아오기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







벌써 3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를 찾아왔다. 창밖의 풍경은 이제 여름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구나...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는 것 같았다.


그런 감상에 젖어 있을 때 나에게 음식을 떠 먹여주던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오빠는 언제 퇴원해요?"


"전치 12주 정도로 판정 받았으니까 이제 곧 퇴원하겠네요 이제 뼈도 다 붙었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도 했고요, 근데 왜요?"


"그냥 궁금해서요"


미소를 지으며 말한 그녀는 과일을 깎아 나에게 먹여주었다. 이제는 그녀의 이런 행동에 익숙해져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먹는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다가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나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오빠는 퇴원해서 어떻게 할 거에요?"


퇴원 이후라.. 어차피 부모님은 대학생 때 두 분다 돌아가셔서 부모님에게 돌아갈 수도 없다. 이런 몸으로는 새로 직장도 못 구할 것 같고.. 이렇게 생각하니 뭔가 정말 막막한 게 느껴진다. 그런 막막함을 느끼며 나는 말했다.


"아무래도 좀 많이 고민해 봐야겠네요 지금 제 상태가 이러니까요"


나는 움직이지 않는 내 두 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어딘가 수줍은 목소리와 함께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말했다.


"그, 그럼 저하고 같이 가실래요?"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는 그 모습에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선언하듯 말했다.


"저, 저 오빠 좋아해요! 그, 그러니까 저하고.. 저하고.. 같이 살아요!"


고백인 걸까? 이성에게 고백을 받아본 것도 처음이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같이 살자고 고백하다니 이런 경우는 본 적도 없었기에 순간 웃음이 나왔다.


"하하 그게 뭐에요."


"우, 웃지 마세요 저는 진지하다구요..."


시무룩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주인에게 혼나서 귀를 축 늘어뜨린 강아지 같아 귀여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다.


"아, 죄송해요."


"더 쓰다듬어 주세요."


나는 아차 싶어 바로 사과를 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좋다는 듯 더 쓰다듬어 달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마음은 고마운데.. 거절할게요."


"네? 왜요? 도대체 왜?"


내가 그녀의 고백을 거절하자 그녀는 발작하듯이 말을 이어갔다.


"오빠, 돈이 걱정인 거죠? 괜찮아요 저희 집 돈 많아요 그러니까 그냥 몸만 오셔도 돼요 제가 오빠 책임 질게요.. 직장도 구하실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저하고 같이 가요 네?"


"얀순씨.. 제가 고백을 거절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에요."


"그럼 뭐 때문인데요!!! 설마.. 다른 여자가 오빠를 꼬신 거에요? 그런 거에요?"


"그것도 아니에요."


"그럼 대체 왜.. 제가 뭐가 부족한데요..."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얀순씨는 부족하지 않아요 부족하다면 제가 부족하죠 하지만 얀순씨가 저에게 가진 그 마음은 연심이 아니에요 그건 그저 '동정심'이죠 그리고 불쌍한 이를 향한 동정을 그 누구도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거절하는 거에요 단순한 동정심을 연심으로 착각해서 저 같은 사람한테 마음 쓰지 말라고 그러니까 이제 그만..."


"오빠.. 제가 오빠를 언제부터 알았는지 알아요?"


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끼어들었다. 근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나는 그녀의 말을 조용히 듣기 시작했다.


"저희가 처음 만난 건 대학생 때였어요 그때 저는 지금보다 훨씬 음침했고 오빠는 지금과 비슷하게 상냥했어요.. 그리고 음침해서 다들 꺼려했던 저에게 먼저 다가와 주고 말을 걸어줬던 게 오빠였어요 저에게 오빠는 빛이었고 그래서 저는 방학 때 오빠의 취향대로 화장도 하고 스타일도 바꿨어요 지금 이 모습으로요"


생각해보니 그녀의 모습은 내 이상형에 가까운 모습이긴 했다. 그래서 더 호감이 가기도 했고.


"근데 방학이 끝나 등교했을 때 제가 들은 건 오빠가 자퇴했다는 소식이었어요.. 오빠 때문에 스타일도 바꾸고 다 했는데 정작 오빠가 없었어요... 오히려 저에게 관심도 없던 다른 놈들이 저에게 다가왔어요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그런 남자들을 모두 거부하고 졸업한 뒤 오빠를 찾아다녔어요 그러다가 오빠가 다니는 회사를 찾았고 거기에 입사했어요 그리고 제가 입사한 지 얼마 안돼서 오빠가 이런 사고를 당했고요..."


아무래도 그녀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우리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후 생계 문제로 학교를 그만뒀으니까.. 정말 나를 오랫동안 찾아 다닌 것이 맞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마음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차라리 거부하는 게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은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가로 막혔다.


"제 마음을 어떻게 하면 거부할 수 있을까 생각하시는 거죠?"


나는 흠칫 놀랐으나 애써 태연한 척 하며 그저 조용히 있었다.


"그럼 거부하지 마세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오빠가 저에게 빛이었던 것처럼 저도 오빠에게 빛이 되어드렸잖아요 제 말이 틀렸나요?"


나는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나에게 빛으로 다가왔으니까...

말이 없는 나를 향해 그녀는 서서히 다가오더니 나에게 안겼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가요.. 저는 이제 오빠하고 떨어지기 싫어요 제발..."


"제가 그래도 될까요?"


"네.. 제발 그래 주세요.."


"하지만 저는 이런 상태에요 오히려 얀순씨만.."


그녀는 나의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얹으며 고개를 젓더니 나에게 말했다.


"이제 존댓말도 쓰지 말고 그냥 얀순이라고 불러주세요."


"하아... 얀순아...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할 거야 그래도 괜찮아?"


"상관없어요 오히려 좋잖아요? 오빠가 다른 여자한테 한눈 팔지 못할 테니까."


"하하.. 그게 뭐야 너 그러는 거 나 약간 무서워."


"그럼 제가 이런 행동 안 하게 저만 사랑해 주세요."


"그래... 앞으로는 그럴게... 근데 좀 덥다 우리 좀 떨어질래?"


"분위기 깨지게 그게 뭐에요?"


"미안.."


"키스해줘요."


"뭐?"


"키스해주면 떨어질게요."


"그래"


우리를 감싼 느껴지는 열기가 다가오는 여름의 열기인지 아니면 우리 둘로 인해 생긴 열기인지 알지 못할 만큼 서로에게 붙어있던 우리는 그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







내가 병원에서 퇴원한 뒤 한 동안 내 집에서 같이 지내던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오빠 저희 부모님이 한 번 만나자고 하네요."


"너희 부모님?"


"네 이번에 엄마가 제 이야기를 듣더니 오빠 데리고 한 번 찾아오라고 했거든요."


"그래..? 근데 너희 부모님이 나를 좋게 보실까?"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그건 괜찮을 거에요 그러니까 오빠는 만나기만 하면 돼요."


확신에 차서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안심한 나는 그녀와 함께 어떤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고 들어간 방에는 얀순이의 어머니와 아버지로 보이는 두 사람이 테이블에 앉아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내가 조용히 있자 얀순이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소개해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분을 바라봤는데 어머니 쪽은 얀순이와 매우 닮아 있었다. 순간 너무 보고 있었다고 생각한 나는 두 분에게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십니까 김얀붕이라고 합니다."


"딸아이한테 많이 전해 들었어요 저는 얀순이 엄마 박얀희라고 해요 반가워요."


얀순이의 어머님은 나의 인사를 받아 주시며 자신을 소개하셨다. 옆에 계신 아버님도 나에게 인사를 건네셨는데 어쩐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미묘했다. 마치 자신과 동질감을 느끼는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뒤로 한 채 나와 얀순이는 테이블에 앉았고 음식을 주문한 뒤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머님은 나에게 얀순이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셨고, 자기를 닮아서 집착이 좀 심한 편이니까 조심하라고 장난스럽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에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고 얀순이는 그 모습에 자기가 언제 그렇게 집착했냐며 발끈하였다. 나와 어머님은 그 모습에 동시에 웃었고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삐진 듯 등을 돌렸다.


내가 그런 그녀를 달래주고 있을 때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식사에 집중하던 와중 어머님은 얀순이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얀순아 좀 심하지 않았니? 살살하지."


"이게 다 엄마 닮아서 그런 거에요 그러는 엄마도 따지고 보면 저보다 더 심한 짓도 하셨잖아요."


"어머 얘가 못하는 말이 없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단다. 너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당연히 이해하죠 그러니까 엄마도 저 이해해 줘요."


"그래 알겠다. 정말 내 딸 아니랄까봐 너도 참 독한 면이 있어."


"헤헤"


이게 무슨 대화인 걸까?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올 수가 없었다. 궁금증을 참을 수 없던 나는 두 사람에게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버님이 나에게 말하셨다.


"자네.. 혹시 화장실 가고 싶지 않나?"


"네?"


"아빠 갑자기 왜 그래요?"


"아니 이 친구가 아까부터 조금 안절부절 하길래 화장실이 급한가 싶어서 말이다. 나도 화장실 갈 건데 내가 좀 도와주려고 물어봤단다."


"아.. 오빠 급해요?"


"어..."


대답을 망설이던 나는 아버님과 눈을 마주쳤고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아버님의 눈빛에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고 아버님이 내 휠체어를 밀어 주시며 우리는 화장실에 도착했다.


아버님은 화장실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마 여기 오래 있지는 못할 걸세 그래서 간단하게 나마 자네에게 말하겠네.."


"무엇을 말씀입니까?"


"얀순이는 위험한 아이야.. 어쩌면 자기 엄마보다 더.. 하지만 자네의 상태를 봐서는 이미 늦은 것 같네 마치 젊은 시절에 얀순이 엄마를 만난 나처럼...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한 가지일세 얀순이를 거역하지 말게 그게 자네의 신상에도 좋을 거야.."


"네? 그게 대체 무슨 소리..."


"오빠! 아빠!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내가 아버님의 말씀에 어리둥절해 있을 때 밖에서 얀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아버님은 내 의문에 답해 주시지 않고 그냥 휠체어를 끌어 화장실에서 나왔다.


"이제 나왔네 이제 제가 할게요 주세요"


아버님은 얀순이에게 휠체어를 넘겨주고는 나를 바라보셨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공포와 동정심이 뒤섞여 있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아버님이 내게 해주셨던 이야기는 뭐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심장하기만 한 그 말을 무슨 이유로 내게 해주신 걸까...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돌아오고 난 다음 어머님은 나에게 언제 식을 올릴 거냐고 물으셨고 나는 얼굴을 붉히며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머님은 그러면 안된다면서 빨리 결혼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하셨고 그날 그 자리에서 결혼식 날짜가 잡혀버렸다.


얀순이는 굉장히 기뻐했다.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이 나왔고 같이 기뻐해주었다. 아버님의 말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만 앞으로의 생활을 걱정해서 그런 말씀을 해주셨을 거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그날 집에 돌아온 그녀는 다음 날 아침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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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나와 얀순이는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되었고 이제는 내 집이 아닌 어머님께서 구해주신 집에 같이 살고 있었다. 근데 집에 돈이 많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어머님은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단독 주택을 나와 얀순이의 명의로 주셨다.


나는 아직도 쿨하게 집을 주겠다고 말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엄청 멋있었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나에게 누군가 달려왔다.


"아빠!!"


"어이구 우리 얀진이 왔어요?"


이제 5살이 된 딸 얀진이가 나에게 달려와 나에게 안겨왔다. 나에게 안긴 얀진이는 헤헤 웃으며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아빠 오늘 동화책 읽어주면 안돼요?"


"오늘 엄마가 읽어주는 날 아니야?"


"이잉~ 아빠가 읽어주는 게 더 좋아요~"


얀진이는 나에게 귀엽게 투정을 부렸고 나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는데 얀순이가 다가오며 얀진이를 안아 들었다.


"얀진아 오늘은 엄마가 읽어주는 날이잖아 자 이제 가자."


"치.. 알겠어요.."


얀진이를 안고 방에서 나간 얀순이는 한참 후에 다시 방으로 돌아왔고 나를 침대에 눕히고는 나에게 안겼다. 그러더니 아까 전 얀진이처럼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는 중얼거렸다.


"어린 것이 벌써부터 건방지게.. 그렇지 않아요 오빠?"


"아직 어린 애잖아 그리고 우리 딸이고 그러니까 그만해 알겠지?"


나는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동생 만들어주면 오빠한테 그만 다가오겠죠?"


자기 딸에게도 알 수 없는 질투를 보내는 이 모습에 나는 조금 두려운 느낌을 받았지만 차마 그녀를 거부할 수 없는 나는 그저 그녀의 말에 맞춰주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그럼 우리 오늘부터 동생 만들어줘요 그럼 얀진이도 심심하지는 않겠죠..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죠?"


"응.. 그렇게 하자"


내 말에 그녀는 나에게 키스를 하고 말을 이었다.


"헤헤.. 오늘 안 재울 거에요.. 오빠.."


그 말을 끝으로 내 위에서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며 정사를 즐기던 그녀는 어느 순간 지쳤는지 내 위에서 쓰러지듯 잠들었다. 나는 그녀를 옆에 잘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에 생각에 잠겼다.


이제 생각해 보면 아버님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말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나를 향한 그녀의 집착은 자신의 혈육에게도 질투를 할 만큼 비정상적이었으니까.


아마 아버님도 어머님한테 나와 비슷하게 잡혀 사시는 거겠지... 하지만 이것에 불만은 없다. 나는 얀순이를 사랑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저 그녀의 이 무거운 사랑을 묵묵히 받아줄 뿐이었다.


아마도 나는 영원히 얀순이에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뭐 이런 삶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녀의 볼에 짧게 입을 맞추고 잠에 들었다. 그녀는 분명 땀에 절어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날 따라 그녀가 더 아름답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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