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세상의 마법소녀’라는 소설이 있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세상을 멸망시키고 지배한

마왕에 맞서 싸우는 마법소녀들의 이야기로

마법소녀물이라는 좀 흔한 소재에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라는 배경을 섞어 그럭저럭 인기를

끈 소설이었다.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마법소녀만이 아닌 

마왕 측의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뤄지며,

혹독한 전개와 예상하기 힘든 스토리로 

마법소녀라는 소재가 무색하게 비극적이었다.


근데 내가 왜 이 설정을 구구절절 읊고 있냐고?


왜냐하면 내가 그 소설에 나오는 마왕군 측

최고 간부, 닥터한테 빙의했기 때문이다.


아, 참고로 닥터는 소설 후반부에 죽는다.


그렇다.

지금 전개대로면 나도 죽게 생겼다는 뜻이었다.






“뭐, 내가 바보도 아니고 죽을 리 없지만.”

나는 바닥에 누워 TV를 보며 말했다.


세상은 멸망했지만, 아직 문명이 남아있는

도시도 제법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여기, 바빌론이다.

마왕이 지배하는 곳이지만 일단은 인간의

거주가 허락된 곳이어서, 방송국이나 평범한

오락 시설도 있었다.


‘그래 봤자 TV에 나오는 건 마왕 찬양뿐이지만.’


어느 채널로 돌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마왕의 일대기나 마왕이 얼마나 우월하고

뛰어난 존재인지 찬양하는 내용뿐이다.


하여간 망할 꼬맹이 같으니, 자아도취도 정도가

있지. 


“쯧, 밥이나 먹을까.”


나는 온실로 가, 식물 성장기의 뚜껑을 열었다.

오오, 잘 자랐구나. 나는 무와 감자를 뽑아

그걸 자동 요리 기계에 넣었다.


띵! 곧 자동 요리 기계가 잘 익은 감자 무

조림을 뱉었다. 


“잘 먹겠습니다.”


그보다 진짜 편리하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 ‘닥터’의 지능은 두려울 정도였다.


단순히 머리가 좋다, 이 수준이 아니다.

어떤 걸 만들고 싶으면 그냥 어떻게 만들지

잠깐 고민하면 된다. 그럼 짜잔, 답이 나온다.


마치 질문을 넣으면 답이 나오는 기계 같다.

원리는 나도 모른다. 딱히 내 지능이 높아진 건

아닌 듯한데.


‘그나저나 요즘은 꽤 잠잠하구나.’


원작에선 마왕군과 저항군, 마법소녀들이

거의 매일같이 치고받고 싸웠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사상자가

나오고, 마왕군이나 마법소녀 할 것 없이

죽어나갔다. 근데 요즘은? 꽤 조용하다.


종종 소규모 국지전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게 전부다. 나야 평화로우면 좋지만.


“하암……슬슬 낮잠이나 더 잘까.”


나는 내가 직접 만든 수면 캡슐을 열었다.

어디서든 완벽한 숙면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다. 이것 역시 원리는 나도 모른다.


‘그보다 마왕은 어쩌고 있으려나.’


마왕군에서 나오고 두 달이 지났다.


원작의 닥터, 즉 이 몸의 진짜 주인은 어떤

실험을 통해 이세계― 현실과 교류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실험은 실패했고,

현실에 살던 내 영혼과 닥터의 영혼이 섞였다.


지금의 나는 닥터이면서 닥터가 아닌 존재.

좀 애매하지만, 일단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왕군에서 도망쳤다.’


원작을 거의 다 읽은 나로서 거기 쭉 남아있을

이유는 없었다.


왜냐하면, 결국 끝에 가선 마법소녀들이 마왕을

처치하고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평화로운 세상이 오고 그러진 않았다.

마법소녀들이 통치하게 된 세상도 지금 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으니.


마왕이 악― 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이건

선악의 싸움이라기보단 주도권, 지배권 싸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내가 그런 싸움에서 죽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바보도 아니고, 거기 남아있으면 죽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 왜 거기 남아있겠나?


“덕분에 이렇게 꿀 빨면서 살고, 참 좋아.”


닥터의 능력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도 괜한

고생하지 않고 편히 살 수 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만들면 된다.

일할 필요도 없고, 필요한 재료만 구해다가

만들면 의식주가 모두 해결된다.


“앞으로도 쭉 이런 해피 라이프를 즐겨―”


콰앙!!


느닷없는 폭음에 나는 캡슐에서 뛰쳐나왔다.


뭐지? 내가 만든 물건이 폭발했나?

아니면 테러? 근처에서 전투가 일어났나?

혹시 마왕이 날 찾아낸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마왕이 찾지 못하도록 나는 철저하고 완벽한

계획을 세워 여기 숨어 지내고 있었다.


“닥터, 이런 곳에 숨어있었군.”

“켁.”


검은 트윈테일, 비슷한 색의 메탈 슈트.

그녀가 나를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나는 이 녀석이 누군지 안다.

그야 얘가 바로 그 원작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마법소녀 ‘세인’이기 때문이다.


“설마 바빌론에 숨어 살고 있을 줄이야.

자,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투항해!”

“젠장―”


야단났네, 설마 마왕도 아니고 마법소녀가

날 찾아낼 줄이야.


무슨 수를 숨어 사는 날 찾아낸 거지? 

재료 구하러 나갔을 때 미행당했나? 


“잠깐 타임, 난 무장하지도 않았다.”

“무슨 꿍꿍이지? 왜 여기 숨어 사는 거냐?”


썅. 닥터는 천재지만, 육체는 평범한 인간이다.

저 권총에 한 발이라도 맞았다간 죽는다.


“설명할 기회를 주면 좋겠군, 세인.”

“내 이름은 어떻게 알지?”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나?”


세인이 조금 경계를 푸는 것 같았다.

후, 마왕 손에 죽는 것도 싫지만 마법소녀 손에

죽는 건 더더욱 싫다.


얘네들은 말만 마법소녀지, 실제론 어지간한

군인보다도 혹독하고 무자비하기 때문이다.


“결론만 말하지. 난 마왕군을 배신했다.”

“뭐야?”

“그게 아니면 내가 여기 숨어 살 이유가 있나?”


세인이 내게 다가와 수갑을 채웠다.

와, 내가 살면서 수갑을 다 차보네. 

나름 착하게 살았는데.


“개소리하지 마, 무슨 속셈이야? 당장 불지

않으면 네 대가리에 구멍을 뚫어버리겠어.”


세인이 내 머리에 권총을 겨누었다.


―진정해라. 괜히 당황하면 진짜 죽을 수도 있다.


“난 마왕의 어리석음에 질렸다, 그래서 홀로

빠져나와 조용히 여생을 보내기로 했다.

이렇게 말해도 너는 믿지 않겠지만 말이지.”

“당연하지. 마왕의 최측근,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네가 그럴 리 없으니까. 너도 알고 있겠지?”


철컥! 세인이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겼다.


“네가 만든 발명품과 괴물들, 병기 때문에 우리

마법소녀가 얼마나 큰 피해를 보았는지!”

“그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뭐라고……?”

“이미 저지른 죄를 어찌할 순 없지.”


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화났나? 내가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나?

어느 쪽이건 이 녀석은 날 죽이지 못한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 중요한 정보원이다.


“순순히 협조하겠다. 항복이라는 소리다.”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고…….”

“믿기 싫으면 그냥 쏴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뭐, 그러면 내가 가진 정보도 함께 사라지지만.”


세인이 이빨을 으득 갈았다.


당연한 반응이다. 철천지원수인 나를 함부로

죽일 수 없으니 분할 수밖에.


“좋아, 널 본부로 압송하겠어. 허튼 수작 부리면

그 즉시 너를 사살할 테니 얌전히 있도록.”

“쥐 죽은 듯 있도록 하지.”


나는 세인의 손에 붙들려 끌려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내 집 주위로 수많은 마법소녀가

매복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나를 죽여 버릴 셈이었겠지.


“대장, 어떻게 된 겁니까?”

“닥터를 생포했다. 이대로 압송한다.”

“알겠습니다. 전원, 본부로 후퇴한다!”


그 후, 나는 장갑차에 타 본부로 끌려갔다.

마법소녀들의 본부― 도시 바깥에 있는

황무지 지하에 자리 잡은 비밀기지다.


무려 수천 명이나 들어와 살 수 있을 정도로

큰 기지지만, 여긴 아직도 마왕이 찾지 못한

기지 중 하나였다.


무슨 기술 어쩌고 하던데, 정확히는 나도

기억나질 않았다. 어쨌거나 SF에서나 나올

법한 기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여기가 너희 기지인가? 제법 멋진데.”

“입 다물어. 고개도 들지 마, 계속 걸어!”


아야, 세인이 내 무릎을 걷어찼다.

나는 그녀를 뒤따라가 심문실로 들어갔다.


심문실만은 내가 아는 그 옛날 심문실과

비슷했다. 좁아터진 방에 걸려있는 전구 하나.

그리고 철제 책상― 전형적인 심문실이다.


“허튼짓 하면 바로 사살할 거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거야? 앵무새냐?”

“닥쳐!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


어이쿠, 이거 봐라. 조금만 수틀리면 총부터

꺼내서 들이미는 거. 성질 하고는.


그거 때문에 원작 팬들도 세인이 왜 주인공인지

불만을 많이 토로했다. 


“심문을 시작하지. 이름과 소속은?”

“닥터. 소속은 현재 무소속.”

“시작부터 거짓말이냐? 마왕군 최고 간부잖아.”


적어도 이젠 아니다.

사표를 쓰고 나온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야반도주를 한 상태니까.


“음, 무의미한 시간 낭비는 그만두자고.”

“뭐야?”

“결론만 말하지. 나는 너희를 돕고 싶다.”


세인이 왼눈을 찡그렸다.


거 사람을 너무 못 믿는 거 아닌가 싶지만,

사실 나 같아도 믿기 좀 힘들 것 같긴 하다.

마왕군 최고 간부가 마법소녀를 돕는다고?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했다.


“무슨 속셈이냐? 여기 잠입해서 정보라도

빼낼 셈이냐? 아니면 우리의 신뢰를 사―”

“이봐, 난 마왕 뒤통수를 때리고 나왔다고.”


나는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마왕이 날 용서해 줄 거라고 생각하나?

그럴 리 없겠지? 마침 잘된 일이다. 너희랑

함께 하면 마왕도 날 죽이지 못할 테니까.”

“마왕을 배신했다고? 어째서지?”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다고만 해두지.”


진짜 이유는 거기 계속 있으면 언젠간 내가

마법소녀들 손에 살해당하기 때문이다.


난 오래 살고 싶다. 닥터라는 이 미치광이

과학자에 빙의했다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나도 딱히 마왕을 돕고 싶어서 도운 건 아니다.

너희한테 이래저래 피해를 많이 주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그에 대해 보상을 하고 싶다.”

“개소리 하지 마! 누가 그딴 개소리를 믿어!?”


탕! 내 귀를 스치고 총알이 벽에 박혔다.

―살짝 지렸다. 불가항력이었다.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내 친구들도 네 발명품 때문에 죽어나갔어!”

“내 진심으로 사과하지.”

“닥쳐! 닥치라고! 아니, 그냥 널 여기서 죽이고

이건 없었던 일로 해야―”


띠리링! 그 순간, 무전기가 울렸다.


<세인, 당장 멈춰라.>

“대장님! 이 남자는 죽어 마땅한 개자식입니다!”

<나도 안다. 하지만 닥터는 죽이기엔 너무

아까운 정보원이다. 일단은 살려두도록.>

“씨발!!”


콰직! 세인이 무전기를 벽에 던졌다.


“빌어먹을 놈, 운 좋은 줄 알아!”

“그렇게 알아두도록 하지.”

“썅!!”


세인이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쯧쯧, 저 성질머리는 언제쯤 고치려나.

아직 원작 초반부인 것 같으니 저 성격은

아마 한참 뒤에나 고쳐질 것이다.


“뭐, 일단 그렇게 됐으니.”


나는 이제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

의심받는 짓은 피하고, 최대한 호의를 사야

살아남을 수 있겠지.


“너희, 맛있는 거 먹고 싶지 않아?”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아주 잘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닥터!”

“오냐.”


나는 수갑 찬 손을 들어 인사했다.

여기 있는 동안, 나는 내 방에 있을 때를

제외하면 항상 이 특수 수갑을 차야 했다.


뭐라고 하더라, 내가 허튼 짓을 하면 바로

폭발하는 수갑이라고 하던가?


사실 풀고 싶으면 언제든지 풀 수 있지만,

그랬다간 괜히 의심받을 테니 좀 불편해도

그냥 차고 다니기로 했다.


“저기, 닥터! 저번에 만든 그 음식 만들어주는

기계 말인데요, 요리 종류를 늘릴 수 있어요?”

“쉽지. 뭐 먹고 싶은 거 있냐?”

“어……로브스터! 로브스터 버터구이요!”


어려운 걸 요구하네. 애초에 로브스터라니

그런 걸 어디서 구해? 바다도 다 씹창 났는데.


“에리아! 너, 그 녀석한테서 떨어져!”

“힉! 네, 네!”


에리아가 내게서 떨어졌다.

또 세인인가. 아주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군.


“좋은 아침이군, 세인.”

“닥쳐. 에리아, 너는 이 녀석이 허튼 짓하면

바로 신고해! 아니, 여차하면 그냥 죽여!”

“에……근데 닥터는 좋은 사람 같은데요…….”

“아니야! 닥터는 우리의 적이라고!”


세인이 에리아의 귀를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불쌍한 녀석. 에리아도 일단은 주인공 중

한 명이지만, 아직은 제일 약했다.


나중에 엄청나게 강해지지만, 그것도 한참

뒤에 일어날 일이니 당장은 상관없다.


“너! 에리아를 무슨 수로 꼬신 거냐?!”

“아무것도.”

“개소리! 일단 살려두고 있지만 잘 알아둬.

헛수작 부리는 순간이 네 마지막이 될 거다!”


얘는 어떻게 하루도 안 빼먹고 나한테 이리

지랄을 할까. 참 기운찬 녀석이다.

과거에 뭔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으니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좀 지랄 맞다.


“아무튼 난 시설 보수하러 간다?”

“대장님은 이런 놈의 뭘 믿고……!”

“너보단 믿음직하지. 내가 지난 한 달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해줬는지 너도 알 텐데?”


그 말대로,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마법소녀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줬다.


무기를 개선하고, 아슬아슬하게 운영되고 있는

시설을 보수해줬으며 항상 부족했던 식량과

식수 공급 문제를 해결해줬다.


덕분에 마법소녀는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하고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 꼬우면 내가 만든 샤워 설비는 쓰지 마라?

혹시 모르잖아, 내가 독을 탔을지.”

“망할 새끼가…….”


웨에에에에엥……!!


그때였다. 기지 전체에 붉은 경고등이 번쩍이며

귀가 터질 것 같은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이건 적습 경보? 하지만 이 비밀기지가 들통 나는

건 원작에서도 중반부에서나 일어나는 일인데?


“너! 설마 우리 위치를 마왕군에 발설했냐!?”

“아니거든. 그런 짓을 했으면 바로 들통 났지.

내가 24시간 내내 감시당하는 건 알잖아?”

“그건 맞아……하지만……그럼 어떻게?”


콰앙!! 그 순간, 내 뒤에 있던 벽이 무너졌다.


“여기 있었네, 닥터.”

“젠장.”


설마, 설마 그녀가 여기 직접 올 줄이야.


긴 백발을 휘날리며, 새까만 갑주를 입은

소녀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이 소녀가 바로 마왕, 최강의 마법소녀이자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여자…….


마왕, 아스테.


“허, 설마 직접 행차하실 줄은 몰랐는데.”

“이런 중요한 일은 직접 해결해야 하니까.”

“마왕!!”


타앙! 마왕이 총탄을 가볍게 튕겨냈다.

차원이 다르다. 마왕 아스테의 힘은 그 어떤

마법소녀보다도 강력했다.


지금의 세인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다.


“넌 누구더라? 우리 만난 적이 있었나?”

“너!! 네가 내 동료를!!”

“아, 그래? 미안, 하도 많이 죽이고 다녀서

누가 누군지 잘 모르거든.”


콰아앙!! 그녀가 날린 염동력에 세인이 날아갔다.


“와우, 무시무시하네.”

“그럼 우리 사이의 문제를 해결해보실까?”


그녀가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래 뭐, 지난 3달 동안 잘 먹고 잘 살았다.

조금 고생한 적도 있지만 뭐 어떠랴.

적어도 3달 정도 꿀 빨다가 죽는 거니까

그렇게까지 억울하진 않았다.


“그래도 여태까지 잘 해줬으니까, 너무 아프게

죽이진 마. 그 정도는 부탁해도 되겠지?”


화악! 마왕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죽으면 또 어떻게 되는 걸까.

그냥 영영 죽나? 아니면 현실로 돌아가나?

어느 쪽이건 닥터는 여기서 죽는―


“닥터! 왜 말도 없이 떠난 거야?!”

“잉?”

“저것들이 널 납치한 거지?! 다 알고 있어!

네가 나를 버리고 갈 리가 없잖아, 안 그래?”


이게 무슨 상황이야.

마왕이 내 허리를 껴안고 머리를 비벼댔다.


“내 유일한 친우, 나의 유일한 이해자―

네가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단 말이야!”


아― 그랬지.

생각해보니 내가 사라진 뒤, 마왕군은 활동을

멈췄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마왕은 내가 없어진 탓에 패닉에 빠져, 무기력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마왕이랑 닥터가 사실상 파트너

관계라는 묘사가 있었지.’


파트너라고 해야 하나, 마왕은 닥터를 그 어느

누구보다도 신뢰했다. 원작 설정은 그랬다.


그런 내가 사라졌으니 패닉에 빠질 수밖에.


“저 더러운 것들이 다치게 하진 않았지?

괜찮아, 내가 직접 구하러 왔으니까. 어서

마왕군으로 돌아가자, 응?”

“거기 서!!”


세인이 권총을 들어 마왕을 겨누었다.


“닥터를 데려가게 둘 것 같냐, 마왕!”

“너, 자꾸 짜증 나게 하지 마. 죽인다?”


마왕의 염동력이 주위를 뒤흔들었다.

몇 번을 봐도 무시무시한 힘이다.

혼자서 지진이나 해일을 일으킬 수 있는 인간 

재앙을 대체 누가 이긴단 말인가.


“닥터, 너는 우리 마법소녀 편이 된다고 했지!”


세인이 내게 손을 뻗었다.


“그럼 여기서 증명해! 네가 진정으로 우리

편이라는 것을! 세계의 평화를 바란다는 걸!”

“저년이 뭐라는 거야? 멍청하긴. 닥터는

나의 것, 오직 나만의 남자야. 너희 같은

머저리들한테는 과분한 사람이라고.”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총을 뽑았다.


“자, 닥터! 어서 이쪽으로 와!”

“닥터. 아니지? 너만은 날 버리지 않을 거지?”


―나는 선택해야 한다.


마법소녀와 마왕.


어느 쪽 편에 설 것인지를―















데뎃 1편만 쓰는 건 너무너무 즐거운레후

연재 따윌 왜 하는 데스우 1편만 쓰면 너무 행복한테치

2편 따윈 분충이나 쓰는데샤악!