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1. 미약


"자기, 우리 게임 하나 할까?"


오늘도 아내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 또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악마가 '약속, 거래, 게임' 등등을 제안할 때는 결코,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

우호적 사이라도, 적대적 관계라도, 결코.


"에에에이~ 내가 자기 잡아먹기라도 할까봐?"


"응."


물론 진담이다. 아내도 내가 눈치 챘다는 건 알고 있다.



악마가 제안하는 모든 것은 상대를 잡아먹기 위해서다.


그게 친구일 경우, 친구들 사이에서의 주도권을 먹어치운다.

방심 하는 순간, 악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교우관계가 이끌어진다.


그게 적일 경우, 재산, 사회 명성 등을 먹어치운다.

방심하는 순간, 악마를 적으로 삼은 걸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그게 연인일 경우, 물론 성적으로 먹어치운다.

... 이건 방심 안 해도 잡아먹힌다는게 문제지.


"오늘은 절대로 거짓말이나 숨기는 사실 없이 솔직히 제안합니다!"


"안 합니다!"


"제안 받아주면 나 모레부터 부모님 만나러 삼 일간 친정 가있을건데?"


"콜."


무의식적으로 동의해버린 후, 내가 너무 빨리 대답했다는 생각에 아내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방긋 웃는 얼굴로 분홍색 알약을 꺼냈다.


"내가 자기보다 힘 훨씬 센 거 알지? 게임 설명한 후에 도망가면 친정이 아니라 홍콩행 티켓을 끊어줄게."


나는 좆됐다.




"게임은 간단해. 난 모레 친정에 가기 전에, 자기랑 즈으을거어업게에에 보내고 싶거든."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이야...?"


"이건 미약이야. 먹으면 24시간동안 잠도 못 자고 기절도 못 하고 발정할 거야. 악마는 욕망이 해소되면 풀리겠지만 인간은 약기운이 없어지기 전엔 끊임없이 괴롭겠지."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완전히 좆됐다.




"한 알 뿐이야. 자기가 선택할 건 간단해. 먹고 할래, 안 먹고 할래?"


"... 내가 먹으면, 또 내가 울부짖을 때까지 날 가지고 놀 거잖아."


"정답!"


이건 안다. 두 달에 한 번씩은 꼭 당해봐서 확실히 안다.


"그럼 당연히, 안 먹고 하는게 맞잖아!"




"자, 여기서 다시 설명할게. 이건 미약이고, 완전 발정 상태로 만들어. 자기가 먹으면 난 자기를 괴롭히며 마음껏 놀겠지."


"아니 그러니까 당연히..."


"단, 자기가 안 먹으면 내가 먹을거야. 그리고 난 이성을 잃고 자기가 몇 번을 절정하건 내 만족만을 위해 움직이겠지."


"......"


"난 약속대로 숨기는 거 하나 없이 제안했어. 자, 자기가 먹을래, 내가 먹을까?"






2. 무한 VS 0


"자기, 내가 잡지에서 재밌는 걸 하나 구입했는데..."


또 이 시기가 왔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이런 음흉한 눈빛으로 게임을 제안해 온다.


그리고 나는

일 년에 여덟 번은 처참히 패배하고 능욕당할 거고

일 년에 세 번은 거절을 하거나, 무승부가 되어 쥐어짜일 테고

일 년에 한 번은 피로스의 승리를 거두고, 다음 달에는 처참한 복수전을 치루겠지.


"하아... 그래, 뭔데, 이번엔?"


"해 주는거야?"


해맑게 웃는 아내에게, 같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거절하면 더 심한거 할 거잖아."


"역시 날 알아주는 건 우리 자기밖에 없어. 상으로, 모레부터 열흘간 집안일은 면제!"


... 왜 모레부터지?




"제로섬의 마법진."


다행이다. 이상한 건 아닌가보다. 예속, 노예 뭐 이런게 안 붙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다.


"발동하면 하루동안 한 쪽은 절정을 할 수 없고, 반대쪽은 절정이 멈추지 않아."


이런 씨ㅂ... 이 목구멍에서 걸렸다. 내일이 아니라 모레부터 집안일을 면제해 주는 이유가 이거구나.

내일은 애초에 '집안일은 커녕 일상 생활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될 테니까...


지금 여기서 욕하면 안 된다. 내가 당황하고 분노할 수록, 아내의 가학심이 커져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나를 억누른다.


"지금 발동시킬 건데, 자기는 어느 쪽이 좋아?"




......


"오, 그럼 발동시킬게?"


뭘 골라도 엿될 선택지긴 했다만, 일단 골랐다. 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 맞다. 자기, 다크나이트 봤어? 나 거기서 제일 흥미로운 장면이 그거야. 하비 덴트와 레이첼 구출."


...어?


"자기가 선택한 거 반대로 해놨어. 난 어디가 좋냐고 물어봤지 그대로 해주겠다고는 안 했다?"





p.s. 글 쓸때마다 반응이 좋아서 너무 고마워. 그래서 뭐 소재 생각날 때마다 여기 올게. 재밌게 읽어주니까 나도 좋다.


과거글


마나 정수기를 구매한 악마녀 이야기 : https://arca.live/b/monmusu/4336919

욕망을 드러내면서 예의 차리는 아라크네 하녀장 : https://arca.live/b/monmusu/4346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