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쟁이 성녀와 거짓말쟁이 성기사





“씨발, 싫은데요.”


“일단 내가 네 상관인 건 알고 있지?”


아참, 그랬지. 나는 종종 그 사실을 까먹었다.

“니미 씨팔, 존나 싫습니다.”


“뭐, 일단 들어주지 않겠어? 에르테 자매님.”

교황, 인도와 여정의 성자 에단이 말했다.

그는 올해로 나이가 서른다섯 살인 남자였지만,
남들보다 몇 살은 더 많아 보였다.

손에는 굳은살, 얼굴에는 주름살.

전부 고된 노동의 흔적이었다.

옛날엔 잘생긴 귀족 남자처럼 보였을 테지만,
지금은 어딜 봐도 평범한 동네 아저씨로 보였다.

아무튼 이런 아침부터 그의 집무실― 교황청의
몇몇 인원만 들어올 수 있는 여기에 온 건
나의 문제 때문이었다.

사실, 문제랄 것도 아니지만.

“이건 다 자매님의 안전을 위해서야.”


“제 몸 하나 못 지킬 정도로 약하진 않습니다.”

“그건 알고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잖아?”


그가 내 손목의 상처를 보며 말했다.

씨발, 이건 엊그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성국에도 날건달 놈들은 있었고, 밤에 거리를
다니다가 그런 것들과 엮이고 말았다.

그 결과, 나는 다쳤다. 아주 살짝.

……대신 그것들을 병원에서 반년은 못 나올
정도로 두들겨 패줬으니, 손해만은 아니었다.

“자매님의 직책이 뭐지?”


“죽음과 삶의 성녀 겸 수석 이단 심판관.”


“그래, 성녀야. 세상에 일곱 명뿐인 신의 대리인.
그 이름의 가치도 물론 알고 있을 테지?”

아, 이런 꼰대 같으니.

또 잔소리를 퍼부을 생각인가? 진짜 싫다.

“다음에도 좋게 넘어가리란 보장은 없어.”


에단이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딴청을 피우며 주위를
쭉 훑어보았다.

나는 여기가 싫었다. 흰 벽지도, 벽에 걸린
전대 성자의 초상화도, 커다란 책장도 싫었다.

교황의 집무실이란 거창한 이름이 붙었지만
여긴 그냥 동네 영세 귀족의 집무실로 보였다.

뭐, 검소한 건 괜찮지만, 이 분위기는 싫었다.

“자매님, 또 내 말 안 듣고 있지?”


“네.”


“하아……왜 성자, 성녀들은 하나같이 제멋대로
구는 사람뿐인 걸까…….”

그거야 뭐, 신이 제멋대로니까 그런 거 아니겠나.

나도 성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고,
되고 싶었던 적도 없다.

그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때려치울 수 있으면 당장 때려치웠지, 엠병.

“아무튼 이건 교황으로서의 명령이야.”


“진짜 더럽게 치사하네요.”


“뭐라고 욕하든 상관없어. 나는 인도의 성자이자
자매님의 선배로서, 자매님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좀 다친 거로 유난 떨긴, 계집애도 아니고.

“오늘부터 호위 기사를 데리고 다니도록 해.”


그가 제멋대로 선언했다.

“싫습니다, 거절합니다, 저 갑니다, 그럼 이만.”


“안 된다고! 아니, 선배가 말하면 좀 들어주지
않을래?! 일단은 교황이거든, 나!”

아무렴, 떠맡은 직책이라도 교황은 교황이지.

사실 이토록 젊은 에단이 교황직을 맡게 된 건
순전히 다른 성자, 성녀들이 모두 그 자리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내 스승인 복수의 성녀는 떠돌이라서 거절했고,
정의의 성자는 교황직을 맡을 정도로
똑똑하지 못했고, 행운, 사랑은 아주 돌아버린
인간들이라 애초에 제안조차 안 했다.

나머지 한 명은 아예 성국 소속이 아니니 패스.

결국 이 귀찮은 일을 떠맡을 수 있는 건 에단
그 자신뿐이었다.

“꼬우면 일찍 태어났어야죠, 압니다. 네.”


“그렇게까진 말 안 했어.”


“알겠어요, 데리고만 다니면 됩니까?”


“뭐, 일단은 그런데…….”


왜 말꼬리를 흐리지? 사람 불안하게.

“우선 호위 기사직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어. 무슨 뜻인지 알아?”

“모르니까 설명해주시죠.”


“우선 호위 기사는 교황청 소속 성기사만이
맡을 수 있고, 그들 중에서도 성기사단장이
인정한 사람만 맡을 수 있어.”

한 마디로 기준이 까다롭다, 이거군.

“그래서요?”

“일단 그렇게 추린 사람이 대충 50명 정도인데.”


에단이 서류 한 장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딱 한 명만 지원했어.”


“……네?”


“네 호위 기사직, 나머진 전부 거절했다고.”


이 새끼들이?
감히 성녀를 보필하는 신성한 일을 거절해?


이것들 진짜 성기사 맞나?

아니, 날 감시하는 건 싫지만 그래도 무시당한
기분이 들어 뭔가 좀 좆같다.

“딱 한 사람이 자원했는데…….”


“자원했는데? 뭐요, 좀 빨리 말하시죠 듣는 사람
속 터지겠습니다. 전생에 거북이셨나요?”

“뭐, 직접 만나보는 게 빠르겠지.”


들어와, 에단이 말하자 집무실 문이 열렸다.

“이야~ 여기가 그 교황님 집무실입니까?”


그 남자는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나보다 머리가 두 개는 커 보였고, 나이는 서른
정도로 보였다.

머리카락은 회색에, 뺨엔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왠지 기분 나쁘게 헤실헤실
쪼개고 있다는 정도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성녀님. 저는 반즈입니다.”

그가 내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탁, 나는 그 손을 쳐냈다. 왠지 기분 나빴다.

“체인지.”


“저기, 무슨 마음에 안 드는 창녀가 들어온
아저씨처럼 말하지 말아 줄래?”

“뭡니까, 이 꺽다리 아재는.”

“너무하네~ 아하, 이게 그 유명한 욕쟁이 성녀의
독설입니까? 이거 제법 매콤한 맛이 나는데요?”

나하하, 하고 그가 웃었다.

젠장, 웃음소리도 마음에 안 들어.

“반즈는 이래 봬도 성기사단의 부단장이야.
나이가 서른도 안 된 걸 생각하면 이례적이지.”

“교황 성하의 칭찬을 받다니, 영광이네요.”

반즈가 느릿느릿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이게 성기사라고? 진짜?

내가 아는 성기사들은 하나 같이 무슨 골렘처럼
딱딱한 인간들뿐이었는데, 이 남자는 무슨 동네
날건달 같았다.

“정말 이런 남자……놈한테 절 맡기실 겁니까?”


“놈이라니~ 나하하, 너무하셔라.”

“반즈의 실력은 확실해, 그 성기단장이 보증한
남자니까 신뢰할 수 있어.”

그 깐깐한 여자가 보증할 정도면 실력은 확실한
모양이다.

그거랑 별개로 더럽게 마음에 안 들지만.

“아무튼 앞으론 그와 함께 활동하도록, 자매님.”

“눼에…….”


“그런 표정 지어도 어쩔 수 없어.”


“나하하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요.”

그리고 우리 둘은 집무실에서 나왔다.



아, 인생 진짜. 좆대로 풀리는 게 하나 없구나.

“당신, 이름이 반즈라고 했던가요?”


“아이고, 기억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성녀님.”


“우선 절 성녀님이라고 부르는 것부터요.”

참고로 나는 성녀님이라고 불리길 싫어했다.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닌데 누가 그렇게 부르면
화딱지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에르테 님이라고 부르세요. 아시겠죠?”


“여부가 있겠습니까, 성녀님.”


“아이 씨팔, 성녀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요!”


이런, 또 터졌다.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이번엔 실수, 미안해요.”


“나하하~ 그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아서 말이죠.
단장님이 평소에 절 어떻게 대하는지 아시면
놀라서 까무러칠 겁니다요.”

본 적은 없지만, 왠지 알 것만 같았다.

그래, 일단 그녀가 좋아할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덩치에 안 맞게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어서
태도가 비굴해 보였고, 저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빡촌의 포주 같아서 마음에 안 들었다.

이런 남자가 성기사단 부장이라니, 세상 말세다.

“좋아요, 일단 규칙부터 정하죠.”


“오호, 뭡니까?”


“우선 제 명령에 100% 복종할 것.”

이딴 놈한테 감시받고 다니라니, 사절이다.

그러니 조금 미안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나한테
질리게 해서 내쫓는 수밖에.

“제가 구르라면 구르고, 짖으라면 짖고, 옷을
벗으라고 하면 벗으세요. 이해했습니까?”

“아, 벗을까요? 야외 노출은 취향이 아닌데.”


훌러덩, 그가 느닷없이 옷을 벗었다!


“꺄악!? 뭐, 뭐하는 겁니까 지금!?”


“음? 방금 벗으라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여기서 벗으라고 누가 말했습니까!”


“엥~ 옷 다 벗고 개처럼 짖으면서 바닥에
구르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까, 방금 전에.”

쑥덕쑥덕……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교황청에서 일하는 하녀들이었다, 그들이 날
무슨 변태처럼 보고선 허겁지겁 도망쳤다.

“아무도 그런 명령 안 내렸으니까 당장 옷부터
입으세요!”

“네에~”


반즈가 주섬주섬 옷을 도로 입었다.

대체 뭐야, 이 남자는? 제정신이 맞긴 한 건가?

“그럼 다음 규칙은 뭡니까~?”


“다음 규칙은, 제가 어떤 모욕을 해도 절대
화내거나 말대꾸하지 말 것입니다.”

“아하~ 매도하시는 게 취향이구나!”

“아니에요! 아까부터 왜 자꾸 절 변태 취급
하는 겁니까?! 진짜 뒤질래요? 네?!”

아오 진짜, 때려봤자 내 손만 아플 것 같으니
그냥 참았다.

만난 지 30분도 안 됐는데 죽이고 싶어지는
인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니, 처음은 아닌가. 어쨌거나 죽이곤 싶지만.

“마지막 규칙은 저를 방해하지 말 것입니다.
제가 뭘 하든 막거나 방해하지 마세요.”

“뭐야, 규칙이라고 해서 겁먹었는데 전부 별거
아니잖습니까? 나하하하~”

큭……아니, 괜찮다. 아직은 괜찮다.

어차피 조만간 울부짖으며 도저히 못해먹겠다고
애원할 게 뻔하다.

그전까지만 참자. 그 전까지만.

“으응~? 왜 저를 그리 빤히 보십니까? 아!
제가 좀 잘생기긴 했죠. 이해합니다, 성녀님.”

“뭐라고요?”


“성녀님도 아직 젊으시니까~ 잘생긴 저한테
푹 빠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죠. 나하하!”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야?


죽일까? 아니야, 참아라 내 안의 성녀.

혹시나 죽이더라도 여기선 안 된다.

“그보다 당신, 호위 기사직을 자원했다면서요?”


“아, 네. 그랬죠.”


“왜 자원하셨죠? 대부분은 싫어할 일인데.”


이 일은 호위 받는 사람도 싫지만,
당연히 호위해주는 사람도 힘든 일이었다.

거의 온종일 따라다니면서 따까리 노릇을
해야 하는데 누가 그걸 좋아하겠나?


심지어 내 평판은, 그래. 나도 잘 알고 있다.

교황청의 욕쟁이 성녀, 이교도 물어뜯는 미친개.

성국에서 날 무서워하지 않는 인간은 거의 없다.

“그야 뭐~ 그거죠, 그거.”


“그거?”


“성녀님 얼굴이 제 취향이라서 말이죠.”


……?


순간, 나는 참지 못하고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씁, 뭐가 이렇게 딱딱해. 갑옷도 안 입고 있는데.

“아야.”


“지금 저랑 장난쳐요? 애당초 누가 성녀한테
그런 마음을 품습니까! 신성 모독이라고요!”

“응~? 딱히 뭘 어쩌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요?
단지 얼굴이 취향인 것뿐이죠.”


“그게 그 뜻 아닙니까!”


“하지만 얼굴 빼면 제 취향은 아니라서요~”


빠악! 나는 다시 한 번 그의 정강이를 찼다.

“쓰으읍……아파……!”


“그러니까 왜 남을 해치십니까? 뭐냐 거시기,
성경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남을 해하는 자
나 또한 해를 입으리라. 근데 이게 맞나?”

“성녀한테 성경으로 지적하는 건 그만두시죠.”

망할……상대할수록 나만 손해 보는 기분이다.

강적이다. 이렇게 날 휘어잡을 수 있는 인간은
스승님 외에는 거의 없었는데.

“아참, 벌써 밥 먹을 시간이네요.
저는 밥은 거르지 않고 먹는 타입이거든요.”

반즈가 다시 한 번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성녀님~”


“그러니까 성녀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요!”

나는 다시 한 번 그의 손을 쳐냈다.


“너무해~ 아무튼 식사 맛있게 드시길!”


나하하하~ 그가 호쾌하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후우…….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놈을 떼어놓고야
말겠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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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까 말까 고민을 20번 정도는 한 욕데레 성녀 소설 첫편 완성

성질 더럽지만 사실 마음 여린 욕쟁이 성녀랑 능글맞은 혼돈 악(?) 성기사가

티격태격 꽁냥대는 후회 집착 피폐 얀데레물을 쓰고 싶었다...

근데 연재하게 되면 전에 썼던 경비병 소설보다 매워질 듯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